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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갠차는 거 마자? 레온, 걱정해써….”

       

       아르는 꽤나 놀랐는지, 내가 괜찮은 걸 확인하고 나서도 불안한 눈빛으로 훌쩍이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럼. 진짜로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아르의 빵실한 뺨을 손으로 감싸며 엄지로 아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야식 봉투 한구석에 내가 먹으려고 아껴 두었던 푸딩을 꺼내서 작은 스푼으로 떠 아르에게 먹여 주었다. 

       

       “징짜루?”

       

       아르는 얌전히 푸딩을 받아 먹으면서도 재차 물었다. 

       

       “그럼. 진짜로.”

       “레온 아푸면 안 대.”

       “안 아플게. 우리 아르 봐서라도 안 아파야지, 암 그렇고말고.”

       

       푸딩을 다 먹은 아르는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내 다리 위로 뽀짝뽀짝 올라와서 똬리를 틀듯 웅크린 채 허벅지에 머리를 기댔다. 

       

       그런 아르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자, 아르는 어느새 풀어진 표정으로 뀨우 소리를 내며 내 손길을 즐겼다. 

       

       ‘후우….’

       

       사실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기억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동안 나는 엄청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완화된 게 이 정도라니.’

       

       내 예상이지만, 아무래도 난 빙의 전에「레키온 사가」를 했던 기억 덕분에 꿈 속에서 카르사유를 만났던 기억을 전부 불러올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카르사유는 내가 이 꿈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을 잃고 때가 되면 이 기억들이 알아서 깨어날 거라고 했지만….’

       

       ‘딸’이라는 트리거로 우연찮게 기억의 일부가 돌아오기 시작했고, 시스템은 내 「레키온 사가」에 대한 지식에다 그 기억을 얹어 융합시킴으로써 내게 가해질 충격을 완화시킨 모양이었다. 

       

       ‘카르사유조차도 내가 「레키온 사가」를 했었던 다른 세계 사람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던 거겠지.’

       

       그래도 운명의 힘이 어쩌고 하는 걸 보면 내가 가진, 정확히는 ‘레온’이 가진 ‘신뢰의 계약’ 특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하무트교 놈들도 내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게 더 소름 돋는 일이지만.’

       

       카르사유가 해 준 이야기 덕분에 나는 레키온 사가의 스토리 초반, 하무트교가 벌인 ‘바냐스 마을 습격 사건’이 절대 우연에 의해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인공 시점에서 게임을 진행할 때에는 그저 하무트교라는 사이비 집단의 만행을 보여줘서 주인공이 분노하고, 추후 강해진 다음 놈들을 토벌하게 만드는 흔한 서브 퀘스트용 사건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직 ‘운명의 힘’을 각성하지 못한, 즉 ‘신뢰의 계약’ 특성을 해금하지 못한 레온을 죽이기 위해 마왕인 하무트가 부하들을 시켜 벌인 일이었다니. 

       

       ‘그럼 내가 진행했던 스토리 상에서는 바냐스 마을이 항상 놈들에게 습격을 당한 뒤였으니, 레온은 ‘신뢰의 계약’ 특성을 발현해 보지도 못하고 죽었겠네.’

       

       -드디어 찾았군.

       -크크큭! 오늘은 하무트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겠군.

       -잘 가라. 용을 깨울 자여!

       

       ‘용을 깨울 자라.’

       

       꿈에서 하무트 교단원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 바냐스 마을 습격 사건의 결말을 알고 있던 내가 아니라 레온 본인이었으면, 교단원에게 잡혀서 저 말을 들으며 목이 베어졌겠지. 

       

       다르게 말하면 스토리 상 레온이 겪었을 일을 내가 꿈에서 체험했다고도 할 수 있겠고. 

       

       ‘그럼 레온이 특성 발현도 못 해 보고 죽었으니 게임 스토리에서는 아르를 깨울 사람이 없어진 거고, 그래서 「레키온 사가」를 내가 십 년을 했어도 은색 비늘을 가진 드래곤을 못 본 거였구나.’

       

       카르사유의 말을 들어 보면, 천 년 전에 마신 라데스와 싸워 봉인한 건 바로 카르사유 본인.

