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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콰아아아아앙!!!

         

       고층 건물이 떨어졌다. 흩뿌연 먼지와 함께 앞이 막혔다.

         

       나는 곧바로 옆길로 틀었다. 나 혼자라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뒤쪽에는 못 따라올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리로!"

         

       연달아 무너지는 건물들 사이로 썩은 살점들이 기어나왔다. 썩은 자-라튼(Ratten)이 일제히 밀려 들어왔다.

       파도처럼 흘러넘치는 썩은 자. 그 와중에 땅은 계속 흔들렸다.

         

       "로즈메리! 이것 좀 받아요!"

       "던져요!"

       "어어어어?!"

         

       검은 반점의 인간이 하늘을 날았다. 로즈메리가 즉시 그를 받았다.

         

       나는 곧바로 뒤돌았다.

         

       도망치는 속도보다 썩은 자의 물결이 흘러들어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대로 가다간 시계탑까지 가기 전에 붙잡힌다.

         

       보통 난이도가 한순간에 지옥 난이도로 올라간 것과 똑같잖아! 시발!

         

       일행을 시계탑까지 넣어줄 시간도 없다. 지금 곧바로 갈라지는 게 옳아!

         

       "로즈메리! 사람들 끌고 시계탑까지 달려요!"

       "뭐?! 당신은요?!"

       "그냥 가요! 뒤돌아보지 말고!"

         

       나는 도끼를 텅 떨어트렸다. 흡 하고 힘을 주었다. 입을 벌리는 라튼의 대가리를 반으로 쪼갰다.

         

       톡 튀어나온 베아트리체의 영체가 주먹을 꾹 쥐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영웅적이에요! 자하드! 홀로 희생하다니…! 그야말로 성기사의 귀감!】

         

       뭘 멋대로 감탄해! 내가 뒤질 거 같냐?! 희생은 내 사전에 없다!

         

       전부 뚫고 전부 가져간다! 그게 내 모토!

         

       "로즈메리! 가라니까요!"

       "하, 하지만…!"

         

       나는 쓱 그녀를 돌아보았다.

         

       "시계탑 안에 괴물 한 마리 더 있거든요?! 그것 좀 부탁할게요! 나는 좀 늦을 거 같으니까!"

       "그걸 저 혼자 어떻게…!"

       "할 수 있어요! 당신이라면!"

       "…읏!"

         

       로즈메리의 입술을 깨물었다.

         

       "…빨리 안 오면 진짜 죽을 줄 알아요!"

         

       그대로 뒤돌았다. 즉시 달리기 시작한 그녀의 뒤로 용병들과 사제들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따, 따라오실 거죠?! 형제님?!"

       "늦지 않게 오셔야 합니다!"

       "돌아보지 말고 달려요!"

         

       그래. 모두 빠져나가라. 나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

         

       썩은 자들의 대군이 몰려들고 있었다. 도시의 어디 한 곳이라 할 거 없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코앞까지 밀어닥친 양은 나 하나로 감당하기엔 벅찼다.

         

       …형상변환? 그걸로도 무리일 거 같은데.

         

       나는 쓱 도끼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포켓에 집어넣었다.

         

       마검 수르트를 꺼낼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쓰러지면 뒷처리를 해줄 사람이 없지.

         

       그래도 때마침 적당한 게 하나 있지 않은가. 귀걸이에 손을 올렸다. 어깨에 달라붙어 있던 베아트리체의 영체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드디어…?!】

         

       보는 눈이 없다는 건, 전력을 끌어내도 괜찮다는 말.

         

       "베아트리체님."

         

       [갈증과 허기짐.]

       [절망이 세상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빛은 남아 있었으니.]

       [사람들은 마지막 빛을 '브류나크'라 이름 붙였다.]

         

       [신앙심으로 온몸이 충만해집니다.]

       [잃어버렸던 라의 빛이 세상에 도래합니다.]

       [성력이 최대치로 채워집니다.]

       [체력이 최대치로 채워집니다.]

       [성력의 운용이 2배로 뛰어오릅니다.]

         

       "도시에 불 지르는 거 좋아하세요?!"

       【아자아아아아아아아!!!!】

         

       실제로 써보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 능력과 위력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원래는 SS급의 무기. 하지만 베아트리체가 빙의 되고 나서는 성녀의 '격(格)'으로 인해 등급이 한 차례 더 올라간 특이한 케이스의 성물.

