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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

       프란체의 섬뜩한 목소리. 이런 모습은 도저히 본 적이 없어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공녀님?”

         

       내 부름에 프란체는 그저 싱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흑마법의 영향인가?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조금. 아니, 많이 두렵다.

         

       “진.”

       “예, 예?”

       “내 말을 꼭 명심하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자리에 앉는다. 대체 뭐지. 아직도 목덜미에 전율이 돋고 있다.

         

       “그래서,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당혹스럽다.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

       “예?”

       “무슨 일을 해야 하냐니까?”

         

       쉽게 입이 열리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프란체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꼈다. 아니, 원래 이랬나? 이전, 시한부라고 밝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랬을지도.

         

       “비서를 구하는 일입니다…….”

       “흐음. 딱히 생각나는 인물이 없구나.”

         

       프란체는 팔짱을 낀 채 톡톡. 자신의 팔뚝을 두드렸다.

         

       “카자르는 어떤데?”

       “걔는 따로 할 일이 있어요.”

       “흐응…….”

         

       사실 헬레나가 제격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간 프란체를 보필해왔고, 배신할 걱정도 없다.

         

       그리고, 말만 비서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일정 정리와 시키는 일만 하는 것뿐.

         

       중요한 일은 나 아니면 셀다스가 처리할 예정이니까.

         

       “그, 헬…….”

       “진.”

       “예.”

       “내 말을 알아들은 거 맞니?”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왜 헬레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거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자라서? 그렇다고 하기엔 카자르도 여자다.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크흠. 그럼 비서는 따로 구하는 게 좋겠군요. 셀다스에게 의뢰를 맡겨두겠습니다.”

         

       마치 이 답변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는 프란체.

         

       “그래, 그게 좋겠다.”

         

       왠지 내가 프란체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이 얘기는 더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

         

       “이제 본격적인 사업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두루뭉술하게 얘기했지만, 이제 때가 됐으니 알려줘야지.

         

       나는 내가 그동안 계획했던 마석 사업의 정수를 얘기했다. 왜 도게자 백작가와 협력을 했는지, 마석과 탑을 세우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까지.

         

       “마도 혁명이라.”

         

       프란체는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시대가 바뀔 거 같은데?”

       “시간은 좀 걸리지만요.”

         

       마석 광산을 우리가 독점한다. 지금은 수요가 별로 없으니 그 땅을 헐값으로 매입할 수 있을 거다.

         

       여기서, 도게자 백작가와 협력해 탑을 건설한다. 그 탑의 이름은 마탑.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를 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탑이다.

         

       마탑을 내세워 전 세계에 퍼진 마법사들을 모으고, 마도구를 개발하고, 양산한다.

         

       귀족을 포함해 평민들까지. 모든 사람들의 삶 자체가 달라질 거다.

         

       그 과정에서 프란체 코퍼레이션은 돈을 쓸어 담을 거고, 압도적인 권력을 얻을 거다.

         

       “지금까지 이걸 위해 움직였구나.”

       “맞습니다. 이것만 하면 사업은 끝이에요.”

         

       사실 할 수 있는 건 더 있다. 다만, 내 사정을 고려해 그만두기로 했다.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서 진에게 먹히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프란체의 곁에 있으면 침식은 가속화되니까.

         

       “그럼 내 힘이 수직으로 상승하겠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의 주인이자, 마도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

         

       황실이라 해도 감히 건들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다.

         

       “그리고 이제 카자르와 공녀님의 충분한 마법 성취가 필요합니다. 마탑의 주인이 된 이상, 출중한 능력이 필요하니까요.”

         

       지금도 프란체는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성취를 이뤘다.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정도면 나중에는 초월 마법사가 될 수 있을지도.

         

       게임에서는 단순한 중간보스 흑마법사였지만, 그건 시간이 부족해서였겠지.

         

       “그러면, 사업은 남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마법에 집중하는 편이 좋겠네.”

       “맞습니다. 이미 의류 사업으로 땅을 다졌으니 건물만 올리면 되죠.”

         

       프란체 가주 만들기 프로젝트는 문제없이 흘러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랬으면 좋겠는데.

         

       ‘문제는 라인이란 말이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이럴 애가 아닌데 말이다.

         

       뭐, 이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자. 얘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되지.

