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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6

        

         

       그들이 안내한 곳은 도로 근처의 공터.

       평소 특별한 용도 없이 다용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넓은 곳이었다.

         

       ‘흠. 캠핑카라.’

         

       그곳에는 거대한 캠핑카가 있었다.

       이층 버스를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그 캠핑카는 척 보기에도 호화로워 보였는데, 실제로 커튼이 쳐져 있지 않은 곳 내부는 어지간한 호텔 못지않은 고급 가구들이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의 표면에는 단검 모양의 문양이 크게 그려져 있었는데, 물결이 치는 것 같은 곡선 형태의 모양이 살상용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키르판이군.’

         

       키르판(Kirpan).

       시크교의 상징물.

         

       시크교도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단검이며, 명예와 힘, 꺾이지 않는 정신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키르판, 키르판이라.’

         

       진성은 잠시 멈춰서서 캠핑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ਬੋਲੇ ਸੋ ਨਿਹਾਲ, ਸਤਿ ਸ੍ਰੀ ਅਕਾਲ!

         

       말하는 자는 얻게 되리라.

       위대하신 신의 진리여!

         

       ‘신의, 영원한, 불멸의 진리.’

         

       버스에 새겨져 있는 글귀를 가만히 본 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캠핑카로 향했다.

       그리곤 캠핑카의 문이 열려있음에도 바로 들어가는 대신에,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그리곤 목에 걸고 있는 동물 머리를 꿰어 만든 흉측한 목걸이를 자신이 벗은 신발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시크교에 대한 배려의 의미였다.

         

       “구도자님. 여기 모자를….”

         

       “괜찮습니다.”

         

       하지만 배려는 딱 거기까지.

         

       진성은 시크교도가 주는 터번과 모자를 받지 않았다.

         

       물론 일부러 무례하게 구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들이 주는 것을 받지 않은 이유는 단지, 용병 생활을 하면서 얻은 일종의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낯선 사람이 주는 물건은 받지 않는 습관 말이다.

         

       ‘특히 의복은 더더욱 그러하지.’

         

       그나마 음식 같은 경우에는 손님 대접을 중요시하는 곳에서는 받을 수 있겠지만….

       의복 같은 경우는 아예 받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음식 같은 경우는 호의지만, 의복은 아닌 경우가 많지.’

         

       옷에 독을 묻혀놓는다거나.

       주술이나 마법, 연금술을 사용한 함정이 있거나.

       좋지 않은 종교적 의도…. 대표적으로는 인신 공양이나 식인 행위를 위해 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혹은 무장해제를 유도하기 위함이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경우도 많았고.

         

       그러니 진성은 그들이 주는 것을 받지 않았고.

         

       “들어오시게.”

         

       그를 초대한 현인 역시 그러한 진성의 선택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정중한 말투로, 들어오라고 재촉을 했을 뿐.

         

       현인의 그 말을 들은 시크교도들은 자신들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듯 캠핑카에서 멀어졌다.

         

       아니.

       안내자로서의 본문에 충실한다기보다는…그래.

       현인과 그가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멀리 떨어져 주는 것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소, 구도자…박진성.”

         

       그리고 진성은 그들의 배려대로 캠핑카 안에 있는 노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반질반질한 머리.

       바닥에 늘어질 정도로 기다란 하얀 수염.

       고급스러운 캠핑카에 맞지 않게 허름한 천으로 대충 국부만 가리고 있는 차림.

         

       저 노인의 이름은.

         

       “저 역시 이렇게 보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아슈토쉬 싱(Ashutosh Singh).

         

       아슈토쉬 싱(Ashutosh Singh).

         

       인도에서는 ‘불꽃의 현자’라 불리는 주술사였다.

         

         

         

        * * *

         

         

         

       아슈토쉬 싱(Ashutosh Singh).

       불꽃의 현자.

       정신의 탐구자.

       시크교의 현인.

       잠잠한 불꽃과 함께하는 자.

         

       시크교 소속의 주술사이며, 불꽃을 다루는 화염술사.

         

       회귀 전 세계 3차 대전 당시 인도의 힘없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던 사람이며, 그에 ‘아이들을 보호하는 화톳불’, ‘미래를 보호하는 등불’과 같은 칭호로도 불리며 존경을 받은 사람.

       사후에는 인도 내에서는 종교, 인종, 계급을 불문하고 존경받는 위인으로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오. 구도자여.”

         

       “허허. 그렇군요. 직접 보는 것은, 말입니다.”

         

       간접적으로는 그와 한 번 엮인 주술사이기도 했다.

         

       “그때 전해준 한마디의 말은 참으로 감명이 깊었습니다. 참으로 그러하였지요.”

         

       “그렇군. 내 짧은 식견으로나마 충고하였는데, 그게 좋은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오.”

         

       과거, 러시아에서 엘라는 한 주술사와 얽히게 되었다.

       그 주술사는 엘라의 몸 안에 있는 그녀의 또 다른 자매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그녀를 납치하였고, 주술 의식을 행하려 했었지.

