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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9

    <679 – 무책임한 쾌락(27)>

     

    지금껏 오크노디가 벌이던 모든 수상한 행동은 한 가지 마법 같은 논리로 합리화되었다.

     

    그 이사장의 딸이니까 뭐든 배웠겠지.

    아무튼 재단이 나빠.

     

    그런데 이번만큼은 결이 달라졌다.

     

    “이사장이 마왕군 사천왕의 정체와 그들의 소재지도 모두 꿰뚫어보고 있습니까?”

    “아무리 마왕군과의 암묵적인 교류가 있었다고 해도 그 정도로 내밀한 패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재단으로 치면 이사장 휘하 직속삼장의 정체와 행적을 마왕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집사장은 파시블 예프의 물음을 정색하고 부정했다.

     

    “만일 정말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언제 마왕의 습격을 받아 직속삼장으로서의 신분과 목숨, 부하들과 부대의 존속이 위태로울 거라는 생각을 매 출정마다 떠올리며 제대로 된 임무수행도 못 할 거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런데 그런 일을 우리 다크프린세스께서는 숨 쉬듯이 간단히 했다는 말이군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두 번?”

    “아. 첫 번째는 기프트 아카데미 대감옥의 대죄인들을 탈옥시키고자 잠입했던 마왕군 사천왕 <엘니뇨>입니다. 침입을 감지한 다크프린세스가 다른 성녀들의 성검을 빌려 숨통을 끊었다는 정보가 저희 지부에 정식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제가 알려주고 사천왕 격살정보랑 데빌아이 눈알젤리랑 바꿔먹었어요!”

     

    엣헴. 나 잘했지?

    저를 칭찬하는 줄 알고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펴며 자랑스러워하는 오크노디.

    아무도 그녀를 칭찬한 것이 아니었기에 집사장의 시름은 더 깊어졌다.

     

    ‘도무지 이 아이의 정보력의 바닥을 가늠할 수가 없군. 이사장의 정보인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서 이런 정보를 입수했지? 설마 재단에 나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정보부가 존재하나? 마왕군의 내부정보를 파헤치는 마인네트워크가 있는 건가? 그걸 내게 감추는 이유와 목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으나 답은 보이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답이었으니까.

    결국 그는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임시답안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중간계의 상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기이막측함. 분신인 다크노디가 암흑성녀이듯이 원본인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 또한 <정령>의 영육을 빚어 만들어낸 존재라면 저 불가사의함도 조금은 납득이 가는군. 이계의 신비라면 무엇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

     

    적어도 지금 당장은 다크프린세스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주해야 한다.

    재단과 결사가 갈라설 작정이 아니고서야 그녀와 척을 질 수는 없다.

     

    “다크프린세스의 발언은 <정보지원>이라고 판단하지. 다른 간부들은 어떤 지원을 할 것인가. 신중히 생각해서 답하라. 이 기회에 뿌리째로 박멸하지 않으면 제 2의 환락의 도시가 나타나서 너희가 손 쓸 새도 없는 머나먼 땅에서 새로운 마왕군과 마계령이 탄생할 수도 있으니까.”

     

    다크노디가 망토망토에 손을 넣더니 작은 마나포션을 한 병 꺼냈다.

    뽕!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개봉된 포션을 무표정한 얼굴로 제 입에 콸콸 들이부은 다크노디가 드물게도 표정을 구기며 괴로움을 드러냈다.

     

    “맛없어.”

    “헉! 다크노디야… 너 설마 <쓰레기포션> 시리즈를 제작한 거야?”

    “맛없는 재료일수록 회복량은 더 많아져.”

    “아무리 그래도 포션은 자주 마시는 건데 딸기맛 포도맛 오렌지맛으로 맞춰야지!”

     

    모든 감각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무감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라도 포션이 필요할 정도로 위급한 전투상황에서 무감을 쓸 수는 없는 노릇!

    짬이 얼만데 맛없는 포션을 마셔야겠냐는 이유로 고인물들은 심혈을 기울인 배합 끝에 각 포션의 색깔과 어울리는 맛을 내는데 성공했다.

     

    빨간 체력포션은 딸기맛.

    파란 마나포션은 포도맛.