         

       “그럼 얘기는 끝났으니 공작님을 만나러 갑시다. 의류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니 지원을 받아야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프란체. 미소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래야지. 이 가문에서 더이상 나를 건들 수 있는 사람은 없어.”

         

         

       * * *

         

         

       프란체는 공작의 집무실의 앞에 섰다. 눈앞에 있는 이 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자신감이 넘쳤고, 겁먹을 필요도 없었다.

         

       그야, 프란체는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으니까.

         

       똑똑―

         

       가벼운 노크 후에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선다. 공작은 역시나 조용히 영지 업무를 처리 중이었다.

         

       “프란체냐.”

         

       얼굴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누군지 바로 알아차리는 공작.

         

       “맞습니다.”

         

       프란체는 풀썩- 소파에 앉았다.

         

       “어쩐 일로 찾아왔지?”

       “저번에 하신 약조 때문입니다.”

       “사업에 대한 지원 얘기인가?”

       “맞습니다.”

         

       탁. 공작은 만년필을 놓은 채 깍지를 끼고 책상에 팔을 걸었다.

         

       “그래, 지원을 해주기로 했지. 다음으로 할 사업은 무엇이냐?”

         

       공작의 표정에는 드러나 있지 않으나, 목소리에서 기대감이 잔뜩 묻어나왔다. 이번에는 무슨 일을 보여줄까, 하는 눈치였다.

         

       “마석과 관련된 사업입니다.”

         

       일순 미간이 일그러지는 데카르트 공작.

         

       “…마석? 궁정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그 마석을 말하는 것이냐?”

         

       프란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공작은 눈썹을 좁힌 채 얼굴을 갸웃거렸다.

         

       “마석 사업이라니, 예상이 가지 않는구나. 대체 이번엔 뭘 하려고?”

         

       이전과는 달리 의심보다 호기심이 앞선다. 프란체가 결과로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기반이 다져지면 알려드릴게요. 이번에도 기대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궁금증을 유발하는 프란체의 화법에 못마땅한 공작이었지만, 기다리는 것도 묘미.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 생각이 따로 있겠지. 약속대로 자금 지원은 해주마.”

         

       프란체는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다름 아닌 저 공작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해주기 시작했다.

         

       단순히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인정받은 딸의 기쁨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당신이 해왔던 모든 것이 틀렸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생기는 기쁨이었다.

         

       “감사드립니다.”

       “용건은 이게 끝이냐?”

       “그렇습니다.”

       “…그래. 이만 나가보거라.”

         

       어째서일까. 공작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좀 더 자신과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프란체는 의문이 들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넘겼다.

         

       쿵. 집무실의 문이 닫혔다.

         

       “…….”

         

       공작은 미간을 주무르며 차가운 숨을 내쉬었다.

         

       점점 자라나는 프란체를 보며 떠나간 부인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동안은 미쳐서 일만 해왔다. 에덴과 라인에게도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아버지라고 불릴 자격도 없었다.

         

       그러나 프란체가 18살이 되던 해, 부인의 모습을 떠올리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

         

       프란체를 볼 때마다 떠나간 부인이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후우.”

         

       공작은 고개를 휘젓곤 당장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했다. 모두와의 관계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저, 지금은 이 위치를 유지하고 나중에 돌아올 죄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 * *

         

         

       “젠장, 빌어먹을!”

         

       쾅! 라인은 그간 쌓아왔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걷어찼다.

         

       “이게 다 프란체, 그년 때문이야.”

         

       황실 파티가 끝난 이후로, 라인의 귓가에 계속해서 들려오는 한 소문.

         

       【데카르트 공작가에서 가장 무능한 건 라인이다.】

         

       에덴은 바렌베르크 왕국과의 전쟁에서 선봉장에 섰고, 재앙의 파도를 막아낸 전적이 있다. 거기에 소드 마스터라는 드높은 경지까지.

         

       그리고 프란체는 이 거대한 제국에서 의류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프리다를 몰아내기까지 했다. 그간 시도는 많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업적.

         

       반면, 라인에게는 아무런 업적이 없다. 검술도 어중간하고 사무 능력도 어중간하다.

         

       전쟁에서 활약도 없었고, 재앙의 파도에 참전한 적도 없다. 오러를 습득하지도 못했다.

