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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5

    <675 – 무책임한 쾌락(23)>

     

    “파파를 직접 만나게 해주세요.”

     

    다크노디는 당돌하게 독대를 신청했다.

    집사장의 눈에 의혹이 차올랐다.

     

    “이사장과의 사이가 그리 돈독하지는 않다고 들었다. 그런 당신이 구태여 만나려는 이유가 뭐지?”

    “부모의 날 얼리액세스. 조금 일찍 감사의 선물을 줄 거예요.”

    “물건을 넘겨주거든 대신 전해줄 수 있다.”

    “남의 손을 거치고 싶지 않아요.”

    “효는 높이 사 마땅할 정신이지만 이사장의 신분은 특별하다. 말은 전할 수 있어도 그가 원치 않는다면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와 만날 수 없다.”

     

    집사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청소하기 극의 쓸어담기가 차원문 저편으로 환락의 도시 시장 아스모데우스를 쓸어담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그 뜻은 굽혀지지 않았다.

    집사장의 이사장을 향한 충심이 그만큼 대단하고, 한편으로 다크노디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흐음…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요? 파파가 나중에 알면 정말 화낼걸요?”

     

    환락영역이 사라지며 오색으로 물든 하늘이 맑은 푸른색을 되찾으며 걷혔다.

    쏟아지는 태양빛에 눈살을 찌푸린 다크노디가 망토망토에서 양산을 꺼내니, 집사장이 날카롭게 눈을 번뜩이며 반문했다.

     

    “네가 오크노디 본인이 맞기는 한가?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는 오크노디가 둘이나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분신도 본신이랑 똑같아요.”

    “분신을 보낼 정도로 날 경계한다는 말은 그만큼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는 뜻이겠지. 불순한 의도로 이사장과의 면담을 희망하는 자는 설령 이사장의 후계자이자 친딸이라도 접선을 허락할 수 없지. 이 원칙에 예외는 없다.”

    “칫.”

    “게다가 넌 아무리 봐도 뱀파이어처럼 보이는군. 태양빛을 싫어하는 모습도, 피에 깃든 마나농도도, 날카로운 송곳니나… 대놓고 뱀파이어인 차림새까지.”

    “그게 왜요?”

    “이사장은 뱀파이어가 아니다. 그러니 뱀피인 너는 이사장의 친딸이 아니지. 본신을 내 앞으로 데려와라. 그리고 뱀파이어가 아님을 증명해라.”

     

    멀리서 오크노디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카데미로 교대하고 싶으면 혼자서 결판을 내라는 의중이 가득 느껴졌다.

    다크노디는 고심 끝에 승부수를 던졌다.

     

    “그럼 먼저 너희 허접간부를 데려와요.”

    “허접간부?”

    “저거.”

     

    다크노디가 가리킨 곳에 어둠의 표식이 떠올랐다.

    기겁하며 제 얼굴을 덮은 어둠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치던 갈릭 후라이드치킨이 은신용으로 삼고 있던 시체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어둠이 가신 갈릭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과 마주치고 달아나려하자 집사장이 손을 뻗었다.

     

    <신비 – 되돌아오는 숲>

     

    분명 달아나려고 걸음을 옮김에도 걸음마다 점점 집사장과 다크노디에게 다가가는 현상에 갈릭 후라이드치킨이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못보던 얼굴이군. 집사2부 신임간부인가.”

    “마, 맞습니다.”

    “네놈의 몸에서 나는 이 냄새는… 후라이드치킨 가문이군.”

    “허억! 공작가의 비전요리의 냄새를 어떻게…!”

    “고위정령계약자는 귀족가문 출신에서 흔히 나오지. 정체가 특정되고 달아나는 고위정령계약자를 찾아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가문별 마나연공법과 흡수효율이 가장 좋은 음식의 냄새를 기억하고 연공법을 운행하며 나는 냄새를 추적하는 것이지.”

     

    다크노디가 황당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상할 정도로 귀족가문 출신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추적을 쉽게 당한다 싶더니, 이런 백그라운드 억까설정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네.’

     

    원본이 뭔가를 발견할 때마다 이런 기분이었나…?

     

    “…하여 알아차렸다. 네놈이 후라이드치킨 가문 출신이라는 것도. 그리고 너, 그분의 딸의 분신이 재단고위직의 기본상식조차 전수받지 못한 헛똑똑이임도. 역시 네게는 나와 협상할 자격이 없다.”

