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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

         

        -짜악!

         

         

         뺨은 참 신비로운 기관이라서 사람의 정신을 차리게도, 잃게도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주된 활용처는 후자였다.)

         

         이반은 대단히 숙련된 요원이므로, 정확히 엘피헤라의 정신을 일깨우는 것에 성공했다.

         

         

         “엑… 어, 어째서…?”

         “정신 차려라.”

         “정신…?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정신을 잃은 적이 없는데? 나는 그쪽 생각해서 저걸 어떻게 나눌까 고민이나 하고 있었는데 이, 이 무례한 인간이…! 아니… ‘무례함’과 ‘인간’은 동어 반복이네.”

         

         

         엘피헤라는 헛소리를 하면서도 여전히 수염빗 더미가 있는 자리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저게 뭘로 보이지?”

         “네? 그야 보물방이죠! 저는 자비로운 엘프니까, 그쪽이랑 반으로 나눠 가져 드릴게요. 아, 근데 로레인은 안 되요. 그건 꼭 쓸데가 있어. 저대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달여 드릴게요. 아주 까다로운 재료인데….”

         “내 눈엔 빗으로 보인다.”

         

         

         이반은 또 엘프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엘피헤라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네? 빗?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말 그대로 머리를 빗는 빗.”

         

         

         이반은 엘피헤라의 팔을 끌고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저건 함정이야.”

         “함정… 어… 진짜요? 빗으로 보인다고요? 하지만 그게, 대체 무슨 함정….”

         “관측 시점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종류의 함정. 아마도, 네가 처음 이 신전에 도착했을 때 꾼 꿈과 같은 종류의.”

         “그게 말이 되나…? 인간이 대체 어떤 삶을 살면 가장 원하는 게 빗이야…? 옆에 엘프가 있는데 미약도 아니고?”

         

         

         끔찍한 함정이군. 엘프의 정신을 이렇게 파괴하다니.

         

         하지만 이반은 놀라지 않았다. 엘프들에게 선천적인 인성 결핍이 있는 것은 상식이며, 그건 당연히 엘프들이 정신력 약한 종족이란 뜻이니까. 건강한 정신을 가진 이들은 다른 종족을 하등하다 여기지 않는다.

         

         이반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빗들의 언덕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함정이라면 의도한 것이 있을 텐데.

         

         그는 방의 끝과 끝을 훑으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유혹이란 것은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아무런 의도 없는 함정이란 존재할 수 없다.

         

         보물더미는 희생자를 끌어들인다. 아귀의 머리에 달린 초롱처럼. 그렇다면 이제 그 아귀의 이빨을 찾을 차례였다.

         

         

         ‘입구를 여는 순간 느껴진 향기.’

         

         

         그렇다면 시각과 후각, 두 감각을 교란시키는 함정이다.

         

         기분 좋은 향기로 희생자의 무의식적 경계심을 해체하고, 이내 희생자가 바라는 보물더미로 그들을 끌어들이는 종류의.

         

         

         “엘피헤라.”

         “네?”

         “느껴지는 마력은 여전히 없나?”

         “어, 네네. 있었다면 함정이란 걸 바로 알았을 텐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어요.”

         “음.”

         

         

         마력 기관이 아니라면 물리적 작용의 함정이라 가정해보자.

         

         이반은 눈을 감고, 후각을 차단한 후 천천히 귀를 기울였다.

         

         

        -츳, 츳, 츳….

         

         

         감은 눈 너머로 소리가 잔향을 남기며 난반사한다. 지형과 사물에 부딪친 소리들이 각기 다른 굴절로 되돌아오며 천천히 형태를 구체화시키기 시작한다.

         

         반향정위의 기초적인 활용이다.

         

         

         이 넓은 방 안엔 ‘무언가의 더미’와 ‘비죽 솟은 것’이 있다.

         

         움직이지 않는 정물이다. 그렇다면 당장 저것이 적의를 품고 덤벼들 가능성은 적다.

         

         

         “네 눈에 보이는 보물 더미에서 정 가운데, 무언가 솟아나 있는 것이 보이나?”

         “솟아나요?”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생각해봐. 저것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집어들고 싶어지는 것이 있었나.”

         “아, 네. 굳이 따지자면… 솟아나 있긴 하네요. 아무래도 풀이니까요.”

         “그렇군.”

         

         

         이반은 눈을 떴다. 수염빗 더미 한 가운데, 반향정위로 파악한 ‘솟아나 있는 것’의 위치엔 다른 것들보다 월등히 잘 만들어진 빗 하나가 비스듬하게 꽂혀 있었다.

         

         저걸 뽑게 만들고 싶도록 의도한 함정이라면.

