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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79

        

         

       사람의 숫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짧은 질문.

         

       평범한 사람이라면 저게 대체 무슨 의도로 한 질문인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품을 법한 그러한 말.

         

       하지만 아슈토쉬의 반응은 일반적인 이들의 것과는 달랐다.

         

       노란색의 눈동자를 움직여 진성을 바라보았으니까.

       그 눈동자 안에서 불꽃이 넘실거렸으니까.

       감정의 동요로 가둬두었던 불꽃이 춤을 추었으니까.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법이오.”

         

       “그렇습니까?”

         

       박진성은 웃음을 지었다.

         

       “불꽃의 현인이여. 사람의 목숨에 경중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허허. 사람의 목숨에 어찌 경중이 있을 수 있겠소? 사람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존중할만한 대상인 것을. 다만 존중받아야 하기에, 독립된 존재이기에 어떠한 일을 저질렀을 때의 책임은 분명히 져야 하는 것이니. 나를 포함하여 세상 모든 것은 소중하오.”

         

       모든 목숨은 소중하다….

         

       “모두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어떠한 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고,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어떠한 것도 사랑하지 않은 것과 같지요.”

         

       어떠한 것이 존재한다면 그 반대되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라.

       아슈토쉬의 말은 참으로 그러하였다.

         

       “그럼 다시 묻겠으니. 이보시오. 사람의 정신에 경중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가볍고 무거움은 앞서 말한 것과 같소.”

         

       “그렇다면 말입니다.”

         

       가치는 어떻습니까?

         

       “….”

         

       이어지는 박진성의 질문에 아슈토쉬는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은 답을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만물은 쓰임이 있는 것이라. 신께서는 쓸모없는 것을 창조하지 아니하셨다.”

         

       “….”

         

       “쓸모없는 것의 쓰임이라. 세상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라 하였으니.”

         

       “….”

         

       “이러한 말과 같이 세상 모든 것에는 쓰임이 있고, 그 가벼움과 무거움을 구분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하지만 말이다.

         

       “가치라는 참으로 주관적인 것이라. 누군가에게는 억만금을 주어도 모자랄 보물이 누군가에게는 줘도 안 가질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가치 역시 그러하지요.”

         

       유명한 디자이너와 보석 세공사가 힘을 합쳐 만든 대장장이용 망치가 있다고 해보자.

       그것은 필시 유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장식용으로는 차고 넘칠 것이며, 수집품으로서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대장장이에게조차 그것이 보물일까?

       그저 벽에 걸어두고 살펴볼 수밖에 없는 망치가.

       모루와 부딪치는 순간 장식은 산산조각이 나고, 금속을 제대로 두들기지도 못하고, 열에 견디지도 못하는 애물단지와 같지 않을까?

         

       가치란 그와 같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다른 주관적인 것.

         

       그렇기에 아슈토쉬에게 사람의 정신은 가치가 같지 않을 것이다.

       수도 없이 봐왔을 비슷한 심상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을 특별한 심상이 어찌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생소한 풍경에 사람은 감동하지요. 그리고 그 감동 속에서 사람은 경험이란 재산을 얻게 되니. 그것이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며, 생소한 문화를 보고 오기를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그 말이 맞소.”

         

       “그리고 사람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생소한 풍경이, 생소한 문화가 더더욱 늘어나게 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집단 무의식이란 사람의 숫자가 많을수록, 그 숫자에 비례해서 거대해지는 네트워크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묻겠습니다. 아슈토쉬 싱, 불꽃의 현인. 당신은.”

         

       “….”

         

       “무슨 근거로 내가 불로불사를 원한다고 확신하였습니까?”

         

       대체 어떠한 확신을 했길래, 불로불사를 재료로 삼아 나를 중국으로 들여보내지 않으려고 협상하려 한 것이냐?

         

       박진성은 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

       …

       …

         

       이어지는 침묵.

       공허한 시선의 얽힘.

       정적 속에서 들리는 장작이 탈 때 나는 것 같은 타닥거리는 소리.

