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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67 – 불쌍해 보이는 아이>

     

    나무요정에 심취해서 인간의 마음 따위는 모르는 잔혹한 드라이어드.

    드넓은 칠판을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서 한 번에 5페이지 분량의 필기를 끝마치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필기를 모조리 지워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심지어 그렇게 지운 칠판에 두 번째 필기를 시작하며 이단절망을 선사하는 이단필기지옥.

     

    위어드 교수의 평판은 순식간에 나락에 처박혔다.

    학생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제국출신 교수님들이 괜히 미개한 넝쿨쟁이라고 욕하는 게 아니었어!”

    “크윽, 자연마법이 알고 싶다고 호기심을 품는 게 아니었는데!”

    “교수님의 나뭇잎 아래 밑가슴이 눈을 유혹하지만 않았으면 이런 강의는 처음부터 안 듣는 건데!”

     

    지역차별에 눈을 뜰 정도로 울분을 토로하는 학생들.

    미인계가 무서운 이유를 실전으로 깨달은 가엾은 학생들에게 도로시가 구원이 손길을 내밀었다.

     

    “너희들, 오늘 3교시 강의 들었지? 1-3 페이지랑 2-3 페이지를 각각 10포인트 받고 팔고 있는데. 이거 사지 않을래?”

     

    학생들은 감동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살게! 제발 사게해줘!”

    “그런 좋은 걸 어디서 구한 거야?”

    “오크노디한테 판매대행의뢰를 받았어. 내가 필기한 거 아니야.”

     

    열심히 필기를 마친 학생들은 겨우 한숨 돌렸다.

    다음 강의부터는 최소 다섯 명씩 모여서 강의를 들으면서 구역 별로 필기를 하는 필기에어리어 분할마크전략을 세웠기에 같은 고생을 할 걱정은 없다.

    처음 겪는 사태이기에 미처 필기를 할 수 없었던 이번 강의 필기본만 모두 입수하면 되었던 것이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제국 녀석들이라면 필기를 끝마치고도 절대 우리한테 공유하지 않았겠지.”

    “동감이야.”

    “그런데 오크노디는 어떻게 1-3페이지랑 2-3페이지만 딱 골라서 필기를 할 생각을 했대? 수석이라서 머리가 똑똑해서 그런가?”

    “몰라.”

     

    도로시도 내심 궁금했던 비밀이었다.

    그래서 기숙사에 돌아가거든 제 방에 콕 틀어박히던 생활습관을 벗어나 오크노디의 방문을 두드렸다.

     

    “오크노디라면 5교시까지 강의일정이 꽉 차있어.”

    “5교시…? 그런 늦은 시간에도 강의가 있었어?”

    “야간강의래. 교관한테 물어보니까 야행성인 학생들을 위해 준비된 강의라고 들었어. 근데 넌 누구야?”

    “도로시. 입학시험부터 오크노디한테 신세 진 동급생이야. 120호실에 살고 있어.”

    “오크노디는 친구가 많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헤스티아.

    그녀에게 도로시가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오크노디 옆방에 입주한 헤스티아지?”

    “맞아.”

    “어땠어? 오크노디랑 같은 조가 되는 거.”

     

    묻고 싶던 건 이쪽의 질문이 아니지만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입학시험부터 두각을 드러내었던 그 수석 오크노디와 같은 조로 활동하다니.

    <마나사용의 기초와 이해> 강의에서도 그녀의 비범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던 도로시의 입장에서는 호기심이 생길만도 했다.

     

    “일단은 기가 죽지.”

    “역시 그렇지? 그 애, 여러모로 굉장하니깐.”

    “그 이상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고.”

    “응? 오크노디가? 어째서?”

     

    최연소 입학생에 최연소 수석, 온갖 최연소 기록은 다 갈아치우고 있는 그녀가 불쌍하면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은 제 3 세계 난민이라도 되어야했다.

     

    “눈치 채지 못했어? 그 아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언제나 완벽 그 이상만 노린다는 거.”

    “수석이니까 당연하지 않나?”

    “당연하지 않아. 오크노디는 고작 11살이야.”

    “나이 치고 대범하긴 해도 조기교육이 드문 일은 아니잖아. 애가 조금 조숙할 수도 있지.”

    “넌 못 본 모양인데 오크노디는 제국격투가 롯토와의 대결에서 살초를 썼어. 플라톤 교수님의 강의에서는 북부대공녀의 배후를 점했고.”

