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676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유감이야.>”

        

       “<….>”

        

        

        

        쏴아아아아!

        

        하늘에서는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겨울비였다. 우산에 부딪힌 빗방울이 부서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땅을 적신다. 발로 밟고 있는 대리석 바닥을 타고 빗물이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근래 돌아다녔던 그 어디보다도 배수가 잘 된 이곳, 센트럴 파크 국립묘지. 공원의 호수였던 곳의 물을 식수로 전용하기 위해 싸그리 물을 빼버린 이후, 땅을 다지고 시체를 안치하기 시작한 곳이었다.

        

        센트럴 파크 내부 혹은 인근에서 머물고 있는 민간인들은 이곳에 묻힐 수 없었다. 명예롭게 – 과연 그것이 명예로운지는 모르겠지만 – 전사한 군인과 간호사들, 고위 공직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새로이 세워진 묘비에 쓰여있는 제나 맥켈런과 베이커 맥켈런이라는 글자의 앞에서, 나는 조화 하나를 놓아두고는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사람은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남기고 갔던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런 걸 떠올리기엔 너무 울적했으니까.

        

        마치 내 귀에 대고 직접적으로 속삭이는 것처럼, 빗소리로 인해 시끄러웠음에도 로렌 씨의 말은 실로 귓가에 잘 들렸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좋은 사람이었겠지.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대개 그렇거든. 그리고…우리는 앞으로도 이곳에 수많은 사람을 묻어야만 할 거야.>”

        

       “<…그런가요.>”

        

       “<그리고 나는 네가 나중에 이곳에 묻히지 않았으면, 아니. 이곳에도 묻히지 못한 채 죽지 않기를 바라.>”

        

       “<네…?>”

        

        

        

        그녀는 내 반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제나 씨가 묻혀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몸을 굽힌 그녀는 비석을 한 번 손으로 만졌고, 심경을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한 번 지어보인 후 내게 덧붙였다.

        

        이 세계에 떨어진 지 그래도 한 달 가량의 시간이 들었고, 그동안 수많은 사람과 부대낀 터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땐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 문장들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런 위로도 위안도 되지 못했다.

        

        

        

       “<리전 그 사람한테 진즉 이야기는 들었지만…너라면 더욱 잘 알 텐데. 이름은 같이 새겨져있지만, 베이커 병장은 이곳에 함께 나란히 묻히지 못했어.>”

        

       “<….>”

        

       “<비석에 적힌 이름은 많지만, 이곳에 묻혀있는 이들 중에서 몇 명이 실제로 관에 실제로 묻혀있을까. 오메가 바이러스 사태는 명예로운 죽음이란 개념을 얼마나 더 훼손해야 끝을 낼 수 있을까?>”

        

       “<…그건.>”

        

        

        

        로렌 씨는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나 역시 그쪽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고, 그녀는 아직 아무런 비석도 꽂혀있지 않은 잔디밭을 눈으로 훑었다. 얼마 전까지도 호수 바닥이었기에 잔디는 부자연스럽게 자라, 아니, 꽂혀있었다.

        

        계속해서 말이 이어진다.

        

        

        

       “<저 구역은 작전 중, 그리고 사태 해결 중 순직한 제1차 투입 요원들의 무덤이 모여있게 될 구역이지. 저 자리에 아직 아무런 비석도 세워지지 않은 이유는 아무도 죽지 않아서가 아니야.>”

        

       “<…그러면요?>”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사망자와 생존자의 집계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내 주요한 업무 중 하나는 그들을 훈련시키고 투입 장소를 결정하는 거다.>”

        

        

        

        …이런 말을 내게 해주는 이유가 뭘까. 아니. 이런 말을 내가 들어도 될까.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건…모종의 이유가 있기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로렌 씨의 말을 얌전히 듣고만 있었다. 사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놀라운 점이 있다면, 이 분은 그 말을 무척이나…담담하게 내뱉고 있었다. 초연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수많은 슬픔을 거치며 그런 부분조차 닳아 없어진 것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로렌 씨는 과연 이곳까지 오기 위해, 그리고 오면서 무슨 일을 겪었을까. 

        

        

        깊게, 그리고 가냘프게 숨을 토해내던 그녀가 덧붙였다.

        

        

        

       “<비가 오고 있어, 꼬맹이. 눈이 아니라. 그리고 네 복장은 너를 처음 보았을 때보다도 훨씬 간소해졌지.>”

        

       “<그렇네요.>”

        

       “<센트럴 파크 외부에서 벌어지는 교전의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고, 브루클린은 폐허가 있었지. 사람들이 점차 겨울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 거야. 억눌려있던 사람의 본능이 폭발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그러면, 로렌 씨는 제가 군인이 되길 바라는 건가요?>”

        

       “<그 이상이지.>”

        

        

        

        그 이상이라니.

