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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귀신… 같은 건가?’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흐느낌.

       그 소리가 너무도 구슬프고 서글퍼, 인간이 내는 소리라 믿기 힘들 정도였다.

       한이 맺히다 못 해 그 한(恨) 자체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

       더군다나 기척은 하나 밖에 느껴지지 않았으며, 혹한의 추위가 시작될 11월의 어느 날 밤의 저택에서 [홀로 울고 있는 여인]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

       

       위협적이지 않아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털이 곤두서고, 등에 오한이 서려왔다.

       뒷꿈치를 든 채, 그리 은밀히 이동한 난 소리가 울리고 있는 방의 문 앞에 섰다.

       

       -아… 흐아으….

       

       흐느낌 중간 중간,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생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웅얼거림이었다.

       옆집에 살던 언어장애인 아주머니께서 제 아들이 커다란 지네에 물렸을 때, 다급히 나를 찾아와 수화를 하며 답답한 듯 입을 움직이던 소리와 비슷했다.

       

       -우으아… 흐으윽…. 아으….

       

       뜻대로 나오지 않는 말에, 온갖 답답함만 토해내는 그 웅얼거림.

       해내는 이보다 듣는 이가 더 답답한 그 웅얼거림이 흐느낌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홀로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는 걸까.

       문 손잡이를 잡았다.

       여차하면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단전에 열기를 피워올린다.

       

       그렇게.

       

       끼릭….

       

       문을 천천히 열었다.

       침대가 보인다.

       그 위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백골이 보인다.

       설마 저 백골이 흐느낀 것일까 싶어 흠칫했지만, 우측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문을 활짝 열었다.

       

       “아으… 흐윽….”

       “…….”

       

       창틀도 창문도 없는 창가의 앞에 주저앉아있는 한 여인이 보였다.

       백색일지 회색일지 모를 머리카락은 산발이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육신은 침대 위에 누워있던 백골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앙상히 말라있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낯이 익은 형상이었다.

       

       해내는 흐느낌도, 달빛에 비친 그 모습도.

       

       눈을 끔뻑였다.

       

       버려진 땅, 버려진 폐허 속에서 홀로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이질적으로 보여 두 눈으로 목도하고도 믿기가 어려웠다.

       또한 찢기고 뜯겨져 옷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거적때기를 두르고 있는, 부랑자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산발이 된 머리는, 뼈만 남은 팔과 다리는 인간의 것이라 보기 힘들었다.

       헛것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고, 차라리 세계관 최초로 망령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것이 현실적일 정도였다.

       어쩌면 이미 누군가의 농간과 술수에 휘말려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순간.

       

       “흐윽….”

       

       그 여인이 고개를 틀어 나를 보았다.

       검푸른 동공이 나를 훑어본다.

       심연에 빠진 듯한 검푸른 동공 위를 휘몰아치던 너울이 서서히 잔잔해진다.

       분명 검푸름에도, 그 속에 감춰진 본래의 색을 알 것 같은 동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익숙한 동공이었다.

       그래서 더욱 믿기 힘들었다.

       보여선 안 될 동공이었고, 이 죽음의 폐허에 있어선 안 될 동공이었으니까.

       분명 이것은 간악한 자가 설치해놓은 교묘한 덫이리라.

       말도 안 되는 허상을 진상으로 다듬어내어 나를 현혹하는 것이리라.

       

       고작 6개월이다.

       길다면 긴 시간이겠지만, 르미앙 윈터펠이란 여주인공이 이 버려진 땅에서 홀로 흐느끼고 있기엔, 뼈만 남을 정도로 앙상해지기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빛 한 점 없는, 사람 한 명 없는, 온기 하나 없는, 오직 죽음만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 벼랑의 끝에 선듯 울고 있기엔 너무도 짧은 시간인 것이다.

       

       대체 어떤 자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하려는 것일까.

       어째서 이것을 내게 보여주는 것일까.

