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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오전 내내 일을 처리하고 간신히 방으로 돌아왔다.

        

       추운 곳에서 계속 돌아다녔더니 땀이 흘렀다가 식기를 반복해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표정 자체는 감출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앨리스가 눈치챌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일행이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내 체력이 그 아이들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미아 크로우필드는 체력으로 싸우는 애도 아니었고.

        

       나는…… 뭐, 나도 따지자면 멀리서 총이나 쏘면 되는 위치이긴 했지만, 일행이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기대하는 것과 나에게 기대하는 것에는 아주아주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근접전을 거는 인간들의 공격도 쉽게 피해내는 이미지였으니까.

        

       “…….”

        

       분명히 내일도 아침부터 클레어가 나를 깨우러 오겠지.

        

       내일 뿐만이 아니라, 아마 앞으로 있을 시간 내내 꾸준히 그렇게 지낼 거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이 잠시 쉬는 시간이 지난 뒤에는 또 클레어가 찾아올 거고.

        

       물론 레오와 클레어의 뒤를 따라다니면 검성도 분명 만나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면 늦는다. 검성은 레오나 클레어, 혹은 앨리스나 샤를로트에게 더 관심을 가질 거다. 아니면 제이크라던가.

        

       미아 크로우필드와 나는 검술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고, 검성의 눈에는 차지 않는 인재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까지만 하더라도 산 타는 것이 싫어서 검성을 마주하는 것은 어떻게든 빼먹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일을 겪고 나니 나에게 사격 이외의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좋아.

        

       침대 위를 뒹굴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차피 나에게는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한 번에 몇 주일씩 뒤로 돌리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하고 싶지 않지만, 몇 시간 정도를 몇 번이고 뒤로 돌리면서 한 달 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미 해보았다. 크로우필드 백작을 암살할 때도 훈련 삼아 여러 방식으로 암살 루트를 짜보았고, 정보를 캐냈다.

        

       여러모로 미숙하긴 했지만, 시간은 내 편이었다. 실수는 바로잡을 수 있었다. 훈련으로 체력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해도 습관이 될 정도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곧장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제니퍼가 있는 방을 향했다.

        

       *

        

       제니퍼의 방은 공작가 영애의 방치고는 여러모로 소박했다. 고급스럽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깔끔하게 정리정돈되어있었고 장식품도 거의 없었다. 도자기나 작은 대리석 석상 같은 것도 없었고, 거울이라곤 벽에 걸린 것 딱 하나뿐이었다.

        

       침대 위에 레이스가 달려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까놓고 말하자면, 공작가 영애보다는 ‘장교 숙소’에 가까운 분위기다. 물론 내가 진짜로 장교 숙소에 가본 적은 없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 스승을 만나게 해달라?”

        

       “예, 그렇습니다.”

        

       내 요청을 듣고 제니퍼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의자에 앉아있는 제니퍼 또한 이 방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전혀 흐트러짐이 없어 보였다. 아카데미에서 보던 때는 장교 출신치고는 꽤 자유분방한 분위기였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격식을 차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흠.”

        

       제니퍼는 손에 들고 있던 수첩을 탁 덮었다.

        

       “내 스승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만.”

        

       자기 입으로 말한 적도 없는 스승을 소개해달라는 나의 말에 흥미가 동한 것인지, 제니퍼는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제국 검성이 아니십니까?”

        

       ‘검성뿐’만은 아니다. 제니퍼에게는 여러 스승이 있었다. 다만 게임에서 직접적으로 이름이 언급되는 스승은 검성과 제니퍼의 조부인 에이브러햄, 그렇게 둘 뿐이다.

        

       온갖 무기를 다 다루는 제니퍼이니, 당연히 스승이라고 할만한 존재도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두 명 뽑으라면 그 둘이다.

        

       “그리고 너는 내가 그분이 어디 계시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고.”

        

       “그렇습니다. 이 윈터필드 영지에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직접 찾아가면 되는 일 아닌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계속 질문을 하는 제니퍼를 나는 슬쩍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세한 위치는 알지 못합니다.”

        

       게임에서는 그 산자락이 단순하게 표현되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럴 리가 없다.

        

       “흐음.”

        

       제니퍼는 턱에 손을 대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실제로는 키가 나와 비슷했지만, 풍기는 위압감 때문에 내가 느끼기에는 실제보다 훨씬 커 보였다.

        

       그리고 내 앞까지 온 제니퍼는,

        

       딱!

        

       “아얏!”

        

       초고속으로 내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음?”

        

       정작 본인이 내 머리를 때려놓고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다시!

        

       *

        

       초고속 꿀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기까지 시간을 세 번 돌렸다.

