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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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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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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에 내 옆에 검은색 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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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상한 세계로 돌아가고 싶으면 그 원으로 들어가라 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내 옆에 와서 같이 ‘사랑은 종갓집 햄버거집에서 냥냥 소리를 낸다 -내가 종갓집 햄버거 가게 고양이라고? 무리무리! 무리가 아니었다?-’를 보면 된다냥! 다 보면 집으로 돌려 보내주겠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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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걸려서라도 돌아가고 싶었는데, 저 말을 들으니 투기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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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런 끔찍한 걸 어떻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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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생각하며 원 쪽으로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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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잠깐! 이걸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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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빠진 풍성처럼 늘어져 있던 흰 오목눈이가 후다닥 달려와 무언가를 내밀었다. 반짝거리는 하얀 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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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좋아 보여서 받으려는 순간 흰 오목눈이가 보석으로 손등을 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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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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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빛이 반짝거리고 왼쪽 손등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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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만 있으면 나랑 소통도 할 수 있고 신전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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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오목눈이는 어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왜 이러나 싶어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흰 오목눈이가 날개로 나를 꾹꾹 밀기 시작했다. 워낙 작아서 미는 게 아니라 팔을 앞으로 뻗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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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계는 인간계와 시간의 흐름이 달라! 벌써 내 세계의 시간은 꽤 지났을 거야! 어서 돌아가!”
    “엇?! 진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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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당황하자 티비를 보던 신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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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앗, 설명하는 걸 까먹었네. 맞다냥. 아 물론, 네가 집으로 돌아갈 땐 시간선을 맞춰줄 수 있다냥. 나는 누구누구 신처럼 몰락한 신이 아니라서 가능하다냥.”
    “크흐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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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오목눈이가 바닥에 철퍼덕 쓰러져서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이게…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새카만 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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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아악! 그년이 친동생의 오빠의 친구의 친척이었다고?! 그거 완전 가족이잖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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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이상한 비명을 내지르는 걸 끝으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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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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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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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무언가가 썩는 냄새와 비릿한 냄새였다. 코가 마비될 정도로 강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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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꽈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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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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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가 강하게 나를 껴안았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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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야가 흐릿하게 보여 뭐가 날 끌어안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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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눈가를 문질렀다. 그러자 부스러기 같은 게 손끝에 느껴졌다. 눈곱인가 싶어 박박 닦아내자 시야가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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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대체 눈에 뭐가 묻었기에 이런 건가 싶어 손을 확인하자 붉은 피딱지가 잔뜩 붙어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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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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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멍하니 손을 바라보다가 이내 나를 끌어안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아니,새빨간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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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라기엔 너무 큰데. 제스라기보단…’
    “아..이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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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작게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이가 고개를 번쩍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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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어? 아,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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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날 끌어안고 있던 건 아이리스가 맞았다. 그것도 피범벅이 된 아이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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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윽…”
    “헉…! 아,아이리스 왜 그래 누,누가 우리 아이리스를 -…”
    “흐으윽,흐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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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의 눈가 구슬 같은 눈물이 잔뜩 고이더니 이내 와르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이리스를 품에 안으며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갈고리를 생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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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아이리스가 피범벅이 된 채 울고 있는..거지?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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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한 머리는 복잡한 생각을 처리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리스의 등을 토닥거리며 그저 혼란에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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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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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수가 오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펑펑 우는 아이리스를 달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
    ​
    ‘이야, 여기 거기네. 시체 처리장.’
    ​
    ​
    투기장에서 시체들을 버려두는 곳이 있다고 하더니 그곳이 여기인 듯했다. 주변에 부패한 시체가 널려있었다. 누군가 시체의 일부를 뜯어갔는지 배가 파여있는 시체도 많았다.
    ​
    ​
    ‘이런 곳엔 무슨 병이 있을지 모르니까 빨리 나가자.’
    ​
    ​
    나야 그딴 병에 걸릴 일 없지만, 아이리스는 모를 일이었다. 나는 우는 아이리스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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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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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선 도구가 바닥을 뒹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자 익숙한 무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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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가르간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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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마검이 더러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저앉아 무릎 위에 아이리스를 앉히고 마검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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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어엉..이젠 싫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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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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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