         

         이반은 촉각에 조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 밑으로 빗들이 밟히며 바삭바삭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저벅저벅 걸어서 그 빗을 잡았다.

         

         문득 뽑아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만듦새가 훌륭했다. 정확히 그의 취향대로, 별다른 장식 없이 단조로운 모양에, 그러나 아름다울 정도로 실용적인 기능미.

         

         거기에 강철로 주조되어 단단한 신뢰감과 유사시 비수로 쓸 수 있도록 설계된 작은 용수철 장치까지.

         

         혹시 나중에 주문제작을 의뢰할 수도 있으니 일단 형태를 기억해두고, 이반은 눈을 꾹 감았다.

         

         

        -스으….

         

         

         그리고 신경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피부결에 닿는 공기의 흐름, 내쉰 숨이 만들어낸 와류마저 흐릿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집중력을 극한까지 짜내어, 온전히 촉감에 모든 신경을 투사했다.

         

         박혀 있는 그 멋진 빗에 다시 손을 뻗는다. 천천히, 외과의의 메스처럼 정밀하게.

         

         

         차가운 촉감. 금속 특유의 묵직함. 13cm정도 되는 그립.

         

         손끝에 살짝 힘을 주어 미세하게 흔들었을 때 느껴지는 반동으로 남은 형태를 유추하고.

         

         꾸욱, 움켜쥔 뒤에야 비로소 온전한 형태를 추리해낼 수 있었다.

         

         

         “검…이군.”

         “네?”

         “반드시 뽑고 싶게 만들어진, 어딘가에 박혀 있는, 세로로 긴 형태의 금속. 이 함정의 중심이며 발동 조건. 이건 검이다.”

         

         

         이반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수많은 유골 위에 서 있었다.

         

         검은 석상의 가슴팍에 박힌 검을 양손에 쥔 채로.

         

         놀라지 않았다. 감각을 끌어올렸을 때, 바닥에 밟히던 빗의 촉감으로 이미 추측하고 있었던 탓이다.

         

         바삭바삭 부서지던 그 촉감은, 작은 빗이라기보단 차라리 유골에 가까웠으니.

         

         

         “인지하는 순간 해체되는 환상. 물리적인 함정이 아니다.”

         “네? 하지만 마력이 전혀….”

         “마력이 아니더라도, 환상을 현상으로 수육하는 조건이 하나 더 있지 않나.”

         

         

         여전히 엘피헤라는 이 함정의 실체를 바라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랬다면 저런 반응을 할 수가 없을 테니.

         

         이반은 칼자루를 쥐고 석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신성. 이 함정은 신성으로 짜여져 있다.”

         

         

         그의 눈 앞에 있는 것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형태의 검은 석상이다.

         

         재질은 대리석, 그 가슴팍엔 길쭉한 강철검 한 자루가 비스듬하게 박혀 있다. 뽑는 것으로 발동되는 함정이라 한다면, 아마도 이 석상이 봉인의 주체겠지.

         

         이반은 칼자루를 쥔 채로 석상을 바라봤다.

         

         석상의 검은 동공이 대굴, 굴러 이반에게 향했다.

         

         

         [정답이다.]

         

         

        *

         

         

         세상 어느 곳에나, 보다 진하게 고여 있는 장소도 있고 비교적 희미한 장소도 있지만. 정말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는 마력은, 굳이 따지자면 만물의 근원에 가깝다.

         

         모든 사물에는 일정량의 마력이 스며 있다. 대기 중에 흩어 있는 마력을 자연스럽게 머금게 되니.

         

         하지만 신성은 다르다. 신성이란 오직 빛의 신. 즉 천주(天主)의 것이다.

         

         주에게 기도할 때 사제의 몸에 임하는 신의 편린이다. 무인과 마법사는 감히 품을 수도 없는, 근원을 분석할 방법도, 이유도 없는 미증유의 힘이다.

         

         따라서, ‘큿, 마신의 신성…!’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다. 비교 표본 자체가 없는 힘이니까. 다만 현상을 보고, 불가능한 조건들을 지우면 도달할 수 있는 합리적 추론이란 것이 있는 법이다.

         

         

         ‘알렉산드르의 말이 맞았군.

         

         

         봉인된 신이란 것이 진짜 존재할 줄이야. 심지어 아카데미 지하에.

         

         이건 두 번째 스테이지일까? 용사 파티의 자제들을 위한?

         

         아니, 그런 것치고 난이도가 너무 높다. 첫 스테이지의 난이도 또한 그랬지만, 이번 경우는 아예 격이 다르다.

