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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4

    <674 – 무책임한 쾌락(22)>

     

    불행의 룬을 이사장에게 건네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이사장 본인과 직접 마주칠 것.

    그리고 불행의 룬의 실체를 이사장이 모르는 상태로 <장착>하게 만들 것.

    결코 쉬운 조건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딸인 오크노디조차도 이사장을 만나지 못하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니 집사장이 필요해. 이사장의 직속삼장이라 불리는 집사장이라면 분명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거야!”

    “조언은 이해했어. 그래서 집사장은 어떻게 설득할 작정이었는데?”

    “원래는 정신지배를 할 작정이었어!”

    “그리고?”

    “세계각국에 파견된 집사들의 위치정보와 신상내역을 받고 집사명부를 교장에게 넘기기 전에 재단파파가 직접 만나지 않겠냐고 권할 생각이었지?”

     

    재단이 세계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단숨에 급감할 위기 앞에서 얼굴 한 번 내비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알려주거든 어찌 나서지 않겠는가.

     

    “어림없는 생각이네.”

     

    다크노디는 분신생성 시점의 오크노디와 같은 기억, 같은 스펙을 지닌 영구분신.

    이 작전의 결함을 단숨에 눈치 챘다.

     

    “결사의 총수가 재단의 집사장인 시점에선 틀려먹은 작전이야. 신비영역의 소유자는 정신방어와 관련된 모든 신비에 정통했으니까.”

     

    종합기능판정.

    아무리 강력한 기능과 권능을 지니고 있어도 수도 없이 많은 기능치의 복합수치로 저항하는 저항판정을 뚫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럴 때의 정공법은 상대의 강한 기능을 피해 약한 기능을 찾는 것.

    강자는 보통 약한 기능이 적고 강한 기능이 많다.

    다크노디가 생각하기엔 오크노디도 그랬다.

     

    ‘스펙을 공유받은 지금의 몸으로도 판정이 허술한 분야가 없었어.’

     

    무술이면 무술, 마법이면 마법, 정신이면 정신.

    모든 분야에 방어기능이 잔뜩 있다.

    수백 년간 신비를 수집한 결사의 총수이자 재단의 집사장도 이는 마찬가지다.

    다만, 집사장은 오크노디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약한’ 분야는 있었다.

     

    *신비 :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교 묘함. 또는 그런 일이나 비밀.

     

    신비는 이처럼 특수한 현상을 의미한다.

    그러니 ‘신비하지 않은 일’에는 방어기능을 발현하지 못한다.

    가령 순수한 노동기능이 그렇다.

    단순무식한, 지극히 수고를 들여야만 성장하는 나무꾼의 <장작패기>나 광부의 <광석캐기>, 어부의 <낚시하기>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나무를 패고 광석을 캐며 물고기를 낚는 일에도 신비가 개입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보통, 평범한 노동을 두고 ‘신비하다’는 표현은 쉬이 쓰이지 않는다.

    설령 쓰이더라도 일반인이 장인에 달한 노력과 재주를 펼치면 ‘신기하다’고 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무슨 기능으로 집사장을 이용할 거야?”

     

    분신인 다크노디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고개를 기울이는 오크노디.

    귀 기울이는 모습조차도 잔망스럽다며 고인물스러운 위엄이 없다고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다크노디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모아 다시 뱀피 머리띠를 장착하였다.

     

    “<세 상에모르는게없는현자>라면 <학술>기능을 쓰고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좋아 해병>이라면 <정신력>기능으로 접근했겠지. 어느 쪽도 아닌 지금의 나라면 <청소하기> 기능을 사용하겠어.”

     

    청소하기는 집안일을 하는 가정주부나 어린아이에게 주로 생기는 생활계 기능이다.

    당연히 그 효과도 청소가 빨라지거나 범위가 늘어나거나 정밀도가 오르고 낮은 기능수치에서는 치우지 못했던 물질도 치우는 등 청소에 치중된 기능이다.

    하지만 모든 기능이 으레 그렇듯이 수수한 노력도 쌓이고 쌓여 극의에 도달하면 신비나 다름없는 특수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헉. 청소하기라니, 그런 지루하고 따분한 일을 어떻게 할 수가 있어?!”

    “게으르고 방탕하게 날먹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네가 먼저 했고, 네 성장속도를 따라잡으려면 똑같이 게으름만 부려봤자 하위호환이 될 게 뻔했으니까.”

    “뭐라도 앞서는 다른 분야를 만들고 싶었구나!”

    “그래서 실제로는 어때. 너한테도 통할 수 있어?”

    “역시 무리지? 청소같은 기능은 <정상>상태를 상정하고 <비정상>을 배제하는 기능이니까. 정상과 비정상의 정의를 세계에 재각인할 수 있는 고인물한테는 조금의 데미지도 들어오지 않아!”

    “…벌써 영역 4단계를 각성했어? 날 만들기 전에는 거기까지 손을 뻗지는 않았으면서.”

     

    다크노디가 질투심을 참지 못하고 볼을 부풀렸다.

     

    “그래도 집사장한테는 통할지도 몰라!”

    “시험은 해줄게. 실패하면 나야 자존심이 상할 뿐이지만 너는 곤란한 일이 많을 테니까.”

     

    마치 마음만 먹으면 집사장을 설득하고 이사장과 대면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오가는 대화에 악천군 곽조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저, 실례지만 두 분 눈에는 천하제일격투대회라도 벌이는 것처럼 날아다니는 환락도시 시장과 와이히엠하이 재단 집사장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으십니까?”

     

    곽조가 가리킨 저편에서 환락의 도시 시장의 손가락 하나하나마다 각기다른 색의 감정이 가득 담긴 열색구체가 펑펑 터졌다.

