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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2

       

        

        

        

        

        

        

        

        

        

       -<당소 발키리 1-3, HQ를 육안으로 식별하였다. 현재 탑승 인원 47명, 제107헌병중대원 46명과 알파급 변이자 민간인이 한 명 탑승 중이다. 브루클린 철수 작전은 성공하였다.>”

        

       -<여기는 임시관제센터TCC, IFF 인식을 확인. 착륙 지점을 HMD에 표시하겠다. 현재 생화학부대 일부가 LZ를 향해 이동 중이다. 수송창 제독 후 두 번째 좌표로 향하라.>

        

       -<이해하였음.>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래…센트럴 파크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몰린 건 처음 보는군.>”

        

        

        

        얼어붙은 뉴욕 만을 지나고, 껍데기만 남은 수많은 고층 건물들을 가로질러, 사람이 이렇게 많아도 되나 싶을 정도의 센트럴 파크 위에서 비행기가 슬그머니 감속한다.

        

        옛날 동영상 사이트나 TV에서 간혹 나오곤 했던 센트럴 파크는 더 이상 없었다. 수많은 임시 건물들이 들어서고, 공원과 도시의 경계선을 따라 벽면이 세워지고 있었으니까.

        

        이걸 마음의 위안이라고 삼아야만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센트럴 파크 인근의 건물들에는 아직까지 전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흡사 죽어버린 맨해튼 한가운데의 살아있는 심장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완전히 죽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이 세상도 아직 어떻게든 안 망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그저 내가 이곳에서 앞으로 뭘 하게 될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영원히 하늘을 떠있을 것만 같았던 수송기와 지상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착륙 지점 주변에는 네다섯 명 가량의 사람들이 있었다. 두 명은 옛날 코로나 바이러스 때나 볼 법했던 오염방지복장 비슷한 걸 입은 채 뭔가를 든 상태였고, 다른 세 명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닥 편안하지는 않은 착륙이 끝남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앞에 서있던 군인 분들은 비행기의 뒤쪽 문이 열림과 동시에 하나둘씩 밖으로 나가 질서정연하게 줄을 섰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순간 불안했지만 파쿼슨 대위님이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나는 이러면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은 표정으로 엉거주춤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고, 그 순간 착륙장 근처에서 대기하던 수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대위님과 이곳의 책임자 중 한 분으로 보이는 분들이 대화를 시작했다.

        

        

        

       “<…에드워드 파쿼슨 대위. 소속은 제107헌병중대…ID에 찍힌 사진이랑은 딴 판이로군. 브루클린에서의 일이 상당히 끔찍했었나 보지?>”

        

       “<이를 말이겠습니까.>”

        

       “<그래서, 옆에 있는 그 꼬맹이가 변이자로군. 한국에서 여행을 왔다고 했나?>”

        

       “<본인 말로는 그렇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출입국 관리 시스템이 먹통이 된 지가 한참인데…언제 입국했는지 확인하기도 불가능할 거고, 여권을 갖고 있지는 않겠지?>”

        

       “<없는 것 같습니다. 피난 도중 잃어버린 듯합니다.>”

        

       “<이런 혼란한 때에 갖고 있기를 바라는 건 사치겠지. 알겠다.>”

        

        

        

        …뭔가 잘 되가고 있는 거 맞겠지?

        

        중간중간에 여권 이야기까지 한 것 같은데…다들 알아서 납득해줘서 다행이긴 하다. 내가 여권이 어딨어, 자다 일어나보니 여기 와있었는데.

        

        그래도 이 상황 자체가 그나마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했다. 이런 난장판 그 자체인 세상에서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변명은 아주 잘 통했다. 물론 목숨 걸고 챙겨야 하는 물건이 맞긴 한데….

        

        그러는 와중에도 대화가, 그리고 소독과 바이러스 검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의료진들이 내 팔뚝에서 피도 조금 뽑아갔다. 내가 영어를 잘 못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여기서 좀 대기해야 한다고 친절하게 덧붙이기도 했고.

        

        …오늘 안에 제나라는 분을 만날 수 있을까.

