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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7

        

       중국에 가는 것을 멈춰달라.

         

       박진성은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아슈토쉬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그저 탐색에 지나지 않았던 아까와는 명확히 다른 어떠한 의미를 품은 시선을 보내면서.

         

       “구도자여. 나는 알고 있소. 어찌하여 중국에 방문하려 하는 것인지. 나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지….”

         

       아슈토쉬는 그러한 진성의 시선을 공허한 눈으로 받아들였다.

       다 타서 재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없는, 마음의 창 너머를 읽지 못하게 방어하는 뿌연 재들로 가득한 왼쪽 눈으로 말이다.

         

       그 켜켜이 쌓인 잿더미는 너무나도 두터워서.

       그래서 그것은 마음의 창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방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른쪽 눈으로 보기에는 또 편한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흔들림이 없이 맑은 두 눈은 다른 의미로 그 뜻을 읽기가 힘들었으니.

         

       마치 부동심(不動心)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흔들림이 없는 눈동자는 그 뜻을 쉬이 알아채기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눈빛뿐만이 아니다.

         

       몸 전체가.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신호를 보내야 할 그의 몸 전체가 그에게 뜻을 읽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노쇠한 몸뚱이의 고장으로.

       어떤 것은 흔들림이 없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며.

       어떤 것은 오랜 정신 수양 끝에 다다른 경지로.

         

       아슈토쉬는 진성에게 마음을 읽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아슈토쉬 역시 마찬가지.

         

       그 역시 오른쪽 눈으로 진성의 속을 읽어보려 했지만,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충격적인 말을 하였음에도 그 반응이 모호하기 짝이 없었으니.

       밤의 괴물이 자아내는 신기루도 이것보다는 명확할 것만 같았다.

       옛적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평가한다는 고사처럼, 그 본질에는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그 실체에는 애매하게 접하게 되어 왜곡된 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 혹은 일부러 왜곡된 상을 받아들이게 만들어 정보를 오염시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박진성이라는 주술사의 태도는 다른 의미에서의 부동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것은 다이아몬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기를 부동심이란 단단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갈대처럼 휘어지는 것도 아니고, 저 드넓은 대해(大海)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않는 것.

       그리하여 그것에 지배되고 물들지 않는 것.

       그것을 부동심이라 하였다.

         

       하지만 어찌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가 그 길 하나만 있을 수 있을까?

         

       아슈토쉬는 정신을 탐험하면서 자신 나름의 부동심을 얻었다.

       그 수많은 정신, 기억, 정보에서 오염되지 않고 자신을 유지할 방법을 익혔고, 그 방법을 통하여 지금도 정신을 오가며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하지만…그런 그조차도 박진성의 부동심은 참으로 묘하다 할만한 것인지라.

         

       저것은 어쩌면 불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지.

       불이 아무리 형상을 바꾼다고 할지라도, 그 세기가 줄어들고 늘어나기를 반복하며 형상이 변화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불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

       장작이 아무리 들어간다고 한들 그 본질을 해할 수는 없음이며, 방해한다고 쳐도 꺼지지를 아니하니 영원한 것이라.

         

       그래.

       아까 하였던 말처럼, 저 주술사의 불꽃은 상징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그 상징은 곧 저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니.

       그 불꽃은 어쩌면 그의 삶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꽃.

       무언가를 태우는 그것.

       먹이를 끊임없이 먹으며 열과 빛을 발하는 현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흠모하였던,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를 담고 흐르는 빛.

       인간의 역사와 함께 영원할 바로 그 원소….

         

       어쩌면 그것은 불꽃이 가진 자기파괴의 성질마저도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한껏 불태웠다가 꺼져버리는 그러한 성질마저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 박진성이라는 사람은 주술이라는 능력과 참으로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겠지.

       어쩌면 그것은 운명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늘이 내린, 신적 존재가 내린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한 속박이며 운명.

         

       “그거 아시오? 불꽃의 성질을.”

         

       그렇기에 더더욱 아슈토쉬는 이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

         

       “불꽃은 생명을 태우지만, 생명과 아주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을.”

         

       그는 캠핑카의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이제는 빛조차 보지 못하게 된 왼쪽 눈으로 제 눈에 태양을 담았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 따스함을 조금이나마 담기 위해서.

       불꽃의 궁극이며 그를 태어나게 만든 어머니와 같은 별.

       태양의 그 은총을 눈으로나마 마음에 전달하기 위하여.

         

       “불꽃으로 이루어진 저 태양은 이 별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자그마한 별에 사는 우리는. 식물과 동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그마한 미물까지 우리는 모두 저 태양의 자식이나 다름이 없을지도 모르오.”

         

       “태양의 자식이라.”

         

       박진성 역시 아슈토쉬를 따라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하였지요. 그렇다면 바다에서 우리가 태어난 것이니, 우리가 태양의 자식이라 하는 것은 맞지 않는 듯합니다.”

