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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1

   “킁. 훌쩍.”

   

   

   한참이 지나서 간신히 진정한 비시는 피가 오른 얼굴을 감추느라 고개를 푹 숙였다.

   

   

   “괜찮니?”

   

   

   걱정을 잔뜩 담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

   

   

   – 비시.

   

   

   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착 달라붙어서는 놓아 줄 생각이 없는 아드리.

   

   

   “푸흐흫.”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듯 눈가를 좁히는 루시.

   

   

   이 셋에 둘러싸인 비시는 치욕스럽단 생각에 도저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본인조차도 느껴질 정도로 뜨거워진 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방금 전 풍경을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자꾸만 눈물이 치솟았으니까.

   

   

   자신이 흑마법사란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길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선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향해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 말해주던 루시.

   

   

   그리고 최악의 경우 자신이 모든 걸 뒤집어 쓸 생각을 하던 아드리.

   

   

   그 모든 풍경이 따스하고 또 그 가운데에 선 자신이 초라해서 비시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똑똑.

   

   

   그 때였다. 저택 바깥에서 누군가가 방문했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려는 비시의 어머니를 가로막은 루시는 문을 박살 내듯 걷어차서 열었다.

   

   

   “후후. 많이 거치시군요.”

   

   

   교황은 그걸 예상했단 것처럼 한 걸음 뒤에 물러서 있었다.

   

   

   “뒤룩뒤룩 살찐 돼지주제에 부지런하네?”

   “부지런하게 사는 버릇을 오래 들여서요.”

   

   

   루시의 어투에는 적의가 잔뜩 묻어나왔지만 반대편에 선 교황은 루시를 너무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그 표정은 루시의 뒤 편에서 선 이들조차도 섬뜩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래서 뭐하러 왔어? 나한테 얻어맞고 싶은 거라면 잔뜩 때려줄 수 있는데?”

   “실로 매력적인 제안입니다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고갤 끄덕일 수 없겠군요. 부하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아서요.”

   

   

   포박된 기사를 바라보며 웃은 교황은 두 손을 끌어모으고서 말을 이었다.

   

   

   “거래를 제안드립니다.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얌전히 물러날테니 저 아이를 넘겨주시겠습니까? 주신께 내걸고서 여러분의 안전을 약조드리겠습니다.”

   “내가 왜? 어차피 너 나한테 아무것도 못하는 허접새끼잖아.”

   “아아. 물론 전 당신께 아무것도 못하죠. 당신께는요.”

   

   

   교황의 말을 들은 루시는 입술을 곱씹고는 기사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집어 들어선 교황에게로 내던졌다.

   

   

   힘이 잔뜩 담긴 투척을 가뿐히 받아낸 교황은 그를 바닥에 내려 놓고서 정중히 감사인사를 전했다.

   

   

   “물러나기 전에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사도시여. 제가 여기 한 곳에서만 일을 벌였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순간 루시가 움찔하더니 다급히 바깥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그걸 보자마자 아드리가 루시의 어깨를 붙잡았다.

   

   

   – 보내드릴게요! 위치만 말해봐요!

   “너…”

   – 일단 말해보라고요! 당장!

   

   

   즉각적으로 루시를 보내 준 아드리는 이를 악물고서 교황을 바라봤다.

   

   

   음기가 잔뜩 담긴 시선을 받은 교황은 코웃음을 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뭘 할 생각이 없습니다. 방금 전에 사도님과 약속을 나누었으니까요.”

   – 알아. 그러니까 이 꼬맹이가 널 내버려 두고 떠난 거겠지.

   “주신의 사도를 믿는 사령이라. 재밌군요. 이 또한 주신의 은혜일까요.”

   

   

   주신의 품을 거부하고 지상에 남은 사자가 주신의 사도를 신용하고 그녀를 위해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하다니.

   

   

   교황은 울컥하는 마음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감고 짧게 기도를 올렸다.

   

   

   내가 왜 주신께서 위대하심을 믿게 된 건지 새삼 깨닫게 되는구나.