        

        

        

       “<브루클린 철수 작전 와중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추후 자네 부대원들과 교차검증을 좀 해야겠군. 아무튼 이 꼬맹이는 말했듯이 센트럴 파크 안쪽으로 갈 예정이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하지만 분리 전 이 아이에게 충분한 상황 설명을 해주길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연락 수단도 있으면 좋겠지만…그것까지 바라는 건 사치일 테니.>”

        

       “<…기지 운영에 제법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긴 들었다만,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이 기지에는 우선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든. 알아들었으면 저기 있는 리처 중위를 따라 임시 숙소로 이동하도록.>”

        

       “<이 아이에게 충분한 상황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뭘 하고 있나, 설명 안 하고.>”

        

        

        

        순간 대위님 표정이 이 사람을 한 대 쳐 말아 하는 느낌이 되었지만, 나는 최대한 무해한 척을 하는 와중이었기에 눈만 끔뻑끔뻑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내게 아주 간단하게 덧붙였다.

        

        

        

       “<유진.>”

        

       “<…네?>”

        

       “<아쉽지만, 이제는 작별이다. 완전한 작별은 아니지만, 앞으로 만나기는 조금 힘들어지겠지.>”

        

       “….”

        

        

        

        …역시.

        

        어느 정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현실로 마주하게 되니 생각보다 버겁다. 이런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어째서일까.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나왔다. 이렇게 될 수도 있단 걸 아는데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눈물을 옷 소매로 힘겹게 닦는 동안 그는 나를 한 번 안았고, 큭큭 웃으며 덧붙였다.

        

        

        

       “<말 안 듣는 어린 사촌동생 보는 것 같구만. 완전히 헤어지는 게 아니다, 꼬맹이.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겠지.>”

        

       “<…흑, 정말요?>”

        

       “<그래. 착한 사람들이 네가 여기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줄 거다. 다음에 만날 때는 지금보다 더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날 실망시키지 마라. 넌 자랑스러운 제107헌병중대 막내니까. 알겠나?>”

        

       “<네…!>”

        

       “<그래. 누군가 네가 브루클린에서 뭘 했냐고 물어본다면, 넌 자랑스러운 우리 중대의 일원이었다고 말해라. 머잖아 다시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전부 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내게 무어라 말하고 있는지를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책임감 있고 좋은 사람이다. 그를 만난 게 내 인생의 모든 운을 전부 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베이커 병장님까지. 아마 그 분이 없었다면 나는 이곳에 있을 수 없었겠지.

        

        내가 얼추 이해한 듯해보이자, 파쿼슨 대위와 줄곧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남자의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이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동양인이었다.

        

        자신을 리전이라고 소개한 그가 능숙한 한국말로 입을 열었다.

        

        

        

       “처음 만나게 되는군요, 유진 양. 국토안보부 산하기관인 이카루스 소속 일리치 젠슨입니다. 리전 요원이라고 불러주시길.”

        

       “…한국말을 할 줄 아세요…?”

        

       “제 전문 분야 중 하나지요. 앞으로 당신의 편의를 봐주고,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해야만 할지를 알려주는 것이 제가 할 일 중 하나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시길.”

        

       “대가는요?”

        

       “그런 거창한 단어를 사용해야만 할 정도로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유진 양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협조해줬으면 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요. 일단 이동합시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대화가 스무스하게 풀려간다.

        

        여태까지 내가 겪었던 커뮤니케이션 장애는 과연 뭐였던 걸까 싶을 정도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 사람을 대놓고 믿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특히나 수상함을 인간 모습으로 조형해낸 듯한 이 사람은 특히 더더욱.

        

        그렇다고는 해도, 잘 생각해보면 이곳에서는 바깥에서 겪었던 끔찍한 일들을 겪게 될 리는 없겠지. 확실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어느 정도 공권력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이 이후로 이 사람이 수상쩍다고 느낄 시간도 없었다.

        

        분위기가 조용해질 즈음 리전 요원이란 분이 한두 마디씩 말을 붙였기 때문이었다.