    “단정하기엔 아직 이를걸요?”

    “말은 쉽지만 증명은 어렵지. 네가 원하던 허접집사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제 이 녀석으로 무엇을 보여줄 거지?”

     

    다크노디는 키가 2m를 훌쩍 넘는 집사장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재차 확인했다.

     

    “원본이 뱀파이어라고 단정짓고 협상을 거부하는 까닭은 나를 뱀파이어라고 판단했고, 원본도 나와 종족이 같을 것이라 추정했기 때문이죠?”

    “그렇다.”

    “이 허접간부는 뱀파이어의 약점을 알아요.”

    “그게 사실인가?”

    “그, 그렇습니다. 뱀파이어는 저의 비전요리 <마늘치킨>을 먹지 못합니다.”

     

    다크노디가 자신있게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난 마늘치킨을 먹을 수 있어.”

    “말도 안 돼!!”

     

    갈릭 후라이드치킨은 자신의 자부심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다크노디의 발언에 격하게 반발했다.

    그의 입장에선 당연했다.

    그가 재단의 후원을 받은 이유도, 간부가 될 수 있었던 비결도 전부 오크노디가 뱀피이고 마늘치킨이 오크노디의 약점이기 때문이 아닌가.

    인간상성.

    완벽한 카운터.

    재단에서 그의 쓰임새는 그런 것이니, 오크노디 전용 억제기의 역할을 상실한다면 힘도 재능도 권력도 모두 없는 지금의 그는 재단간부로 남을 수 없다.

     

    “기프트 아카데미에 재적하는 나의 조카 호너 후라이드치킨의 보고에 따르면, 오크노디는 짐승들의 밥도 훔쳐먹을 정도로 탐욕스러운 포식자임에도 마늘치킨의 섭식을 거부했다! 이는 필시 마늘치킨을 두려워했으니 뱀파이어의 약점이 마늘이고 마늘치킨은 뱀피가 먹을 수 없는 요리라는 의미가 아닌가!”

    “그러니까 먹을 수 있대도?”

     

    다크노디는 오크노디의 기억과 기능을 토대로 탄생한 존재이기에 이미 알고 있다.

    오크노디가 마늘치킨을 먹지 않은 이유는 독내성을 더 올려서 요리복용 시 오르는 영구적 기능상승효과를 최대치로 얻고자 시일을 뒤로 미루었을 뿐이라고.

    그 말인 즉, 최대상승효과를 포기하면 아무 때나 그냥 먹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놀랍군. 누가 봐도 뱀피처럼 생긴 네가 자신이 뱀피임을 부정하며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극독요리를 먹겠다고 자처하다니.”

    “당연하지. 우린 정말로 뱀파이어가 아니니까.”

    “웃기는 녀석. 그리 허세를 부리면 순순히 속아주리라 생각했나? 너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네게는 물러설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겠다.”

     

    집사장이 앞주머니에서 심상찮은 마력반응이 느껴지는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소환. 만능조리실.”

     

    손수건이 크게 늘어나며 펄럭거리더니, 그 아래로 커다란 조리실이 나타났다.

     

    “들어가라. 갈릭 후라이드치킨. 간부로서 너의 능력을 입증할 시간이다.”

    “여, 여기서 요리를 하란 말씀이십니까?”

    “이계의 마나 중에는 인간의 체내에 침투하는 성질의 마나가 많지. 암흑마나는 선제적으로 육신에 침투하여 몸을 지키는 보양효과가 있다. 이 효과를 얻기 위해 이계에서 마계식 암흑요리를 조리하는 조리실을 상시 소지하는 것은 집사1부 집사의 기본소양이다.”

     

    갈릭후라이드치킨이 자신없는 얼굴로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재료를 준비해오지 않았습니다.”

    “냉장고를 열어라. 이 세상 모든 재료가 거기에 들어있을 것이니. 재료가 없다는 변명은 듣지 않겠다.”

    “저어, 양념을 숙성시키는 과정에도 시간이 3일 정도 소요되기도 합니다만 지금은 소지중인 숙성된 양념이 없어서 아쉽게도…”

    “시간가속의 저장고가 있다. 만들고 집어넣고 타이머를 돌려라.”

