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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꿈을 꾸었다.

       

       이전에 겪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 그 꿈은 지독히 행복한 것이었다.

       

       꿈 속에서 그녀는 어엿한 한 사람의 여인이었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중년을 향해 나아가는 여성이었다.

       

       물론, 꿈 속에서의 그녀는 남편을 대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비록 얼굴도, 이름도 알고 있는 사이라 할지라도 너무 일이 갑작스레 흘러간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따라서 그녀는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 영 어색했다.

       

       “여, 여보.”

       

       처음은 어려웠다.

       

       “여보?”

       

       두번째는 어색했다.

       

       “여보오오!”

       

       세번째는 완전히 적응해버렸다.

       

       자각몽.

       

       그녀는 이 행복한 나날이 결국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토록 긴 꿈을 꾼 적은 처음이었고, 자신이 이렇게나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영 어색하게 느껴졌다.

       

       “끝이 다가오고 있어.”

       

       행복한 일상이 무한히 반복되는 꿈 속에서 검은 형체의 무언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누구죠?”

       

       검은 형체는 불가사의한 기운을 마구 풍기는 자였다. 마치 음영이 드리운 것처럼 머리부터 발 끝까지 흐릿한 형태.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에게서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재창조의> 한유리. 나는 ‘너’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저귀는 새소리. 하교길에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웃음 소리. 놀이터 어린 아이 부모의 수다 소리. 바람에 휘날리는 현수막 소리.

       

       불현듯 나타는 검은 존재는 해괴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저게 나라고?

       

       한유리가 가장 먼저 품은 의문은 그것이었다. 성별도, 키도, 체형도, 얼굴도 흐릿한 존재가 자신이라고? 이런 고약한 농담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완전히 ‘꿈’에 파묻혔네.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었나.”

       “무슨 소리인가요? 정확한 목적을 밝히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하아, 이런 사람이 ‘나’라니.”

       

       검은 형체는 무엇이 그리 불만스러운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자연히 상대가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었던 한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 너를 만나고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한유리는 다시 한번 의구심을 품었다.

       

       자신을 만나고 싶어하다니, 그게 누구일까? 가족? 친척? 친구? 그것도 아니라면 먼 과거 자신을 추종하던 팬 정도 되는 사람일까?

       

       하지만.

       

       “<현상거절> 임혜성. 그가 널 구하러 왔어. 지고지순한 연심을 품은 우리에겐 제법 행복한 소식이지.”

       “무, 무슨!”

       

       한유리의 두 눈이 핑핑 돌아갔다.

       

       자신은 이미 임혜성의 아내다. 당장 슬하엔 두 자녀도 있는데, 갑작스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

       

       한유리는 그제야 의아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어째서, 임혜성이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사실에 이토록 가슴이 쿵쿵거리는 걸까.

       

       “……아.”

       

       흐릿하던 한유리의 눈동자에 서서히 빛이 깃들었다. 달콤한 꿈 속에 취해있던 그녀는 현실을 자각했다. 잠시 잊고있었다. 너무도 행복한 나날이 사실 꿈에 불과하지 않는다는 끔찍한 사실을.

       

       “나는…….”

       

       한유리는 자신이 꿈 속에 빠져들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아버지…… ‘한석구’의 배신, 자신이 마신 차에 들어있던 정체 모를 ‘물질’까지.

       

       “으읏.”

       

       모든 것들이 떠오르자 극심한 두통이 머리속을 헤집었다. 그렇다면, 저 검은 형체가 말한 건 사실일까?

       

       “응, 사실이야.”

       “그걸 어떻게 아는 거죠?”

       

       혼란스러운 감정 속, 한유리는 냉정한 눈빛을 상대에게 던졌다. 스스로가 자신이라 밝힌 존재가 정말 그녀 본인이라면, 어찌하여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어떻게라니. 나는 바깥 세상의 소리를 모두 듣고 있는걸?”

       “그건 또 무슨 소리죠? 바깥의 소리를 듣다니? 아직도 당신이 저라는 고약한 농담을 할 속셈인가요?”

       “우리는 지금 혼수상태에 빠져있어. 그야 당연한 일이야. 일성의 사람들이 ‘죽음 물질’이라는 걸 투여했거든.”

       “설마 당신……?”

       

       한유리의 심장이 일순간 덜컥, 내려앉았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거지? 정말 저 검은 형체가 그녀 자신이라는 건가!

       

       “말했잖아. 나는 또다른 너. 우리는 하나야.”

       “……이해할 수 없어요. 저에겐 또다른 자아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이해를 바라지도 않아. 그저 사실을 말한 것 뿐이야.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존재하던 ‘너’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나’야.”

       

       검은 형체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흥이 오른 것처럼 행동하던 그것은 이내 때가 왔다는 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가 왔어. <현상거절> 임혜성. 그의 목소리가 엄청 떨려. 심박수는 평소보다 한 없이 느리고, 눈에는 피로가 가득해. 거기다 상상이상의 출혈까지 발생했어.”

       “……임혜성.”

       

       현실을 자각한 한유리는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일성에 의해 호송된 그녀에게 ‘죽음물질’이라는 것을 투약했다. 그렇다면 분명히 아카데미 내부에 존재하는 모종의 비밀 실험실에서 일이 진행되었을 터.

       

       ‘나를 구하러…….’