         

       회귀 전에는 그 주술이 성공하였고, 엘라가 죽고 아나스타시아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박진성의 개입으로 엘라는 살고, 아나스타시아는 새로운 육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아나스타시아는 세상에 존재하였지만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

       존재하기는 하였으나 이름을 받지 못했기에 세상에 발자취를 남길 수가 없게 되었고, 그렇기에 진성은 아나스타시아에게 이름을 주려 하였다.

         

       다만 과거와 같은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으니.

       그래서 그는 그녀를 얽맬 수 있는 이름을 내려주려 하였었는데….

         

       그때 저 불꽃의 현자, 아슈토쉬 싱이 아나스타시아와 엘라의 입을 빌려 말하길.

         

       “데르 게 바터 토드(Der Gevatter Tod). 하하. 참으로 짧으면서도 강렬한 전언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가 된 죽음(Godfather Death).

         

       영향력에 대한 화두.

       진성은 그 화두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결국 선택을 하였었다.

       그녀가 가지 않은 길을 걷게 됨을 축복하며, 아나스타시아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저 나의 작은 의견을 말한 것뿐. 하지만 그것을 귀담아듣고 선택을 내린 것은 구도자의 몫이었소.”

         

       아슈토쉬는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하얀 눈.

         

       눈동자에 눈이라도 내려서 쌓이기라도 한 것일까?

       그의 왼쪽 눈동자는 회색에 가까운 하얀색이었다.

         

       초점이 없는 듯, 하얀 막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것 같은 그의 왼쪽 눈동자가 움직였다.

       또렷하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오른쪽 눈동자와 함께.

         

       그렇게 눈동자가 마주친다.

         

       흰색과 호박색의 눈동자가.

       박진성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구도자, 박진성이여. 당신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보이고 있소. 나는. 그것이 분명히 보이고 있지….”

         

       그것은 불꽃과 불꽃의 만남이라.

         

       박진성의 눈동자에 자리 잡은 불씨가 하늘하늘 움직인다.

       불꽃으로 타들어 가는 불나방이 그러하듯, 허공에서 피어났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것처럼 그렇게 불씨가 춤을 춘다. 바람에 몸을 맡기며, 그러면서도 그 바람 속에서도 제 몸을 태우는 것을 잊지 않은 자그마한 불씨가 반딧불이가 떼로 모여 춤을 추는 것처럼 그렇게 환상적으로 움직이며 그의 심상을 대변한다.

       불꽃, 불꽃, 불꽃.

         

       타오르는 불꽃이여.

       다만 잠재되어 있기에 그 흔적만을 볼 수 있는.

       덧없이 사라졌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그러면서도 제 진짜 본체는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아 마음으로, 물질이 아닌 비물질로 타오르는 불꽃이여.

         

       “재와 불꽃. 과연.”

         

       그리고 진성에게 역시 아슈토쉬가 가진 불꽃이 보인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그렇다면 하얗게 변해버렸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불꽃을 품은 자가 하얀색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의 왼쪽 눈은 잿더미를 그린다.

       타고 타고 또 타서 마침내 하얗게 잿더미가 되었다.

       그렇게 수북하게 쌓인 재는 이제는 걷어내기조차 어려워져서.

       불꽃이 다시 타오를 자리조차 침범한 채 꽉꽉 메우고 있어서.

       그래서 타오르는 불꽃 대신에 잿더미가 자리를 잡아 눈동자를 뒤덮었도다.

         

       다만 저것은 창에 끼인 잿더미인지라.

       저 잿더미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저 하얗게 변해버린 불투명해진 창문의 너머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어떠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을 것인가.

         

       ‘불빛이라.’

         

       그 해답은 그의 오른쪽 눈에 있다.

       호박색으로 빛이 나는, 투명하게까지 느껴지는 저 눈동자.

       따스한 불이 발하는 빛과 같은 저 색.

         

       화톳불인가.

       화롯불인가.

         

       집 안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불꽃인가.

       어둠을 밝히고 짐승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장작더미의 불꽃인가.

         

       다만 그 본질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

       저 불꽃을 쐬고 그 불꽃 근처에 머무르는 이들을 위한 것이 바로 본질이라.

       그래서 알 수가 있다.

         

       저 불꽃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따스함을 갈구하고 보호를 바라는 이들을 돕기 위한 불꽃이라는 것을.

         

       아.

       불꽃이여.

       사람을 보호하고 도와주고 마침내 제 몸을 불살라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불꽃이여.

         

       진성은 회귀 전에도 보지 못했던, 지금 얼굴을 마주 보게 된 지금에서야 그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였다.

         

       “불꽃의 현자. 당신의 본질은 불이 아니라, 그 불로 할 수 있는 것들이로군요.”

         

       아슈토쉬는 진성의 말에 슬쩍 웃었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지고, 그의 눈이 호선으로 휘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이에 대한 반가움과 고마움이 담긴 무언의 감사였다.

         

       “나 역시 구도자의 마음속 불꽃을 대충 알겠소. 구도자의 불꽃은 상징에 가까운 것이로군….”

         

       아슈토쉬는 박진성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 후에 입을 열기를.

         

       “구도자여. 중국에 가는 것을 멈춰주시오.”

         

       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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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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