    “전장에서 조리를 하면 위생 문제가…”

    “조리실은 당연히 이계 한복판에서도 사용할 것을 상정하여 제작된 특수시설이다. 모든 종류의 오염과 간섭을 막을 수 있고 강력한 방어마법도 펼쳐져있으니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도록.”

     

    다크노디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갈릭은 이거 이대로 요리하다가 진짜 제대로 망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준비성이 과하게 철저한 집사장의 고집 앞에서는 도저히 발을 뺄 수가 없었다.

     

    치이이이익!

     

    결국 기름을 끓이며 울며 겨자먹기로 조리를 시작하는 갈릭 후라이드치킨.

    때아닌 요리쇼에 모두가 침을 꼴깍 삼키며 구수한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 만능조리실을 쳐다봤다.

     

    “안 됩니다. 다크노디 님, 그러다가 정말 죽기라도 할 작정이십니까? 뱀파이어 분들에게 우리 뱀피를 잘 부탁한다는 부탁까지 받은 저는 무슨 낯으로 언더월드로 돌아가란 말입니까?”

    “시끄러. 안 죽으니까 괜찮아.”

     

    다크노디의 무심한 선언에 그녀가 죽음을 이미 각오했다고 느낀 악천군 곽조와 개조군단들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많은 이들의 우려 속에 훌륭한 조리실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마늘치킨이 완성되었다.

     

    “마계종 코카트리스 육계를 사용한 마늘치킨입니다. 비전소스를 첨가하여 맛의 풍미와 산도까지 잡아낸 요리라고 자부합니다.”

     

    막상 만들고 나니 뿌듯한 기분이 든 갈릭 후라이드치킨이 그리 자랑하니 사방에서 불쌍한 뱀피를 죽일 사약을 만들고 자랑하는 싸이코패스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마구마구 쏟아졌다.

    갈릭 후라이드치킨은 다크노디가 이거 먹고 확 죽어버려서 앞으로도 간부직을 지킬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딱히 부당한 시선은 아니었다.

     

    “그럼 마늘치킨 시식을 시작해라.”

     

    다크노디가 아앙 하고 입을 열어 마늘치킨을 물었다.

    그리고는 다급히 치킨을 뱉어내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입을 가렸다.

     

    “하하하! 당했구나, 뱀피노디여. 너의 뱀파이어의 사악한 피가 마늘치킨의 마늘의 효능을 견디지 못하고 고통을 호소했음이 틀림없겠지!”

    “아니, 뜨겁잖아.”

    “…”

     

    뜨거운 건 어쩔 수 없지.

    사방에서 인정의 끄덕거림이 이어졌다.

     

    “그럼 식혀서 먹어라. 네게는 마지막 유예의 시간이 되겠지만 말이다. 후회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너희가 뱀피임을 밝히는 게 좋을 거다.”

     

    집사장의 선포에도 다크노디는 굴하지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마늘치킨을 노려보다가 망토망토에서 뱀피용 스몰사이즈 컵을 꺼내고는 마법을 시전했다.

     

    <암흑의자양강장제생성마법>

     

    새카만 액체에 보글보글 떠오르는 기포.

    독을 마시고 자결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어서 황당하게 쳐다보는 이들의 뒤로 오크노디가 고개를 삐죽 내밀고는 감탄했다.

     

    “와! 콜라! 치킨에 콜라는 못 참지!”

     

    뜨거운 치킨을 먹기 위한 차가운 음료였다.

     

    “콜라가 뭐지?”

    “몰라. 치킨이 아니라 콜라를 먹고 죽었다고 핑계 삼으려고 독을 꺼낸 건 아닐까?”

    “그럼 지금 오크노디가 자신의 분신에게 뱀파이어라는 정체가 들키지 않도록 독을 마시고 죽었다는 명분을 세우라고 강요하고 있는 거야?”

    “맙소사.”

    “너무 끔찍해.”

    “아무리 자신의 분신이라도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벌일 수가 있지…?”

    “역시 재단의 후계자야. 하는 짓이 지 아빠랑 완전 똑같아…”

     

    개조군단의 술렁거림에 집사장도 혹했다.

     

    ‘익숙한 잔혹함이군. 그분의 딸이 맞는 것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콜라를 마시라고 권하다니, 너무 잔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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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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