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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에 누워있었다.

         

       기숙사 천장은 아닌 것 같은데.

         

       “윽.”

         

       몸이 무거웠다. 아니, 몸이 둔해졌다기보다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찌뿌둥하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사지가 뻣뻣해서 움직이려면 많은 힘을 줘야만 했다.

         

       설마 나도 흑사병에 걸렸나?

         

       열은,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머리가 아주 뜨거운 건 아닌데…. 기껏해야 미열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다.

          

       원래 몸이었을 때에도 이런 증상을 겪어본 적 있었다. 몸살이었다.

       

       으슬으슬 춥긴 한데 죽을 맛까진 아니고, 그렇다고 기침이 미친 듯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무념무상을 지내고 있던 도중. 

       

       “아.”

         

       대뇌에서 내가 왜 지금 이러고 누워있는지 분석해내기 시작했다.

          

       ─ 치료제 가져왔어!

         

       분명 거기까진 기억한다. 버멜과 글리스턴 선생님이 흑사병 치료제인가 뭔가 하는 걸 만들었다며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고, 그 시점에서 내 필름은 끊겼던 걸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 로테. 로테는 괜찮을까?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2주간 잠을 거의 안 잤었지. 머리를 굴리고 있다 보니까 뱃속에서 밥 달라는 소리가 났다.

         

       천장에서 데카르트의 기분을 한껏 체험하고 있던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뻣뻣해진 몸을 겨우 일으켰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툭, 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물수건이었다. 이게 왜 머리에 있어.

         

       가끔씩 흐릿하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던 시야에도 어느새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기억과 다른 옷을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하얀 색으로 통일된 상의와 하의. 환자복이었다.

         

       이상하다. 흑사병이 퍼진 동안에는 종이 방역복만 입고 돌아다녔는데. 누가 대신 옷을 갈아입혀 주기라도 한 걸까.

         

       끼익.

         

       한창 침음을 흘리고 있던 사이,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

         

       우리는 서로 눈이 맞았다. 

         

       잘 빗어 내린 진홍색 단발에, 순하디순한 얼굴.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저런 외양적 특징을 보이는 여자아이는 단 한 명 뿐이다.

         

       “이, 일어났…!”

         

       플라스틱 세숫대야를 들고 오던 로테는 바가지에 물이 쏟아지는 것도 모르고 이쪽으로 돌진했다. 워낙 빨라서 물리적으로 피할 수 없었고, 피할 생각도 없었다.

         

       로테는 다짜고짜 날 끌어안으며 끅끅 울어대기 시작했다.

       

       너 쓰러져서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 간호해줘서 고마웠다. 무엇보다도 고생시켜서 미안했다.

       

       여러 의사가 연달아 귓속을 파고들었지만, 당장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다 죽어가던 룸메이트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온 걸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철화 증상은… 없다. 말끔히 나아 있다.

         

       훌쩍거리는 소리는 10분 넘도록 이어졌다. 7살 어린애가 된 살리에르 백작가의 영애님을 토닥여주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언젠가 한 번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목숨이 오락가락할 정도의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깁스를 몇 달 동안 해야만 했었다.

         

       생명에까지 지장이 생긴 건 아니었는지라 내 신변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 친누나만을 제외하고는.

       

       누나만큼은 달랐다. 누나는 너 없으면 자기 못 산다고 펑펑 울어대던 감수성의 소유자였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왜 별다른 대가 없이 로테를 살리려고 했는지.

         

       쓰러지고 나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로테에게 물어보니 사흘 만에 깨어났다고 한다.

         

       “정말 괜찮아?”

       “그냥 과로 같은데 뭐.”

         

       하스펠트 교수 밑에 있었을 때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피로 스택이 장난 아니었나 보다.

         

       그보다는 룸메이트의 몸이 걱정이다. 애가 말짱한 걸 보면 빙의자가 조달해 온 치료제가 잘 들은 모양인데, 그래도 균이 신체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안 될 테니까.

         

       그런 부분은 의료진들이 알아서 잘했을 거라 믿는다.

         

       이제 나는 내가 할 일을 하면 된다.

         

       다시 원상궤도로 돌아와서 마법 공부도 해야 하고, 헤를라인 선생님에게 진 빚도 갚을 겸 마왕을 쓰러뜨릴 결전병기도 제조해내야 한다.

         

       그 전에 항생제 사느라 빌린 돈부터 좀 갚고.

         

       “그거? 안 갚아도 돼.”

         

       로테의 친오빠인 로르웰 살리에르. 그가 병실 문을 닫고 들어오며 꺼낸 그 말 한마디에 내 움직임이 멎었다. 채무 상환 계획을 세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굴리고 있던 머리가 일순 정지했다.

         

       “동생 치료비는 우리 가문에서 댈 거야. 그걸 왜 후배가 내려고 하는데?”

         

       여기서 ‘그래도….’라는 접속사를 꺼냈다간 로테한테 뒤지게 혼나겠지.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어릴 적에도 지금 상황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땐 대신 갚아주겠다는 사람이 튀어버려서 빚 독촉장과 함께 집안에 압류 딱지가 날아들었지. 남에게 땡전 한 푼 빌리는 걸 꺼려하게 된 계기가 아마 그거였을 걸로 강력하게 추정한다.

         

       “괜찮아. 우리집 돈 많아. 집안 어르신들이 상업도 겸하시거든.”

         

       염려하고 있는 것이 얼굴에 표가 난 모양이다. 로테는 걱정할 거 없다는 듯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싱긋 웃었다.

         

       그래. 이미 한 번을 믿었던 사람인데, 두 번도 못 믿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회답을 대신했다.