       

       그리고 카르사유가 아르를 가리켜 ‘은룡의 유지를 이을 아이’라고 한 걸 보면 아마 카르사유가 남긴 유일한 후손이 바로 아르였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즉, 카르사유 본인도 죽고 아르마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면 실버 드래곤의 대가 끊겼을 거라는 소리지.’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마 아르는 암컷일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알을 낳으려면 그래도 암컷이어야 될 거 아니야.’

       

       아르가 몇 대 독녀(?)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대를 이으려면 최소한 알을 낳을 수 있는 암컷이어야 할 테니까.

       

       ‘드래곤의 번식 체계나 과정 같은 건 잘 모르지만…. 만약 드래곤이 혼자서도 대를 이을 수 있는 종족이라고 한다면 계속 암컷을 낳으며 대를 이어 왔겠지.’

       

       여튼.

       

       ‘빙의 후 내가 숲으로 도망치면서 엿들은 이야기로 하무트교 놈들에게도 나름의 목적이 있긴 했다는 건 대충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그게 나를 노린 거였을 줄은 몰랐는데.’

       

       내가 만약에 거기서 놈들에게 붙잡혀 죽었으면, 아르는 지금도 깨어나지 못한 채 내 다리 위가 아닌 알 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거였다는 소리가 아닌가. 

       

       ‘불쌍한 아르. 이미 천 년이나 레어 속에서 혼자 외롭게 잠들어 있었을 텐데.’

       

       만약 그 상태에서 영영 깨워 줄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르는 어떻게 되는 거였을까. 

       

       영원히 잠든 채로 깨어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어느 순간 깨어나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레어에서 자신을 데려가 줄 사람을 애타게 울며 찾게 되었을까. 

       

       어느 쪽이든 가슴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귀여운 녀석을….’

       

       나는 뀨우 소리를 내는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살짝 목을 간지럽힌 뒤 따뜻한 배에 손을 올렸다. 

       

       “뀨우웅.”

       

       아르는 내가 멀쩡해 보여서 마음이 푹 놓였는지, 내 손에 몸을 맡기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다행이야.’

       

       내가 살아남아 아르를 발견하고, 데려와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게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하무트교가 처음부터 날 노렸다는 건, 지금도 날 찾으려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린데.’

       

       게임 스토리 상에서야 놈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 뒤로는 비교적 얌전히 지냈지만, 지금은 바냐스 마을 습격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 

       

       즉, 하무트교는 지금도 ‘용을 깨울 자’를 찾아 다니며 죽이려 하고 있을 거라는 뜻이다. 

       

       ‘소름 돋네.’

       

       한 가지 다행인 건 카르사유의 레어가 우리를 뱉어 낸 곳이 대륙 서부라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레어의 결계가 거기서 나를 받아들여 준 것도, 아르와 함께 대륙 반대편에서 나오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던 거구나.’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나는 머릿속으로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한 대략적인 로드맵을 그렸다.

       

       ‘일단 주인공이 문젠데.’

       

       주인공인 레키온은 기본적으로 착하고 정의롭지만, 솔직히 말하면 조금 멍청한 인물이기도 하다. 

       

       제국을, 나아가 대륙을 지키겠다는 정의감 하나로 기사단에 들어가서 타고난 재능으로 승승장구한 뒤, 제국의 윗대가리가 주입한 지식과 명령을 철썩같이 믿고 따르는 인물이 바로 레키온.

       

       ‘물론 그렇게 해도 게임 스토리 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 아니, 없어 보였지.’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간 마왕을 한 놈밖에 잡지 못하고, 오히려 천 년 전에 마신 및 마왕들과 맞서 싸웠던 종족을 적으로 간주해 잡아 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레키온 사후에는 숨어서 힘을 비축하고 있던 마왕들이 활개를 칠 거고, 마신도 부활하겠지.’

       

       하지만 부활한 마신과 마왕들을 막아 줄 드래곤은 이미 레키온이 잡아 버린 상태일 테고, 그대로 페룬 대륙은 마신의 손에 삼켜져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거다. 