    [ 흐읍,흑…이젠 환청까지 들리네.. 파트너 절대 안 죽는다고 약속해놓고 죽는 게 어디 있나…그것도 저 끔찍한 녀석에게 남겨놓고 죽다니이잇.. ]
    ​
    ​
    동굴에서 마늘을 작신작신 씹어먹는 곰처럼 증오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검을 다시 놓아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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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 나 안 죽었어.”
   [ 또 환청이 들려오네. 흐흐…내가 이 정도로 파트너를 좋아했던 건가? 저승에서라도 알아주라고 파트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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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소리를 늘어놓는 모습에 그냥 검 날 부분에 엄지손가락을 가져가 살짝 베였다. 그러자 마검이 바로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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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엇,앗…엣? 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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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한 소리가 들리더니 마검이 웅웅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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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파,파트너? 파트너야? ]
    “응, 나야.”
    [ 그치만 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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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잠시 말이 없다가 커다란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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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 핫 핫 핫!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파트너가 고작 그런 거로 죽지 않는다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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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잠시 마검이 했던 말을 다시 되짚어줘야 하나 고민하다가…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제 딴에는 걱정해준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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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럼 당장 나랑 계약하자 파트너! ]
    “응? 계약이라니? 이미 되어있는 거 아니었어?”
    [ 그대의 심장이 꿰뚫린 후 자동으로 계약이 파기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겠군! 하여튼 다시 계약 하자! 빨리빨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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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내가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재촉했다.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저번과 같은 조건으로 계약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마검이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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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호구 계약에 동의해버린 마검이었다. 이래서 아는 사람과 계약할 땐 더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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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르륵.
    ​
    ​
    오른쪽 손등에 저번과 같은 인장이 새겨졌다. 그걸 보고 있자니 문득 왼쪽 손등에 시선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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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명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줬었는데?’
    ​
    ​
    확실히 정신을 잃은 사이 만났던 신들의 존재는 꿈이 아니었다는 듯 손등에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때 봤던 기하학적인 문양은 온데간데없고 작은 깃털 모양만 남아 있었다.
    ​
    ​
    ‘끙..남아있긴 하니까 신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
    ​
    그리 생각하며 마검을 손등으로 돌아가게 했다. 생각은 여길 벗어나서 해도 될 일이었다. 나는 아이리스를 고쳐 안아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
    ​
    높이가 10m는 되어 보이는 회색 벽이 멀찍이 세워져 있었고 천장이 없어 주변이 환했다. 워낙 마왕의 땅이 우중충한 날씨인 경우가 많아 몇시쯤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
    ​
    입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높이가 5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입구였는데, 근처에는 기척이 전혀 없었다. 문도 달려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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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설명하자면 -…문이 산산조각이 난 듯 나뭇조각 같은 게 바닥에 굴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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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명 시체 처리장은…투기장이랑 이어져..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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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 뒤로 이어질수록 흐려지다 못해 사그라들었다. 내 시선이 입구와 이어진 길 끝에 자리한 거대한 폐허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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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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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폐허로 향하는 길에 아직 마르지 않은 핏물이 듬성듬성 보였고 처참하게 죽은 이들의 시체도 간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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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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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무너진 폐허로 다가갔다. 폐허와 가까워지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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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투기장 맞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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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내가 쓰러진 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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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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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거슬러, 리안이 아이리스의 칼에 꿰뚫리던 그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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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직! 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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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검이 심장과 뼈를 가르고 리안의 몸을 관통하는 것과 동시에 핏물이 푸하학하고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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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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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오싹한 감각이 승리의 전율이라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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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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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 상인의 시체가 바닥에 툭 떨어지고, 온몸에 힘이 빠진 아이리스는 시체 앞에 주저앉았다. 검이 시체에 꽂혀있었지만 뽑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
    ​
    그녀는 멍한 얼굴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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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디어…드디어 끝났어. 이제 오빠 곁으로 돌아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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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희에 잠기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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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디어 승자가 가려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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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락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려 퍼졌다. 아이리스는 멍한 얼굴로 시선을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구 형태의 주먹만 한 게 날아다니며 시끄럽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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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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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을 가득 채우던 붉은 안개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공기가 맑아졌다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점차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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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오랜 시간 레디아홀손을 들이마시고 있었던 탓에 아이리스는 곧장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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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훤히 드러난 노예 상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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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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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 상인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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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익명 F님! 혈소연님!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0’9