       혼약대전의 끝에서 그녀에게 빌어주었던 기도를 부정하는 것일까.

       홀로 죗값에서 해방되어버린 방관자를 응징하려는 것일까.

       지금의 이 모습이 나의 책임이라며 죄의식을 강요하는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참으로 고약한 농간이자 참으로 얄궂은 술수임은 틀림없었다.

       지금의 재회가 누군가의 바람이든, 어떠한 환각이든, 혹은 만에 하나의 확률에 의거한 우연의 일치이든, 참으로 고약하고 얄궂은 순간임은 틀림없는 것이다.

       단 한번도, 단 한순간도 이러한 모습을 목도하게 되리라 예상치 못 했던 내겐 혼란과 충격의 순간이었고, 그 사이 르미앙의 울음이 멈추고 말았다.

       

       풀썩.

       

       지금의 울음이 마지막 생명을 불 태운 것이라는 듯, 맥없이 쓰러지는 르미앙.

       

       “르, 르미앙…?”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야 했다.

       장장 6개월 만에 불러보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불러볼 일이 없으리라 여긴 이름이었다.

       

       급히 뛰어가 쓰러진 르미앙의 맥박을 짚어보았다.

       다행히 아직 맥박이 꺼지지는 않았다.

       미약하지만, 생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는 듯 힘겨이 뛰고 있었다.

       급히 그녀를 들쳐업었다.

       간교한 장난질에 웃음거리가 된 것일 수도 있고, 악랄한 덫에 걸려든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재고 뒤를 생각하기엔 르미앙의 상태가 너무도 위독해 보였다.

       

       지금의 행위가 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인지, 환각 속에서 버둥대는 것인지,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등에 업은 르미앙을, 종잇장처럼 가벼워 도무지 사람을 업은 것이라 믿기 힘들 르미앙을 살리고자 하는 생각뿐이었다.

       

       우연이든, 술수이든.

       그것을 재다가 르미앙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땐 없던 죄의식도 생길 듯 했으니까.

       만약 등에 업은 종잇장이 허상이 아닌 진상이라면 우선은 그녀를 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곧장 야영지가 꾸려지고 있을 1층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렌들러-!!”

       

       간단한 상비약을 들고 있는 렌들러 영감을 다급히 부르며.

       

       

       **

       

       

       《최선을 다해 너의 아픔을 치유할게. 부디, 내 노력을 받아줘. 여보.》

       《……우읍.》

       

       참아보려고 했었어.

       모든 걸 망가뜨린 죄인은 죄를 달게 받아야 마땅하니까.

       아버지와 겔우드의 결단이 없었다면 만백성의 축제와 신성한 가문의 전통은 망가졌을 테니까.

       그러니 내가 망가뜨린 것과 다름없고, 난 죄인이나 다름없으니 주동자와의 혼약이란 죄를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참으려고 했었어.

       하지만 주동자의 입에서 들려오는 ‘여보’란 단어 한번에 애써 억눌렀던 구역감이 차올라버리는 건,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어.

       

       《넌, 내게 바라는 거 없어? 구두굽으로 손등을 짓밟고 침을 뱉어도 상관없어. 아픔이 치유될 수 있다면 뭐든 할 테니까.》

       《없어.》

       《뭐…? 아니, 성의를 봐서라도 조금은…》

       《미안해.》

       

       이제는 알았거든.

       갈라져버린 상처는 봉합되지 못 한 채 아물어버려 애당초 치유할 것도 낫을 것도 없었던 거야.

       벌어진 흉터의 사이로 닦을 수 없는 더러운 때가 끼고 있었던 걸 이제야 알았거든.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나를 용서해줄래? 씨발,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냐고-!》

       《…너야말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우린 부부니까, 이제는 화해하고 잘 지내야 하니까 이렇게 사과하고 있잖아-!》

       《잘 지내고 싶다고? 100일이 지난 후 내게 남편으로써 인정 받아 아버지에게 사면을 받고 싶은 건 아니고?》

       

       우연히 들었었어.