         

       그 뒤로 병문안 아닌 병문안을 몇 차례 받았다. 메리가 헤를라인 선생님을 시작으로 아는 얼굴들이 속속들이 한 번씩 병실을 들렀다. 프레이, 이르카, 세피아 글리스턴 선생님과 알렉스 노엘하임 선생님, 로베스피에르 이사장, 샤디엘 선도부장, 그 외에도 조금이나마 안면 터놓고 지냈던 급우들. 마지막으로 급한 일 남았다며 얼굴만 보고 나간 빙의자까지.

         

       이거 전부 로테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 물어보니까 자기도 이틀 전에 경험해봤단다.

         

       나는 내 품에 맞지 않은 환자복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환자 코스프레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몰라.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문안을 온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크게 아픈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니 봉쇄령은 풀렸나요?”

       

       생수로 목을 축인 내가 로르웰 선배에게 질문했다.

        

       필리우트 제국의 수도를 포함하여 웬만한 도시 곳곳에 내려졌던 봉쇄령. 그 탓에 우리는 성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반대로 외부에서 성도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슬슬 풀리려나 봐. 이전까진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기 어려웠을 정도로 철저했었는데.”

       “그거 다행이에요. 백작님과는 연락이 되신 건가요?”

         

       살리에르 백작의 본가는 수도에서 서남부로 멀리 떨어진 국경 지대에 위치한다. 성도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여기서 북방 전선의 거리보다도 길었다.

         

       핫라인은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나 쓰이는 전화고, 무엇보다도 광역 단위로 통화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 전화가 발달하다 만 이 시대에서 장거리 소통을 하려면 누구처럼 편하게 텔레포트를 시전하거나, 혹은 우체국을 경유해야 했다.

         

       전자는 극히 일부 공계마도사나 하는 짓이고, 후자는 전염병으로 인해 그동안 불가능했다.

         

       “그래. 나흘 전부터 우편을 주고받았어. 이 사태가 완전히 가라앉고 나면 우리가 괜찮은지 확인하러 시종을 보내신다고 하셨어.”

       

       살리에르 백작이 운영하는 서남부 영지도 흑사병에 노출된 모양이다. 즉 이번 역병은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수도 한 곳도 아니고, 제국 전체에 마수의 손길이 뻗친 것이다.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보통 전염병은 적도에서 형성된 태풍이 빠르게 북상하듯 천천히, 그러나 점진적으로 퍼진다. 

         

       방역을 철저히 했었던 로테가 걸린 것도 그렇고, 비과학적인 전파 양상이다. 오죽하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러면 높으신 분들도 마수가 한 짓이라고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

         

       “어쨌든 우린 그만 가 볼게. 보건 선생님께선 내일쯤 퇴원해도 좋다고 하니까 푹 쉬고 있어.”

       “…아, 배려 감사합니다.”

            

       로테와 로르웰이 떠난 직후,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어쨌거나 이번 일로 확실히 알았다. 절멸급 마수는 보통 존재가 아니라는 걸.

         

       그 호리호리한 역병의사를 보지 않았는가. 괴물이라는 단어 말고는 형용할 수 있는 어휘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비주얼이었다.

         

       ‘구천지대계’, 그런 놈이 못해도 여덟씩이나 더 있단 소리다.

         

       한 마리로 이 정도인데 그만한 게 아홉이나 존재한다? 마왕 없이도 아포칼립스 찍겠는데.

         

       사실 절멸급 마수와 접촉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입학식.

         

       그때 날 시답잖은 이유로 가로막았던 메카 티라노들의 주인도 분명 구천지대계에 속한 절멸급 마수였다. 알렉스 선생님의 ‘마수의 이해’ 과목에서 배운 내용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말이다.

         

       그때도 위험하다고 느끼긴 했다. 아카데미 북방의 노천극장과 민가를 포함한 몇몇 건물이 파괴됐었고, 그조차도 인사치레라고 실실거리던 음성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오죽하면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예정에도 없었던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겠는가.

         

       그럼에도 이번 사태에 비할 바는 못 됐다.

         

       입학식에선 사상자가 없었고,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은 수천 명이었다.

         

       입학식에선 간수할 몸이 나 하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지켜야 할 사람이 수두룩하다.

         

       구천지대계 한 체가 보여준 제국의 참상은 그야말로 ‘절멸(絶滅)’. 그만한 위기를 여러 번 넘기려면 막대한 양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 지식은 물리학에 관련된 지식도, 마도에 관한 지식도 아니었다. 의료, 경제? 더더욱 아니다.

         

       미래.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주변을 더듬거리며 종이를 찾으려고 했다. 어디선가 양장본이 쑤웅, 하고 날아와서는 자길 찾냐고 물어보았지만 무시했다. 미안, 지금은 그냥 종이가 필요하거든.

         

       “찾았다.”

         

       코앞의 서랍에서 종이 뭉텅이를 발견했다. 뒷면이 말끔한 병원 진료기록부 템플릿. 이면지로 써도 문제될 건 없겠지. 아마도.

         

       양장본에서 전용 깃펜을 뽑아 든 뒤 잉크를 적셨다. 이게 참 편리한 마도구다. 양장본을 펼칠 때만 나오는 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이에까지 술술 써진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A4용지 중심에 타원을 그리고 그 주변에 가지를 만들어갔다. 마인드맵을 짜는 방식과 비슷했지만 조금 다르다.

         

       [뭐 하시려고요?]

         

       “그림을 그릴 거야.”

         

       [그림이요…?]

         

       “그래. 그림.”

         

       존나 큰 그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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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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