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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천마신교의 죄수호송마차는 내당 소속 병기각의 걸작품이었다.

         

       강철 격자를 덧대 튼튼함과 무게를 동시에 잡았으며, 조립식 부품 채용으로 유지 보수에도 편리함을 가졌다.

         

       그런가 하면 채광 조절을 통해 죄수의 날짜 감각을 흐리게 만들기가 가능하고, 하부 두 개 아궁이를 통해 각종 독 연기를 흘려 넣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편안한 승차감도 있었다.

       죄수의 인권 보호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약물 따위로 푹 재워놓은 죄수가 깨지 않게 만드는 장치였다.

         

       그래서 쿵쿵 마차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 아궁이에 산공독향을 피워 부채질을 하던 외당 비작부 소속 살수가 깜짝 놀랄 수밖에는 없었다.

         

       어떻게 벌써 깨어있지?

       뭉혼약이 모자랐나?

       용량의 세 배는 탔는데?

         

       높은 방음 성능으로 들리는 것은 쿵쿵 벽 두드리는 소리뿐이었다.

       살수가 한쪽 벽면을 밀어젖히고 말했다.

         

       “무슨 일이지?”

         

       -아아. 들리지? 나 입이 심심해. 간식 줘.

         

       간식을 맡겨놓기라도 한 말투였다.

       기가 막힌 살수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빨리. 현기증 난단 말예요. 과자 줘. 과자!

         

       “이봐, 지금 네 상황이.”

         

       -나는 그런 거 몰라. 나는 간식이 더 중요해. 납치를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원래 숙식 제공에 간식은 기본적인 예절 아닌가?

         

       “아니, 뭐 이런.”

         

       살수의 말문이 막혔다.

       대신 허리춤의 주머니를 끌러 아궁이 향로에 쏟아부었다.

       분말로 정제한 몽혼향이었다.

       그리고 부채질 속도를 올려 뭉게뭉게 피어오른 연기를 마차 안으로 부어넣었다.

         

       그 효과가 즉각 나타났다.

       소녀의 목소리가 한 음정 오른 것이다.

         

       -아니 누가 향 피워 달래!? 간식 달라고! 야!

         

       “자, 잠깐 기다려라.”

         

       -흥. 진즉 그럴 것이지.

         

       살수가 서둘러 선두 마차로 향했다.

       

       그렇게 선두 마차에 닿아 비각주에게 보고했다.

         

       “각주님, 서문청이 간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지승주가 무표정하게 살수를 보았다.

         

       “분명 몽혼약을 잔뜩 먹지 않았나?”

         

       “몽혼약이 안 듣는 체질인 것 같습니다.”

         

       몽혼약이 안 듣는 이가 있었다.

       그렇게 드물지도 않았다.

       몽혼향 자체가 그리 독성이 있지 않은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약을 써야 하겠습니까?”

         

       다른 약은 너무 독하다.

       머리가 상하면 연주를 못 했다.

       

       지승주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기분을 맞춰주도록. 원하는 대로 해줘. 말상대도, 아니. 내가 그쪽으로 가지.”

         

       지승주가 사람의 속성 하나를 떠올렸다.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어지러울 때 곁에 선 자를 무의식적으로 기꺼워하는 속성이 있다.

       볼모가 그 범인을 사모하는 경우가 그러했다.

         

       사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심리적인 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이후 원만한 협조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승주의 속셈이었다.

         

         

       —-

         

         

       다리 저려.

       앵속이 좀 가시자마자 다리가 말썽을 부렸다.

         

       다리 저림은 악질적인 통증이다.

       깨어있는 내내 신경이 쓰이게 만들면서 저릿저릿 끊이지 않고 찝찝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걷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마차가 크고 넓다고 해도 돌아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야. 내 다리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지존께서 손을 쓰신 바라 제가 달리 아는 것이 없습니다만. 교에 도착하면 다시 풀어주실 겁니다.

         

       어쩐지 하체 쪽으로 내기가 잘 안 통해 턱턱 혈도가 턱턱 막힌 기분이 들더라니, 그 개자식이 뭔가 술수를 부린 것이었다.

       시발놈, 진짜 가만 안 둬.

         

       “도망 안 칠 테니 그냥 지금 풀어달라고 하면 안 될까? 너무 저려서 그래.”

         

       -지존께서는 먼저 출발하셨습니다. 답답한 것을 워낙에 싫어하시는지라.

         

       청이 눈을 빛냈다.

       뭐야, 그 새끼 갔어?