         

       “허허허.”

         

       아슈토쉬는 진성의 말에 웃었다.

         

       “그 역시 맞는 말이오. 우리는 바다의 자손이기도, 태양의 자손이기도, 우주의 아이기도 하지.”

         

       그리고

         

       “별의 아이이기도 하고.”

         

       그는 듬성듬성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불교에서 말하지. 우리는 우주의 아이이며, 이 세상 나무들과 하늘의 별들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라고.”

         

       “….”

         

       “우주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일 수도, 몸일 수도, 영혼일 수도 있는 법. 그렇다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생명이 어찌 우주 일부가 아니라 할 수 있겠소?”

         

       사람의 몸은 우주를 닮았다.

       사람의 정신은 우주 그 자체다.

       사람의 영혼은 우주와 함께 존재한다.

         

       “이보시오, 구도자. 그렇기에 나는 자네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오.”

         

       사람은 우주와 함께 태어난다.

       그리고 우주와 함께 죽어간다.

         

       존재한다 한들 인식할 수 없다면 그것이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우주를 인식하는 순간 우주 또한 그 순간부터 존재하게 되는 것이니.

       사람의 정신은 참으로 우주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이치 속에서 우리는 인지하였기에 비로소 세상에 간섭할 수 있게 됨을 깨달았으니.

         

       아. 무겁고도 무겁다.

       그 의무가, 권리가 너무나 무겁고도 무겁다….

         

       그렇지 않은가.

       구도자여.

         

       “모른다면 이리 막을 일도 없었을 것을, 이미 보아버렸으니 내 입에 담을 수밖에.”

         

       그렇기에 말한다.

         

       “구도자여. 나는 보았소. 등불이 어렴풋이 비치는 그 상을, 그 그림자를 나는 보았소. 이것은 분명히 와헤구루(ਵਾਹਿਗੁਰੂ)의 인도라 할 수 있겠지….”

         

       나의 미약한 등불로는 구도자의 일부조차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람이 걸어가면 그 흔적은 남는 법.

       흙바닥을 걸어가면 흙이 쓸릴 것이오.

       진흙 위를 걷는다면 발자국이 파이고.

       눈 위를 걷는다면 단단하게 뭉쳐 발자국의 형상을 남긴다.

       물웅덩이를 걷는다면 파문이 일 것이오.

       나무 위를 걷는다면 나뭇가지가 휘어지고 그 이파리가 흔들릴 것이니.

         

       이는 사람이 세상에 독존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오,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그리하여 그 이치 속에 본 것을 말한다.

         

       “구도자가 중국에 간다면 불꽃이 피어오르게 될 것이오. 아주 강렬한 불꽃이.”

         

       그리고 그 파문의 결과는 그가 막고 싶은 것이었는지라.

       와헤구루(ਵਾਹਿਗੁਰੂ)께서 이것을 막으라고 그에게 그 편린을 보여준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는지라.

         

       그래서 입에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불꽃은 세상을 태울 수 있는 또 다른 불씨가 될 수도 있으니. 그러니 내가 이렇게 말을 하겠소. 구도자.”

         

       박진성은 아슈토쉬의 말에 방긋 웃음을 지었다.

         

       “인간은 참으로 시야가 짧아 하나의 단면을 본다면 그것으로밖에 판단하지 못하게 되는 법.”

         

       우주의 깜깜한 모습을 보고 어둠밖에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별들의 빛을 보고 빛이 가득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별과 별 사이의 천문학적인 거리를 보고 우주는 한없이 비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타오르는 별을 보고 불꽃이 가득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너무나도 고요한 모습에 소리가 없고 공허하며 다 식어버린 차가움만이 가득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어찌 우주를 하나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 모든 것이 바로 우주다.

       우주는 그 모든 것을 합친 것이며, 우리의 인식 밖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박진성 역시 아슈토쉬에게 말한다.

         

       “사람이 태양의 자식인 것처럼, 불꽃의 자식인 것처럼, 그와 함께 바다의 자식일 수도 있는 것처럼. 그 편린으로 본 것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이요, 한낱 눈 감았다가 뜨면 사라져버릴 환상과도 같은 허무함을 품은 것이니. 그것을 어찌 그리 확신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꽃과 바다는 어느 면에서는 참으로 닮았으니.

       넘실넘실 움직이는 불꽃과 찰랑이는 파도는 부서졌다가도 합쳐지며 그렇게 자신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중국에 피어나는 것은 불꽃이 아니라 파도일 수도 있는 법이며.

       불씨가 아니라 물방울일 수도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알고 있소. 내 말에 쉬이 설득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 짐작하고 있었지.”

         

       아슈토쉬는 중국에 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방긋 웃는 그의 얼굴을 굳게 만들 한 마디를 내뱉었다.

         

       “구도자여. 불로불사의 단서를 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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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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