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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여느 때처럼 이른 새벽의 훈련을 마치고서 씻기 위해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

   

   공지가 붙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늘 새로 나올 공지라면 그거지?

   

   나는 발을 돌려서 공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켜주시겠어요?’

   “허접들. 비켜.”

   

   사람들은 무척 친절했다.

   

   그들은 공지를 살피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는 다급히 길을 내어주었다.

   

   바퀴벌레 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것만 아니었다면 참 고맙다고 생각했을텐데 말야.

   

   이젠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나는 인파 사이를 걸어가 공지를 확인했다.

   

   [소울 아카데미 학기 던전에 관한 공지문]

   

   역시 이거였네.

   

   소울 아카데미에서는 학기 마다 던전이 열린다.

   

   아카데미에서 제작한 인공 던전으로 규모는 대략 100층.

   

   안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궁 형태의 던전이다.

   

   10층마다 보스가 있다거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진다거나,

   

   계층마다 테마가 달라서 적절한 준비가 필수적이라거나.

   

   허나 이 던전이 여타 던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위기탈출기능이다.

   

   던전을 공략하는 사람이 위기에 빠지면 던전에 존재하는 마법이 그를 인지하고 탈출을 시켜주지.

   

   이 때문에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아무런 위험부담없이 던전을 공략할 수 있다.

   

   본래라면 아카데미 입학시험의 던전에서도 이 기능이 발동되어야 했지만 아그라가 개입하는 바람에 사단이 났지.

   

   소울 아카데미의 학생이라고 반드시 이 던전을 공략할 필요는 없다.

   

   다만 던전을 공략하면 층수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주기에 공략을 하는 편이 좋다.

   

   특히 던전을 제일 먼저 완전 공략한 3 파티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진다.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을 할 적에 제일 중요했던 게 바로 저 최선두 3파티 안에 드는 것이었다.

   

   저 보상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편함이 달라지니까.

   

   1학년 1학기의 보상은 경우에 따라 포기해도 괜찮지만 다른 보상은 반드시 얻어야 했지.

   

   물론 난 1학기의 보상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소울 아카데미 썩은물의 자존심이 있는데 이런 걸 놓칠 리가 없잖아!

   

   혹여 현실이 되며 달라진 게 있을까봐 아카데미의 공지문을 읽던 중 신기한 걸 발견했다.

   

   첫 공지에서 이 문장을 보게 될 줄이야.

   

   아카데미에 입학하자마자 아그라의 저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보니 절대 볼 수 없는 문장이었는데.

   

   ‘입학시험의 사고와 관련해서 : 주신 교회의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악신이 개입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또한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미연에 사고를…’

   

   이건 믿어도 괜찮은 이야기였다.

   

   아카데미 던전에 아그라가 개입하고 나면 공지로 이 문장이 뜨는데 그 후론 다시는 아그라가 개입하지 않거든.

   

   그래서 아그라의 저주로 파밍 할 수 있는 물건을 얻으려면 외부 던전으로 향해야 했지.

   

   예외가 없진 않지만…

   

   당분간은 안심하고 아카데미의 던전을 공략해도 괜찮다.

   

   나머지는 다 비슷한 내용인가?

   

   아니네.

   

   다른 게 하나가… 어?

   

   ‘이번에 입학한 신입생 같은 경우 재학생 혹은 교수를 포함한 4인 파티가 아닐 경우 던전의 진입이 제한됩니다.

   교수가 동행할 경우 그들은 안전을 보장할 뿐 던전 공략에는 도움을 주지 않으니 이 점 유의 바랍니다.’

   

   네? 뭐요?

   

   4인 파티가 아니라면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고?

   

   왜?!

   

   의문을 가지고서 아래로 시선을 내리니 그 이유가 써 있었다.

   

   공지문의 내용은 장황했지만 요약하면 이랬다.

   

   자신들은 철저하게 주의를 기울였지만 변수나 사고가 생길 여지는 어디에나 있다.

   

   던전의 공략에 익숙한 재학생 같은 경우엔 이에 대처할 수 있겠지만 신입생은 다르다.

   

   입학시험의 던전 이외에는 공략해보지 않는 이들도 많은데 이런 이들은 대처가 서툴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그들의 안전을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한다.

   

   아니.

   

   이건 아니지.

   

   4인 파티라니!