   

   

   저토록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주신이기에 난 저분을 사랑하기로 결정했지.

   

   

   갑작스레 궁금해지는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도에게 불행을 선사한 자라도 주신께서는 포용을 해주실까.

   

   

   “주신께 맹세컨대 다신 이 곳을 위협할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편히 마음 먹으셔도 괜찮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교황이 문을 닫았다.

   

   

   안에 남은 이들은 교황의 발걸음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듣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

   

   

   젠장. 젠장. 젠장.

   

   

   너무 쉽게 생각했어. 여태까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고 안심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이건 게임이 아냐. 변수가 정해져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차라리 친구들을 여기로 보내고.

   

   

   아냐. 그럼 교황이 무언가를 했겠지.

   

   

   그럼 뭐가 최선이었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했지?

   

   

   

   

   그 상황에 내가 뭘 선택했어야.

   

   

   <루시.>

   ‘할아버지. 정말 제 선택이 맞았을까요? 다른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 애초에.’

   <그런 고민은 나중에 해라! 지금은 달리는 것만 생각해!>

   ‘…네!’

   

   

   앞으로 향하는 발에 힘을 더한다. 있는 힘 없는 힘을 모두 다 끌어쓰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벅차오르는 숨을 외면하며, 대지를 부수고, 옆으로 살짝 트는 시간조차 앞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죽어라 앞으로 향했다.

   

   

   “루시다.”

   

   

   내가 도착했을 때 던전은 이미 공략된 상태였다.

   

   

   바깥에서 마물과 싸우던 전사들은 상처를 치료하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 선 내 친구들은 다른 이들의 칭찬에 쑥쓰러워 하는 중이었다.

   

   

   “어라. 영애님. 일찍 오셨네요?”

   “루시. 왜 그렇게 다급해보여요? 저희가 그렇게 걱정이 됐어요?”

   

   

   숨을 헐떡이는 날 발견한 친구들은 우두두 내 쪽으로 와서는 미소와 함께 한 마디씩을 던졌다.

   

   

   “하하. 만날 표독한 채 해도 속은 소녀스럽구나.”

   “루시. 귀여워.”

   “귀엽죠?”

   “살짝 과분한 발언이긴 합니다만 영애님께서 귀여우시긴 하죠.”

   

   

   …누구는 너네들이 걱정돼서 죽어라고 달려왔는데 너네들은 한다는 말이 그런 거냐?

   

   

   진지하게 열이 오른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고서 맨 앞에 선 조이의 어깨를 짓눌러 반 강제로 무릎을 꿇혔다.

   

   

   그리고서 다른 이들에게 눈짓을 하며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자 방금 전까지 히죽거리던 녀석들이 다급히 정좌했다.

   

   

   유일하게 프레이만이 고갤 갸웃거리고 있었지만 내가 화조차 내지 않고 자신을 무시하자 슬그머니 다른 친구들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친구들의 괴롭히며 스트레스를 푼 나는 한숨과 함께 페이비 위에 앉은 다음 던전을 공략한 것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말했다.

   

   

   “일단 전체적인 지휘 방향성은 내가 맡고 조이가 보조적인 걸 잡아줬다.”

   “3왕자님께서 여러모로 고생을 해주셨습니다. 지휘를 어디서 배우신건지 상당히 싱력이 느셨더군요.”

   “위험한 순간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만 그 부분은 우리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짜증난다만 프레이 저 녀석이 괴물이긴 하니까.”

   “딱히? 그냥 왕자님이 너무 허접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지.”

   “…그리고 자잘한 저주나 상처 같은 것도 성녀님이 계시니 바로 해결되고.”

   “별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전에 막지 못해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음. 아무튼 던전 공략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여기에 변수 몇 개가 추가된다 한들 별 다를 것 같진 않군. 차라리 네가 만든 던전이 더 지옥 같았어.”

   

   

   보스전도 던전을 공략하는 과정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미리 보스의 모든 걸 알려준데다가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변수까지 미리 말을 해줬기에 친구들은 손쉽게 보스를 박살내고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너만큼 했다고는 말하지 않으마. 그렇지만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지 않으냐?”