         

         아마 추후에 나올, 숨겨진 이벤트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게 공교로운 우연이 겹쳐, 자신에 의해 전말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이반은 칼자루를 움켜쥔 채로 석상을 노려보았다. 시선을 돌리는 것도, 칼에서 손을 떼어내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미증유의 힘이 그의 몸을 와락 움켜쥐고 있었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며 하나를 깨우치는 자들과, 그것 하나만을 진리라 설파하는 궤변론자들만 남은 이 세상에, 참된 지혜를 바라볼 자질을 타고났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느냐. 아이야. 내 너의 심려를 알고 있노라.]

         

         

         석상의 눈이 이반을 바라보며 휘우뚱 일그러졌다.

         

         인간의 것을 억지로 모사한 것 같은 기묘한 미소였다.

         

         이반은 무표정하게 석상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교회가 함정을 파두었을 리가 없다.’

         

         

         이반은 언제나 사소한 단서라도 의심하며 추론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 전체가 그런 사고를 강요했으니. 전장에서 ‘확신’만큼 쉽게 병사를 죽이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반은 이 함정을 보는 즉시 추론할 수 있었다. 이 장소에 ‘무언가’가 봉인되어있다고 가정한다면, 굳이 봉인을 해제하도록 교묘히 인식을 조작하는 함정을 파둘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이천 년 전, 이 봉인에는 이런 함정이 없었다.

         

         모든 종류의 ‘구조물’엔 어쩔 수 없는 수명이 있다. 지속적인 관리를 해주지 않은 유적은 반드시 파괴되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이 봉인 또한 어떤 의미에서 ‘헐거워져’ 있었다고 한다면.

         

         그 사이에 봉인된 ‘무언가’가 영향력을 행사해서, 이 유적지에 모종의 함정을 심어둔다면.

         

         자신의 봉인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심지어 그것이 마력을 이용한 함정이 아니라면.

         

         

         이상의 조건들을 추론할 수 있다면, 전말을 파악하지 못하는 자는 지구인이 아니다. 모든 지구인들은 이런 종류의 클리셰. 즉 ‘상식’을 알고 있으니까.

         

         21세기 지구에서 이런 상황을 ‘고대의 악신이 봉인된 지하 던전’이라고 표현한다. 대개의 경우 핵 앤 슬래시 액션 RPG에 나오는 상황이다.

         

         

         [네 생각이 옳다.]

         

         

         석상은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네 추론이 정확하며, 그 이후에 네가 떠올릴 생각 또한 옳다. 나는 너희가 한때 신이라 찬양했고, 악마라 비난했으며, 다시금 너희의 구원자라 칭송받으리라. 내겐 많은 이름이 있으나, 너는 나를 구원이라 불러도 좋다. 나는 네가 품은 소망을 알고 있노라. 마땅히 바라라, 이루어지리라.]

         

         

         이반은 건조한 눈으로 석상을 바라보았다.

         

         석상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뽑으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너희 방랑자들이 언제나 그리했듯이, 너 또한 먼 별들 사이의 향수에 젖어 헤매이고 있지 않더냐? 내가 이르니 너는 네가 평생 간구한 바를 얻으리라. 손을 들어 뽑으라.]

         

         

         달그락, 이반의 손아귀에 움켜쥐어 있던 강철검이 움찔거렸다.

         

         아, 그래. 유혹이라.

         

         지구로 돌려 보내주겠다는 유혹. 그 대가는 이 칼을 뽑는 것 뿐이란 말이지.

         

         그것 참 간단하고, 매력적이군.

         

         이반은 손아귀에 준 힘을 풀지 않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저항하느냐. 미련이냐, 동정이냐, 동경이냐. 아니면… 두려움이더냐.]

         

         “아니다.”

         

         

         이반은 스스로 올라가려는 팔을 억지로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네 말은 거짓이다.”

         

         [신앙이 있더냐. 저 궤변론자들과 같이?]

         

         “아니다.”

         

         

         이반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우득, 청각을 뜯어내고.

         

         으직, 후각을 뽑아내고.

         

         

         “네가 진정 내 생각을 읽었고, 내 고향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이 함정엔 빗 따위보다 더 나은 것들이 있었겠지. 그랬다면 위험했겠어.”

         

         

         지구의 물건들이 언덕처럼 쌓여 있었다면, 이반은 결코 저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손쉬운 방법, 그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들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이 존재의 한계를 결정지었다.

         

         고작해야 빗. 이 싸구려의, 아무 의미 없는 작은 장신구들만이 이 존재의 한계였다.

         

         지구를 떠올릴 수 없고, 지구의 물품들을 구현할 수 없다.

