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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3

        

        * * *

         

         

         

       허허실실(虛虛實實).

       빈 곳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가득 차 있는 곳은 비어있는 것처럼.

       빈 것과 가득 차 있는 것이 구분되지 않게 하여 상대를 방심시키고 허점을 찌르는 병법.

         

       진성이 사용한 것은 그것의 일환이라 할 수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처음부터 방심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 너무나 하찮게 보고 있는 연예인이라는 존재를 이용해서 침투시키려고 한 것이 차이가 있을 뿐이겠지. 물론…그 방심의 대가는 그리 좋지 못할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되는 법. 커다란 계획은 작은 것에 의해 어그러지고, 거대한 기계는 작은 톱니바퀴와 작은 모래에 의하여 망가지는 법이니. 하여 계획을 세우고 몇 번이고 검토를 한 뒤, 성사는 하늘에 맡겨야 함이 참으로 옳을 것이다.’

         

       물론 방심은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와 중국은 분명히 달랐으니까 말이다.

       특히…. 주술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흐음. 아직은 유적 탐사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을 터이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회귀 전 중국은 진성과 유적을 두고 싸웠던 원수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

         

       같은 하늘 아래에서 공존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면, 딱 그 말이 맞겠지.

       주술을 탐욕적으로 긁어모아 전쟁에 사용하려는 중국.

       주술을 긁어모아 초월하고자 했던 박진성.

       그 둘은 양립할 수가 없었다.

         

       절대로.

         

       물론 화해하는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진성이 고개를 숙이고 중국 안으로 들어간다면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성이 그것을 택할 리가 있겠는가.

       유적을 두고 다투지 않을 뿐, 온몸에 족쇄를 주렁주렁 매다는 꼴이나 다름없게 될 텐데 말이다.

         

       주술사라는 고급 인력이라지만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오랑캐, 심지어 온갖 조작과 날조를 통해 도둑국이라는 누명을 씌우며 반감을 잔뜩 끌어올린 한국에서 온 사람이다. 당연히 그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은 뻔했다.

       게다가 권력자들은 젊은 주술사인 진성을 쓸만한 패로 볼 것이 분명했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술을 수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자신들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중국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겠지.

         

       게다가 이런 취급을 할 것이 뻔한데, 주술은 또 제대로 보여주기나 하겠는가?

       주술을 미끼로 삼아서 그를 부려 먹고, 권력에 순응하는 개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릴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도 ‘한족도 아니고 중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외국인이 익히기에는 너무나 위험하다.’라는 이유로 조금만 쓸만해 보여도 검열하거나 숨길 것이 분명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정치 싸움에도 필연적으로 엮이게 될 것이 뻔하고….

       만약 잡은 끈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좋지 않은 꼴을 보게 될 수도 있으리라.

         

       뭐.

       부귀영화라는 측면에서는 나쁘진 않을지도 모른다.

       온갖 족쇄를 주렁주렁 매다는 대신에 부와 권력은 확실히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당연히 최고의 권력을 가지지는 못하겠지만, 처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오랫동안 3인자에서 5인자 정도의 위치에서 권력을 누릴 수 있을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애초에 그런 것을 바랐다면 용병 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권력자와 부자가 얼마나 많은가.

       3인자가 아니라, 정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치에 설 수 있는 곳은 넘쳐났다.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에 가도 그만이고, 세계에서 1위를 다투는 부자한테 가서 손님으로 머물러도 그만이다.

         

       하지만 그리하지 않은 것은 그저 순수한 열망 때문.

       주술을 익히고 그 끝을 보고 싶다는 자그마한 소망 때문이다.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 그 가치는 어떻게 측정이 되고, 누가 평가를 하는가?’

         

       평생 부귀를 누리며 살아가다가 그저 먼지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중요한가?

       평생 청빈하게 살다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가?

         

       명성.

       부귀.

       권력.

         

       그 모든 것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 광활한, 인간의 머리로는 제대로 인지조차 힘든 이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그것은 과연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지구의 역사를 하루로 본다고 한다면 인간의 역사는 그중에서 77초밖에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의 권력은, 한 사람의 일생은.

       그리고 그 77초라는 짧은 순간을 또 쪼갠 일부의 시간 동안 전승되었다가 사라져버릴 인간의 명성은.

       그 모든 것에는 과연 의미가 있는가?

         

       ‘그렇기에 사람은 외부의 시선이 아닌 자신만의 의지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외부의 평가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토록 덧없는 것이다.

       사람의 입에서 오가는 것은 그 사람들이 늙고, 병들고, 죽으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이고.

       기록으로 남은 것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혀버린다.

       그나마 불멸하듯 남는다고 할지라도 이 역시 인간의 역사와 함께하는 것.

       인간이 끝나면 그 기록 역시 사라지며 허무 속에서 휘발되어 버린다.

         

       어떠한 관점으로 보아도 그 끝은 허무와 공허뿐이니.

       그렇기에 진정으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스스로뿐일 것이다.

         

       스스로 걷고.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그렇게 우직하게 나아가서 마침내 목적을 달성하고.

       목적을 이루었음에 행복하고 기뻐하며.

       그리고 다시 걸어가고….

         

       그렇기에 진성은 중국과 사이좋게 지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중국에 속하게 된다면 걸어갈 수가 없게 되고 안주하게 되는 것이며.

       그가 어릴 적부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죽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다시 태어나고서도 바뀌지 않은 지금의 삶에 이르기까지 가지고 있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중국 역시 주술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수집한 주술들을 분석하고 사용하고, 땅을 넓히고 다시 한번 ‘세상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려고 할 테니까 말이다.

