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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완벽한 각도로 들어가던 청년의 칼날은 그가 소리를 낸 순간 움찔 떨리더니 착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어긋나버렸다.

       덕분에 칼날은 속살 안쪽의 근관(根管)을 건드려버렸다.

       뿌연 액체가 찍 하고 쏘아져 나왔다.

         

       “이, 이런.”

         

       저러면 껍질 다듬기는 망한 것이다. 저 부분의 속살을 통째로 잘라내지 않는 이상 저 종류의 나무는 절대 예쁜 모양으로 자라지 못했다.

       

       청년이 휘두른 칼은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별생각 없이 내지른 것에 불과해 보이겠지만, 가스통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자신의 손끝 하나까지 통제에 두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정교한 기술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옆에 슬그머니 다가와 집중을 방해한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나 짜증이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표정으로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예절이란 주변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완벽한 몰아(沒我)의 경지에 들어선 사람에게 주변은 없었다.

       오직 안으로 파고 들어갈 뿐이었다.

         

       이는 마법사들이 말하는 명상 공간과도 비슷한 현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감정이 드러났다.

       숨기기란 쉽지 않았다.

         

       왜 그런 일화도 있지 않은가.

       살아 있는 성자로 추앙받던 수도사가 오랜 단식기도 끝에 죽을 들게 되었는데, 장난기 많은 동자승 하나가 죽을 뺏어 먹자, 수도사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욕을 내뱉었고, 자신의 수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기도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고된 수행을 쌓은 수도사도 그렇게 숨기기 힘든 게 몰아 상태의 감정이었다.

         

       짜증. 분노. 혐오. 경멸.

         

       가스통은 정신 집중을 깨버린 자신을 향해 청년이 감정을 드러낼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뜻밖의 광경에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누구시죠?”

         

       정원사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단 한 점의 어두운 감정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순수한 호기심.

       그는 마치 천진한 어린아이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미, 미안하네. 작업을 방해해서.”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제자들이 봤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저 능구렁이 심술 늙은이가 새파란 애송이에게 사과하다니.

         

       가스통은 자신이 왜 이러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저 청년이 화를 내거나 욕을 내뱉었다면 뻔뻔하게 받아쳤을 텐데…….

         

       “아닙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휘둘렀을 뿐인데요, 하하.”

         

       청년은 너털웃음을 터뜨려 보였다.

         

       가스통은 그의 웃음소리를 듣자 무언가 가슴을 막고 있던 것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휘둘렀다고?

         

       가스통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몰아의 경지에 들어서는 장인은 많았다.

       아무리 재능 없는 자라도 한 분야에 인생을 갈아 넣다 보면 작품 한두 개는 몰아의 바다에서 건져내기 마련이었다.

       장인 중에는 자신이 파는 분야 외에는 미련이 없는 외골수들이 득실거렸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삶에 초탈한 장인이라도 몰아의 경지 그 자체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이 거기서 인생에 내놓을 만한 명작을 탄생시키기를 바랐다.

         

       그런데 여기 그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종류의 인간이 있었다.

       나이는 30살을 절대 넘지 않아 보이는데, 몸에 익힌 기술은 수십 년을 익힌 베테랑보다 뛰어났고, 그 경험 역시 그들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아 보였다.

       그런 실력을 지닌 주제에 그에게서는 단 한 올의 오만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이런 녀석이 튀어나온 것일까?

         

       “자네 정원 일을 배운 적이 있나?”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어깨너머로 조금 익혔을 뿐입니다.”

         

       정원 보조로 일하면서 기술을 훔치는 건 가스통도 10대 때 했던 일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보니 조금이지만……재능이 있어 보이긴 하더군.”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 감히 이 비싼 정원에 손을 대겠다니.”

         

       가스통은 짐짓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욕심이 없는 젊은이라도 이렇게 속을 긁어대는 소리를 하면 자극받기 마련이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정원을 다 망치겠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나마 망치는 일은 피하겠지. 어떤가? 내 지시를 쫓아올 수 있겠나?”

         

       가스통은 상대의 호승심을 끌어내려 했다.

       이 허허로워 보이는 젊은이가 이글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건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저는 정원사 일을 할 생각이 없는데요.”

       “뭐, 뭐라고……?”

         

       가스통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왜 애송이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화가 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이 정원에 왜 손을 댄 건가!”

         

       그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청년이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기술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시험? 기술을 시험하겠다고? 하하! 이거 웃기는 녀석이군. 네 알량한 실력 따위로 무슨 기술을 시험해!”

         

       가스통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그 정도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 전력투구해도 모자랄 망정에…….

         

       ‘역시 그랬군. 집착이 없었던 건 당연한 거였어. 이따위 썩어빠진 오만한 정신머리를 가진 녀석이라면.’

         

       가진 손재주가 좀 뛰어나다고 이 일을 우습게 보는 녀석임이 분명했다.

       아까 절단면을 찾아낸 건 분명 어쩌다 터진 우연이었을 것이다.

         

       “어서 칼과 가위를 들어라! 토마토 온실의 관리자인 내가 너에게 진짜 정원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보여주지!”

         

       그의 고집스러운 말투에 청년은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가스통의 지시에 따라서 청년은 가지를 치고, 꽃잎을 닦고, 돌을 세우고, 줄기를 정리했다.

