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68

       

       

       – 리브가 님.

       

       흔들릴 때가 있다. 

       

       아무리 성녀라고 한들, 성녀이기 전에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 리브가 님. 제국의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1교구와 연락이 끊긴지 벌써 이틀이 지났습니다. 속히 성기사들을 파견하시어…….

       

       – 성녀님. 성기사들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2교구와도 어제부로 교신이 되지 않습니다. 

       

       – 피난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성기사들이 통제하고 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습니다. 그들을 내치셔야 하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식량이 먼저 떨어질 겁니다. 하다못해 동부 연합에 건의를…….

       

       그 강대했던 제국이 하루아침에 멸망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리브가는 너무 당황하여 입을 열지 못했다.

       

       제국에는 최강의 기사가 있었으며, 수백 년간 제국의 안녕을 지켜왔던 대마법사가 있었다.

       

       그리고 올리비아가 있었다. 

       

       소녀였던 리브가가 성인이 되던 그 날까지,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었던 사람.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성녀라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사람.

       

       어쩌면 자신보다 더, 성녀에 어울렸던 사람.

       

       – ……올리비아 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항상 첨언하기를 주저 않던 사제들이 그 순간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직접……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보았다.

       

       새하얗게 얼어붙은 세상을.

       

       

       

       *****

       

       

       올리비아는 고해소의 나무 틈 너머로 리브가를 응시했다.

       

       리브가의 호감도는 예상했던 대로 처참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리브가라면 충분히 가능해.’

       

       리브가에게 말을 걸기 전, 몇 분 동안 그녀를 지켜본 후 내린 결론이었다.

       

       빛의 교단 사람들 중에서 원수를 증오한 것을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범인(凡人)은 감히 가질 수도 없는 생각을 리브가는 당연하다는 듯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역시 전직 성녀다운 인품이었다.

       

       ‘……게임과는 달라.’

       

       호감도가 정말로 절대적으로 작용했다면, 멜리나가 ‘제자에 대한 애정’ 따위로 살의를 이겨내는 일도 없었을 것다.

       

       호감도는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틈이 존재했다.

       

       칼리오페를 만났을 때부터 계속 품고 있었던 생각이다. ‘대의’를 위해 살의를 억누르는 그녀에게서 올리비아는 가능성을 느꼈다.

       

       그리고 멜리나의 단계에 와서는 확신했다.

       

       올리비아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참회동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알림이 미친듯이 울리고 있었다.

       

       [현재 ‘성역’에 들어와 있습니다!]

       – 마나 재생력이 대폭 감소합니다!

       – 고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마나 소모량이 대폭 증가합니다!

       – 캐스팅 시간이 대폭 증가합니다!

       

       거의 키엘의 ‘단절’에 육박하는 디버프였다. 아니, 상시 유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쪽이 훨씬 강력했다.

       

       이 정도 디버프를 받았는데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올리비아는 온몸을 쉴드로 감쌀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어중간하게 할 바에야, 확실하게 하는 것이 옳다.

       

       ‘……이 방법 뿐이야.’

       

       키엘도, 멜리나도, 아쉐 발타르도, 심지어는 드래곤들도 이 ‘성역’에서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직 단 한 명, 리브가만큼은 예외였다. 성녀인 그녀는 빛의 여신에게 직접 선택받은 화신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신은.

       

       츠츠츠츠츠츠츳!

       

       성역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압도적인 힘을 발휘한다.

       

       “감히……여기가 어딘 줄 알고!”

       

       리브가를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신성력이 퍼져나왔다. 순간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성녀 리브가’가 성역을 선포했습니다!]

       – 리브가가 당신을 ‘적’으로 인식했습니다!

       – 오감 중 네 가지가 임의로 봉인됩니다.

       

       먼저 세상이 무취로 바뀌었다. 텁텁한 먼지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공기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버틸만 했다.

       

       하지만 촉각까지 잃은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손끝에 닿는 공기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폐가 상승하고 하강하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꺼풀을 깜빡이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

       

       가능한 것은 오로지 생각 뿐이었다.

       

       끊임없이 살아있다고 되뇌이지 않으면, 존재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리브가는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다가왔다. 그녀가 오감 중에서 굳이 시각을 남겨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보라고.

       

       네 죄를 어떻게 심판할지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츠츠츠츠츠츳!

       

       엄청난 압박감이 리브가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히 그 끝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신성력이었다.

       

       “——.”

       

       리브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청각이 봉인되어 들을 수는 없었지만, 입모양을 통해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녀는 죄값을 치르라고 말하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리브가의 주변에는 어느새 순백색 신성력이 응집되어 있었다. 신성력은 리브가의 손을 타고 오르더니 점차 창의 형상을 갖추었다.

       

       악을 단죄하는 성창(聖槍)이었다.