   

   취지는 대충 이해했지만 이건 너무 과하지 않아?!

   

   안전을 위해서라면 2인 파티로도 충분하잖아.

   

   이럼 나 같은 왕따는 던전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대체 왜 이렇게까지 과민반응을 하는 거지?

   

   게임에서는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었다.

   

   외부 던전을 공략하러 나가는 게 아니라면 4인 편성 고집한 적 없잖아 너네!

   

   뭐가 다른데! 어?

   

   입학시험의 던전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 젠장. 모르겠다.

   

   일단 보상을 위해서라도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교수는 칼을 데려간다 치더라도 남은 둘은 어떻게 채우면 좋은 거야.

   

   지금 나랑 같이 던전에 들어가 줄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네 명?… 곤란해.”

   

   아. 한 명 있긴 하네.

   

   타의적으로 외톨이가 되어버린 나와는 다르게 스스로 세상을 왕따시키는 중인 사람이.

   

   어느새 따라 온 건 지 내 옆에서 공지를 읽던 프레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앨 데려가야 하나.

   

   하아.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파티 분쇄범이자 민폐 그 자체인 이 정신 나간 애를 파티에 넣어야 한다고?

   

   그런 선택을 할 바에야 차라리 혼자 들어가고 말지.

   

   근데 혼자서 들어갈 수가 없네? 제기랄!

   

   더 열 받는 건 어쩔 수 없이 프레이를 데리고 가더라도 한 사람이 남는다는 거야.

   

   1학년 1학기 던전 공략 보상은 없어도 상관없는 거라 쿨하게 넘겨도 되지만…

   

   “루시 알른.”

   

   누구야. 지금 나 머리 깨질 것 같거든?

   

   시비 걸려고 부른 거라면 박살을 분풀이를 해 줄 테다.

   

   그리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나를 내려다보는 청색의 냉혹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아서.’

   “불쌍왕자님.”

   

   입학식의 대참사 이후로 의도적으로 피하던 사람을 만난 탓에 놀라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불러버렸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메스가키 스킬은 최선을 다해 일을 했다.

   

   조금만 게으르면 어디가 덧나나 진짜.

   

   “…일주일이 지나도 그 더러운 입은 여전하군. 하긴 평생을 그렇게 살았으니 달라질 리도 없나.”

   

   아서는 불쌍왕자라는 소리를 듣고 한 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비꼬듯 목소리를 냈다.

   

   내가 지금 호감도를 볼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아서의 호감도는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마이너스일 거야.

   

   “불경한 루시 알른. 그대에게 제안이 있다.”

   

   ‘…뭐죠?’

   “뭔가요?”

   

   “본래라면 그대의 불경함에 죄를 물어야 할 터이나 이 곳은 아카데미이지 않나. 난 왕자이지만 왕자가 아니고, 그대도 영애이지만 영애가 아니지.”

   

   아서가 과장스럽게 팔을 벌리며 말을 함에 따라 주변의 시선들이 우리를 향한다.

   

   그 시선의 온도는 극명했다. 아서를 향하는 눈은 부드러웠고 나를 향하는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하고 무거웠다.

   

   수백에 달할 그 눈동자들은 너무도 무거워서 형체가 없음에도 짓눌려 질식할 것만 같았다.

   

   메스가키 스킬이 억지로 당당함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면 난 주저앉지 않았을까.

   

   <음습하다고 해야 할지. 똑똑하다 해야 할지.>

   ‘무슨 말이에요?’

   <저 놈이 이 풍경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단 소리다.>

   

   여론이 자신에게 호의적이고 내게 차갑다는 것을 알기에.

   

   아서는 굳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의도야 뻔하지. 자신이 하는 제안을 네게 강요하기 위해서다.>

   ‘…뭘 말하려는 걸까요.’

   <글쎄다. 긍정적인 건 아니겠지.>

   

   할배 그건 나도 알고 있거든요?

   

   날 미워하고 있을 아서가 좋은 소리를 하겠냐고.

   

   “그러니 제안을 하나 하지. 듣겠나?”

   ‘말하시죠.’

   “들어는 드리죠. 불쌍왕자.”

   

   제안을 듣지 않으면 돌팔매를 던질 것 같은 풍경을 만들어 놓고 무슨 배려하는 척이야.

