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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고?”

       

       “그렇다니까!”

       

       

       아멜리아에게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니, 내가 뭘 했으면 원인을 알 수 있기라도 하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몇 시간 동안 나를 지켜보고.

       

       매일같이 찾아오고.

       

       ···어? 생각해보니 평소랑 다를 게 없네?

       

       

       “뭐야, 변한 거 없잖아.”

       

       “뭐?”

       

       “아니, 깜짝 놀라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평소랑 똑같아서. 매일 쳐다보는 거면 딱히 다를 것도 없잖아? 병문안은 조금 고맙네. 감동했어.”

       

       

       괜히 놀랐네.

       

       아무래도 눈을 뜨자마자 보였던 아르테의 얼굴에 조금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너, 너. 그걸로 괜찮은 거야?”

       

       “응? 뭐가?”

       

       “아니야, 아무것도···. 그래, 네가 상관없으면 됐지···.”

       

       “?”

       

       

       아멜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도대체 왜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야, 나를 매일 지켜보고 있었던 건 똑같잖아.

       

       매일 밤 우리 집 주변을 맴돌고 있는 아르테를 자기 전에 바라보는 게 일과처럼 느껴질 정도로 익숙해졌다.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잠깐 소름이 끼치기는 했지만, 거리를 제외하고는 딱히 변한 것도 없었다.

       

       내가 무서워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이거지.

       

       새로운 사태에 잠깐 당황했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별로 무서울 건 없었다!

       

       

       “할 말은 그게 다야?”

       

       “어, 그게. 원래는 바닷가에 놀러 갈 예정이었는데···.”

       

       “바다?”

       

       “응. 기억 안 나? 방학식 때 말했잖아. 같이 놀러 가자고.”

       

       “···아, 그랬지.”

       

       

       방학식이 시작하자마자 사건이 터져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가.

       

       방학식 끝나고 놀러 가자는 이야기는 사라지고, 그냥 바닷가로 놀러 가자는 이야기만 남아버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너 다리가···.”

       

       “아, 이건 괜찮아. 일주일이면 나을 테니까. ···그래서, 너는?”

       

       “응?”

       

       “네가 나아야 갈 거 아니야, 바다.”

       

       

       아.

       

       아멜리아가 왜 말을 흐렸는지 깨달았다.

       

       내가 갈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녀가 바닷가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아르테 때문일 테니까.

       

       아르테와 나를 어떻게든 이어주고자 하는 게 그녀의 목표인 이상, 내가 나아야 하는 거겠지.

       

       

       “글쎄, 굳이 이번···.”

       

       

       이번에는 다들 충격이 클 텐데 다음번에 가는 게 어떻겠냐.

       

       그리 말하려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말을 하다가 멈춘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멜리아에게, 방금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꺼냈다.

       

       

       “몸 상태가 좋지 않기는 한데, 일주일이면 나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아. 아마 그때쯤에는 퇴원하겠지.”

       

       “그래? 그럼 아르테한테도 물어봐야지. 바다에 가도···.”

       

       “저도 괜찮아요.”

       

       “?!”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르테를 보고 화들짝 놀란 아멜리아를 향해 웃어 보인 그녀가 말했다.

       

       

       “바다, 좋지 않나요. 저 몰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니.”

       

       “아르테. 언제 왔어···?”

       

       “방금이요. 조금 오래 걸리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잠깐. 이런 이야기였으면 그냥 같이 들어도 괜찮았을 텐데.”

       

       “아, 아하하···. 그, 그런가···?”

       

       

       도대체 왜 말 안 했냐는 듯 아멜리아가 눈을 부라렸다.

       

       내가 말을 얼버무렸다는 점에서 아르테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겠지. 머리는 참 잘 돌아간다.

       

       그런데 뭐 어떡하라고?

       

       눈치채자마자 이미 지척에 있었는걸.

       

       

       “도로시 양도 불러서 다 함께 가도록 해요.”

       

       “···어, 도로시도?”

       

       “네. 좋지 않나요, 친구끼리. 왕따는 나빠요?”

       

       “으음. 알았어.”

       

       

       아멜리아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아르테는 나에게 푹 빠졌으니 여자를 데려오는 걸 싫어할 거야, 뭐 그런 거.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르테가 먼저 도로시를 데려오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꺼내니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아멜리아에게 너무 물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도 아르테가 도로시도 데려가자고 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무심코 당황해버렸어.

       

       아르테가 우리를 이상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황급히 주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런데, 아쉽네. 벌써 일주일이 지났어?”

       

       “응? 아, 너 자고 있었지. 그게 왜?”

       

       “소중한 방학을 일주일이나 날려 먹었어···. 하아···.”

       

       

       대충 주제를 돌리고 싶어 꺼낸 이야기였지만 말하고 보니 한숨을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학이다, 방학.

       

       아무리 수련이 재밌고 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있어도 매일같이 대련과 수업, 단련을 반복하면 지치기 마련.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일지라도 푹 쉴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는데.

       

       그런데 그 피 같은 시간이 일주일이나 사라져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지금 당장은 자유롭게 움직이더라도 만일을 위해 정밀검사 같은 걸 하겠지.

       

       그렇다면 넉넉히 잡아 일주일 정도는 붙들려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 주.

       

       한 달의 절반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사라져버린다.

       

       

       “안 그래도 짧은 방학이···.”

       

       “아, 이번 방학은 조금 길대요.”

       

       “뭐?”

       

       “아, 너는 모르는구나.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 것 같았다.

       

       우중충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아카데미 건물들, 이대로면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어.”

       

       “위험해?”

       

       “이번 사건으로 상당히 타격을 많이 받았으니까요.”