         

       ‘뭐. 종국에는 중국 역시 주술 수집을 멈추었으니….’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중국의 주술에 대한 집착은 박진성의 주술에 대한 집착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유적을 돌아다니게 된 것은 진성이 유일하게 되었으니.

       이 역시 지극한 마음으로 하나에 맹진함에 하늘이 감동하여 도와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하늘’이 말이다.

         

       그러하니 이번에도 그리하게 되리라.

       어쩌면 저번보다도 훨씬 빠르게 말이다.

         

       그러니까.

         

       ‘허허실실. 가득 차 있는 곳은 비어있게 만드니 그것이 바로 차이네라는 아해가 해야 할 일이요. 상징과 장신구 속에 숨겨진 것들로 북경과 상해를 들여다보고 잠입할 수 있게 됨이니….’

         

       가득 찬 것은 비어있는 것처럼.

         

       ‘그리고 비어있는 것은 가득 차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 그래. 실속은 없더라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시선을 끌 수밖에 없게 만들면 그만이지.’

         

       비어있는 것은 가득 찬 것처럼.

         

       그러기 위해선.

         

       ‘인도로 가야겠군.’

         

         

         

        * * *

         

         

         

         

       인도.

       중국과 함께 인구 1위, 2위를 다투는 거대한 나라.

       근대와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기묘한 나라.

       빈부격차가 상상을 초월하는 나라.

       21세기임에도 아직도 계급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

       그러면서도 왕족은 없고, 민주주의라는 것에 크나큰 자부심을 품고 있는 나라.

       수많은 민족과 문화, 언어가 혼합된 나라.

         

       한 번 떠들기 시작하면 수없이 떠들 수 있는.

       말 그대로 기묘하기 짝이 없는 나라가 바로 인도라는 나라였다.

         

       미국이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면, 이 인도라는 나라는 덜 데워진 용광로와 같은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섞이고 있지만 섞이지 않고, 섞이지 않은 듯 보이지만 섞여 있는- 그런 기묘한 느낌.

       소를 이용해서 인공위성을 끌고 가고,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연구원이 집으로 돌아가서 말린 소똥을 장작으로 써서 음식을 해 먹는 그런 기괴한 공존이야말로 이 인도라는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 기묘함 말고도 다른 특징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중국과 분쟁 중인 나라라는 것.’

         

       인도는 중국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일으켜오고 있었다.

       아니, 그냥 마찰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단순히 총격전을 벌이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전투가 일어나기도 했다.

         

       1962년의 인도-중국 국경 전쟁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과거 영국이 청나라에게 이겼을 때 맥마흔 라인을 선포하였는데, 인도를 독립시켜줄 때 의도적으로 이 맥마흔 라인을 인증하며 중국과 인도의 마찰을 유도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의도대로 중국 측에서는 이 라인이 유지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고, 불안정한 국내외 사정을 어떻게든 타파해야 했던 중국과 인도 양측은 결국 전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안정했던 국내외 사정을 타파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던 이 전쟁은 결국 불안정했던 국내외 상황 때문에 끝을 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중국이 승리하기는 했으나…. 승전을 한 것 치고는 약소한 수준의 이득을 거머쥐는 것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난 후.

       불씨는 다 꺼진 줄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고, 결국 5년 후 다시 국경에서 중국과 인도의 분쟁이 일어난다.

       이때는 1962년에 벌어졌던 전쟁과는 다르게 중국군 역시 크게 손해를 보았으며, 유명한 무인 집단인 곤륜파(崑崙派)가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보기까지 했다.

       역사학자들은 곤륜파가 입은 커다란 피해가 단순히 무공 고하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닌, 지휘관의 무능과 군의 부패, 그리고 실패한 정책을 어떻게든 포장해보고자 한 권력자들의 추악한 실책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곤륜파 무인들은 공산당의 명령에 따라 제대로 된 보급도 받지 못한 채 국경에 투입되어야만 했으며, 저질 재료로 만든 데다가 반쯤 썩어버리기까지 한 벽곡단(辟穀丹)을 아껴서 먹으며 기나긴 국경 곳곳을 뛰어다녀야만 했다. 게다가 젊다 못해 경험도 없는 지휘관의 명령 때문에 입지 않아야 할 손해를 입어야만 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그들이 질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무장이었다.

         

       정말 놀랍게도, 그들의 무기는 ‘무기’라고 부르는 것조차 민망한 수준의 물건이었다.

         

       대약진 운동 당시 당에서는 ‘토법고로(土法高爐)’라는 가정용 용광로를 사용하는 것을 강제하였다. 심지어 토법고로로 농기구나 무기를 만들어내라는 명령과 함께 ‘할당량’까지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곤륜파 무인들의 무기 역시 이때 토법고로 안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렇게 장인이 만든 무기는 토법고로 안으로 들어가서 녹아버리고, 농기구로도 써먹지 못할 잡철이 되어버렸다.

         

       잡철.

       그래, 말 그대로 쓸데없는- 제대로 가공된 목재만도 못한, 무기에 절대로 써서는 안 될 쓰레기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잡철로 만든 무기를 들고 싸웠다면…. 결과는 뻔한 일이겠지.

         

       그나마 경지가 압도적으로 낮은 이들을 상대할 때는 어찌어찌 무인들의 실력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같은 경지…아니, 자신보다 조금 낮은 수준만 되어도 이 잡철로 만든 무기는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렸다.

         

       주인의 목숨과 함께, 그렇게 산산조각으로 말이다.

         

       그렇게 재차 벌어진 국경 전쟁은 인도의 판정승이 되었다.

       자신보다 많은 숫자의 병사와 능력자들, 그리고 유명한 무인 단체까지 거의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주면서 말이다.

         

       그래.

       그렇게 시작되었다.

         

       현대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중국과 인도의 끊임없는 분쟁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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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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