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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파스텔은 창고 안으로 줄행랑쳤다.

         

       “저는 비공정에 숨어들어 도둑질한 죄밖에 없어요……!”

         

       허억.

         

       말하고 보니 거의 죽을죄!

         

       으아아.

         

       허둥지둥 도망쳤다.

         

       어두운 창고는 넓었다. 일부러 설계된 일자 통로 끝에 위치한 창고답게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마련된 창고 같았다.

         

       그런 느낌은 창고 중심에 덩그러니 놓인 철제 수납함을 보곤 더 강해졌다.

         

       직사각형 수납함은 크기가 얼마나 큰지 파스텔이 몇 명씩 드러누워도 크기가 넉넉할 정도였다.

         

       그 크기만큼이나 중요한 게 들었는지 쇠사슬로 감싸고 자물쇠로 봉쇄된 모습이었다.

         

       파스텔은 수납함 앞에 당도하고 당황했다. 창고인데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으아아.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창고를 털러 온 선량한 도둑을 위해 숨을 곳은 마련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오!

         

       인정 없는 인류!

         

       “탈출구를 찾나? 포기하시지.”

         

       마족 용병대장이 느긋하게 걸어왔다. 느긋한 걸음걸이는 유일한 출구인 문을 가로막는 행동 같기도 했다.

         

       “그 교활한 크래프트가 알아서 죽으러 와주다니.”

         

       용병대장이 술기운 서린 얼굴로 크흐흐 웃었다.

         

       “무슨 계획을 세우든 제 목숨만은 챙겨 도망칠 혈통이라 반쯤 포기했건만, 마왕님께서 저승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건가.”

         

       으아아.

         

       “오해예요! 오해예요!”

         

       파스텔은 양손을 휘저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전 교활하지도 않고 크래프트도 아닌 그냥 파스텔! 파스텔 러브러브라구요!”

         

       파스텔은 과감한 개명을 시도했다.

         

       말하고 보니 창피한 네이밍이긴 했지만 일단 살면 그만 아닐까?

         

       “파스텔, 뭐?”

         

       용병대장이 한손검을 어깨에 걸쳤다.

         

       앗, 대화가 되는 기분!

         

       파스텔은 반색했다.

         

       “파스텔 러브러브요!”

         

       양손의 검지로 하트를 만들었다.

         

       하트 뿅뿅.

         

       용병대장이 말없이 쳐다봤다.

         

       정적이 흘렀다.

         

       『흠.』

         

       악마님, 왜 그러세요?

         

       『흐음.』

         

       저기요?

         

       반응이 이러니 살짝 창피해진 파스텔은 눈을 굴렸다.

         

       그러다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인기인은 이해받기 어려운 법!

         

       윙크하며 상큼하게 외쳤다.

         

       “파스텔 러브러브!”

         

       하트 뿅뿅~!

         

       용병대장이 쳐다보다가 총구를 겨눴다.

         

       “뭔 장난질이냐!”

       “와아악!”

         

       파스텔은 화들짝 놀라 혼비백산했다. 후다닥 줄행랑쳐 거대한 철제 수납함 뒤에 숨었다.

         

       머리만 빼꼼 내밀어 절박하게 외쳤다.

         

       “쏘지 마세요!”

         

       마족 용병대장이 정말 쏘지 않은 채 격분했다.

         

       “누구를 바보로 아나! 어차피 이곳에 들어온 이상 네 녀석에게 도망칠 곳은 없어! 목숨을 걸고 혈투에 임해라!”

       “혈투요?! 흐아아! 전 평화주의자예요!”

       “평화주의자? 수작 부리지 마라!”

         

       총구가 거칠게 겨눠졌다.

         

       “우와악!”

         

       파스텔은 빼꼼 내밀던 얼굴을 집어넣었다.

         

       “후우!”

         

       용병대장이 흥분을 죽이듯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어쩐지 침착해진 어조로 말해왔다.

         

       “아무리 크래프트라도 명예는 알겠지? 나도 저승에서 마왕님이 보고 계신데 크래프트의 마지막 생존자를 개죽음으로 끝낼 생각은 없어.”

         

       앗?

         

       파스텔은 다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분홍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말씀은?”

         

       살려주신다는 의미?

         

       용병대장이 한손검을 겨눴다.

         

       “그러니 명예를 걸고 싸워라!”

         

       으아아.

         

       “그건 제가 바라던 말이 아닌데요……!”

         

       파스텔은 얼굴이 핼쑥해졌다.

         

       빙빙 도는 눈동자로 탈출구를 모색했다.

         

       어떻게 창고에 창문도 없어!

         

       그러다 뭔가 깨달았다.

         

       오잉.

         

       파스텔은 용기를 내 용병대장을 관찰했다. 마족은 얼굴을 험상궂게 구긴 채 노려봤다.