         

       SSS등급의 아이템, 빛의 창 브류나크의 귀걸이가 먼지처럼 흩어졌다.

         

       검은 하늘이 한순간 쩍-하고 갈라졌다.

         

       ['빛의 창 브류나크'가 진정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빛으로 산화한 귀걸이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라메르에 불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전과는 다른 화려한 등장이다. 성력을 있는 힘껏 들이부은 브류나크가 천벌처럼 파라메르를 불꽃으로 뒤덮었다.

         

       등장만으로 주변의 썩은 자들이 전부 쓸려나갔다. 흘러넘친 성력이 일시적으로 결계를 만들어내고, 가까이 다가오는 썩은 자들을 불살랐다.

         

       SSS랭크짜리 아이템다운 위용. 나는 갈라진 대지에 박힌 브류나크에 손을 뻗었다.

         

       성력이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레벨과 스킬이 딸려 본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지만, 이미 평범한 무기와는 격 자체가 달랐다.

         

       【브류나크를 실전에서 써보는 건 처음이죠?! 성력을 밀어 넣어 보세요! 그것이 빛의 창 브류나크를 제대로 쓰는 시발점!】

         

       말 그대로 성력을 밀어 넣었다. 브류나크와 링크된 베아트리체가 몸을 떨었다.

         

       【하으으읏…! 차, 참아야 해…싹 다 불 지르는 게 눈앞인데…여기서 이상한 성력의 느낌에 굴복할 수는 없어…!】

         

       역시 타고난 방화범. 대단한 결의다.

         

       나는 브류나크에 붙은 불을 휘둘러 털어냈다. 이미 몇 번 다뤄본 적 있는 무기다. 물론 현실은 아니고 게임에서지만…

         

       이미 그 능력 정도는 전부 꿰뚫고 있다는 말이지!

         

       ['황금의 비(SSS)'을 사용합니다.]

         

       불기둥으로 인해 뚫린 하늘 속에서 빛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브류나크와 똑같이 생긴 붉은색 창들이 바닥에 일제히 내리꽂혔다.

         

       그 숫자는 몇십 개. 원래 스킬이 몇천 개에 달하는 걸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었다. 성력도, 몸도 버티지 못해서 스킬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지.

         

       나는 창을 들었다. 발을 뒤로 빼고, 있는 힘껏 몸을 당겼다.

         

       ['빛을 삼키는 불 – 루인(Luin)(A)'을 사용합니다.]

         

       완벽한 투창 자세. 브류나크의 끝에 화염이 감돌았다. 주변에 내리꽂힌 붉은 색 창들 또한 제각각 떠올라, 시뻘건 불꽃에 휩싸였다.

         

       베아트리체가 숨을 헐떡였다.

         

       【처음 써보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감으로!"

       【그게 말이 돼?!!!】

         

       당겼던 몸을 움직였다. 나선창의 날 끝. 점 부분에 맺힌 응축된 화염이 폭발했다.

         

       브류나크는 단순한 창이 아니다. 투창했을 때 그 가치가 제일 빛나는 무기.

         

       ['일제포격(SSS)'을 사용합니다.]

         

       "으랴아아아앗!!!!"

         

       내던진 창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그 뒤로 수많은 브류나크의 복사본들이 일제히 허공을 꿰뚫었다.

         

       썩은 자들의 파도가 한순간 뚫렸다. 거대한 구멍 속으로 화염이 치솟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파라메르의 일각이 폭사(爆死)했다.

         

       불이 붙었다. 건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불꽃에 번들거리던 베아트리체가 사악하게 손을 비볐다.

         

       【아하하하!!! 전부 불태워버리죠!!! 남김없이 정화해버리는 거예요!! 자하드!!! 라의 사도답게 말이에요!!!!!】

         

       라의 사도보다는 방화범다운 말이다.

         

         

         

         

       . ..

         

         

         

       엘프들은 파라메르 전체에 울리는 경보음을 듣고 새하얗게 안색을 질렸다. 경보체계를 뚫다가 그만 실수해버린 탓.

         

       황급히 다시 기계를 조작했지만, 경보음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요란하게 울렸다.

         

       "이, 일단 움직여!"

       "보안 체계를 마저 뚫어야 해!"