         

       사부님도 한의학에 조예가 깊으시다,

       일단 째고 이후를 도모하면.

         

       -그렇다고 헛된 생각을 품지는 말아주십시오. 초절정 고수가 두 분이나 계십니다. 심지어 다리도 불편하시지 않습니까?

         

       에이씨, 좋다 말았네.

       청이 입술을 삐쭉거렸다.

       무슨 초절정들이 할 일이 없어서 겨우 절정 하나 납치하는데 쫄래쫄래 따라오고 그래?

         

       -정 할 일이 없으시면, 무공이라도 하나 배워 보시겠습니까?

         

       “무공? 무슨 무공?”

         

       -정파 분들은 마공이라 부르시는 신공이지요.

         

       납치해놓고는 무슨 마공이야?

       청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대꾸했다.

         

       “날더러 마공을 익히라고?”

         

       청은 이미 천하에 사악한 열 한 개 마공 중 하나, 소수마공을 익힌 소수마녀다.

         

       -늦든 빠르든 어차피 익히시게 될 겁니다만.

         

       “내가? 왜?”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도 소저의 약점 하나는 잡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일이 끝나면 소저를 마음 놓고 돌려보내 드리지 않겠습니까?

         

       “여차하면 마공 익힌 놈이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시겠다?”

         

       -그래도, 지금 배우시는 편이 지존께서 직접 가르침을 베푸시는 편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냥 배울래 맞고 배울래 하는 선택이었다.

       음. 그러면 굳이 아프게 배울 필요 없지?

         

       청이 금방 납득했다.

         

       어차피 벌써 한 개 익혔으니 두 개가 돼도 뭐 다른 건 없지 않나 하고.

         

       마공 대처법도 배우지 않았던가.

         

       일단 우기고, 안 되면 사부님 이름도 팔고.

       사부님도 허락하셨으니, 하나 배우나 두 개 배우나 어차피 그게 그거 아닐까?

       마공 배우라고 칼 들고 협박하는데 어떡해.

         

       생각해보니, 사부님도 구명절초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셨다.

       비장의 무기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 뿐이지.

         

       청이 금방 결론을 냈다.

         

       “좋아. 배우지, 뭐.”

         

       시원스러운 대답이었다.

         

       -……진심이십니까?

         

       오히려 바깥에서 미심쩍어 되물어 올 정도로.

         

       “어차피 배울 거라며? 그럼 뭐하러 망설여? 어차피 심심한데 수련이라도 해야지.”

         

       -좋습니다. 그럼 바로 구결을 불러드리겠습니다. 암흑태양지상여일야, 천지역성흑살사……

         

       벽 너머에서 구결이 줄줄 흘러나왔다.

         

       해석도 없는,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세상에서 가장 미개하고 불편한 문자의 음차였다.

         

       원래 표의문자란 기원전 사람이 덜떨어졌던 때나 쓰던 엉망진창 그림 낙서에 불과하다.

       즉 표의문자를 사용한다는 건, 사람이 아닌 원숭이와 인류 중간쯤의 진화 덜 된 영장류라는 증거였다.

         

       그런 이유로 청이 대충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어차피 다 듣기만 하면 무공창이 알아서 등록해 놓을 테니까.

         

       -……사우지야. 다 들으셨습니까?

         

       “뭐야, 그게 다야?”

         

       -다시 한번 불러드리겠습니다. 암흑태양.

       

       청이 말을 끊으며 바락 소리를 질렀다.

         

       “야! 지금 나랑 장난해?”

       

       무공창이 잠잠하다. 

       청은 비급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일단 무공 창에 등록을 할 수 있었다.

       수련점을 부어서 익히는 것과는 별개의 대기 상태였다.

        

       다만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비급이 온전한 상태일 것.

       

       무공창이 발광을 하지 않으면 구절이 온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새끼, 마공 가르쳐 준다더니 사기를 치네?

          

       -왜 그러시는지.

         

       “불러주려면 제대로 불러주지? 무공에 장난을 쳐? 지금 무공이 장난이야? 이야, 솔직히 말하니 어쩌니 하더니. 순 사기꾼 새끼 아냐?”

         

       그러자 한동안 바깥이 잠잠해졌다.

       잠시 후 다시 목소리가 돌아왔다.

         

       -옘병.

         

       청이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그 쪼그만 새끼가?

       지금 얼굴 안 보인다고?

         

       -……말이 잘못 나왔군요. 오해는 마십시오.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디 한 군데 잘못 외운 것 같은데,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

         

         

       최흉의 마공 흡정마공의 소유자는 살중살이라 불린다.