    “…그건 좀 이상한데?”

    “조기교육의 방향성이 느껴져? 이건 오크노디 암살자설이 유력하다는 증거야. 동사할 각오로 빙결술사의 뒤에 따라붙은 시점에서 비정상적인 수준이지.”

     

    헤스티아는 오크노디의 완벽한 성과에 대한 집착을 잘못된 교육환경에서 비롯된 악습관이라고 보았다.

     

    “분명 그런 거겠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매질을 당하고,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악랄한 환경에서 자란 것이라면 납득할 수 있어.”

    “그건 아동학대잖아!”

    “피도 눈물도 없는 귀족가에서 암살자로 키웠다는 아이한테 그런 걸 신경 썼겠어? 용병 일 하면서 귀족가의 더러운 일을 한 번이라도 맡아보면 알아.”

     

    헤스티아는 나름 실력이 있는 광전사다.

    그렇기에 용병길드 차원에서 각지의 네임드 용병들이 대거 참여했던 임무에 함께 불리며 귀족가의 어둠을 보는 단체의뢰를 수행한 적이 있다.

    거대한 지하시설.

    목걸이에 사슬이 채워진 채로 감옥에 갇힌 아이들.

    개중 일부는 짐꾼으로, 일부는 성노예로, 일부는 암살자로 교육을 받는 끔찍한 아동학대 시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자, 잠깐만. 그러면 오크노디가 협동에 능한 건… 그런 경험을 겪어봐서 그랬던 거야?”

    “협동?”

    “오늘 위어드 교수님의 강의시간에……”

     

    도로시는 강의시간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미친 교수의 막나가는 필기와 능숙하게 가장 가치 있는 부분만을 필기한 오크노디.

    이런 시련 따위, 많이 겪어봤다는 것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무심히 칠판을 보는 체 하지만, 실은 혼자 생각에 잠겼던 옆모습까지.

     

    “잘해주자. 오크노디한테.”

    “응. 그래야겠어.”

     

    그간 별다른 접점도 없었던 헤스티아와 도로시였지만 두 사람은 오크노디가 불쌍하다는 공통된 연결고리를 토대로 친목을 다졌다.

    오크노디가 꾀하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 헤스티아의 교우관계 개선이었지만, 모로 돌아가도 목적지만 도착하면 그만이다.

    적어도 갑자기 눈이 뒤집혀서 대량학살자가 될 가능성은 희박해진 헤스티아였다.

     

     

    * *

     

     

    한편, 도로시가 열심히 필기노트를 다른 학생들에게 포인트를 받고 팔고 다니던 사이.

    오크노디는 수요일 4교시 강의 <원거리 병기숙달>을 듣고자 기사학부 야외강의실에 도착했다.

     

    “아직도 팔뚝에 근육이 배겨.”

    “활 너무 당겼어.”

    “나도 창던지기나 할 걸.”

    “권총이 개꿀 아니야? 그건 방아쇠만 당기면 그만이잖아.”

    “그래서 그 붉은 머리 미친놈이랑 같이 강의를 듣겠다고?”

    “아, 그건 좀.”

    “옆에서 총 맞을 것 같아서 무서워.”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할 학점이 상급반보다 적은 하급반 학생들은 상급반보다 대체로 표정이 밝았다.

    각양각색의 인성질을 하는 교수들에게 시달리는 주기가 조금 더 널널하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혈색이 좋고 정신건강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륙의 어린 동량들이여. 오늘 강의도 주 무기에 따라 조를 나누어서 훈련을 진행한다.”

     

    궁수조의 학생들의 오크노디를 본 반응은 정확하게 셋으로 나뉘었다.

     

    “안녕, 오크노디!”

    “오늘도 장궁 들 거야?”

    ‘용케 당기는구나. 그 가느다란 팔로.“

     

    그녀의 힘에 솔직하게 감탄하는 A그룹 학생들.

     

    “아 깜짝이야.”

    “맞다. 오크노디 있었지.”

    “뭔가 맞을 것 같아서 무섭지 않아?”

     

    은근 퍼지기 시작하는 악명에 두려워하는 B그룹 학생들.

     

    “…그래봤자 어린애입니다. 그렇게 경계할만한 대상은 아닙니다. 다른 강의라면 몰라도 이 원거리 병기숙달 강의에서만큼은 더욱.”

