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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제대로 짜 맞추지 못한 상념이 머릿속을 졸졸 흘렀다.

    의미 없이 흘러가는 생각에 멍하니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뚝- 소리와 함께 손가락 마디에서 미묘한 쾌감이 퍼졌다. 기분이 좋았다.

    동시에 내 정신도 함께 돌아왔다. 멍하니 가라앉던 이성이 자극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기숙사로 가기 위해 터덜터덜 걷던 다리가 우뚝 멈췄다.

    ‘아.’

    현실감이 엄습했다. 애써 잊고 있던 잔혹한 현실이 다가왔다.

    아찔한 감각에 한숨을 뱉으며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자괴감의 파도가 덮쳐왔다.

    ‘내가, 내가 왜 그랬지?’

    홍연화의 병문안을 간 것은 오늘 점심쯤이었다.

    아침이나 저녁에 가는 건 불편할 거라 생각해 점심시간은 지나고서 방문했다.

    간단히 안부를 묻고 목도리를 건네준 뒤 돌아올 생각이었다. 환자가 불편하게 오래 붙어있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예의를 운운하던 주제에, 환자의 품 안에 안겨 쿨쿨 잠들어버렸다.

    공간지각으로 주변을 관측했다. 슬슬 노을마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각이다.

    즉, 저녁은 이미 넘었다.

    환자를 껴안고서 저녁까지 쿨쿨 잠들었고, 그도 모자라 저녁까지 얻어먹고 나왔다.

    ‘갸아아악…’

    차마 측정할 수 없는 정신적 대미지가 머리를 두드렸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목도리를 건네준 뒤, 홍연화가 갑작스레 숨을 꺽꺽거리며 발작을 일으켰다.

    그때는, 뭐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홍연화를 덥석 끌어안았다.

    신입생 환영회 날 보건실에서, 홍연화가 나한테 해줬던 것처럼.

    다행히 결과는 좋았다. 그녀는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껴안기 전에 뭐라도 기척을 내서 에리얼 님을 불러들이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저주만 없었더라면 당장 소리쳐서 불러들였을 텐데.

    이런 일상을 보낼수록 목소리가 없어 겪는 불편함을 거듭 체감했다.

    홀로그램 덕분에 배부른 소리긴 하지만, 역시 직접 말하는 것이 가장 편했다.

    고백의 목걸이를 빨리 챙겨야 할 이유가 늘었다.

    어찌 됐든.

    홍연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끌어안는 것은 이해 가능한 범위였다. 덥석 껴안기는 했지만 긴급 상황이라는 변명이 있었다.

    하지만, 핏줄의 비밀(추정)을 들은 뒤 그녀의 품에 덥석 안긴 건 뭐지? 그러고 왜 그런 상태로 잠들어버린 거냐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짜 미친 건가 의문이 들었다.

    내가 할법한 행동이 아니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그 이유를 추정하자면…

    ‘겁화.’

    조심스레 오른팔을 매만졌다.

    탑 내부에서 겁화를 뿜어냈던 일. 그 직후 감정의 고조를 느끼며, 홍연화에게 추태를 부린 전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때와 같았다. 감정이 고조됐다. 생각이 짧아졌고,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감정을 부추겨지고 그 탓에 충동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

    전형적인 겁화의 특징이다.

    진짜 겁화를 보유한 걸까. 떨떠름하니 홍연화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겁화 가문의 일원일 수도 있다는 말… 솔직히 지금도 모르겠다.

    ‘나’로 생각하고 있는 본래 세계의 이하율.

    기록상으로는 분명 존재하는 이쪽 세계의 이하율.

    본래 세계와 똑같이 오른팔에 화상이 존재한다는 이쪽 세계의 기록과 겁화의 사용…

    ‘대체 뭐지.’

    고민하며 걷고 있자니 기숙사에는 금방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변함없는 기숙사의 내부… 정확히는 이전과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작품으로 태어나지 못한 비운의 실 뭉텅이가 거실 구석에 산처럼 쌓여있었다.

    ‘저것도 다 치워야지.’