   

   

   아서가 웃음과 함께 한 말에 바로 대답하려다 잠시 생각을 하고서 고갤 끄덕였다.

   

   

   그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희들은 훨씬 더 잘해줬어.

   

   

   부정하진 않을게.

   

   

   그렇지만 다음에 또 너희들만 내버려둘 수 있을까 물어본다면 차마 그렇다고는 못 하겠어.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 너희들을 제외한 이 곳의 사람들을 내버려두는 거라면 기꺼이 그럴 거야.

   

   

   근데 너희는 안 돼. 만약 너희들이 내 실수 때문에 잘못된다면 나도 같이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 같은 걸.

   

   

   교황도 이걸 알고 있겠지.

   

   

   너희 중 하나가 잘못되는 순간 내가 크게 흔들릴 게 분명함을.

   

   

   그러니까 너희를 노릴 거야.

   

   

   그 때 만약 내가 없다면 죄책감 속에서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절 이기는 건 포기하신 거군요? 주제파악을 드디어 하신 게 기쁘네요. 당신에겐 그런 꼴이 어울리거든요.”

   “…이럴 때는 좀 분위기를 맞춰주면 안 되나?”

   “그럼 좀 잘나져 보시던가요. 만날 한심한 꼴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칭찬을 해요?”

   

   

   하고 싶은 말은 차고 넘쳤지만 난 모든 걸 담아둔 채 아서에게 비아냥댔다.

   

   

   친구들은 착하니까. 내가 자신들을 걱정한다는 걸 알면 또 자기들이 짐이 된다 생각해서 어떻게든 증명을 하려 들겠지.

   

   

   너희들의 문제가 아닌데. 그저 내 마음이 불안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것 뿐인데.

   

   

   그 뒤로도 몇 개의 던전을 더 공략한 후 쉬기 위해 성지로 돌아온 밤.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몸을 더 움직여야하나 생각하던 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들었던 교황의 노크 소리가 떠올라 흠칫했던 난 저 너머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신성에 안도를 느꼈다.

   

   

   페이비구나.

   

   

   “영애님.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뭐 때문에 온 거야? 설마 야한 거? 변태성녀가 드디어 본색을…”

   “그런 게…! 크흠. 진지한 이야기입니다.”

   “들어와. 놀아줄게. 허접성녀.”

   

   

   안으로 들어온 페이비는 날 가만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하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가 걱정되시는 거죠?”

   

   

   …어. 그렇게 티가 났나? 아무 말 안 하고 평소처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한 거 아냐? 너네같은 허접들은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은 걸.”

   

   

   들켰다고 해서 달라질 건 크게 없어. 너희들이 강해지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니까.

   

   

   “저랑 똑같으시네요. 저도 언제나 영애님께서 걱정이 되거든요.”

   “너 따위가 날?”

   “당연한 것 아닌가요? 영애님께선 항상 가장 위험한 곳에 맨 먼저 향하시잖아요. 다른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은 채, 자신이 희생하는 게 당연하단 것처럼.”

   

   

   그…렇게 까지 고결한 생각은 없었는데.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했을 뿐인 걸. 누굴 위해 희생한다거나 한 게 아냐.

   

   

   “그래도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그 희생이야말로 영애님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무어라 말을 해봐야 당신께선 또 다시 위험에 뛰어 드실 테니까요.”

   

   

   웃음을 짓던 페이비는 내 옆에 앉아서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저희의 걱정마저도 당신의 짐이 될 테니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곳에 온 것은 당신께 제안드리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뭔데. 쓰잘데기 없는 거기만 해봐.”

    “아예 변수가 일어날 상황을 없애버리죠. 작금 영애님께서 지닌 영향력이 한없이 높으니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거에요. 설령 여러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가 어렵지 않게 만들겠습니다.”

   

   

   달빛 아래에 비친 페이비의 미소는 성녀보다는 악녀에 가까워보였다.

   

   

   “당신을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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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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