        

        

        

       “유진 양이 어떤 우려를 하고 있을지 이미 압니다. 생체실험 같은 걸 할지도 모른다…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럴 시간도 자원도 없다는 것이 현 센트럴 파크의 실정입니다.”

        

       “…그런가요?”

        

       “그런  걸 할 수 있는 시설도 없고요. 주변이 보이십니까?”

        

        

        

        …그 말대로.

        

        주변은 말 그대로…아니, 이렇게 말하기보단 다르게 말하는 것이 좀 더 낫겠지. 센트럴 파크 전체가 공사 비스무리한 것을 하고 있었다. 나무는 진작 다 뽑혔고 그 자리를 가건물이 메우고 있다.

        

        민간인과 군인들 전부가 신나게 삽질 중이었고, 어디는 중장비까지 동원하는 중이다. 내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자 그는 사람들이 지낼 가건물을 세우는 중이라고 답변해주었다.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겠지만, 나는 이내 의심을 포기했다.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 파쿼슨 대위님에게 말한 것처럼, 앞으로는 사람과 시간이 그 무엇보다 귀한 자원이 될 테니까.

        

        날 해부해버리면 손해는 저쪽이 보게 되겠지. 아니라면…모르겠다.

        

        그러는 와중 그는 의심을 불식시키려는 듯 작은 태블릿 같은 것을 꺼내며 덧붙였다.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유진 양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분들은 센트럴 파크에도 무척 많습니다. 일부는 민간인이지만 군인도 있고, 고위 공직자도 있지요. 그런 분들을 전부 잡아다 실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걸 어떻게 믿죠?”

        

       “보시죠.”

        

        

        

        그가 내민 태블릿.

        

        잔뜩 쓰여있는 영어 사이로 스리슬쩍 하나둘씩 지나가는 사람들. 하지만 공통적인 사실이 있다면, 전부…인간에게는 없는 동물귀나 독특한 머리카락 색과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아예 성별까지 바뀐 사람도 있었다. 그 숫자는 무척 적었지만 말이다.

        

        뭐가 됐든 그는 내 불안감을 해소시켜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믿든 믿지 않든 내게 딱히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어느덧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외형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구체적으로는…꼬질꼬질한 민간인들이 아니라 무언가 양복쟁이들이 모여있는 듯한 공간이었다.

         

        

        

       “여기는….”

        

       “임시 정부 청사들, 민병대 훈련장, 병실, 그리고 변이자들을 위한 거주공간이 밀집된 로우 센트럴 파크입니다. 지금은 멀끔하게 보여도 조금만 더 걸어가면 금방 가건물을 짓는 공사현장이 보일 겁니다.”

        

       “…진짜, 상황 자체가 너무 열악하네요.”

        

       “그럴 수밖에요. 이동합시다.”

        

        

        

        그리고 그 말대로, 그를 따라 조금만 걸어간 순간, 오만가지 건축 자재들을 가지고 무언가를 바삐 짓고 있는 듯한 건설 현장이 나를 반겼다.

        

        그가 그제야 멈춰서서 말했다. 꽤 곤란한 표정이었다.

        

        

        

       “다 왔군요…알파급 변이자 분들이 지낼 공간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중간에 요청이 누락되었는지는 몰라도 건축 시작이 좀 느려진 것 같습니다.”

        

       “…네?”

        

       “저기가 유진 양이 지내야만 할 곳이란 소리입니다. 아직 다 안 지어졌지만요. 오늘 안에 끝나지 않는다면 조금 곤란해지겠군요.”

        

       “그, 다른 곳은…없겠죠?”

        

        

        

        그리고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조차도 개인용 업무실은커녕 소파에서 쪽잠을 잘 때가 많습니다.”

        

       “….”

        

       “일단 알파급 변이자 분들을 한 곳에 모으라는 말 다음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이곳에서 대기하시길.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일단 짐을 놔둘 곳이 있는지를 확인해보지요.”

        

       “네….”

        

       “일단 여기서 대기하시길. 짐은 잘 간수하세요. 이곳에서조차 도둑질은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니까요.”