    괜히 손가락끼리 비벼댔다. 겉으로 티 나지는 않지만, 자세히 관측해 보면 최근 아물었던 사소한 생체기가 있다.

    뜨개질은 시요람에 입학한 초반에 배웠다.

    팔방미인을 수련하는 데는 여러 방면에 도전해 보는 것이 제일 빠르다.

    때문에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손기술 따위를 자투리 시간마다 접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게 뜨개질이나 목공이였다.

    물론 목공 쪽은 그냥 간단한 목제 조각상이나 만드는 정도로 그쳤다.

    사소하겠지만 뜨개질이나 목공이나 제작 활동에도 들어가니 익혀둬서 나쁠 건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처음 배웠을 때도 팔방미인 덕분에 손쉽게 입문했다. 처음 시도에 그럴듯한 양말도 만들었고, 나중에는 목도리도 직접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홍연화의 병문안 선물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 ‘이게 아닌데.’

    – ‘너무 못 만들었어…’

    – ‘못생겼어.’

    막상 만들고 보니 탐탁지 않았다. 내가 쓸 거라고 한다면 쓰겠지만, 선물로 주겠다고 생각하니 흠잡을 곳이 너무 많았다.

    실패작이 된 것이 하나 둘 쌓이고… 시간도 아이스크림처럼 녹았다.

    – ‘오.’

    몇 시간이 후딱 지나고서야 그나마 봐줄 만한 목도리가 나왔고, 그걸 어찌어찌 다듬은 끝에 선물이 완성되었다.

    다듬는 과정에서 가느다란 레이스 바늘이나 가위에 찔리고 베이는 경우가 있었다.

    단순한 날붙이라면 질겨진 살가죽이 버티겠지만, 섬세하게 한답시고 미약한 강기를 둘러서 그랬다.

    또 그 과정에서 온도조절 술식까지 구겨 넣느라 실수가 조금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온도조절과 내구보정 술식이 첨가된 목도리(마도구)였다.

    엄연한 제작 활동이었다. 시간 낭비는 결코 아니었다. 나중에 연금술이나 야금술에 입문했을 때 도움이 되겠지.

    털 뭉텅이를 치우며 그리 합리화했다.

    주말은 그렇게 끝났다.

    .

    .

    .

    성장의 탑을 통해 내 성장을 확인받았다.

    세계적인 인재들을 모아둔 시요람의 생도들. 그들의 합공 속에서 무려 이틀을 홀로 살아남았다. 그것도 공간지각이 파업한 상태로.

    물론 주연급 인물을 만나지 않았다는 행운 덕분이었지만, 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증거는 됐다.

    감히 기대하지 못했던 성과였다.

    솔직히 맘 같아서는 방방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력이 전부인 이 세상에서 빠르게 강해진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고, 저주를 풀어낼 가능성이 늘어난 것이다.

    – 후우우웅!

    이 성과를 쌓게 도와준 일등공신이 주먹을 뻗어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담겼다.

    그보다 먼저 공간지각이 주먹의 궤적을 읽었다.

    뒤늦게 다가온 바람이 피부를 스치며 재차 공격을 자각시켰다.

    황금색 강기가 넘실거리며 직선으로 날아든다.

    대개 직선적인 공격은 단순하여 쉽게 대응 가능하다.

    궤적을 읽어내기 수월해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편하다.

    하지만 아트라 교수와 대련을 이어온 것이 거진 한 달이다.

    저 단순해 보이는 주먹이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알고있다.

    어쭙잖게 회피를 시도하면 즉시 궤적을 꺾어 턱에 틀어박히고, 강기를 둘러 맞대응했다가 몇 차례 응수 끝에 주먹이 처박힌다.

    수없이 겪어봤다. 항상 고민했지만 저것에 대응책이랄 것은 없었다.

    기본기에 가까운 단순함. 하지만 그렇기에 다양한 변화를 담을 수 있는다는 아트라 교수의 가르침이었다.

    그냥 내 쪽도 잘 싸우면 된다. 그거밖에 답이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맞불이다. 코어에서 일어난 마력이 양 팔에 휘감겼다. 재빨리 발현한 강기가 주먹을 둘렀다.