    주황 기력포션은 오렌지맛.

     

    다크노디는 그런 고인물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냥 회복량을 최대치로 올려주는, 다 합쳐서 쓰레기보다 더한 맛이 나는 물약을 제조해서 마셨다.

    성능에 미쳐서 감각차단과는 다른 의미로 미각을 느끼지 못하게 될 포션을 만든 것이다.

     

    “내거 줄게. 그런 지지는 버려!”

    “싫어.”

     

    본체와 분신이 옥신각신하는 와중에도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크노디가 마법을 사용하겠거니 생각했다.

    마나포션을 마셨으니 마법을 쓸 거라는 추론에는 강력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었다.

    마법을 쓰지도 않을 거면서 비싼 돈 들여 만든 마나포션을 마시겠냐는 계산도 한몫했다.

     

    그러나 오크노디건 다크노디건 고인물들은 넘어져도 일어서면서 재료를 채집하고 벽에 기대도 벽 안에 쑥 집어넣은 손이 옆방 친구 기숙사를 헤집으며 재료를 빼돌리는 재료채집의 달인!

    다크노디는 마법을 쓰지 않아도 마나포션을 마실 수 있는 고인물수저였다.

     

    베에에.

     

    그러나 같은 고인물이라도 경악할만한 행동은 있다.

    채신머리없이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혀를 쭉 빼고 빈 포션병에 침을 흘려넣는 다크노디의 행동이 그러했다.

     

    “으앙! 내 얼굴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시끄러. 자꾸 말 걸고 방해하지 마.”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마법사의 신체는 강력한 마나촉매야. 손톱이나 머리카락도 그렇지만 타액은 특히나 효과가 좋다는 건 알고 있잖아.”

    “그럼 머리카락을 잘라 제발!”

    “싫어. 난 이 머리가 마음에 들었어. 근력해병처럼 대머리는 싫어.”

    “!!”

     

    근육이 너무 강해서 모근마저 닫혀버리는 비운의 고인물 캐릭터 <근력 올인한방캐릭이좋아 해병>!

    오크노디의 몸으로 활동한 기억과 고인물의 플레이 지식을 겸비한 다크노디의 처음으로 성능 대신 룩, 외형을 중시하는 태도에 오크노디는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까는 룩딸을 챙기라고 했었지. 설마 예의상 그냥 해본 소리였던 거야?”

    “아니야!”

    “그럼 머리카락보단 침이 낫지?”

    “그, 그래도… 머리를 조금만 자르면 되잖아!”

    “싫어. 난 지금 길이가 좋아. 장비템이야 뭘 입어도 상관없지만 내 몸은 아낄 거야. 언젠가 내가 본신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 육신은 내가 너와 같은 존재라는 강력한 증거니까.”

     

    이마에 뱀피의 뿔을 달고 등 뒤에 날개를, 엉덩이골에 꼬리를 드리우지만 않았다면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를 주장이었다.

    아무튼 자신만의 논리로 오크노디를 침묵시키고 <다크노디의 암흑마력포션>을 제조해낸 다크노디.

    그녀가 병을 집사장에게 내밀었다.

     

    “…이걸 어쩌라는 거냐. 설마 마시라는 거냐?”

     

    다크노디 본인이 지닌 암흑마나도 영구분신 제작시점의 오크노디의 마나량과 동일하게 시작했으니, 마나의 순도도 그렇고 양도 상당히 많기는 하다.

    그렇다고 이걸 마시라는 목적으로 주었다면 제조과정을 다 본 입장에서 집사장은 이 포션을 마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미쳤어? 이걸 왜 마셔. 환락의 도시 시장을 쫓아내면서 열었던 차원문의 기운을 체내에 흡수했다가 여기에 담아낸 건데.”

    “…”

    “병에 대고 <마나탐지>를 걸어서 느껴지는 이계를 특정해내고 그곳의 기운을 드러내면 권속의 기척을 감지한 마왕군 사천왕 레드 타이드가 반응을 보일 테니까 탐지의 목적으로 준 거야.”

     

    다크노디가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집사장을 무언으로 매도하였다.