Ilham Senjaya님 함께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3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우웅.

동시에 내 옆에 검은색 원이 생겼다.

“그 이상한 세계로 돌아가고 싶으면 그 원으로 들어가라 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내 옆에 와서 같이 ‘사랑은 종갓집 햄버거집에서 냥냥 소리를 낸다 -내가 종갓집 햄버거 가게 고양이라고? 무리무리! 무리가 아니었다?-’를 보면 된다냥! 다 보면 집으로 돌려 보내주겠다냥!”

아이들이 걸려서라도 돌아가고 싶었는데, 저 말을 들으니 투기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저런 끔찍한 걸 어떻게 봐.’

그리 생각하며 원 쪽으로 몸을 틀었다.

“자,잠깐! 이걸 가져가!”

바람 빠진 풍성처럼 늘어져 있던 흰 오목눈이가 후다닥 달려와 무언가를 내밀었다. 반짝거리는 하얀 보석이었다.

뭔가 좋아 보여서 받으려는 순간 흰 오목눈이가 보석으로 손등을 툭 쳤다.

파앗!

짧은 빛이 반짝거리고 왼쪽 손등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졌다.

“이것만 있으면 나랑 소통도 할 수 있고 신전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거야!”

흰 오목눈이는 어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왜 이러나 싶어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흰 오목눈이가 날개로 나를 꾹꾹 밀기 시작했다. 워낙 작아서 미는 게 아니라 팔을 앞으로 뻗는 것만 같았다.

“신계는 인간계와 시간의 흐름이 달라! 벌써 내 세계의 시간은 꽤 지났을 거야! 어서 돌아가!”

“엇?! 진짜요?”

내가 당황하자 티비를 보던 신이 대답했다.

“아앗, 설명하는 걸 까먹었네. 맞다냥. 아 물론, 네가 집으로 돌아갈 땐 시간선을 맞춰줄 수 있다냥. 나는 누구누구 신처럼 몰락한 신이 아니라서 가능하다냥.”

“크흐흐흑.”

흰 오목눈이가 바닥에 철퍼덕 쓰러져서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이게…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새카만 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꺄아악! 그년이 친동생의 오빠의 친구의 친척이었다고?! 그거 완전 가족이잖아아!”

신이 이상한 비명을 내지르는 걸 끝으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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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여긴..?”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무언가가 썩는 냄새와 비릿한 냄새였다. 코가 마비될 정도로 강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꽈아악!

“으응?”

무언가가 강하게 나를 껴안았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야가 흐릿하게 보여 뭐가 날 끌어안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눈가를 문질렀다. 그러자 부스러기 같은 게 손끝에 느껴졌다. 눈곱인가 싶어 박박 닦아내자 시야가 선명해졌다.

도대체 눈에 뭐가 묻었기에 이런 건가 싶어 손을 확인하자 붉은 피딱지가 잔뜩 붙어있는 게 보였다.

“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멍하니 손을 바라보다가 이내 나를 끌어안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아니,새빨간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제스…라기엔 너무 큰데. 제스라기보단…’

“아..이리스?”

“…!”

내가 작게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이가 고개를 번쩍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어어? 아,아이리스?”

정말 날 끌어안고 있던 건 아이리스가 맞았다. 그것도 피범벅이 된 아이리스였다.

“흐윽…”

“헉…! 아,아이리스 왜 그래 누,누가 우리 아이리스를 -…”

“흐으윽,흐어어엉!”

아이리스의 눈가 구슬 같은 눈물이 잔뜩 고이더니 이내 와르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이리스를 품에 안으며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갈고리를 생성했다.

‘왜 아이리스가 피범벅이 된 채 울고 있는..거지? 대체 왜?’

멍한 머리는 복잡한 생각을 처리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리스의 등을 토닥거리며 그저 혼란에 삼켜졌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탈수가 오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펑펑 우는 아이리스를 달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야, 여기 거기네. 시체 처리장.’

투기장에서 시체들을 버려두는 곳이 있다고 하더니 그곳이 여기인 듯했다. 주변에 부패한 시체가 널려있었다. 누군가 시체의 일부를 뜯어갔는지 배가 파여있는 시체도 많았다.

‘이런 곳엔 무슨 병이 있을지 모르니까 빨리 나가자.’

나야 그딴 병에 걸릴 일 없지만, 아이리스는 모를 일이었다. 나는 우는 아이리스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챙그랑!

날이 선 도구가 바닥을 뒹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자 익숙한 무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 가르간도아?”

익숙한 마검이 더러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저앉아 무릎 위에 아이리스를 앉히고 마검을 잡았다.

[ 허어엉..이젠 싫어.. ]

마검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가르간도아?”