       

       리브가는 성창의 손잡이를 거머쥐었다. 언뜻 봐도 예사 무게는 아니었지만, 리브가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곧이어 리브가의 등 뒤에 여섯 장의 날개가 나타났다. 

       

       사제의 궁극인 천사화까지.

       

       원래 리브가가 천사화를 익힌 시기는 몇 년 뒤다. 새삼 회귀라는 것이 얼마나 사기적인지 올리비아는 실감했다.

       

       ‘……저게 어떻게 사제냐.’

       

       리브가의 모습은 사제라기보다는 성기사를 연상시켰다. 바람에 흩날리는 사제복만 아니었더라면 영락없이 성기사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리브가는 오른발을 한 걸음 뒤로 물려 땅을 디디고 섰다.

       

       고오오오오오!

       

       뒤로 뺐던 창 끝에 거대한 힘이 응집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앙!

       

       순백색 창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죽음도 그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확신에 찬 얼굴.

       

       [칭호, ‘용 앞에서 담대한 자’가 발동됩니다.]

       

       칭호 덕분에 마지막 두려움까지 떨쳐낸 올리비아는 망설임 없이 눈을 감았다.

       

       마지막 감각을 스스로 포기하자 세계가 고요해졌다. 찰나가 영겁으로 느껴졌다.

       

       ‘하나, 둘, 셋…….’

       

       올리비아는 마음 속으로 초를 셌다. 그리고 그 숫자가 열에 도달했을 때,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역시.’

       

       끝까지 내질러지지 못한 성창이 코앞에서 멈춰 있었다. 성창을 잡고 있는 리브가의 손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빛의 여신이 개입했기 때문이 아니다. 

       

       성창을 멈춘 것은, 분명 리브가 본인의 의지였다.

       

       “…….”

       

       리브가는 입술을 아득 깨물었다. 그리고 올리비아가 이해하지 못할 눈빛을 지어낸 뒤, 성창을 거뒀다.

       

       – 팍!

       

       먼저 여섯 장의 날개가 깃털로 화해 사라졌다. 그 다음은 오른손에 들려 있던 성창이었다. 대기를 짓누르던 중압감도 사라졌다.

       

       감각도, 돌아왔다.

       

       예상대로였다.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책임과 의무.’

       

       빛의 여신 아이테르는, 의무를 지는 만큼 신성을 부여한다고.

       

       리브가가 보기에 올리비아는 죄인이었다. 수백, 수천만을 학살하고 기만한 끔찍한 죄인.

       

       리브가에게는 악을 단죄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더 큰 의무가 있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고해를 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

       

       어쩌면 리브가는 올리비아가 반격하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반격하는 대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올리비아는 죄인이 아닌 고해자가 되었다.

       

       그리고 리브가에게는 죄인의 고해 성사를 받아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리브가는 단죄의 성창을 거둔 것이다.

       

       “그 의미를 알고는 계십니까?”

       

       목소리에 서늘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리브가가 내뱉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말투였다.

       

       고해 성사는 단순히 제 죄를 읊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어떤 보속이든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

       

       보속(補贖).

       

       고해 성사가 끝난 후, 고해를 들은 사제가 내리는 벌.

       

       그리고 보속을 내리는 권한은 전적으로 사제에게 있었다.

       

       그 말은 즉슨, 고해성사가 끝나면 리브가가 어떤 보속을 내리더라도 올리비아는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손해 볼 건 없어.’

       

       어떠한 보속이든 전부 내릴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엄연히 그 한계가 존재했다.

       

       자결하라는 것처럼, 보속이 또 다른 죄를 낳는 경우 고해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보속으로 죽는 그날까지 고행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리브가가 그런 보속을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못하게 막을거거든.’

       

       리브가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도 깨달은 것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좋든 싫든 올리비아의 고해를 받아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앉으세요.”

       

       리브가는 성호를 긋고, 기도문을 외웠다.

       

       알림창이 떠올랐다.

       

       [고해 성사가 시작됩니다.]

       – 고해 사제, ‘성녀 리브가’는 고해성사의 내용을 무슨 일이 있어도, 누구에게도 절대로 발설할 수 없습니다.

       – 고해자, ‘올리비아’는 고해를 거짓으로 할 수 없으며, 고해 사제가 내린 보속을 반드시 실행해야 합니다.

       – 위 사항을 어길 시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다.

       

       “……이제 죄를 고백하시면 됩니다.”

       

       리브가의 목소리는 분노로 점철되어 있었다.

       

       [‘성녀 리브가’가 ‘거짓 간파’를 사용 중입니다.]

       

       어디 한 번 지껄여 보라는 어투였다.

       

       올리비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고해가 끝나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리브가의 눈동자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커졌다.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때까지.

       

       “……!”

       

       올리비아의 담담한 고백.

       

       그것은 전부 거짓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어제 콘 하나 잘못 달았다가 수많은 독자님들께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ㅠㅠㅠㅠㅠ
    넘모 아파. ㅠㅠㅠ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