   

   내 대답을 들은 아서는 한 쪽 눈썹을 치뜨더니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그대는 우수하다. 날 짓뭉개고 불쌍하단 소리를 내뱉을 정도로. 혹자는 세기의 천재가 나타났다 말하기도 하더군.”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천재?

   

   나 그런 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

   

   지나가다가 망나니 영애라고 중얼거림을 들어본 적은 있어도.

   

   <일부러 띄워주는 거다.>

   ‘왜요?’

   <그래야 더 아래로 떨어트릴 수 있으니까.>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승부욕이 생기더군. 자네에 비하면 못하지만 본인도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인간이라서 말이야.”

   

   아서는 그리 말을 하고서 뜸을 들였다.

   

   마치 사람들에게 지금이 집중할 타이밍이라고 알려주는 이야기꾼처럼.

   

   “승부를 하지 않겠나?”

   

   ‘승부요?’

   “승부?”

   

   “그래. 승부.  하루 내에 누가 더 깊은 곳까지 던전을 공략하나를 걸고서.

   그대가 이긴다면 내 그대의 불경을 기꺼이 용서하겠네. 본인은 관대하니까.

   그대가 패해도 잃는 건 없네. 그저 불경의 죄를 감당하면 되는 게지. 어떤가. 손해 볼 것 없는 제안 아닌가?”

   <거절해라.>

   

   아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할배가 단호히 소리쳤다.

   

   <얼핏 들으면 너에게 용서의 기회를 주는 것 같지만 다르다. 저건 너에게 합법적으로 굴욕을 안기기 위한 수작이다.>

   

   보통 저런 놈들은 자신이 질 것 같으면 저런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서.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내게 패배를 안길 것이라며.

   

   할배는 저 제안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불가치하다고 말했다.

   

   <제일 악질적인 건 명확히 제시된 게 없단 거다.>

   

   이겼을 경우에는 용서를 받는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아서는 겉으로만 선심쓰듯 움직일 뿐 속으론 조금도 날 용서하지 않을 테고 내 평판도 조금도 바뀌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질 경우엔?

   

   내가 패배할 경우에 난 무얼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간단히 말해 아서가 내민 것은 백지로 된 계약서였다.

   

   아서에게만 유리한 백지 계약서 말이다.

   

   <여론이 이러니 거절하면 비겁자니 겁쟁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겠지만 뭐 어떠냐. 네게 더 떨어질 곳이 어딨다고.>

   

   물론 난 아서가 무슨 개짓거리를 하던 간에 이 놈을 이길 자신이 있지만 그렇다고 잃을 것만 있는 제안을 받을 필요는 없다.

   

   평판?

   

   이미 나락에 떨어져 있는데 더 떨어질 곳이 어디 있겠어.

   

   할배의 말에 수긍한 내가 거절의 말을 내뱉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 띠링.

   

   내 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아서와의 승부]

   [아서가 승부를 걸어왔다! 그 승부에서 승리하라!]

   [보상 :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

   

   사디 변태 허접 주신.

   

   당신 지금 나를 보고 있구나?

   

   그리고 내가 이 승부를 받기를 원하는 거야.

   

   그렇지?

   

   나를 유혹할 생각이었다면 아주 정확했어.

   

   얼빵 영애의 호감도를 즉시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라니.

   

   저걸 구하려면 원래 더럽게 귀찮은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하는데 그걸 공짜로 얻을 기회를 주겠다고?

   

   하. 빌어먹을.

   

   당신의 정확한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어.

   

   하늘에서 미물을 관조하는 신답게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는 건지.

   

   아니면 허접 변태 주신이라 내가 굴욕을 당하기를 원하는 건지.

   

   평소의 당신이라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뭐. 아무래도 좋아.

   

   나는 게임 속의 NPC가 무슨 수작을 부리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거든.

   

   ‘좋아요…’

   “좋아요. 불쌍왕자님. 그 제안 받아들이죠.”

   <여아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배가 다급히 소리를 쳤고 아서는 입꼬리를 길게 끌어 올렸다.

   

   “자신이 있나 보지?”

   

   ‘당연하죠.’

   “당연하죠. 불쌍왕자님. 제가 당신에게 질 리가 없잖아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서는 고인물을 이길 수 있을까요?

—–

패츌리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허접작가가 허접허접하며 쓴 글이 독자님을 즐겁게 해드렸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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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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