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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신소희도 말을 꺼내놓고 긴장했는지, 내가 생각하는 것을 딱히 방해하지는 않았다.

        

       ……별로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막말로, 새로 사람을 뽑는다고 해도 그 사람이 확실하게 내 편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니, 보장이 없다기보다는 그냥 회장 측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양혜인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나에게 잘해줬지, 원래는 회장의 사람이었으니까.

        

       비단 메이드뿐만이 아니라, 이 저택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회장의 사람이다. 회장이 뽑은 사람들이고.

        

       그런 와중에, 신소희가 내 메이드가 된다면…… 솔직히, 갑자기 신소희가 내 메이드가 되겠다는 상황이 엄청 이상하게 여겨진다는 것만 빼면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아니, 나쁘지 않다기보다는 좋다. 나도 마음 편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늘 옆에 있게 된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신소희를 메이드로 들여올 수는 없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어중간한 부자도 아니고, 개인 자산이 200조가 넘는 데다 1년에 들어오는 돈이 조 단위다. 애초에 회장 공격 막겠다고 15조 원을 생각하고 있던 나였다. 일 년에 수천만 원 정도는 쉽게 내줄 수 있다. 애초에 양혜인부터가 연봉이 5억 원이었고.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소희.”

        

       내가 이름으로 부르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던 소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가족한테는 말하고 왔어?”

        

       “……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래, 고등학생쯤 되면 알바정도는 할 수 있다. 업종에 제한이 있을 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의 동의는 필수다. 어쨌거나 미성년자는 미성년자니까.

        

       일단 미성년자가 가정부 아르바이트할 수 있는지는 법적으로 따로 따져봐야겠지만,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또 한 가지 발목 잡는 부분이 있다. 바로 ‘노동시간’이다.

        

       물론 성인에게도 노동시간은 적용된다. 정확히 몇 시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주일에 일정 시간을 넘어가면 돈을 다 받는다고 하더라도 노동부에서 경고가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 봤던 응급실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 같다.

        

       그리고 미성년자 쪽으로 가면 더더욱 빡빡해져서, 미성년자는 아예 일정 시간 노동하는 것이 ‘금지’다. 설령 가정부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양혜인처럼 24시간 내 옆에 있으면서 메이드 일을 할 수는 없다. 사실 양혜인도 본인이 신고하려고 하면 충분히 신고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시간이었으니까.

        

       사실 불법이니 아니니 하는 것을 따지는 건 둘째치고, 당연히 부모님…… 소희의 경우에는 아버지겠지만, 아무튼 말씀은 드리고 오는 것이 도리다. 그냥 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무려 부잣집 가정부를 하겠다는데, 그것도 그 집에서 먹고 자고 하겠다는 데 동의도 없이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소희가 내 눈을 피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별다른 말 없이 충동적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혹시 정말로, 양혜인이 이 세 사람에게 그 유서를 보여주었던 걸까?

        

       뭐, 그건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나는 침대 위에 다리를 올려 양반다리를 만들며 말했다.

        

       “의자 가지고 와서 여기 앉아.”

        

       내가 손가락으로 내 앞을 가리키자,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움직여 의자를 끌고 내 앞까지 와 앉았다. 나름대로 다소곳한 포즈로 의자에 앉는 것을 보면, 내 메이드가 되겠다는 말은 진심인 모양이다.

        

       다소곳한 자세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도 옷은 트레이닝복이었지만.

        

       “뭐, 좋아. 나도 아는 사람한테 일을 맡기는 건 찬성이야. 솔직히 얼굴 보던 사람이 일을 맡아주면 나도 편하고.”

        

       “그치, 그치.”

        

       소희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키는 나보다 한참 컸지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좀 강아지 같아서 귀엽긴 했다. 하긴, 나이로 따지자면 나랑 거의 열 살 차이 나긴 하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너희 가족에게 동의도 받지 않고 그런 일을 맡길 수는 없어.”

        

       그래, 그러고 보니 얘는 여동생도 하나 있다. 몇 살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게임에서는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것 같다. CG로 나오진 않았지만 대사 하나하나가 천진난만했으니까.

        

       안 그래도 아버지 혼자만 계시는 집인데, 거기서 소희가 빠져버리면 큰 구멍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 일하실 때 어린 동생을 돌볼 사람도 필요하니까. 아무리 그래도 집에 애 혼자 있게 되는 건 좀 그래.

        

       “…….”

        

       소희는 내 말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만약 네가 너의 가족한테 허락받고 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소희는 고개를 들었다.

        

       ……상심한 표정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소희의 표정은…… 뭐랄까, 이렇게 표현하기 조금 그렇기는 한데 ‘감동한’ 표정에 가까웠다. 영화에서 조금 감동적인 장면, 그러니까 헤어진 가족 상봉 장면이나 주인공이 잃어버렸던 개를 찾는 장면이나, 뭐 그런 거 볼 때의 표정이라고 하면 될까?

        

       대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에, 내 시야가 물들인 금발로 가득 찼다.

        

       “으헿?”

        

       나를 바라보고 있던 소희가 갑자기 달려들어 내 목을 끌어안은 것이다.

        

       “뭐, 뭐야, 왜 그래?”

        

       아니지, 다시 생각해보면 얘는 지금까지 나를 몇 번이나 끌어안긴 했다. 주로 내 얼굴을 자기 가슴에 대는 형태로. 어쩌다가 내가 코박죽을 시전한 적도 있었고, 얘가 직접 나서서 끌어안은 적도 있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그렇게 당황한 이유는…… 이번 포옹은 뭐랄까, 어, ‘정상적’이었다. 아니, 나도 내가 뭐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고.