    한쪽 주먹을 뻗었다. 주먹과 주먹이 겹쳐졌다.

    – 꽈앙!

    충돌한 직후 파르르 떨리려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뼈를 타고 진동이 머리까지 전달되는 것 같다.

    주먹에 둘러진 강기. 육체를 활성화시킨 강체. 나날이 치솟는 신체능력.

    나름 대처를 했음에도 이런 충격이다. 이를 악물며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만 휘두르지 않았다.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자세를 바꾼다. 간혹 빈틈이 보일 경우 발차기도 욱여넣었다.

    신체 수준은 비슷했다. 아트라 교수는 내 수준을 고려해 몸을 사용하고 있었다.

    기량도 엇비슷하다. 초반에는 내가 대응하지 못하는 고등한 기술 등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뚫렸다.

    분명 간파한 궤적이지만 차마 대응하지 못했다. 이전의 공격들이 차곡차곡 쌓여 알아도 막지 못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옆구리로 날아드는 무릎차기. 재빨리 손을 내려 방어했다.

    – 콱!

    ‘윽.’

    무릎이 처박힌 팔뚝으로 아찔한 감각이 전해졌다.

    충격을 받은 몸이 밀려난다. 그에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호응하듯 땅을 박차 거리를 벌렸다.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익숙해지지 않는 부유감을 느끼며, 체내의 마력을 꺼내들었다.

    마력을 주변으로 방출한다. 꺼내진 마력을 운용하여 술식을 구축한다.

    신속하게 이루어진 처리. 팔을 떨치며 일순 술식들을 발현했다.

    아트라 교수의 발밑의 땅이 꿈틀거리더니 칼날 모양의 흙이 솟구쳤다.

    내 상하좌우로 모여든 바람이 창이 되어 일제히 쏘아졌다.

    여기까지가 1공정. 재차 마력을 운용하며 다시금 술식을 쌓아 올린다. 부유하던 몸이 땅에 닿으며 다시금 자세를 잡는다.

    – 콰아앙!

    그럴 생각이었다.

    내가 행동으로 이행하기 전에, 아트라 교수의 다리가 땅을 내리찍었다.

    지면이 들썩였다. 솟구치던 가시가 주춤거렸다.

    다리를 통해 지면으로 마력이 뻗어졌다. 콰득! 흙의 가시가 과자처럼 부서져 비산했다.

    흩날리는 파편을 피하며 아트라 교수가 발을 뻗었다.

    한 발짝 만에 거리가 좁혀지고, 바람의 창이 코앞까지 다가온다. 아트라 교수는 무심히 몸을 움직였다.

    쏘아진 바람의 창은 총 열네 개.

    아홉을 피한다. 강기를 머금은 손으로 둘을 튕겨냈다. 튕겨나간 바람의 창이 흐트러지며 주변의 남은 셋의 궤도를 비틀었다.

    바람의 창이 터지며 돌풍이 일었다. 아트라 교수의 머리칼이 휘날렸다. 그 와중에도 서늘한 두 눈은 내 쪽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 눈은 돌연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트라 교수는 무심한 눈으로 주먹을 뻗었다.

    제대로 잡히지 못한 자세와 마법의 시전 중 다가온 공격. 술식을 다급히 풀어헤쳤다.

    역류하는 마력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포기하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 퍽!

    아팟.

    .

    .

    .

    “근접전 도중 마법을 섞는 것은 좋다만, 마법이 불발됐을 경우의 수가 부족하다. 이 부분은 염두에 두도록.”

    – 끄덕…

    시무룩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장을 데구루루 구르고 난 뒤, 숨을 고르며 듣는 피드백 시간이다.

    일전의 대련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머리에 욱여넣으며 진행되는 잠깐의 휴식시간.

    나는 땅바닥에 엎어 친 채로 헥헥 숨을 뱉어냈다

    ‘…이건 똑같네.’

    다른 생도와 비교하여 급속도로 성장한다는 체감은 들었지만, 어째 대련의 양상은 거기서 거기다.