[ 흐읍,흑…이젠 환청까지 들리네.. 파트너 절대 안 죽는다고 약속해놓고 죽는 게 어디 있나…그것도 저 끔찍한 녀석에게 남겨놓고 죽다니이잇.. ]

동굴에서 마늘을 작신작신 씹어먹는 곰처럼 증오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검을 다시 놓아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걸었다.

“가르간도아 나 안 죽었어.”

[ 또 환청이 들려오네. 흐흐…내가 이 정도로 파트너를 좋아했던 건가? 저승에서라도 알아주라고 파트너. ]

헛소리를 늘어놓는 모습에 그냥 검 날 부분에 엄지손가락을 가져가 살짝 베였다. 그러자 마검이 바로 반응했다.

[ 엇,앗…엣? 헥? ]

기묘한 소리가 들리더니 마검이 웅웅 몸을 떨었다.

[ 파,파,파트너? 파트너야? ]

“응, 나야.”

[ 그치만 분명…? ]

마검은 잠시 말이 없다가 커다란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 음 핫 핫 핫!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파트너가 고작 그런 거로 죽지 않는다는 걸! ]

나는 잠시 마검이 했던 말을 다시 되짚어줘야 하나 고민하다가…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제 딴에는 걱정해준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으니까.

[ 그럼 당장 나랑 계약하자 파트너! ]

“응? 계약이라니? 이미 되어있는 거 아니었어?”

[ 그대의 심장이 꿰뚫린 후 자동으로 계약이 파기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겠군! 하여튼 다시 계약 하자! 빨리빨리! ]

마검은 내가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재촉했다.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저번과 같은 조건으로 계약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마검이 동의했다.

또다시 호구 계약에 동의해버린 마검이었다. 이래서 아는 사람과 계약할 땐 더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스르륵.

오른쪽 손등에 저번과 같은 인장이 새겨졌다. 그걸 보고 있자니 문득 왼쪽 손등에 시선이 갔다.

‘분명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줬었는데?’

확실히 정신을 잃은 사이 만났던 신들의 존재는 꿈이 아니었다는 듯 손등에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때 봤던 기하학적인 문양은 온데간데없고 작은 깃털 모양만 남아 있었다.

‘끙..남아있긴 하니까 신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마검을 손등으로 돌아가게 했다. 생각은 여길 벗어나서 해도 될 일이었다. 나는 아이리스를 고쳐 안아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높이가 10m는 되어 보이는 회색 벽이 멀찍이 세워져 있었고 천장이 없어 주변이 환했다. 워낙 마왕의 땅이 우중충한 날씨인 경우가 많아 몇시쯤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입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높이가 5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입구였는데, 근처에는 기척이 전혀 없었다. 문도 달려있지 않았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문이 산산조각이 난 듯 나뭇조각 같은 게 바닥에 굴러다녔다.

‘분명 시체 처리장은…투기장이랑 이어져..있다고..?’

생각이 뒤로 이어질수록 흐려지다 못해 사그라들었다. 내 시선이 입구와 이어진 길 끝에 자리한 거대한 폐허에 닿았다.

“어,음…?”

거대한 폐허로 향하는 길에 아직 마르지 않은 핏물이 듬성듬성 보였고 처참하게 죽은 이들의 시체도 간간이 보였다.

‘설마…?’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무너진 폐허로 다가갔다. 폐허와 가까워지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투기장 맞는 거 같은데?’

대체 내가 쓰러진 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시간을 거슬러, 리안이 아이리스의 칼에 꿰뚫리던 그 시점.

콰직! 우드득!

아이리스의 검이 심장과 뼈를 가르고 리안의 몸을 관통하는 것과 동시에 핏물이 푸하학하고 뿜어져 나왔다.

“하악,학…!”

아이리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오싹한 감각이 승리의 전율이라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풀썩.

노예 상인의 시체가 바닥에 툭 떨어지고, 온몸에 힘이 빠진 아이리스는 시체 앞에 주저앉았다. 검이 시체에 꽂혀있었지만 뽑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생각했다.

‘드디어…드디어 끝났어. 이제 오빠 곁으로 돌아갈 수 있어!’

환희에 잠기려는 순간.

[ 드디어 승자가 가려졌습니다! ]

벼락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려 퍼졌다. 아이리스는 멍한 얼굴로 시선을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구 형태의 주먹만 한 게 날아다니며 시끄럽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스스슷.

주변을 가득 채우던 붉은 안개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공기가 맑아졌다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점차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워낙 오랜 시간 레디아홀손을 들이마시고 있었던 탓에 아이리스는 곧장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훤히 드러난 노예 상인을 바라보았다.

“어..?”

노예 상인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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