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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그동안 잘 지냈나, 디안?”

       

       달리는 마차의 창밖을 보고 있으려니 라이너스가 물었다.

       

       “얼굴을 보니 잘 지낸 것 같은데.”

       

       “아주 잘 있었지. 못 지낼 일이 없잖아.”

       

       창밖에서 시선을 돌리며 웃었다.

       

       “요즘 교장은 일 열심히 하고 있고 누가 나 간섭 안 하고 아카데미에 있을 거 다 있고. 다 최고야. 네가 오늘 행사에 초대한 것만 빼면.”

       

       “하하.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라이너스가 양손을 들어 보였다.

       

       “타타노크 마을 사람들이 지난 10년간 너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른다. 비록 네가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다수의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하지만 아마 너도 가면 생각이 바뀔 거야.”

       

       “글쎄다. 아직은 잘 모르겠네.”

       

       “그런데, 혹시 환자일지는 확인을 해봤나?”

       

       “아직 못했어. 계속 시간이 안 맞아서.”

       

       “그렇군. 너도 알다시피 로르마네는….”

       

       “그만. 오늘 같은 날 로르마네 이야기 꺼내서 뭐하게.”

       

       라이너스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얼마 전에 이브로니크 성으로 전적지 답사를 다녀왔어.”

       

       로르마네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리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엄청 변해 있더라. 관광지 다 되어 있던데?”

       

       “황성에서 내 업적을 과장해서 민심을 얻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다.”

       

       “그런 것 같더라. 네 벽화도 있고 절벽에 표시도 되어 있고.”

       

       “하, 그래….”

       

       라이너스는 민망한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처음에 그쪽 개발계획을 전해 듣고는 반대를 했었다. 너도 알다시피 이브로니크 성을 탈환한 건 우리 둘만의 업적이 아니지 않나. 죽어간 이들의 시체를 딛고 올라가 마지막 한 방울을 넘치게 한 거지.”

       

       “그렇지. 우리가 가기 전에 이미 엄청나게 죽었잖아.”

       

       “그런 것은 모두 무시하고 오직 내 이름만을 간판으로 내거는 건 거기서 죽은 자들에 대한 모욕이야. 심지어 나 혼자 절벽을 오른 것도 아니었지.”

       

       “사실 좀 웃기긴 해.”

       

       “나는 이브로니크 성의 원형을 보존하고 절벽에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기자고 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네가 거기서 본 대로야. 가이드에 카페에 기념품점에 벽화에. 웃기지도 않을 노릇이다.”

       

       라이너스는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제 네가 다시 제국으로 왔으니 아마 비슷한 것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거다. 여기 제국에는 이브로니크 성과 유사한 곳들이 널리고 널렸어.”

       

       라이너스의 입에서 익숙한 지명들이 줄줄이 흘러 나왔다.

       

       낙타령, 데르비온, 칼리아스, 라조람, 검은늪지대, 오랑디르, 핀룩, 펜시미안, 티라엘렌 그외 다수.

       

       “너와 내가 잠깐 들르기라도 한 곳에는 예외없이 작은 기념비든 동상이든 설치가 되어 있어. 이게 모두 황제가 자신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발악을 한 결과물들이다.”

       

       종전 후 제국의 권력구도는 완벽하게 역전되었다.

       

       그 동안 제국을 장악하고 있던 귀족원과 황제를 비롯한 구시대 유력자들은 전쟁 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꽉 막힌 사고방식과 보신주의, 그리고 그 동안 권세로 가리던 전략적 무능함 때문.

       

       반명 첩의 자식인 2황녀와 일반평민 출신 장교들은 특유의 영민함과 유연함으로 마왕군을 상대로 엄청난 전적을 일궈냈다.

       

       이에 황제는 약해진 자신의 기반을 바로세우기 위해 마왕사살특임대, 거기서도 라이너스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라이너스를 비롯한 다섯 명의 마왕사살특임대의 창설을 승인한 게 황제 자신이었고 전쟁 기간 동안 그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업적이었기 때문.

       

       ‘황제가 친히 창설한 특임대가 이러이러한 위대한 원정 끝에 마왕을 죽이고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거기에 내 이름은 없다.

       

       황성의 제안을 모조리 거부하고 잠적해서 황제가 개빡쳤거든.

       

       정확히는 감히 황제의 제안을 거부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 자신의 유일한 업적에 오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행여나 다른 마음을 품을까 하는 걱정이 뒤섞인 것.

       

       “2황녀께서는 너를 아카데미 교수로 넣으면서도 네 존재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기를 바라신다.”

       

       “그건 나도 바라는 바야.”

       

       “하지만 2황녀님의 그런 조치가 비단 너를 배려하는 마음 때문은 아니야.”

       

       “뭐, 대충은 짐작하고 있어. 아마 나를 자기 혼자 독점하려는 생각이겠지. 이미 너는 자기 통제하에 있으니까.”