        

        하지만 나는 그 즈음에서 이 분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어렴풋하게 눈치챘다. 특수부대원. 다르게 말하면…오퍼레이터. 풀어서 설명하면 특수부대의 작전투입요원을 뜻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기대감이나 두려움보다는 의아함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현 시점의 나는, 이런 몸이 되어버린 나는 가능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체력도 힘도 전부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 정도만으로 가능한가?

        

        그리고….

        

        

        

       ‘…내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남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을까.

        

        이곳에 떨어진 이후로 절체절명의 순간 남을 도와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브루클린을 탈출할 때 제107헌병중대를 위해 신나게 탄통을 날랐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가 말하는 것은 그런 체력과 담력만 있으면 되는 일을 아득히 뛰어넘는 부류의 것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이자 최전선에서 스스로의 판단만으로 앞을 헤쳐나가야만 한단 소리였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된다고 하면 너무 늦지 않을까. 한 명의 민간인을 부대원으로 바꾸기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고 들었으니까.

        

        내가 아무런 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단순히 흥미 위주로 알고 있던 지식이었으니.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는 법이다.

        

        

        처음 이곳에 올 때, 그리고 묘비 앞에 섰을 때 느꼈던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은 진즉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쐐기를 박았다.

        

        

        

       “<내게 배운다면 적어도 어디 가서 객사하지는 않게끔 도와주지. 하지만 만약 수락한다면 그 이상을 해내야만 해. 그것이 센트럴 파크가 너를, 그리고 나를 부른 이유거든.>”

        

        

        

        그 순간, 그녀는 왼손 손목을 걷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마지막에 봤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기이한 형태의 시계 하나가,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뻗어나간 빛이 손목을 잠식하고 있었다. 단순히 강한 빛이 나오는 것은 아닌 듯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덧붙였다.

        

        

        

       “<프로토타입 이카루스 기어. 두 명의 대통령을 레임덕에 빠뜨리고, 한 명을 탄핵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물건이지. 모든 악순환을 끊고, 모든 실패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장치야.>”

        

       “<그걸, 로렌 씨가 끼고 있다는 건, 저도….>”

        

       “<…이제 와서 말하긴 뭐하지만, 눈치가 참 빠르구나. 난 그런 사람이 싫지 않아.>”

        

        

        

        그런가.

        

        그제야 모든 것들이 이해가 간다. 센트럴 파크가 공간을 낭비하면서까지 지원을 준 것도, 우수한 인력인 일리치 젠슨 요원을 나를 전담하기 위해 붙여준 것도, 수많은 검사를 무료로 받게 해준 이유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들은 생체실험을 위해 나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내 몸에 혹시나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부른 것도 아니었다.

        

        쓰러지고 무너진 미국을 다시금 세우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을 전부 때려부수는 창끝을 만들기 위해…그 과정에서 존재하는 모든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나를….

        

        내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제가 만약 거절하게 되면 어떻게 되죠?>”

        

       “<아무런 일도 없어. 단지…이번 일에 대해 평생 철저하게 함구해야만 한다는 계약서에 사인하고,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센트럴 파크에 있게 되겠지. 위의 친구들은 네가…다른 곳으로 넘어가서 맨해튼을 적대하는 일을 편집증적으로 막으려 하거든.>”

        

       “<그치만 저는 힘이 좀 강하다는 것 이외에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볼 뿐이니.>”

        

        

        

        …역시, 그렇겠지.

        

        나는 로렌 씨의 팔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도 분명히 알고 있겠지. 내가 이곳에서 바로 대답을 줄 수 있지는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말이다.

        

        주변을 메운 우레와도 같은 빗소리조차, 몸을 두들기는 진동조차, 깊게 침잠해버린 나의 정신을, 그리고 고민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아마 로렌 씨는 내가 심사숙고한 후 나중에 대답하는 걸 기대할 터.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만, 그 순간 나는…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만약 수락하면요?>”

        

       “<글쎄. 확실하진 않겠지만…언제 끝날지조차 알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이 너를 기다리고 있겠지. 너는 사람을 죽이게 될 거야.>”

        

       “<…그렇겠죠.>”

        

       “<그리고, 우리는 적들이 흘린 피를 잉크 삼아 미국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게 될 거란다.>”

        

        

        

        일절의 가감없는 사실을 이렇게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을 죽인다. 지난 번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하지만 이번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면…나는 자의로 사람을 죽이게 되겠지. 물론 이유는 비슷하겠지만.