       

       “···아.”

       

       

       문득 기절하기 전의 그 장면이 떠올랐다.

       

       이상한 뿔을 달고 있던 빌런이 능력을 사용해서 아카데미 본관이 난장판이 되어있었지.

       

       

       “조사해보니 도무지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방이 하나 생겨나 있었다더라고요.”

       

       “···방?”

       

       “네. 예전에 누군가 만들어놓았는데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

       

       

       그거, 비밀의 방이잖아.

       

       아르테는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해 준 모양이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비밀의 방이 있었다는 것을.

       

       ···비밀의 방, 드러났구나.

       

       

       “그곳의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아카데미를 습격한 걸로 추정되는데, 그래서 아카데미가 큰 결심을 했대.”

       

       “···그게 방학이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지. 건물을 뜯어고치는데.”

       

       “뭐?”

       

       “대대적으로 뜯어고칠 거래. 이참에 다 무너트린다던데?”

       

       

       아멜리아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건물을 뜯어고친다니, 진짜로?

       

       

       “수 백 년 동안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유지보수만 해왔는데, 문제점이 드러난 거야.”

       

       “튼튼하지만 낡기도 했고, 자신들도 모르는 게 있다는 점이 위협이었겠죠.”

       

       “응. 지금이야 비밀의 방을 찾기 위해 대놓고 들어왔는데, 만약 비밀 통로가 있었다면?”

       

       “···끔찍하네.”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침입자가 한꺼번에 들이닥칠지도 몰라. 아카데미는 그런 위협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하긴, 나야 그런 게 있구나 싶었지만 높으신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

       

       자신들의 텃밭에 존재도 모르던 무언가가 숨어있었던 거다.

       

       비밀의 방이 있다면 통로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품는 것도 당연하네.

       

       

       “안 그래도 요즘 아카데미에서 사건·사고가 너무 터지니까, 신축으로 지을 겸 이것저것 개선할 거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방학이 이 주일 정도 늘어날 거란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렇구나.”

       

       

       나로서는 불행 중 다행인 이야기였다.

       

       사건이 터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수업과 단련만 해야 하는 평일과 내가 쉬고 싶은 만큼 쉬고, 단련하고 싶은 만큼 단련하는 휴일은 아주 다르니까.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할까요? ···일주일 뒤, 어떻게 하실 예정이에요?”

       

       “우리 집이 가지고 있는 별장 있는데, 거기 어때?”

       

       “그거 좋네요!”

       

       

       ···역시 익숙해지지 않네. 아멜리아네 집 진짜 부자였지.

       

       그녀는 자기 집이 잘산다고 굳이 떠벌리고 다니는 편이 아니라서, 가끔 그녀가 잘사는 집의 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간혹가다 부잣집 아가씨라는 걸 다시금 깨달으면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잣집 따님이 아니라 어디 동네 활기찬 아가씨 같은 분위기라서 말이지···.

       

       생긴 건 또 묘하게 귀티 나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 얘 부잣집 딸이었지. 하며 진실을 깨닫는다.

       

       평소 행실 탓에 다시 금방 까먹지만.

       

       아멜리아는 도대체 어떻게 자랐길래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된 걸까···.

       

       

       “그러면 수영복을 구해야겠네요.”

       

       “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

       

       “수영복? ···아.”

       

       

       그냥 학교에 있던 걸 가지고 오면 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려다가 깨달아버렸다.

       

       학교, 다시 짓는다고 했지.

       

       지금쯤 철거작업이 한창일 텐데.

       

       만약 그 빌런의 바람 공격에 수영복들이 멀쩡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못쓰게 될 정도로 부서졌을 게 뻔하다.

       

       

       “좋아요. 그럼 날짜를 조금 미루고, 다들 몸이 괜찮아지면 한번 만나도록 할까요!”

       

       “···응? 자, 잠깐.”

       

       “다 같이 쇼핑해도 즐거울 테니까요. 어떤가요?”

       

       “어, 뭐. 나야 상관없지.”

       

       

       아르테와 아멜리아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뭔가 불안해졌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생각해보니 이 조합은 문제점이 상당하다.

       

       ···남자가, 나밖에 없어!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어도 부담스러운데, 도로시까지 합류하면 셋이다.

       

       평소에야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바다는 조금 위험한 게 아닐까.

       

       아니, 바다까지도 어떻게든 가능하다고 쳐도 여자 셋이 수영복을 사러 가는데 내가 따라가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

       

       좋아, 어쩔 수 없다.

       

       여기서는 남자답게 도망치는 거야.

       

       아멜리아도 이해해주겠지.

       

       

       “나, 나는···.”

       

       “괜찮죠?”

       

       

       미안하지만, 쇼핑은 빠질게.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슬쩍 다가온 아르테가 내게 속삭였다.

       

       

       “예쁜 수영복, 보고 싶지 않나요?”

       

       “···어?”

       

       “우후후, 기대해도 좋답니다.”

       

       “···응? 어?”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아멜리아와 아르테가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에 보자며 병실을 빠져나갈 때까지 한참을 고민했다.

       

       ···예쁜 수영복 보고 싶지 않냐고?

       

       그걸 왜 나한테? 무슨 의도로?

       

       어? 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니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데 시간이 한 달밖에 안걸림??? 심지어 묘사를 보면 아카데미 엄청 큰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욧!

    -> 초능력의 힘으로 해결해드렸습니다.

    ***

    미니서니 님, 1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순애코인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천장을 뚫는 중!

    AABABBA 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아르테가 실실 열매라···.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네요. 새장이나 누군가를 조종하는 능력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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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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