         

       이제 이 데카르트 공작가에서 가장 무능하면서 쓸모없는 존재는 라인 데카르트가 되어버렸다.

         

       “빌어먹을…….”

         

       꾸욱. 주먹을 꽉 쥔 라인. 그의 열등감이 폭발하다 못해 주변으로 흘러나왔다.

         

       현재 이 상황도 그렇고, 흘러간 과거도 그렇고, 앞으로 일어날 미래도 그렇고. 라인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머니가 떠난 이후, 미쳐버린 아버지의 폭력을 받으며 살아왔다. 에덴도 마찬가지였다.

         

       에덴은 그 이후로 감정이 죽어버렸지만, 라인은 반대였다. 분노가 키워지고, 증오가 피어올랐다.

         

       “후우.”

         

       라인은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어쩔 수 없겠군.”

         

       자신의 능력을 쌓아 올라갈 수 없다면, 남들을 자신과 같은 위치로 끌어내려 동등해지는 수밖에. 그렇게 동등해지면 머리를 눌러서 자신이 올라갈 수 있다.

         

       ‘뭔가 없는지 미행을 붙여 봐야겠어.’

         

         

       * * *

         

         

       집무실에 다녀온 프란체는 창밖을 바라보며 싱글벙글 콧노래를 불렀다. 이 공작가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게 즐거운 모양.

         

       마냥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프란체가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바라봤다.

         

       “진, 휴가를 줄게. 이틀 정도.”

       “갑자기 휴가요?”

       “그래. 우리 요즘에 꽤 바빴잖니?”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휴가라, 나쁘진 않다. 프란체 의류점도 매장을 채울 때까지 돌아가지 않고, 운영이 안정될 때까진 시간이 꽤 남았으니까.

         

       마석 사업도 급하게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도게자 백작가와 협력하고 있으니 인력은 충분히 보충될 거고, 땅을 매입하는 것도 셀다스를 통하면 된다.

         

       근데 내가 휴가 가면 너는 뭐 하려고?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공녀님께서는 어찌하시려고요?”

       “나는 카자르 집에서 지낼 거야.”

       “마법 배우시려고요?”

       “그래. 난 마법을 쓸 때가 제일 즐겁더라.”

         

       마법적 성취를 이루는 건 나쁘지 않다만, 쉬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요즘 지친 건 나만이 아닐 텐데.

         

       “체력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내겐 마법이 쉬는 일이야.”

         

       그런가. 그렇다면야 뭐. 말릴 필요는 없지. 딱히 무리하는 것도 아닌 거 같으니까.

         

       “그러고 보니 용돈은 다 썼니? 더 줄까?”

       “아니요, 1할도 못 썼습니다만…….”

       “그래? 그럼 여행이라도 다녀와.”

         

       여행? 나를 멀리 떠나보낸다고?

       

       그간 프란체는 나를 곁에 두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동안 힘냈으니 휴가를 주는 건 알겠다마는, 유배당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공녀님, 혹시 따로 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응? 아니? 딱히 없는데. 그건 왜?”

         

       태연한 얼굴로 갸웃거리는 프란체. 오늘도 그렇고, 저번에도 그렇고, 최근에 그녀가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내가 알던 프란체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친해졌으니 가드가 풀리고, 성격이 유해지는 건 당연하다. 삶이 달라지면 사람도 바뀌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건 좀…….

       

       묘하게 이질감이 든다.

         

       “내가 걱정돼서 그런 거지?”

       “예?”

       “망설이고 있잖아.”

         

       내 심정까지 읽은 건가? 아니지, 행동에서 드러난 걸지도.

         

       “아닙니다. 휴가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푹 쉬고, 이틀 뒤에 보자.”

         

       나는 허리 숙여 인사한 뒤 방문을 나왔다.

         

       ‘뭔가 이상한데.’

         

       요 며칠 사이에 사람의 본질이 달라진 느낌이다.

         

       ‘흑마법의 영향인가?’

         

       게임 설정상 흑마법이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숨겨진 요소들까지 전부 파헤친 내가 모르는 게 이상한 수준.

         

       ‘카자르에게 물어보던지 해야겠군.’

         

       나는 프란체가 가기 전에 먼저 카자르의 집으로 향했다.

         

       뭔가 이상한 프란체를 알아보기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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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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