    구체에 휩싸인 집사장의 전신을 각기 다른 형태의 신비영역이 감싸며 보호하더니, 원반형으로 밀집한 영역이 부메랑처럼 허공을 날아갔다.

     

    콰콰콰!

     

    빗나간 궤적에 걸린 것만으로도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주저앉았다.

    심지어는 허공에서 터지는 환락구체의 진동을 느낀 것만으로도 내부에 실린 환락을 어렴풋이 깨달아버린 개조군단병 하나가 침을 질질 흘리며 집사장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 짧은 사이에 환락의 도시 시장에게 신체의 제어권을 빼앗긴 것이다.

     

    “저걸 보고도 그리 태평한 소리들이 나오십니까?”

    “봤는데. 저게 뭐?”

    “우리 다크노디 무시하지 말아요. 누가 만든 분신인데 저 정도야 거뜬하지!”

     

    다크노디가 코웃음을 치더니 냅다 두 고수의 영역 사이에 돌진했다.

    각기 다른 영역의 기운을 번갈아가며 흉내내며 영역을 넘나들던 오크노디와 달리, 다크노디는 영구분신으로 존재하느라 <분신영역>을 강제로 펼치는 상황.

    그리하여 별도의 영역을 전개할 수 없었으나, 놀랍게도 다크노디는 맨몸으로 환락영역과 신비영역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저조한 즐거움>

    <실망스러운 환락>

     

    오크노디의 기억에서 엿보는 공략의 즐거움에 비하면 단순무식한 환락은 와인 대신 물탄 알코올인 소주를 즐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싼맛에 저렴하게 즐길 뿐, 결코 맛의 깊이나 풍부함, 다양성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없었다.

     

    <규명되고 해체된 낡은 신비>

    <원시적인 마도학>

     

    결사의 총수, 재단의 집사장이 다루는 각종 신비 또한 고인물이 다루는 수많은 기능들에 비하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었다.

    전부 한 번쯤은 익혀보고 써본 것들인데 거기에 어찌 신비를 느끼고 경외를 품을 수 있겠는가.

     

    <환락지옥>

    <백팔신비>

     

    서로의 정신을 무너뜨릴 기세로 펼치던 두 고수의 영역을 깡방어력으로 다 뚫고 접근하는 다크노디.

     

    “이게 무슨?!”

    “신비무효화?!”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다크노디가 집사의 발치에 드리운 그림자 위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집사장. 부탁이 있어요.”

    “나도 묻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할 말이 무엇이든 나중에 해라. 지금은…”

    “저게 문제야?”

     

    다크노디가 배낭배낭의 유사효과를 지닌 마도구 망토망토의 어둠속에서 기다란 빗자루를 꺼냈다.

     

    <청소하기 극의>

    <쓸어담기>

     

    플레이어에게 본디 청소는 해야하지만 귀찮은 일을 치워 없애는 일에 가까웠다.

    먼지를 쓸고 닦는 것처럼 귀찮은 이벤트를 쓸고 닦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운다.

    다크노디 또한 오크노디의 기억을 공유받았으니, 청소하기 기능에 대한 인식은 같았다.

     

    그래서 기능극의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사용했다.

    성가신 이벤트를 치우듯이 <차원문>을 열어 문의 저편으로 밀어낸다.

    환락의 도시 시장이 기겁하며 저항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날 어디로 보낼 작정이냐!”

    “몰라. 어디든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야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담듯이 쓰레기로 명명한 귀찮은 이벤트나 성가신 적을 쓰레기통으로 명명한 차원문의 저편에 쓸어담는다.

    다크노디의 <청소극의>는 단일대상에 한정해서 일정기간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제약이 클수록 차원문의 흡입력은 더욱 커졌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스스로 먼지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환락의 도시 시장 아스모데우스의 발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안돼!”

     

    <영역과포화>

    <강제물질화>

     

    새로운 거악후보이자 마왕군 사천왕 후보.

    세상에 드리울 거대한 악이 수많은 환락을 물질화한 마도구를 연성해가며 자신의 질량을 늘려 대지에 다시금 발을 붙였다.

    하지만 잘 떨어지지 않는 쓰레기를 치울 때에는 청소기의 흡입구나 쓰레받기가 친히 쓰레기를 향해 마중나오기도 한다.

     

    쿠구구구궁!!

     

    차원문이 스스로 거리를 좁히며 날아오자 아스모데우스는 기가 막혀했다.

    좌표를 고정해서 연결하는 행위만으로도 시공의 불안정이 발생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자연마나이상분포로 마나재해가 발현되기 일쑤이다.

    당연히 차원문의 이동은 금기 중의 금기에 해당하는 미친 짓이다.

    공간이동의 계산오차나 실수가 벌어질 리가 없다고 절대적인 확신을 하는지, 재해가 발현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어느 쪽이건 비인간적인 독심 앞에서 아스모데우스는 세상을 자신의 환락으로 장악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잡아먹힘을 느꼈다.

    다크노디는 자신의 것도, 나아가 누구의 것도 아닌 공허 속으로 세상이 사라지더라도 상관없는 것처럼 거침없이 일을 벌였다.

    아스모데우스는 그런 재주를 흉내낼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청소대상 : 아스모데우스>

    <지정대상 쓸어담기 완료>

     

    순간의 소극적인 태도는 곧 그를 차원문의 저편으로 끌려가게 만들었다.

    쿵!

    목표물을 제거한 차원문은 그대로 굳게 닫혔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거 따라갈래요, 아님 내 부탁 들을래요?”

     

    호각으로 다투던 호적수가 한순간에 차원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으니, 차원문의 저편으로 사라진 사람이 집사장이 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당장 자신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니 집사장의 대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들어나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지럽히기의 오크노디와 청소하기의 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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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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