        

        

        

        그 말을 남겨둔 채, 그는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실로 휑뎅그렁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센트럴 파크에서의 내 첫 일은 내가 살 집을 직접 짓는 것이 될 게 분명했다.

        

        

        

        

        

        

        

        

        

       “<망할, 작전팀장님이 맞았다! 정신 차려!>”

        

       “<긴급호송을 요청한다! 다크 존에서의 작전은 실패다! 반복한다, 다크 존에서의 작전은 실패다! 제독 시설과 전문적인 응급의료시설을 동시에 갖춘 곳으로 이동해야 해!>”

        

       “<제24특수전술대대 항공구조사(PJ) 네 명을 무사히 구출했다. 올리비아 팀장이 중상을 입었고, 헬기의 연료 잔량 역시도 30% 이하임을 알린다. 착륙 장소가 필요하다.>”

        

       “<라과디아, 케네디, 뉴어크 공항…전부 미확인된 폭도들에 의해 점거되었다, 킬로 1. 현재 안전이 확보된 가장 가까운 착륙 지점은 센트럴 파크 HQ이다.>”

        

       “<…망할. 어쩔 수 없지. 현 시간부로 이글 팀은 센트럴 파크로 향한다. 신께서 우릴 보우하시길.>”

        

        

        

        한편, 뉴욕 하부, 롱 아일랜드.

        

        각자의 사정에 의해, 수많은 이들이 센트럴 파크를 향하기 시작했다.

        

        

        

        

        

        

        

        

        

        

        

        

        

        

        

        

        

        

        

        

       “에으, 힘들어어….”

        

       “<수고했다, 꼬맹이.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제법이구만. 그래, 자기가 살 집은 자기가 지어봐야지. 우리 부모님도 캔자스에 살면서 살 집은 직접 지었다고.>”

        

       “오케이, 오케이! 땡큐!”

        

       “<저 자식, 네가 하는 말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적당히 하고 가자고. 아직 할 일이 더럽게 많이 남았어.>”

        

        

        

        오후 일곱 시, 쓸데없이 선명하기 그지없는 햇빛이 빠르게 수평선 아래로 떨어진 이후.

        

        본래라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예상하기로는 적어도 최소한 내일 즈음, 자칫하면 최소 내일 모레까지는 이어질 확률이 높았던 알파급 변이자들을 위한 막사 공사 현장.

        

        인간이 일일이 들어 나르기에는 과도할 정도의 무게를 지닌 조립식 콘크리트 블럭, 그리고 그보단 못하다 뿐이지 잘못 드는 순간 관절 어딘가 한 군데는 무조건 나갈 무게의 다른 자재들.

        

        그 모든 것들을 내가 도맡아했고, 나는 느닷없이 공사현장에 떨어진 생체 기중기 비스무리한 것이 되어 공사의 단계를 순식간에 진전시켰다.

        

        …물론 중간중간에 에너지 보급도 병행했고.

        

        

        눈 앞이 노랗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비단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지. 샤워를 한 지도 며칠 정도 지났다. 몸이 찝찝하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요청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그것도 글쎄올시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익혀야만 하는 사실도 많았다.

        

        그 와중 오늘의 유일한 입주자인 나는 받아야만 하는 물건도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일단 접이식 침대랑 관물대 비스무리한 것들. 그 와중 접이식 침대는 내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좀 뜯어고쳐야만 했다.

        

        언제 어디서 밥을 먹는지. 내게 필요한 연락은 어떻게 받는지,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이며 무슨 의학적 검진을 받을 것인지…그 외에도 수많은 안내사항들.

        

        뭐라고 해야 하나, 난민캠프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근데 내가 난민으로 오게 될 줄은 정말 추호도 몰랐다.

        

        

        이제 와서 말하긴 좀 늦은 감이 있었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무척이나 빨리 졌다.