        

       세 번 만에 피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루카스가 나한테 검을 휘둘러댔던 것이 정말로 훈련이 되었던 모양이다. 루카스보다 한없이 진심에 가까운 휘두름이었는지 피하는 게 더 까다로웠지만.

        

       “……그런가.”

        

       내 표정에서 뭘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니퍼는 나의 눈빛을 보고 무언가 읽어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성적은 어떻게 되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참을 걸어야 한다. 산 아래까지는 차를 타고 갈 수 있어도, 산 위로 한참 걸어야 하니까. 도착하면 한밤중이 되겠지.”

        

       ……그렇게 멀었던 건가.

        

       하긴 게임에서도 아예 검성의 오두막에서 하루 지내고 내려오긴 했으니까.

        

       “뭔가 제대로 배우려고 해도 며칠로는 턱없이 부족…… 아, 이건 네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일까?”

        

       순간 내가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을 읽어내기라도 했나 싶어서 등에 소름이 돋았지만,

        

       “기초적인 재능은 있는 것 같으니. 그저 조언을 듣기 위한 것이라면 하루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르지.”

        

       거기까지 말한 제니퍼는 마치 나를 도발해 보이듯 씩 웃으며 덧붙였다.

        

       “아니, ‘기초적인’ 수준은 아닌가?”

        

       기초적인 수준은 아니지.

        

       사실 그 기초도 없으니까.

        

       물론 그걸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룻밤 정도라면 충분합니다.”

        

       “…….”

        

       그렇게 대답하는 나를 제니퍼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기는 하다만, 그건 네가 다시 내려오고 나서 생각해봐도 되겠지. 당장 어디로 떠나려는 것 같지도 않으니.”

        

       하지만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볼 시간 따위는 없을 거다.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조차 남지 않을 테니까.

        

       제니퍼는 한 번 하겠다고 결정한 일은 고민도 하지 않고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자기 스승을 찾아가겠다는 생각을 한 직후 곧장 내 옆을 스쳐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바로 제니퍼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몸을 돌렸는데, 자기 방문을 열기 직전에 제니퍼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발걸음을 멈췄다.

        

       “아, 그래.”

        

       그리고 자기 뒤에 있는 나를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황가의 여식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윈터필드의 자존심에 흠이 가는 일이라서 말이야.”

        

       …….

        

       평소에는 그딴 거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내가 나의 스승님을 소개하는 대가로 네가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

        

       “네가 평범한 십 대 소녀는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 적어도 백작을 암살하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명예로운 일일 거다.”

        

       내가 백작을 죽였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그 사실로 협박하거나 하려는 건 아닌 모양이다. 애초에 협박할 거리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말 그대로 ‘거래’였다.

        

       “거래 내용이 뭔지 미리 들을 수 있겠습니까?”

        

       “국경지대에서 날뛰어서 골치 아픈 군벌이 하나 있다. 그 군벌의 우두머리를 저격해주었으면 좋겠군. 제국 병사들이 수개월째 죽어 나가고 있거든.”

        

       “……원래 제가 가야 했던 그 전장입니까?”

        

       “그래.”

        

       제니퍼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 폐하께서 보내주기로 했던 원군은 분명 너였겠지.”

        

       “…….”

        

       확신은 못 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로도 나는 아카데미 말고 북부 전선으로 갈 예정이었으니까.

        

       원작에서는 아마 클레어가 갔겠지. 자세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 국경지대의 군벌을 와해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다.”

        

       제니퍼는 고개를 끄덕인 뒤 문을 열었다.

        

       *

        

       레오와 클레어는 식당에 있었고, 앨리스와 샤를로트는 각자의 방에 있었다.

        

       미아 크로우필드도 마찬가지로 방에 있었고. 제이크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대형 사고를 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우리가 바깥으로 가는 도중에 다른 누군가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귀족반의 다른 학생들이 몇 명 있기는 했지만, 굳이 함께 걸어가는 황녀와 선생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냥 황녀와 그냥 선생도 아니고, 황가 직속 암살자로 의심받는 존재와 북부 전선에서 활약하던 전직 군인이라고 생각하면 말을 걸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누가 봐도 엄청나게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러 가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래도 산 아래까지는 도로가 있다. 이곳은 제도의 적기조례 같은 것은 없으니 속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마부들이 일자리를 빼앗길까 격렬하게 반발한 결과 제도에선 증기 자동차가 시속 2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내가 굳이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던 이유다. 애초에 직접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차라리 승마를 배우는 쪽이 훨씬 더 나으리라.

        

       “운전은 내가 할 건데, 괜찮겠지?”

        

       아무렇지도 않게 운전석에 타면서 제니퍼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수석에 탑승했다.

        

       그리고 차에 타고 나서야 이 차에는 안전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제니퍼가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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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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