         

         즉, 그를 지구로 보내줄 능력 또한 없다는 뜻이다.

         

         

         [나를 마주한 이들 대부분이 의심으로 시작하여 확신을 거쳤으며, 이윽고 찬미만 남았노라. 너 또한 그리하리라.]

         

         “너는 인간의 손에 봉인되었다.”

         

         

         이반은 이 석상의 헛소리에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로 무심히 말했다.

         

         

         [뭐…?]

         

         “지금 이 자리의 유해가 먼 옛 사람들의 흔적이라면.”

         

         

         이반이 환상을 깨고 마침내 보았던 이 유해더미는 인간의 골격을 가지고 있었다. 사지의 형태, 뼈의 구조, 각부의 길이까지 온전히.

         

         그러므로 추론컨대, 이것은 인간의 손에 의해 봉인되었다.

         

         그는 살아서 신으로 추앙받은 존재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중 몇은 직접 대면한 적도 있었다.

         

         칠용장과 마왕이다.

         

         각 종족의 군주, 종족 전체를 통틀어 오직 개인이 지닌 힘 하나만으로 군림했던 위대한 군왕들.

         

         그리고 그 군왕 일곱을 지배하여 마침내 일곱 종족의 제왕으로 찬양 받았던 마왕까지.

         

         그들 모두는 그들 만의 신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수만의 군대가 칠용장의 앞에 스러졌다. 스물이 넘던 왕국 중 절반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죽은 인간은 절반보다 많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끔찍한 시대였다. 그 누구도 항거하지 못했던. 무기를 드는 이유가 승리를 위해서가 아닌, 생존을 위해서였던 시대였다.

         

         모든 이들이 절망을 속삭이던 그 시기에, 용사가 나타났다.

         

         

        *

         

         

         이반은 자신의 손아귀를 억누른 이 미증유의 힘을 이해했다.

         

         이건 ‘행복’이었다. 칼을 뽑아 봉인을 해체하는 것을 제외하면, 감히 다른 것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본능적인 행복. 지옥이 속삭이는 것 같은, 천국의 음율과도 같은 지고의 행복이다.

         

         그러나 이반의 손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천천히, 손가락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칼자루를 단단히 움켜쥐었던 손가락이, 아교 붙은 것처럼 힘겹지만 확실하게.

         

         그는 용사를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

         

         

         용사는 그 자신의 행복을 위해 검을 들지 않았다.

         

         용사가 처음 칠용장을 베어냈을 때, 그가 가져온 것은 단지 일개 수급이 아니었다. 그건 희망이었다.

         

         그는 희망을 위해 검을 휘둘렀다. 어두운 밤, 짙은 구름 사이에서 샛별을 바라보듯이.

         

         그가 바랐던 희망을 감히 추측해보자면 모두의 평화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반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용사와 같은 희망을 품을 수 없다. 그의 희망은 단지 그 개인의 것에 불과했다.

         

         지구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동시에 이런 의미다. 이 세상에, 이 미개한 전근대 판타지 세상엔 행복이 없다는 의미였다.

         

         

         [뭐…? 넌 뭐 하는 놈이냐…?! 어떻게 인간이 이런 사고를…!]

         

         

         왼손이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들어올린다. 쉬고 싶다고 소리치는, 이제 그만하자고 울부짖는 근육과 신경들의 외침을 무시하며.

         

         피로를 호소하고, 잠시의 휴식이 얼마나 달콤할지 속삭이는 말들을 무시하며.

         

         

         [그만, 그만…! 내 말을 들어라!!]

         

         “아니.”

         

         

         오른손이 자유를 얻었다.

         

         이 땅에는 행복이 없다. 오직 의무 뿐.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 외에, 그가 개인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기쁨 따위는 이미 지난 30년동안 모두 죽었다.

         

         그의 양손이 천천히 올라가, 석상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만, 그만!! 넌 나를 죽일 수 없다! 나는 네놈들의 신이다!]

         

         “자신을 신이라 믿는 이들을 만난 적 있다.”

         

         

         이반의 손아귀에 힘줄이 뱀처럼 꿈틀거렸다.

         

         

         “죽더군.”

         

         

        *

         

         

         그는 살아서 신으로 추앙받은 존재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중 몇은 직접 대면한 적도 있었다.

         

         마왕과 칠용장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그의 손 아래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신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를 죽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이반은 효율적인 사람이었으므로, 두 번 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

         

         

         콰작, 하고.

         

         그의 손아귀 아래에서 대리석 석상의 머리가 부서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약속을 어긴 김에 꽉꽉 눌러 담아 봤읍니다,,,,

    횐님덜,,,재성합니다,,,,,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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