    초반엔 나와 비슷한 신체 수준과 기량으로 드잡이질을 받아준다.

    아트라 교수는 무감정한 눈으로 내 수준을 분석하다가, 분석이 끝났다 싶으면 기량을 높인다.

    그렇게 서서히 밀리다가, 후반에는 끝내 제압당한다.

    그때였다. 피드백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중, 코 끝이 아찔해졌다.

    이내 주르륵.

    간지러움과 함께 빨간 줄이 그어졌다.

    ‘아. 코피.’

    맞아서 생긴 상처는 아니다. 아트라 교수는 멍이 들 정도로 두드리기는 하지만, 신묘하리만치 피가 날 상처는 새기지 않았다.

    물론 간혹 생기긴 하지만, 그건 아트라 교수 쪽 잘못이 아니라 내가 실수해서 생긴 쪽이다.

    이 코피는 나에 의해서 생긴 거다.

    정확히는 타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력의 역류 때문이다.

    시전 중인 마법을 강제로 끊어낸 탓에 생긴 것이다.

    보통 마법의 시전이 중간에 틀어막히면 그에 사용되던 마력이 역류하여 시전자에게 피해를 입힌다.

    마법사가 입는 내상의 대부분은 이러한 마력의 역류 때문이다.

    자뻑 같지만 나는 마력을 잘 다루어서 역류라고 해봐야 코피가 조금 나고 만다.

    ‘간지러.’

    인중을 타고 내리는 코피에 코가 움찔거렸다.

    닦아내기 위해 움직이려던 순간. 손수건이 불쑥 다가왔다.

    ‘?’

    손수건의 주인은 아트라 교수였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들더니 코피를 닦아주었다.

    “숙여라.”

    아트라 교수가 반대 손으로 내 정수리를 꾹 눌렀다. 고개가 숙여지자 코피가 재차 흘렀다.

    손수건이 코를 감싸 쥐고는 꾹 눌렀다.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미묘한 압박감이 아늑할 지경이다.

    적당한 압박감이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피가 멈췄다.

    아트라 교수가 손수건을 떼어내며 말했다.

    “마력 역류는 항상 경계해라. 굳이 마법을 쓰지 않더라도, 단순한 강체와 강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발생하는 현상이다.”

    – …끄덕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아트라 교수에 대해 생각했다.

    대련은 이전과 동일하게 이어졌다. 다양한 무기를 쥐여주고 대련한다. 오늘 맨손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틈틈이 내게 마력과 강체, 강기의 운용법을 전수해 준다.

    똑같은 일정이다.

    그런데…

    “받아라.”

    [감사합니다]

    ‘뭔가…’

    아트라 교수가 물병을 내밀었다. 받아들자 손아귀가 시원해지는 냉수였다.

    내게 물병을 건네주고서 손수건을 탁탁 터는 아트라 교수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도가 묘하게 부드러워지지 않았나?

    기분 탓인가.

    * * *

    [플레이어 보정 시스템:제작도]

    목도리(마도구)를 제작하시겠습니까?

    목도리(마도구)를 제작하시겠습니까?

    목도리(마도구)를 제작하시겠습니까?

    [플레이어 보정 시스템:호감도]

    이하율→아트라 클라이드

    ●●●●●●○○○○(65/100)

    「호감」 「공포」 「기대」 「염려」

    [「침묵의 저주」의 해주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고독의 저주」의 해주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분량이 6,000자였는데 사실상 연?참이 아니었을까요?

    +

    코인맛좀볼래 님의 100코인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코인의 맛이 무척 달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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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아카데미 장애인 전형 생도가 되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created a game character.
Instead of taking several perks, I added restrictions.

▶Restriction (I): “Curse of Sensory Seal”
─Permanently seals a chosen sense.
─Choice: Sight, Taste, Smell

▶Restriction (II): “Curse of Short Life”
─You are born with a body doomed to a short life.

▶Restriction (III): “Curse of Silence”
─Speaking causes you pain.

When the next day came, I couldn’t se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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