       

       라이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공공연하게 대륙의 영웅이라 불리고 있고 셀린느는 이제 무언가를 하기에는 벅찬 몸이다. 로르마네는 교단의 총사무장으로 속세에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 카이든은 외부와 단절된 마탑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라졌던 특임대원 하나는 지금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교수 나부랭이. 혹시나 반대세력이 나를 회유하고 포섭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거지. 그렇지만 강제로 나를 구속할 수는 없으니 내 존재를 비밀로 부치며 자신이 통제하는 특수임무 아카데미에 숨겨두는 것이고?”

       

       “역시 대단하군. 벌써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나.”

       

       “바보가 아니면 알 수 있는 사실. 그런데 내가 아직 모르는 게 하나 있어.”

       

       “뭐지?”

       

       “그건 바로 네 행동이야.”

       

       라이너스를 가리켰다.

       

       “나는 영웅대접에 관심 없고 2황녀도 내가 조용히 있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며? 그런데 너는 왜 나를 행사에 데려가려는 거냐?”

       

       “너와 내가 한 일이기 때문이다.”

       

       라이너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한 게 아니야. 너와 내가 한 거다. 그런데 나만 대우를 받고 너는 잊혀지는 건 부당해.”

       

       “하지만 이런 식이면 황성의 의도랑 어긋나게 되는 거 아니냐? 결국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게 될 텐데.”

       

       “그것 역시 부당한 일이야.”

       

       라이너스가 다소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디안 네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에 합당한 위치에 서기를 원한다. 복잡한 정치적 목적으로 네 의지와 관계없이 숨겨지거나 드러나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아. 디안 너는 그런 취급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영웅이 될지 흔적이 될지를 정하는 건 내 의지라는 거 아니냐. 하지만 나는 조용히 살고 싶어.”

       

       “10년 전에 너는 바로 황성을 떠나 머나먼 항구도시로 떠났고 그 사이에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알지 못해. 네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너를 얼마나 기다리고 기리고 있는지조차. 나는 네가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경험한 뒤에 스스로 결정하기를 바라는 거다.”

       

       “흐음….”

       

       “만약 오늘 타타노크 마을 사람들을 만난 후에도 여전히 네가 모든 것과 단절되어 조용히 살고자 한다면 존중하겠어. 네 자유의지와 선택을 나는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황성의 의도는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는 거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라이너스가 물었다.

       

       “이브로니크 성에 갔다고 하니 거기서 일하는 참전용사들을 만났겠지. 너를 알아보지 않던가?”

       

       “알아 보더라. 거기 가이드는 이미 그 사람들한테 내 이야기를 다 들은 것 같더라고.”

       

       “대륙에는 그렇게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그리고 저기에도.”

       

       라이너스가 창밖을 가리켰다.

       

       산과 산 사이에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저기가 타타노크 마을이라고? 그때보다 훨씬 커졌잖아?

       

       분명 다 무너져 가는 폐허가 되어버렸던 마을이 온전하게 서있는 모습을 본 나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종전 후 내가 나와 네 이름으로 마을에 계속 후원을 했거든.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해 미안하다. 하지만 따로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뭐, 괜찮아. 그리고… 나쁘지 않네. 좋아 보여.”

       

       “그리고 저쪽이 우리가 잠깐 휴식했던 계곡.”

       

       라이너스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마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움푹 패인 계곡이 보인다.

       

       새삼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저기서 단번에 마을까지 달려온 라이너스와 나는 곧바로 마왕군의 후미를 때렸다.

       

       그때 마왕군은 한 개 소대 규모 약 서른 명.

       

       당시에 야간인 데다 일방적으로 민가를 공격중이라 뿔뿔이 흩어진 상황.

       

       덕분에 나와 라이너스는 놈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사냥하듯 모조리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집들은 모두 불타 무너지고 마을 사람들은 당장 마왕군 본대의 진로 앞에 내던져진 극한의 상황.

       

       그래서 다시는 이 마을이 되살아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온다! 라이너스 경의 마차다!”

       

       마차가 마을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몰려 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라이너스 경! 그분께서도 오신 겁니까?!”

       

       “분명 올해에는 꼭 그분을 모셔 오시기로 약속하셨잖습니까!”

       

       라이너스가 먼저 마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라이너스를 붙잡고 질문을 쏟아냈다.

       

       “같이 왔습니다. 디안, 어서.”

       

       라이너스가 웃으며 옆으로 비켜서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내가 완전히 내려서자 일순간 사람들 사이에 차가운 침묵이 내려 앉았다.

       

       “디, 디안 님이시다….”

       

       “진짜로 디안 님이 오셨다!”

       

       “와아아아아아!”

       

       누군가의 외침을 신호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내게 달려 들었다.

       

       그리고는 대뜸 나를 붙잡아 하늘 높이 던지며 헹가래를 치기 시작했다.

       

       

       # # # # #

       

       

       “왜 저러는 거지…?”

       

       그 사이, 인근 산속에 몸을 숨긴 리나는 마을 입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내려다 보고 있었다.

       

       분명 마차에서 내린 것은 라이너스 경과 디안 교수. 나이틀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디안 교수를 엄청나게 반기더니 헹가래까지 치는 게 아닌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리나는 마을에 침투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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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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