    집사장과 같은 생각을 했던 간부들은 열심히 시선을 피하며 덩달아 매도당하는 기분에서 벗어나고자 애써야만 했다.

     

    “그래서 너희는 얼마나 잘난 걸 주려고 그렇게 한심하게 여기는 눈으로 쳐다봤는데?”

     

    다크노디가 너네 잘 걸렸다며 단단히 벼르는 얼굴로 쳐다보니 갈릭 후라이드치킨과 파시블 예프가 어색한 얼굴로 웃는 소리를 흘렸다.

    다크노디의 표정은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고, 간부 짬에서 밀린 갈릭 후라이드치킨이 먼저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인력지원은 이미 한계라서 진짜 더 보낼 수가 없는데… 푸드트럭 보내드려도 될까요?”

    “……”

    “마늘치킨 진짜 맛있거든요. 에잇, 인심 썼다. 제가 아는 치킨 다 만들어드립니다. 가문의 기본레시피 후라이드치킨부터 양념치킨, 간장치킨, 삼색치킨까지!”

     

    집사장이 간부의 품격이라고는 쥐뿔도 느껴지지 않는 한심한 녀석에게 무어라 한 소리 하려다가 갈릭 후라이드치킨의 겁에 질린 쥐새끼 같은 낯짝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더 쥐어짜려 해봤자 나올 것도 없겠군. 푸드트럭은 됐다. 대신 계약서나 한 장 써라.”

    “이게 무슨 계약서입니까? 글씨를 하나도 읽을 수가 없는데요.”

     

    뒤에서 흘끔거리던 다크노디가 대놓고 풉 하고 갈릭을 비웃었다.

     

    “바보. 그렇게 남을 업신여기더니 한다는 계약 수준 하고는.”

    “…진짜 이거 무슨 계약서입니까?!”

     

    다크노디는 저 계약서의 정체가 갑이 사망에 준하는 타격을 입었을 때, 을이 대신 피해를 받는 대리사망의 계약임을 알려주는 편이 갈릭을 더 겁에 질리게 만들지, 안 알려주어서 불안과 공포 속에 살아가게 만드는 편이 더 겁에 질리게 만들지 고민 끝에 그냥 안 알려주기로 결정했다.

    그 꼴을 본 파시블 예프는 집사장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계약서를 쓰느니 무조건 대가를 바쳐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제 전속호위의 1회용 사용권은 어떠십니까?”

    “…!”

    “이것 보십시오. 호위도 기꺼이 간부를 위해 희생하고 싶어서 거부의 말 한마디 않는 모습을.”

     

    여자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에 입도 뻥끗 할 수 없었던 싱이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당장 그러겠다는 것처럼 파시블 예프를 노려봤다.

     

    “여색에는 관심 없다.”

    “전투력으로도 나름 쓸만할 겁니다. 영역 4단계를 깨우친 집사급 실력자니 말입니다.”

    “이계원정에 한 번 데려갈 정도는 되겠군. 나쁘지 않아. 그 제안, 받아두지.”

     

    다른 의미로 위급함을 느낀 싱이 매서운 눈초리로 파시블 예프를 노려보았다.

    간부들의 의심이고 자시고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다 죽어서 마음 편하게 해골 상태로 당당하게 간부회의에 입성한 파시블 예프는 얼굴 가죽도 없는 해골답게 뻔뻔하게 격려의 한마디까지 남겼다.

     

    “아. 이계에 가기 열흘 전부터는 최후의 만찬이랍시고 육류를 섭취하는 일은 자제하십시오. 고기냄새가 나면 정령한테 잡아먹히기 딱 좋으니.”

    “…”

    “서비스로 지금이라면 해골화의 주문이라도 걸어줄 수 있네만, 저처럼 해골이 되어보겠습니까?”

     

    어딘가의 해골교관이 떠오르는 제안을 싱은 매몰차게 고개를 돌리며 뿌리쳤다.

    그 모습을 본 집사장이 한마디 했다.

     

    “정말 앙칼진 호위로군. 검이나 좀 가르치면서 데리고 다니는 재미가 있겠어.”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악의가 빗발치는 간부회의

    후원 감사합니다. 난방을 1도 더 올릴 수 있게 된 테디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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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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