    “스콜라의 말이 맞아. 우리한테 두려울 것 따윈 아무것도 없다고.”

    “오크노디가 아무리 잘나도 궁술에서 스콜라를 이길 순 없을 거야!”

     

    신궁의 후예.

    제국 출신 학생 중에서는 궁술로 가장 유명한 조연급 캐릭터 중 한 명이자 아카데미에서 흔히 등장하는 ‘원딜’ 포지션 담당.

    스콜라를 위시로 주변에서 따르는 추종자들의 무리가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이었다.

     

    “저 녀석들, 건방지지 않아?”

    “감히 오크노디한테 도전하듯이 말을 하다니.”

    “오크노디, 너도 뭐라고 말좀 해봐.”

     

    그리고 당사자는 그 사실에 아무런 유감도 없었다.

     

    “네? 딱히 상관없지 않아요? 딱히 제 주특기가 궁술도 아니고. 저 그렇게 엄청나게 잘 쏘는 편은 아닌데요. 헤헤.”

    “아니, 누가 봐도 너 장난 아니었거든?!”

    “맞아. 고작 11살에 성인도 당기기 힘든 활을 당겨서 표적을 정확하게 맞추는 재주는 아무나 쉽게 보일 수 있는 재주가 아니라고!”

     

    어째서인지 그녀의 말을 들은 A그룹 학생들이 대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애초에 저 인간은 활을 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 그 자체인데 저걸 어떻게 이겨?’

     

    어느 게임에서든 원거리 담당은 원거리무기를 만능 수준으로 잘 다룬다.

    원거리포지션 주제에 명중률이 너무 처참해서 인기 있는 지뢰캐릭도 드물게 존재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스콜라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자, 그럼 오늘 숙달할 기술에 대해 설명하겠다.”

     

    교관의 설명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속으로 딴생각을 했다.

     

    ‘뭐, 어차피 두 번째 강의니까 저렇게 호들갑 떨어도 별 거 없을 텐데.’

     

    첫날이 정지된 과녁을 맞히는 강의였다면 두 번째 강의는 흔들리는 표적을 맞추는 강의.

    실력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솜씨를 뽐낼 강의도 아니다.

    빨리 쏘기 시합에서도, 멀리 쏘기 시합에서도 원딜 1티어로 손꼽히는 스콜라를 이길 자신도 없고, 시합을 할 이유도 없다.

     

    “궁술반은 평균 실력이 뛰어난 관계로 네 번째 강의에 할 예정이었던 진도를 앞당기게 됐다.”

    “네??”

    “별 거 없으니까 안심해라. 그냥 가볍게 장애물달리기를 하면서 표적을 가능한 한 많이 맞추는 이동사격으로 경쟁을 할 뿐이다.”

    “와. 오크노디랑 스콜라 둘 중에 누가 더 좋은 기록 세우는지 볼 수 있겠다.”

    “점수배점이 10%라고 하는데 그 정도는 나중에 기합으로 어떻게든 되니까 그냥 대충 활 쏘고 놀다 간다고 생각해라.”

     

    근데 이게 강의일정 앞당기기로 점수배점 10%가 걸린 기습시험을 박아버리네.

    나와 스콜라를 흥미진진하게 쳐다보던 학생들도 불똥이 자신들에게도 튀었음을 깨닫고는 사색이 되었다.

     

    “왜, 왜 그런 짓을 하는 건데요!”

    “우린 아직 초보라고요!”

     

    교관은 나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브닝슈터 교수님께서 어린애도 실력이 좋은 궁술반은 진도를 많이 앞당겨도 되겠다고 하셨다.”

    “그건 잘못됐어요! 오크노디 팔 좀 봐요. 이 가녀린 팔로 활이나 제대로 당기겠어요?”

    “얘 키를 봐요. 장애물을 뛰어넘으려다가 넘어져서 엉엉 울고 말 거라고요!”

    “오크노디가 불쌍해보이지도 않아요?”

    “…….”

     

    지금 날 핑계로 걸고넘어지는 녀석들, 전부 방금 전까지 치켜세우며 한판 뜨라고 부추기던 녀석들이다.

     

    “전 괜찮아요!”

     

    왠지 얄미워서 씩씩하게 손을 들고 교관님에게 눈도장이나 찍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 때문에 앞당겨진 강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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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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