        

        특히나 주변에는 높은 건물들이 많았고, 해가 조금이라도 중천에서 떨어지는 순간 빌딩에 가려진다. 어둠은 두렵고 무서웠지만, 그나마 이곳까지 오니까 그래도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광원을 최소한으로 줄여놓긴 했지만, 어쨌든 바깥에 누가 돌아다니는지는 보이니까. 물론 나는 빛이 거의 없어도 열상 시야로 알아볼 수 있었지만,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단 말이지.

        

        아쉽다면 아쉽게도 아직 내가 짓다시피 한 가건물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행히 하수처리시스템은 어떻게든 힘겹게 돌아가고 있다고 리전 요원이 알려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인간의 생리 현상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것마저 무너진다면 진즉 다들 질병에 감염되서 죽지 않았을까. 요컨대 화장실은 어떻게든 갈 수 있단 뜻이었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건 조금 그렇긴 한데….”

        

        

        

        열을 감지해서 빛이 없어도 물체가 어딨는지를 볼 수 있는 거랑 어둠 속에서 글자를 읽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글자 모양대로 열이 난다면 몰라도 말이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투덜대는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어떻게든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리전 요원은 그런 날 위해…양초 여러 개를 가져다주었다. 생존 물자에서 슬그머니 빼왔단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진 건 덤이었고.

        

        뭐라고 해야 할까.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옛날 선비들이 이랬을까. 전기가 나갔다고 세상이 이렇게까지 무너진 걸 보면 현대 문명이 얼마나 약한 지반 위에 서있었는지를 대강 알 것도 같았다.

        

        생산 가능한 최소한의 전기는 하수처리장이랑 반드시 필요한 조명과 병원에만 공급된다고 하니….

        

        

        

       “아으으으….”

        

        

        

        …지금 생각해보면, 병원이 쾌적한 거였구나 싶다.

        

        거긴 자체적인 발전기가 있었기에 난방도 됐었지. 물론 경유를 1시간에 24리터씩 까먹는 물건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리전 요원 덕분에 물이랑 이런저런 건 가져올 수 있었지만…그는 물자 반출을 허가하면서 이것도 현 상황에서는 굉장한 특례라는 것을 나에게 아주 잘 알려주었다.

        

        …다른 민간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그닥 알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중세 시대일까.’

        

        

        

        영한사전에 머리를 처박고 한숨을 토해냈다. 이것도 바이러스가 묻었을 수 있다면서 하마터면 통째로 불태워질 뻔했지만, 다행히 표본 검사까지 통과한 덕분에 어떻게든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병리학자들이 바이러스 검사한답시고 표지를 일부 오려간 덕분에 네모난 구멍이 생겼지만.

        

        아무튼 싱숭생숭해서 그런지 오늘은 공부도 잘 안 됐다. 공부 방법이 조금 무식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하루에 한두 페이지씩, 그 안에 적힌 단어와 문장을 싸그리 외우는 느낌으로 하고 있었으니까.

        

        

        맛있는 게 먹고 싶었다.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아이씨, 또 눈물 나와….”

        

        

        

        눈 앞이 뿌옇게 변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졸리기도 졸렸고, 오늘 하루종일 일했고, 대위님이랑 미첼 하사님이랑도 떨어져버렸다. 또다시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얼어죽지 않는다는 점에 감사해야만 할까, 아니면 문을 박차고 들어오게 될 적대적인 누군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짐작도 안 갔지만, 그런 걸 생각하기에는…오늘 하루 벌어진 일이 너무 많았다. 내일은 베이커 병장님이 말했던 제나 씨를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나는 베개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렇게 내 의식은 꺼졌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런 건물은 여기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알파급 변이자니 뭐니 하면서 막사도 없나 싶었더니, 구색은 어떻게든 맞춘 모양이려나….>”

        

        

        

        한편, 그로부터 몇 시간 후.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조명도 꺼진 탓에 그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 로우 센트럴 파크의 알파급 변이자용 거주공간. 그 앞에 기억을 더듬어 다시금 찾아온 누군가가 긴 은빛 장발을 나부끼며 숨을 내뱉었다.

        

        두 번째 알파급 변이자의 등장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쉽게도 바로 만나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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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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