         

       그런데 말 그대로 노려보기만 했다. 한손검도 들고 반대 손엔 총까지 들었는데 정말 노려보기만.

         

       오이잉.

         

       마족 용병대장은 크래프트 가문을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 했지만 정작 공격 시도는 하지도 않은 채 파스텔을 대화로 타이르는 중이었다.

         

       파스텔은 원인을 궁리하다가 자신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철제 수납함을 쳐다봤다. 매우 중요한 것처럼 쇠사슬로 감겨 자물쇠까지 채워진 수납함이었다.

         

       설마 전투 여파가 수납함에 영향을 줄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건가?

         

       용병대장은 검격으로 철제문을 가볍게 조각냈으니 싸우다가 수납함을 건드릴까 봐 신경 쓰일 만했다.

         

       뭐가 들었길래?

         

       그건 모르겠지만 상대의 약점을 발견하자 마음이 침착해졌다.

         

       파스텔은 이성을 되찾고 창고를 다시 둘러봤다.

         

       이렇게 큰 수납함을 창고에 옮겼는데 정작 창고 문은 수납함 크기에 비해 작았다. 분명 화물용 문이 따로 있는 거겠지.

         

       그 생각대로 옆 벽면을 살피자 레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 내리면 벽면이 따라란~! 하면서 열리고 파스텔은 야호~! 거리며 탈출할 수 있는 건가?

         

       응응!

         

       희망찬 전망이야!

         

       파스텔은 품에서 몰래 마석 나이프를 꺼냈다. 나이프를 지면에 붙다시피 낮게 띄우고 레버 방향으로 이동시킬 준비를 했다.

         

       용병대장의 시선을 끌듯 앞으로 나섰다.

         

       “명예를 걸고 싸우자 하셨나요?”

         

       수납함에서 살짝 떨어져 검을 뽑자 용병대장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크흐! 그렇게 나오셔야지!”

         

       한손검이 파스텔을 겨눴다.

         

       “나는 트마우트다! 하늘섬 성지를 짓밟는 인간들을 박멸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고 있지!”

         

       파스텔은 천천히 숨을 내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자 분홍 눈동자가 탁하게 빛났다.

         

       “자기소개 고마워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어떡하죠?”

         

       스스로를 가리켰다.

         

       “난 명예 같은 건 모르는데.”

       “뭐?”

         

       소녀는 검으로 수납함을 겨눴다.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트마우트를 흘겨봤다.

         

       “바보 같아. 준비한 게 어떻게 될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애원하는 모습이.”

         

       돌변한 태도에 트마우트가 흠칫했다.

         

       그 틈을 타 마석 나이프가 지면을 타고 비행했다. 레버 앞에 당도하자 나이프 몸체로 레버를 밀어냈지만 잘되지 않아 미끄러졌다. 계속해서 시도하자 미세한 마찰음이 났다.

         

       소녀는 검면으로 수납함을 쳤다. 청명한 울림이 어두운 창고를 덮었다.

         

       “겁먹은 연기를 좀 해주니까 기세등등해지는 것도…….”

         

       분홍 눈동자가 트마우트를 흘겨봤다.

         

       “바보 같아.”

         

       트마우트가 얼굴을 굳혔다.

         

       “너…….”

         

       소녀는 뒷짐을 지고 상대를 내려보듯이 바라봤다.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아요?”

         

       나만 그런가?

         

       “그 크래프트가 제 발로 죽어주러 오다니.”

         

       고개를 갸웃했다.

         

       용병대장이 흠칫했다. 급격히 껄끄러워지고 상상이 확장되는지 눈동자가 떨렸다.

         

       소녀의 한쪽 입꼬리가 진해졌다.

         

       “당신이 제 영역에 들어온 순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어요. 생각, 구상, 계획. 원한 섞인 마음이 만든 흔한 욕망과 평탄한 발상을.”

       “수작 부리지 마라!”

         

       트마우트가 이를 악물었다.

         

       “다 망한 크래프트 주제에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네 가문의 첩보망은 뿌리 뽑힌 지 오래야!”

         

       총구가 거칠게 소녀를 겨눴다.

         

       소녀는 굳이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양팔을 벌리고 제자리에서 여유롭게 한 바퀴 돌았다. 옷자락이 펼쳐지고 분홍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잔잔한 목소리가 퍼졌다.

         

       “그냥 말해주고 싶었어요.”

         

       회전을 멈춘 후 몸을 기울여 상대와 시선을 마주쳤다.

         

       “고마워요. 당신이 명분을 만들어 준 덕에 아카데미를 편하게 집어삼킬 수 있었으니까.”

         

       트마우트가 안색을 굳혔다.

         

       “설마, 알고 그런 거냐? 선발대를 하수도에서 바로 잡아 명분을 만든 것도, 아카데미 권력을 손에 넣은 뒤 바로 이곳에 찾아온 것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겨눈 총구가 흔들렸다.

         

       소녀는 눈웃음쳤다.