        

        

        …저 말에 설득당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남의 말 한 마디에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할 정도로 자기 주관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그런 말을 꺼낸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내 주관을 다시금 기억해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가깝겠지.

        

        그리고 나는 지난 번 브루클린에서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 기회가 왔으면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런 것도 없었으니까.

        

        

        

       ‘…안주하지 않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

        

        

        

        모든 철학적 아젠다가 무너지고 각자도생이 당연시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실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아닐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그녀는 입가에 의미모를 미소를 조심스럽게 지어보였다. 마치 방금 자신이 던진 말에 아무런 미련을 가지지 않는 것 같은 반응이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두 개의 대답을 준비하는 걸 잊지 마렴. 다른 하나는 뭔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로렌 씨는 그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는 몇 분이 걸렸고, 나는 여전히 제나 씨의 묘지 앞에 선 채, 내가 무슨 대답을 내려야만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지만…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답은 정해졌고, 나는 몇 분 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틀 후.

        

        나는 로렌 씨가 남기고 간 두 개의 질문에 답했고, 그녀는 수상쩍은 미소와 함께 나를 환영해주었다.

        

        사람의 시체 위에서 싹이 움트는 끔찍한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망할, 끔찍하게 아픈데…여긴 도대체 어디야.>”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걸. 변이자들은 인간에 비해 혈압이 높아서 상처를 입으면 실혈사할 가능성이 높거든. 궁금해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지만, 이곳은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고.>”

        

       “<…뭐?>”

        

       “<올리비아 닉스 로렐라이. 계급은 상사(First Sergeant)…공군은 준사관이 없나보네. 제24특수전술대대 소속 이글 팀의 최선임 항공구조사(PJ). 변이자 판정은 1월 4일…이쪽이랑 똑같나.>”

        

        

        

        센트럴 파크 HQ 출입제한구역, 중환자실.

        

        그 중에서도 바이러스로 인한 신체적 손상을 위한 병실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큰 부상을 입은 탓에 급하게 실려오거나 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별도의 집중치료실 내부.

        

        바이러스 병동에 비하면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공간 안, 병원 침대 위에서 이제서야 눈을 힘겹게 뜬 부엉이를 닮은 여성이 힘겹게 한 마디씩을 토해내고, 그것을 다른 누군가가 받는다.

        

        로렌티나 C. 브레너. 현재 센트럴 파크의 현장작전책임자이자 동시에 센트럴 파크에서 단 두 명, 아니, 이제는 세 명밖에 없는 알파급 변이자 중 한 명이었다.

        

        그녀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계급상으로는 이쪽이 CWO-2. 2호준위장이니 편하게 말할게. 반가워. 이쪽은 로렌. 태스크포스 블루, 골드 스쿼드론 알파 팀 작전팀장이었고…그쪽보다 몇 주 정도 먼저 왔지.>”

        

       “<…하. 순간 스트립 클럽에서 깨어난 줄 알았는데.>”

        

       “<눈 뜨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라니, 기운도 좋아라. 아무튼 그쪽이랑 같이 온 이글 팀 세 명은 피로 이외는 큰 부상은 없지만, 집중치료실까지 부를 수는 없어. 그 점은 명심하길 바라.>”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윽, 배, 배가…손가락이 안 움직여, 진통제 좀 더….>”

        

        

        

        그에 로렌티나는 군말없이 링거 한 쪽의 버튼을 눌렀다.

        

        몇 분 가량을 끙끙대던 올리비아는 이내 작게 한숨을 토해냈다. 진통제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며 배에 입은 총상이 주는 고통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가 반쯤 비몽사몽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어떻게든 약기운에서 버티겠다는 목소리였다.

        

        

        

       “<망할, 분에 넘치는 몸이라, 좀 살살 다루려고 했더니…벌써부터 끔찍한 흉터가 나게 생겼어, 으….>”

        

       “<그건 걱정하지 말고…롱아일랜드 끄트머리에 있는 제106항공구조단의 위탁교육을 갔다가, 거기서 비상상황에 돌입한 후 이런저런 작전 진행 도중 총상을 입고 실려왔다라. 꽤 다이나믹하네.>”

        

       “<…그쪽은?>”

        

       “<그건 나중에 몸이 좀 성해지면 말하는 걸로 하고…일단 이 자리에서 미리 말해두자면, 현재 귀관 및 이글 팀의 지휘권은 센트럴 파크로 이전됐어. 그 점을 유의해.>”

        

       “<뭐…?>”

        

        

        

        그와 동시에 로렌티나는 주머니에서 종이조각 하나를 꺼내서 아주 자연스럽게 펼쳤다가 손가락을 튕긴다. 플래시 페이퍼였다. 푸화악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조각이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 올리비아의 눈이 찌푸려졌다. 종이조각에 적힌 내용 – 미 대통령이 현재 센트럴 파크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로렌티나가 그것을 왜 태웠는지도 눈치챘다.