       집무실에서 술을 마시고선 혼자 중얼거리는 걸 우연히 듣고 말았었어.

       네가 내게 용서 받고 싶어하는 진짜 이유를.

       아버지와 어떠한 거래를 했는지, 듣고 만거야.

       당연히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아.

       혼약대전의 우승자와 행복한 여생을 산다는 가문의 전통이 지켜지길 바라는 건, 가주로써 당연한 바람이니까.

       

       《드, 들었어…?》

       《애석하게도.》

       

       털썩.

       넌, 이때 무릎을 꿇었었지.

       

       《제, 제발 이렇게 빌게!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용서해줘! 나와 행복하게 살자고-! 네가 바랐을 사과를 이렇게까지 빌고 있는데, 대체 왜 안 받아주는 거냐고!》

       

       너와 시간을 보낼수록 외려 욱씬거리기 시작하는 그날의 흉터와 귓구멍을 선명히 파고드는 비명만 아니었다면 그 바람을 뿌리치지 않았을 거야.

       매일 같이 반복되는 악몽도 평생을 감내하려 했었을 거야.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비참했던 하루하루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을 거야.

       

       지금처럼.

       

       혼약대전이 끝난지 90일이 되도록 참고 참으며, 그 누구에게도 티를 내지 않았던 것처럼.

       

       《아버지에겐 내가 잘 얘기할 테니, 걱정 마. 네가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반성했었다고. 그럼에도 내가 못나 받아주지 못 했다고 얘기할 테니까 걱정 마. 그럼 모두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99일째 되던 날.

       난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었어.

       네가 또 다시 술에 취해 혼잣말로 나를 ‘버러지’, ‘쓰레기’, ‘당해도 싼 년’이라며 욕했었음에도 난 우리가 최선의 결말을 맞이하도록 노력하려 했었어.

       이미 겔우드 경에게도 언질을 줬었고, 그 역시 아버지라면 윤허하실 거라 얘기했었으니까.

       

       《…이 씨발년이 누굴 바보 병신 새끼로 아나. 순순히 속아줄 거라 생각했냐? 그냥 같이 뒤지자. 썅년아.》

       

       100일째 되던 날 늦은 새벽, 몰래 침실로 들어온 넌 내게 칼을 들이밀었었지.

       이때 알었어야 했는데.

       우리에게 최선의 결말 같은 건, 애당초 없었다는 것을.

       

       《왜, 왜 이래. 데론.》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꺄악-!!》

       《무, 무슨 일이십니까! 대공녀님!》

       《이런 씨발…!》

       

       와장창!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어서 쫓아가-!》

       

       저주 받은 년은 온전한 삶을 살아선 안된다는 걸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내가 진작 죽었다면,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 텐데.

       

       

       “대, 대공녀님?”

       

       

       근데.

       

       또.

       

       왜.

       

       눈이 떠지는 걸까.

       

       이제는 정말 끝이리라 생각했는데.

       

       어째서 푸른 하늘이 보이는 걸까.

       

       

       “이제 조금 정신이 드십니까?”

       

       

       …어째서 엘든의 얼굴이 보이는 걸까.

       

       

       “삼킬 힘이 있으시다면 우선 이것 좀 마시십시오. 회복에 도움이 될 겁니다.”

       

       

       죽어 마땅할 내가 어째서 따스한 햇살을 맞고 있는 걸까.

       

       죽어 마땅할 내가 어째서 엘든의 부축을 받고 있는 걸까.

       

       분명 죽었어야 했는데.

       

       죽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죽기 직전의 환각일까.

       

       죽기 직전의 망상일까.

       

       모르겠네.

       

       

       

       

       그저.

       

       

       

       

       제발….

       

       

       

       

       제발… 좀.

       

       

       

       

       

       부탁이니까, 제발… 나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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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Comment

  1. Hellkiller says:

    Im confused, what did deron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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