       정사마가 힘을 합쳐 무찌르는 마인이었다.

       

       그 아니더라도 십대마공쯤 되면, 익히는 것만으로도 별호가 공짜다.

          

       다만 별호란 상대적인 것이라서, 우리 편과 적이 부르는 호칭이 서로 달랐다.

       적한테는 소수마녀고, 우리 편은 소수신녀다.   

       아니면 소수마후라던가.

       

       마공을 익히는 이가 보통 사파나 마도에 속했으므로, 별호에 마가 들어가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했다.

          

       천하십대마공은 정파만 거품을 물었다.

        사마외도들은 거 쪼끔 부럽기도 하고, 오히려 선망하여 손에 넣고자 했다.

         

       흑살마군 역시 별호만으로 어떤 마공의 소유자인지 알 수 있다.

         

       흑살마장!

         

       제대로 얻어맞으면 멍이 드는 게 아니라 살이 괴사해 썩어버리고 마는 흉악한 마공이었다.

         

       흑살마인의 특징은 바로 시커먼 손이었다.

       생살을 썩게 만드는 사기가 깃들어서.

         

       흑살마군 고당상이 새까만 손으로 건육을 찢어내다가 멈칫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으로, 흑살마군의 이름은 외자로 상이다.

       고당은 중국에서도 흔치 않은 희성이었다.

         

       “구결만 듣고도 틀렸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예. 마군.”

         

       “각주가 재미있는 농을 하시는군? 그 아해가 무슨 천고의 기재라도 되나? 무슨 수로 구절만 듣고 틀린 걸 알아?”

         

       고당상의 말이 퉁명스러워졌다.

       지승주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벌써 절정 후기에 달한 여인이지 않습니까?”

       

       강호에서 청을 보는 시선이 대개 이런 식이었다.

       천하제일 사기꾼을 따로 꼽을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온전한 구결을 전수하자는 건가?”

         

       고당상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무리 지존의 명령이라고 해도, 불완전하게 꼬아놓은 구결을 푸는 시점에서 이미 무림의 상식을 깨는 폭거였다.

         

       그런데 온전한 구절을 전수하라고?

         

       “달리 생각을 해 보시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흑수를 가지고 나면 정파 무림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 아닙니까.”

         

       굳이 흑살마장을 고른 이유였다.

       흑살마인은 그냥 생긴 것만 봐도 마인이다.

       

       ‘저 새끼 손이 이상한데요?’

       ‘뭐야, 마인이잖아? 그럼 죽이자.’ 하고.

         

       “그래서, 제자로라도 들이란 말인가?”

         

       “옘. 어떠신가요?”

         

       지승주가 간신히 뒤바뀐 속마음을 수습했다.

       다행히도, 조금 귀여운 대답 수준에서 수습이 되었다.

         

       옘병. 마인 주제에 제자는 무슨.

         

       신교에서 제자란 하인이나 시종의 다른 말에 불과했다.

       위협이 된다 싶으면 곧장 치워버리는 소모품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가 스승을 제끼고 그 자리를 차지해버리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강자존.

       신교의 준엄한 율법이었다.

         

       고당상이 내켜하지 않는 이유도 그러했다.

       천고의 기재에게 마공을 전수했다가, 홀라당 흡수해서 마군의 자리를 위협하면 어떡하나.

         

       “흐음. 생각을 좀 해보겠네.”

         

       “예. 하지만 신교의 대의를 위한 큰 결단을 감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늙은이가 귀찮게.

       지승주가 생각했다.

       어차피 지존의 명이라서 따를 수밖에는 없는 주제에.

         

       그만큼 신교에서 지존은 절대적이었다.

         

       지존의 무위는 화경 후기.

       하지만, 실상 진즉 초월한 지가 오래였다.

         

       온전한 신공을 손에 넣어, 마인에 닿은 이후 탈마지경에 이르기 위해 스스로 기맥을 봉인한 상태였으니까.

       지금도 그저 마음만 먹으면 현경에 오를 수 있는 상태이며, 그 이상까지도 단숨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았다.

       청에게 한 말이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던 것.

         

       그렇다고 해서 지승주가 고당상에게 ‘지존이 시켰잖아요.’ 하고 협박을 할 수는 없었다.

       체면을 완전히 구기고 말 테니까.

         

       무인에게 체면은 목숨과 무공 바로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다.

       그러니 지승주가 모르는 척 간곡히 부탁하여 명분을 만들어줄 수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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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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