         

       청년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스통의 분노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는 단순히 손재주가 좀 뛰어나다는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정원의 마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는 그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원 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그의 말은 겸허함이나 기만이 아니었다.

       원예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상식’으로 알아야 할 부분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시하거나 뛰어넘곤 했기 때문이다.

         

       ‘놀랍군, 놀라워. 정말 놀라운 재능이야.’

         

       그러나 가스통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운명에 달관한듯한 태도였다.

         

       그는 자신이 받는 연봉이나 대우를 은근슬쩍 내비쳐도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허탈한 웃음을 내보이기만 했다.

         

       늙은 정원사는 궁금했다.

       무엇이 고작 20대에 불과한 그를 이렇게 인생 다 산 노인처럼 만들게 한 것일까.

         

       청년이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가스통은 호텔의 지배인을 불러 그의 정체를 물었다.

       그는 노인의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원더스타인 단장님이십니다.”

       “그게 누구지?”

       “그저께 서커스 그랑프리 개막식 뉴스 못 들으셨습니까?”

       “난 그때 비행선을 타고 있었네.”

         

       지배인은 루즈의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벌어진 음모와 재판 사건을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원더스타인이 들었다면 그의 설명에 다소 과장이 있다고 지적했을 것이다.

       그는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지도 않았고, 성난 귀족들에게 개처럼 무대 위로 끌려 나오지도 않았으며, 얼굴에 가래침을 맞지도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가스통은 불편한 신음을 흘렸다.

       그는 영락없이 원더스타인의 생김새와 행동거지를 보고 몰락 귀족 출신 혹은 귀족의 시종 출신 정도로 생각했었다.

         

       자고로 정원사란 귀족이나 대부호를 대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일정 이상의 신분과 격식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상 준 귀족에 해당하는 직업이었다.

       당연히 집시나 떠돌이 정원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제가 정원사요?

         

       그의 미소와 함께 드러난 처연한 눈빛.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늙은 정원사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런 재능이 신분 때문에 좌절되다니.

       얼마 전에 그런 일까지 당했다면, 자신의 제안에 환멸을 느낄 만했다.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심장이 쿵쾅거리는 와중에 늙은 정원사는 깨닫게 되었다.

         

       왜 해가 갈수록 자신이 점점 냉소적이고 비겁해지고, 젊은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모든 게 불만스러워졌는지.

         

       재능이 없어서였다.

       무려 30대에 토마토 온실의 관리자가 된 가스통이었다.

       그러나 이후로 30년 동안 그를 대신할 재능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게 허무해진 것이다.

       자신이 평생을 투자해온 정원이 자신이 죽는다면 스러질 게 자꾸 느껴져서 모든 것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난 것이었다.

         

       그리고 원더스타인이라는 청년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이유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그제야 그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두고 떠나면서 스승이 다행이라고 말한 그 진짜 심정을.

         

       갑자기 스승이 부러워졌다.

       그도 그렇게 떠나고 싶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던 그의 가슴에 불이 지펴졌다.

         

       “내 연장을 챙겨오지.”

         

       정치, 처세, 권력.

       그런 것이 갑자기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오랜만에 그는 순수한 장인이었던 자신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그날 오후, 섭정이 이번 루즈에서 번진 귀족 간의 분쟁에 있어서 베르그송 자작을 지원한다는 소문이 샤를로티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원래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모호한 입장만 취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섭정이 그렇지 뭐 하겠지만, 국제적인 행사의 자리에 터진 사건에 국가의 위신이 걸린 마당에도 그렇게 행동하는 섭정에 대해 실망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그런 태도는 모두 속임수였던 것일까?

       그는 남몰래 베르그송 자작이 머무르고 있는 호텔에 토마토 온실의 정원사 가스통 할리우덴을 파견했다. 정원사를 보낸다는 것은 그 조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였다.

         

       보통 귀족들 간의 분쟁에 있어서 섭정이 개입할 때는 은근한 메시지를 넣는 게 보통이었다.

       섭정의 평소 성격대로라면 정원을 원상 복구하는 정도로 그치겠거니 싶었다.

       이제 적당히들 하고 제자리를 찾아가자고.

         

       그러나 파격은 계속되었다.

       복구된 호텔의 후원에 이전에 없었던 조형물이 세워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번 사건을 겉핥기로만 접한 사람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장미 넝쿨을 풍차의 형태로 둘러두었다. 심지어 결백과 무죄를 뜻하는 하얀 장미를 꽂아둔 것은 아주 노골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었다.

         

       섭정 가문은 대대로 철저한 중립 지향적이고 보신적인 태도로 유명했다.

       샤를로티아의 섭정이 가진 힘을 가장 과소평가하는 건 섭정 그 자신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섭정이 꿈틀했다.

       새 섭정은 아버지보다 더 소심하고 멍청한 인물이라는 소문은 왜곡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섭정 본인의 위장이었을까.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가 고개를 쳐들었다.

         

       루즈의 귀족들은 정원사를 초대해 섭정의 진의에 대해 은근히 실마리를 캐내고 싶어 했지만, 그는 섭정 관저의 호출을 받고 급하게 비행선을 타고 돌아갔기에 물어볼 수 없었다.

         

       일단 루즈 일대에서 벌어진 귀족끼리의 파벌전은 무스탕 후작과 베르그송 자작 진영의 승리로 끝났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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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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