         

       타닥, 타닥.

       잘도 탄다.

       불꽃을 튀기며, 불똥을 퍼뜨리며.

       장작 타는 소리 잘도 난다.

         

       귀로 들리는 것인가.

       눈으로 들리는 것인가?

         

       머리로 들리는 것일 수도.

       영혼으로 들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오감이 육감이 되고.

       육감이 칠감이 되고.

       그리고 그러한 소음 가득한 침묵 속에서.

         

       “그거 아시오?”

         

       아슈토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구도자여. 자네는. 당신은. 피 냄새가 너무 진해.”

         

       “허허허. 그러합니까?”

         

       “그리고 동시에, 피 냄새가 나지를 않지.”

         

       눈이.

       눈동자를 가리는 커튼이 걷어지기 시작한다.

       하얗게 변해버린 눈동자가 초점을 잡는 듯 움직이고, 희게 변해버린 막 사이에 있는 아주 자그마한 구멍 속에서 또 다른 시선이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은 김이 서려서 하얗게 변해버린 창문에 슬쩍 손가락을 가져다 대서 구멍을 만드는 것과 같았고, 서리가 끼고 얼어붙은 창문에 입김을 불어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구멍을 만드는 것과도 같았다.

         

       시선.

       한쪽 눈으로 보는 시선이 아닌, 두 눈으로 보는 시선이 진성의 얼굴에 어린다.

         

       “기이한 일이지. 이중으로 걷는 자가 상반된 운명을 살아가다가 합쳐졌다고 할지라도 자네와 같지 않았을 터인데, 모순되는 것이 함께하고 있소.”

         

       “그러합니까.”

         

       “이 사람은 자네가 추구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를 못하오. 아니, 가능할 리도 없지.”

         

       어찌 구도자의 정신을 엿볼 수가 있겠는가?

       정신세계를 활발히 돌아다니는 이 노구(老軀)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자의 정신을 어찌 추측이나 할 수가 있겠는가?

       모순을 한 몸에 담은 듯한.

       드러내는 듯 보이지만 위장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는 사람을 어찌 알 수 있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구도자의 목적은 그 행적이 대변하는 법. 그 행적이 말을 해주고 있소.”

         

       박진성의 행적.

         

       주술을 탐하고 좋아하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쓰고 실험하려 들지는 않았고.

       인맥을 만들고 권력과 접하려 하지만 그것을 수단 그 이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고.

       잔혹하고 냉혹한 손속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것을 굽히는 데에 큰 거부감이 없다.

         

       아슈토쉬는 이러한 진성의 행적을 보고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주 기나긴 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를, 높고 위험한 산을 오르려 준비하는 등산가를, 어떤 커다란 일을 해내기 위해 준비하는 야망 넘치는 사람을 말이다.

         

       그리고 오래 걷기 위해서는 기나긴 수명 역시 필요한 법이니.

         

       그리하여 아슈토쉬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자가 원하는 것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소?”

         

       “하하하하하.”

         

       박진성은 그의 말에 웃었다.

         

       “이거 참. 어찌 제가 중국으로 가면 사람이 죽을 것으로 생각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단서를 주신다면 저에게는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지요. 예,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그래, 기쁠 것이라….”

         

       아슈토쉬는 진성의 ‘기쁠 것이다.’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기쁠 것이다….

       참으로 묘한 말이 아닌가.

         

       고마운 것도 아니고, 기쁠 것이다…라.

         

       허허허.

         

       “저울의 균형이 맞았군.”

         

       그래.

       좋은 거래가 성사되려 하는데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로다….

         

       “다만 실망하지는 마시오. 단서라는 말처럼, 내가 아는 것은 보잘것없는 것이니까 말이오.”

         

       “괜찮습니다. 단서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소? 그럼…. 그래. 일단 그것의 단서가 어디 있는지부터 말해야겠지.”

         

       아슈토쉬는 앙상한 팔을 움직여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곤 눈을 감고 천천히 기억을 떠올렸다.