       

       ‘빙의 직후의 나였다면, 아마 이 모든 사실을 알았더라도 어차피 그건 내가 죽은 이후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카르사유는 내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웃으며 운명의 힘이 이미 발현되고 아르와 결속까지 맺은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즉, 나는 이미 이 유일 등급 특성으로 인간의 짧디짧은 수명을 초월했고, 좋든 싫든 아르와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하게 되었다는 뜻.

       

       ‘최소 몇천 년이라. 솔직히 그렇게까지 오래 살길 바란 적은 없는데….’

       

       누군가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라고 말했듯, 꼭 오래 사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하지만.

       

       “뀨우.”

       

       나는 아르의 배를 장난스레 살짝 눌렀다.

       

       ‘이렇게 귀여운 아르랑 함께 오래 산다고 하면 그건 또 이야기가 다르지. 흐흐.’

       

       물론 아르가 점점 크면서 지금처럼 말랑 동글한 해츨링의 모습에서 늠름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해 가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아르는 아르니까.’

       

       그리고 나중에 아르가 만약 알을 낳아서 거기서 조그만 해츨링이 태어난다면, 그 아이도 엄청나게 귀여울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려면 일단 내가 어떻게든 스토리의 흐름을 바꾸긴 해야 돼.’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이 진실을 알게 하고, 엄한 드래곤 대신 마왕들을 찾아 잡을 수 있도록 스토리를 틀어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토리에서 레드 드래곤이 난동을 부렸던 것도 조금 마음에 걸려.’

       

       과거 대륙을 지키기 위해 마왕과 싸웠던 드래곤이 굳이 인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 난동을 부린다라.

       

       ‘아무리 레드 드래곤의 성질이 더럽다고 해도 과연 아무런 이유 없이 그랬을까.’

       

       구린 냄새가 난단 말이지.

       

       ‘여튼, 주인공들을 만나 설득을 하려면 나도 그만 한 위치에 오르긴 해야 되겠지. 레벨업도 해야 되고, 용병 등급도 올려서 명성을 좀 쌓는 게 좋을 거야. 그렇다고 너무 급하게 가선 안 되겠지만.’

       

       나는 카르사유의 조언을 떠올렸다.

       

       -훌륭한 조력자도 만난 모양이니, 지금은 내 아이와 신뢰를 쌓고 좋은 시간을 보내 주려무나. 

       -기억하렴. 신뢰의 힘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는 것을.

       

       결국 중요한 건, 마신과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은룡의 후예를 무사히 잘 키워 내는 것이다.

       

       주인공이 나에게 순순히 설득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결국 마신과 마왕을 막아야 하는 건 나와 아르가 될 테니까.

       

       ‘스토리를 바꾸겠다고 너무 급하게 가려 하거나 아르를 혹사시키는 일은 있어선 안 돼.’

       

       그건 아르에게도, 나에게도 장기적으로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카르사유의 말대로 실비아라는 좋은 인연도 만났으니 지금은 좋은 시간을 보내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수련을 하는 게 좋을 것이다.

       

       혹시 모를 하무트교의 위협만 좀 조심하고.

       

       ‘근데 그러고 보니 카르사유는 어떻게 실비아가 ‘훌륭한 조력자’라는 걸 안 거지?’

       

       기껏해야 만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으로선 사실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인데 말이다. 

       

       ‘카르사유 정도 되는 용이 그냥 그럴 것 같아서 말한 건 아닐 것 같은데….’

       

       지금까지 실비아의 이력을 보면 괜찮은 파티원인 건 확실하지만, 최후의 은룡이 훌륭한 조력자라고 표현을 할 정도까지인지는….

       

       달칵.

       

       “어, 일어나 계셨네요. 제가 너무 늦게 오긴 했죠?”

       

       그때 마침, 실비아가 수련을 마쳤는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실비아는 한손에 무언가 두툼한 봉투를 들고 있었다.

       

       “혹시 아침 다 드셨어요? 어제 못 산 치킨 지금 사 왔는데. 헤헤. 아점으로 치킨 어때요?”

       

       정정한다. 

       

       실비아는 훌륭한 조력자가 확실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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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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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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