       

       임혜성이 왔다는 소리는 그가, 사라진 그녀를 찾으러 왔다는 걸 의미했다.

       

       “안녕. 작별이야. 나는 당분간 네 안에서 조용히 지내야겠다.”

       “……기다려요! 당신, 당신의 정체를 명확히 밝히세요!”

       “응, 나는 너…… 그리고, <태초>부터 존재해온 <죽음>.”

       “……!”

       

       무언가 서글픈 목소리가 검은 형체에서 흘러나온다. 그 목소리는 놀랍도록 시린 슬픔의 감정을 품고 있었고, 또 정말로 한유리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했다.

       

       “기억해. 우리는 네가 약해질 때 다시 만나게 될거야.”

       

       후욱!

       

       또다른 자신의 목소리를 끝으로. 한유리의 몸이 가벼운 솜털처럼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의식이 멀어진다. 그녀는 깨달았다. 아아, 꿈에서 깨어나는 거구나.

       

       * * *

       

       우드드드득!

       

       지하 실험실의 바닥이 융기한다. 동시에 천장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새하얀 빛이 드리웠다.

       

       “혜서어어엉!”

       “송수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지하로 향하기 전, 내가 안젤리카와 송수아에게 당부한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성법술 – 천리안’으로 상황을 지켜보다, 위험한 일이 발생할 경우엔 ‘신성력’을 활용한 비상탈출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송수아가 말그대로 땅을 가르며 나타났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신성력 공장이라도 불러도 좋을 정도로 빛의 기운을 마구 뿜어대는 안젤리카도 함께였다.

       

       “다친 곳은 없어? 응?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혜성이가 위험하다는 말을 들어서 엄청 놀랐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속사포처럼 쌓여둔 감정을 토해내는 송수아 다음으로. 안젤리카가 곧장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여태까지 ‘천리안’으로 상황을 지켜봤을 녀석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아닙니다. 당신이 이 밀실에 들어서는 순간 ‘천리안’이 강제로 해제되었습니다.”

       “……그래서 송수아가 저렇게 폭주한 건가? 한유리와 나를 동시에 잃을 뻔 해서?”

       “비슷한 것입니다.”

       

       그리 중얼거린 안젤리카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상한 주사바늘이 다닥다닥 꽂힌 한유리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유리몬! 괜찮아? 응? 으허어어엉……!”

       

       아니, 무슨 시트콤 찍냐.

       

       나타난 즉시 내게 껑충 뛰어들었던 송수아는 이제 깊은 잠에 빠져든 한유리의 침대 옆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이, 이 새끼들아! 나도 있다!”

       “……아.”

       

       잊고 있었다. <공간왜곡> 김인만. 녀석이 아직도 여기에 있었지?

       

       “<성녀>에 <비를 내리는>, <재창조>까지…… 빌어먹을.”

       

       이미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건지, 녀석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었다.

       

       그러면 당장 텔레포트로 사라질 것이지, 왜 자꾸 중얼중얼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헛소리를 나불대고 있는 걸까.

       

       스윽.

       

       “너, 너지?”

       “……음?”

       

       헌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일평생 누군가를 미워한 적이 없을 것 같은 송수아가, 창백하게 시린 얼굴로 꿇어 앉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것이다.

       

       “네가, 네가. 네가! 유리를 납치하고, 혜성이를 다치게 만든 거지?!”

       “…….”

       

       서슬 퍼런 송수아의 포효에 김인만이 얼어붙었다.

       

       ‘……화 났나?’

       

       이제껏 본 적 없는 분노다. 항상 깜찍한 느낌이 그득한 깊은 두 눈이 이글대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 나, 나?”

       

       김인만은 한심한 목소리로, 기어가는 듯이 대답했다.

       

       녀석도 송수아가 무서운 모양이다.

       

       왜 그런 말 있지 않나. 평소에 생글생글 밝은 사람이 화가 나면 가장 무서운 법이라고.

       

       “비, 빌어먹을!”

       

       팟!

       

       나름대로 위기감을 느낀 걸까? <공간왜곡> 김인만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멸칭인 ‘만퀴벌레’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녀석이다.

       

       하지만.

       

       “도망……?”

       

       분노한 송수아는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던 모양이다.

       

       스으으…….

       

       그녀의 손바닥이 허공에서 반원을 그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이 깊은 지하 어디에 ‘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한줄기 맑은 물방울이 그녀의 앞에 몽글몽글 형상을 이루어 간다.

       

       “혜성이를 다치게 하고, 또 유리를 납치한 녀석. 나는 절대로 용서 못해.”

       

       콰아아아-!

       

       물방울이 하나의 ‘창’의 형태를 갖춘다. 그리고 김인만이 서 있던 자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쏘아져 갔다.

       

       “현상거절.”

       

       물론, 나는 가만히 그 꼴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 일시적으로 <공간왜곡>의 게이트 클로징을 거절한다. ]

       

       카각! 카가각!

       

       분명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차원의 균열이 벌어진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알 수 있었다. 공간과 차원, 그 사이를 누비는 ‘텔레포터’들이 사용하는 통로가 현상에 저항하는 소리가 들린 까닭이다.

       

       그리고.

       

       쑤우욱!

       

       물의 창이 공간을 도약한다. 텔레포터에게 보내기엔 최고의 반격이 될 것 같았다.

       

       “선물이다, 인만아.”

       

       ……아니, 존만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조금 늦었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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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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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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