         

       분홍 입술이 달싹였다.

         

       “바보 같아.”

         

       목소리가 어두운 창고를 채웠다.

         

       트마우트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알고도 방치한 거냐! 알고도!”

         

       총구가 쇠사슬에 감긴 철제 수납함을 겨눴다.

         

       “정박장에 반입할 수 있게 방치해?! 크래프트 네놈들은 마계에서도 항상이랬지! 그깟 권력을 위해 생명을 저울에 올리고 사람의 마음을 비웃으며 즐거워했어!”

         

       트마우트가 격분했다.

         

       “그런데 이번엔 민간인인 인간들이 죽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고?! 네 녀석들은 인간도 마족도 구분 짓지 않는 거냐! 그러고도 인간이야!”

         

       손가락이 삿대질했다.

         

       “이 짐승만도 못한 것들아!”

         

       소녀는 당혹스러워했다. 생각하며 눈을 굴리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살포시 웃었다. 스스로를 가리켰다.

         

       “나, 인간 아닌데.”

         

       생명을 가지고 농담하듯 가벼운 목소리였다.

         

       트마우트가 굳었다.

         

       서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절찬 연기하던 파스텔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농담 성공.

         

       상상 속에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으아아.

         

       저 사람 갑자기 왜 저래!

         

       두려움을 꾹 참았지만 저러다 칼질해 올까 봐 정신이 빙빙 돌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생을 인기인으로 살아온 파스텔은 슈퍼 울트라 임기응변을 발휘했으니.

         

       그것은 바로, 분위기 전환 농담!

         

       얼마나 효과적인지 뜨거워서 싸움까지 벌어질 거 같은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었다.

         

       뿌듯 뿌드읏.

         

       마석 먹고 사니 인간은 아니네요~.

         

       놀랍게도 진짜임.

         

       헤헤.

         

       분노를 차갑게 가라앉힌 트마우트가 노려봤다.

         

       “이제 이깟 계획은 필요 없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크래프트 가문의 명줄을 끊어놓고 말겠다.”

         

       우와앗!

         

       저한테 왜 그러세요……!

         

       파스텔은 마음속으로 벌벌 떨며 연기를 마저 했다.

         

       웃으며 짝짝 손뼉 쳤다.

         

       “훌륭한 마음가짐이에요. 하지만 어쩌죠?”

         

       마석 나이프가 벽면 레버를 간신히 움직였다. 한쪽 벽면 전체가 덜컹였다.

         

       “당신에게 그런 미래는 없을 텐데. 말했잖아요. 덕분에 아카데미 권력을 손에 넣었다고.”

         

       벽면이 통째로 열리며 빛이 쏟아졌다. 광풍이 들어오고 소녀의 옷자락과 분홍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했다.

         

       “역할을 끝낸 도구는…….”

         

       소녀는 열린 벽면으로 걸어갔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했다.

         

       “용도 폐기야.”

         

       열린 벽면의 쏟아지는 빛을 가리듯 사람 실루엣들이 생겼다. 대기하던 벽면 너머의 소형 비공정에서 갑옷을 걸친 사람들이 도약하더니 들어왔다.

         

       마석 갑옷을 입은 정예 집단.

         

       기사단이었다.

         

       기사단이 후작 각하를 호위하며 둘러쌌다.

         

       오잉.

         

       파스텔은 예상 밖의 상황에 연기하다가 말고 벙쪘다.

         

       오잉오잉.

         

       식당에서 회식하던 마족들에게서 증거라도 얻었나? 그래서 레너드가 기사단에 요청이라도?

         

       우왕.

         

       헤헤.

         

       트마우트가 눈을 부릅떴다.

         

       “이 개 같은!”

         

       총구가 파스텔을 겨눴다.

         

       “크래프트……!”

         

       방아쇠가 당겨지고 불꽃이 일었다.

         

       총탄이 자연의 이치를 무시하고 세상의 저항을 피하며 폭발적으로 가속했다. 대기가 찢겨나갔다.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검을 들려 하니 그보다 먼저 옆에 있던 기사가 움직였다. 검날이 번뜩이고 총탄과 부딪혔다. 불꽃이 튀며 총알이 튕겨 나갔다.

         

       후아.

         

       파스텔은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다가 연기를 마저 했다.

         

       총을 쏜 트마우트를 흘겨봤다.

         

       분홍 입술이 달싹였다.

         

       “바보 같아.”

         

       시선이 쏠리고 정적이 흘렀다.

         

       “크래프트! 크래프트……!

         

       트마우트가 격분하며 외침을 쏟았다. 그리곤 지면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우와악!

         

       이제 연기 안 해!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파스텔은 양팔을 허둥대며 도망쳤다.

         

       “기사단! 기사다안!”

         

       저 나쁜 사람 잡아주세요!

         

       저 완전 괴롭혔어요!

         

       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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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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