        

        아무런 것도 못 보았다는 듯, 올리비아의 입이 열린다.

        

        

        

       “<…이해했어. 당분간은, 아니, 아마 사태가 끝날 때까지는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나.>”

        

       “<좋아. 물론 그것 말고도 별도의 이유가 있지. 질문은 마지막에 받을 테니 일단 들어. …현 시간부로 대통령에 의해 발효된 훈령 51호에 의거, 알파급 변이자의 소속이 바뀔 예정이야.

        

        구체적으로는 국토안보부 하위 기관인 이카루스ICARUS 소속으로 바뀌고, 해당 기관 소속 오퍼레이터는 미국의 안전한 재건을 방해하는 모든 적성 세력을 합법적으로 제거할 수 있어.

        

        이를 위해 이카루스는 모든 산하 오퍼레이터, 그 중에서도 알파급 변이자들에게 프로토타입 이카루스 기어를 지급하고, 이를 통해 전투능력의 증대를 꾀하고 있지. 이상, 질문?>”

        

       “<…그렇다면 내 팀원들은?>”

        

       “<이카루스 기어 실전 데이터의 확보 이후, 티어 1 소속 대원들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이카루스 오퍼레이터 확보가 있을 예정이야.>”

        

        

        

        다음 순간 이어지는 큭큭거리는 소리.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왜 그쪽 손목이 반짝반짝거리는지 알겠네. 이젠 손목에 유사 폭탄을 매달아야 하나?>”

        

       “<놀랍게도 이 물건이 방출하고 있는 에너지는 현재 실시간으로 내 손목을 파괴하고 있지만, 동시에 재생시키고 있지. 출력 균형점이 맞춰지면 흉터 재생은 일도 아니게 될 걸.>”

        

       “<…그건 좀 메리트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 몸이 제법 마음에 들었나봐?>”

        

       “<이 몸뚱아리 덕분에 죽을 뻔한 동료들을 몇 번을 살렸는데. 성별이 바뀐 것 정도야 사소한 문제점이지. 너도 충분히 체감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잖아?>”

        

       “<물론.>”

        

        

        

        그 말대로였다.

        

        성별이 바뀐 것은 실로 사소한 문제였다. 외형이 매력적으로 바뀌고 식사량이 폭증한 것은 그저 신경쓰이는 문제일 뿐이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곱절로 늘어난 신체능력을 얻게 되었다.

        

        남들보다도 압도적인 반응신경으로,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온 적군이 아군을 쏘기 전 즉각 사살한다.

        

        남들보다도 압도적인 신체능력으로, 부상을 입거나 한 아군을 순식간에 뒤로 호송한다.

        

        남들보다도 압도적인 체력으로, 기나긴 전투로 인해 아군이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을 때조차 원활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고, 총알이 다 떨어져도 손쉽게 적을 으깨버릴 수 있었다.

        

        어디 그 뿐이랴. 남들이 반쯤 졸면서 안전지대로 이동하는 동안, 일반적인 사람이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육감으로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공격에도 능숙하게 방어하고 퇴각 계획을 짠다.

        

        

        로렌티나도, 올리비아도.

        

        전부 겪었던 일이었다.

        

        그 덕분에 사람이 하루에 수천 명씩 무궁무진한 이유로 죽어나가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자신을, 아군을 살릴 수 있었다.

        

        싫어할 이유가 없는 몸이었고, 거기에 더불어 아름다워진 외모는 중립적인 민간인들을 손쉽게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 그 자체였다.

        

        스스로를 싫어할 이유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자신의 변화된 몸을 그 무엇보다도 호의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밖에 남지 않을 즈음이 바로 현 시점이었다.

        

        

        입가에 작은 미소를 건 로렌티나가 덧붙였다.

        

        

        

       “<아무튼, 센트럴 파크에 온 것을 환영하고…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 네가 기절해있는 동안 의료진이 판단하길, 앞으로 길어봐야 일주일도 안 지나서 충분히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한시바삐 일손을 덜어줬으면 좋겠네.>”

        

       “<젠장, 어디 더 아픈 곳이 없나 모르겠는데. 아쉬워 죽겠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지, 올리비아.>”

        

       “<그래…이쪽도 마찬가지라고.>”

        

        

        

        두 가냘픈 손이 뻗어지고, 서로를 붙잡는다.

        

        센트럴 파크의 알파급 변이자 수가 공식적으로 셋이 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이는 퍼즐 조각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