       "플로라님을 우선순위로 지킨다!"

         

       엘프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기 위함.

         

       파라메르의 보물 창고 가장 깊숙한 곳에는, 엘프들의 보물이 있었다. 푸른 숲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던 세계수가 맺었던 축복.

         

       이그드라실의 눈물.

         

       인간들의 손에 빼앗긴 것을 도로 빼앗으러 온 것뿐이다. 그것만 있으면 줄어든 영토를 복구함과 동시에, 시들어버린 세계수를 다시금 되살릴 수 있다. 그 의도를 숨기려 수색대에 협력하는 척했으나…

         

       제국 기사의 민낯을 보았다. 이기적인 인간. 엘프들은 그에게 편지를 넘겨줌과 동시에 결심했다.

         

       이그드라실의 눈물을 빼앗아, 어떻게든 이곳을 탈출하자고.

         

       하지만 일은 틀어져 버렸다. 보물창고의 마법 결계는 엘프들이 해체 못 할 정도로 최첨단이었고, 하나를 건드리자마자 경보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경보음은 썩은 자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

         

       "괴물이 내려온다!"

       "막아!"

       "플로라님에게 접근 못 하게 해!"

       "저, 저도 도움이…!"

       "플로라님은 가만히 계세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보안을 뚫을 마법의 해킹과 더불어, 계단을 통해 굴러떨어지는 썩은 자들을 막아야 하는 상황.

         

       석궁이 움직이고 화살이 박혔다. 썩은 자들의 울음소리가 마법에 의해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것을 반복했다.

         

       엘프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틀렸다. 화살이 다 떨어지고 있다.

         

       지겨운 전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나마 남은 마력마저 갉아먹고 있었다.

         

       이대로는 전부 죽는다!

         

       엘프 우두머리는 나이프를 꺼냈다. 달려드는 썩은 자의 몸을 조각냈다.

         

       "플로라님을 모시고 빠져나가!"

       "아, 안 돼! 어떻게 너를 두고…!"

       "빠져나가라면 지금 당장 빠져 나…"

         

       쿠구구구구구구.

         

       소리가 들렸다. 엘프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자신들이 타고 내려온 비상 사다리 위에서 썩은 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아아…"

         

       유일한 탈출구마저 막혔다. 몰려들기 시작한 썩은 자들이 지하 광장을 가득 메웠다. 베어도 죽지 않고, 축복받은 화살이 몸에 박혀도 움직이는 살점들이 움직여 엘프들을 압박했다.

         

       "안 돼…안 돼…"

       "정령이여…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

       "나를…굽어살피소서…"

         

       후드를 뒤집어쓴 엘프가 앞으로 나섰다. 손에 매달린 정령이 그 거대한 힘을 드러냈으나, 역부족이었다.

         

       뿔이 달린 골렘이 진흙탕 속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곧바로 썩은 자들에게 침식당했다. 팔이 뜯기고 도로 가라앉았다.

         

       후드 달린 엘프가 악착같이 손을 뻗었다. 몇 번이고 다시 정령을 불렀다.

         

       "…아, 안 돼요…여기서 이렇게…죽을 수는…"

       "그래. 시발. 죽으면 안 되지."

         

       목소리.

         

       폭음이 들렸다. 후드를 뒤집어쓴 엘프는 자신도 모르게, 입구 방향을 쳐다보았다.

         

       밀려 들어오는 불꽃. 썩은 자들이 한순간 거세게 불타올랐다. 이글거리는 열기가 너무 강해,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볼이 화끈 달아오를 정도의 위력이었다.

         

       뚜벅뚜벅.

         

       누군가 걸어온다. 불타는 썩은 자들을 밟는 검은 사제복이 보였다. 라의 교단의 상징.

         

       첫날에 죽었을 게 당연할 사제가 어째서인지 보였다.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

         

       후드를 뒤집어쓴 엘프는 눈을 크게 떴다. 불을 휘감은 남자는 자신의 몸보다도 긴 창을 손에 들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날 끝은 신성했으며, 한순간 말문을 막히게 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물건이었다.

         

       "그, 그건…"

       "너희는 재들한테 죽으면 안 돼. 응? 이 트롤 새끼들아."

         

       불에 휘감긴 사제, 자하드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죽어도 내 손에 죽어야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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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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