       정신세계를 탐험하면서 보았던 것들.

       거기서 모은 것들을 조각처럼 짜깁기해서 붙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극히 일부를 입에 담으니.

         

       “구도자여. 불로불사와 관련된 것은 전 세계에 퍼져 있소.”

         

       “흐음.”

         

       “그리고.”

         

       아슈토쉬는 욕심이 가득했던 어떤 이의 무의식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대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미국에 있소.”

         

         

         

         

        * * *

         

         

         

         

       박진성은 떠났다.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는지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허허. 단서가 마음에 들었나보구나….”

         

       그 환한 웃음이란.

       조난한 배의 선장이 북극성을 발견하였을 때 지을법한 그 웃음이란….

         

       하.

         

       “다만 그것 역시 진정한 목적은 아닐 것이다. 수단에 불과한 것일 터지만….”

         

       아슈토쉬가 보기에 그 기쁨은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은 아니었다.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훌륭한 도구를 얻게 되었을 때의 표정이었다.

       그래, 비유하자면 ‘역사에 남을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대장장이가, 어떤 철도 무른 진흙처럼 다룰 수 있는 훌륭한 망치의 위치를 알게 되었을 때 지을 법한 표정이라고 할까….

         

       “구도자여, 구도자여.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아슈토쉬는 박진성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지혜의 숲.’

         

       그는 오래전 스승께 들었던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세상 어딘가에는 지혜의 숲이라는 곳이 있어서, 그 숲의 중심부에는 온갖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보물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중심부로 향하기는 정말로 어려워서 수많은 이들이 그 숲에서 헤매게 되는데, 오랫동안 헤매게 된다면 사람이 아닌 괴물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슈토쉬는 스승에게 이렇게 물었다.

         

       「 스승님. 그런데 어째서 그 숲의 이름이 지식의 숲이 아니라 지혜의 숲입니까? 」

         

       그러자 그의 스승이 말했다.

         

       「 지혜 없는 지식은 괴물을 만들 뿐이며,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지혜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진정 그러한가?

       지식과 지혜가 함께해야 한다는 교훈만을 주는 이야기였던가?

         

       ‘아니지. 어쩌면 그 숲을 헤매지 않는 것이 지혜이기에, 그렇기에 그 숲의 이름이 지혜의 숲일지도 모른다.’

         

       현명한 자는 헛된 지식을 갈망하지 않으며, 헤매지도 않을 것이라.

       지혜로운 자는 갈망하지 않고, 헤매지 않으며, 어쩌면 그 숲에 접근하지조차 않으니.

       그렇기에 그 숲의 이름이 지혜의 숲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자신은.

       그리고 방금 불로불사의 단서를 받아 간 박진성은 어떤 사람인가.

         

       ‘허허. 목적만을 바라보고 하나에 집착하는 이들은 우둔하고 아둔하니.’

         

       우리는 참으로 지혜가 없는 사람이구나.

         

       하지만 어쩌랴.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것을.

       그 찬란한 빛에 매료가 되어버린 것을….

         

       ‘불꽃. 혹은 불꽃과 닮은, 불꽃을 품은, 불꽃에 가까운 무언가.’

         

       그렇기에 그는 박진성을 돌려보냈다.

       피를 보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며, 사람의 생명을 재료로 여정의 도구를 만드는 것에 거리낌이 없을 그 존재를.

       다른 주술사보다 위험하고, 강력한.

       어쩌면 그들보다 더 비틀려있을- 혹은 주술사의 본질에 가장 가까울 그 사람을 말이다.

         

       ‘다만 그것이 더 적게 피가 흐를 것이니. 이것이 옳다.’

         

       하지만 확신컨대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고, 그에게 이로운 길이었으니.

         

       아슈토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등불 삼아.

       다시 정신을 탐험하기 위하여.

       사람의 숫자가 더 줄어들기 전에 귀중한 것들을 보고 느끼며 체험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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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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