        

       소희는 내 말에는 대꾸도 안 하고, 나를 안았을 때처럼 갑자기 뒤로 확 빠졌다.

        

       내 시야에 가득한 소희의 얼굴에는, 뭔가 확실하게 다짐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럼, 허락받고 올게. 허락받으면 받아 줄 거야?”

        

       “어? 어…… 뭐, 그렇지?”

        

       사실 법적인 문제는 이제 와서 따져봐야 별 소용이 없기는 하다. 지금 이 저택에 있는 모든 사용인이 사실상 아동학대 가담자인데 무슨 법적인 어쩌고를 따지겠어?

        

       그리고 뭐, 노동시간이 문제라면 하루에 몇 시간 정해서 메이드복을 입고 있으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그냥 여기서 숙식하는 시간이라고 해도 되고.

        

       “그럼 허락받고 올게!”

        

       소희는 뭐가 그리도 신난 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발을 돌려서—

        

       이 방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 응, 그래. 그렇지.

        

       아버지한테 허락 받는 건 전화로 받아도 되지, 참.

        

       ……그런데, 그런 걸로 허락해 주시려나?

        

       *

        

       “아빠!”

        

       소희는 아버지가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그렇게 외쳤다.

        

       [어? 어어, 딸, 왜 그래?]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해서 소리치는 딸의 목소리에, 그는 조금 당황해서 대답했다.

        

       “나……”

        

       소희는 계속 말을 하려다가, 화장실 문 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지난번에 사라가 샤워하던 소리가 작게나마 들렸었지, 참. 너무 목소리를 크게 하면 바깥까지 말이 새어 나갈지도 몰랐다.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어, 그래…… 뭐?]

        

       아빠는 순간 말을 하다가 사레들린 듯한 목소리로 쿨럭거렸다.

        

       [뭐,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주겠니?]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고.”

        

       [뭐? 진짜? 우리 딸이? 좋아하는 사람이?]

        

       잠시 전화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리지 않다가, 푸하하, 하고 호쾌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오 뭐냐, 어떤 사람이길래 그래? 우리 딸이 좋아할 사람이면 엄청 대단한 사람이겠지?]

        

       “어, 맞아. 엄청 대단해. 귀엽고.”

        

       [하긴 우리 딸 눈이 좀 높기는 하지. 그래서? 그 사람하고 사귀는 중?]

        

       “어…… 아니……?”

        

       그때까지 웃고 있던 소희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그럼 아직 썸타는 수준이냐? 풋풋하네!]

        

       하하, 하고 다시 전화 너머에서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차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아까 아침에 동생과 놀러 나갔었으니까. 동생은 뒷자리에서 자고 있으려나?

        

       “어, 아냐. 그런 것도.”

        

       [음?]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아, 그…… 혹시 짝사랑이냐?]

        

       “어……일단은?”

        

       [대체 어떤 ㅆ……크흠.]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그는 크흠, 하고 헛기침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떤 녀석이길래 우리 딸 마음을 그렇게 흔들었을까?]

        

       “다른 학교 학생인데…… 아, 사실 나 지금 걔네 집에 와 있거든?”

        

       [뭐?]

        

       “잠깐 일이 있어서.”

        

       [……무슨 일?]

        

       “아, 그게 그러니까, 걔랑 단둘이 나눌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니, 아니, 잠깐. 딸. 잠깐만 기다려봐.]

        

       소희가 하는 말을 그녀의 아빠가 중간에 끊었다. 그리고 그는 차분하게, 소희가 지금까지 한 말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애가 다른 학교 학생이고,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 아이의 집에 단둘이 있다는 말이지?]

        

       엄밀히 따지면 ‘단둘’은 아니었다. 물론 나머지 사용인들은 사라의 방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방에만 있으면 사실상 단둘만 있는 것이 맞기는 했다.

        

       [딸, 지금 어디서 전화하는 중이야?]

        

       “어, 나? 나 화장실.”

        

       [화장실이라.]

        

       아빠는 이상하게도 조용히 뇌까리듯 말했다.

        

       “아, 맞다. 나 아빠한테 허락받고 싶은 게 있는데.”

        

       [어, 딸 말해봐.]

        

       어째서인지 아빠의 목소리는 아까보다도 훨씬 차분해져 있었다. 소희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라의 말대로 허락은 받아야 했으니 계속 말하기로 했다. 오히려 이렇게 차분할 때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해 줄 것 같기도 했고.

        

       “나, 이 사람 집에서 일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의 집에서, ‘일’을 치르고 싶다고.]

        

       응?

        

       아니, 치르고 싶다는 말은 조금 이상한데.

        

       “아니,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는 말이었는데—”

        

       [딸.]

        

       “응?”

        

       [거기 주소가 어떻게 되니?]

        

       “어? 여기? 아, 그 주소는 정확하게 모르겠고, 지난번에 내가 자고 갔다는 거기야.”

        

       [……그 돈 많은 친구라는……?]

        

       “어어, 그렇지.”

        

       사실 돈이 많고 적고는 별로 상관없긴 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사라가 가진 돈은 상대적으로 보나 절대적으로 보나 그냥 많았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내가 여기서 일을 하고 돈을—”

        

       [딸.]

        

       “응?”

        

       [거기가 정확히 어디라고 했었지? 아빠가 기억이 안 나는데.]

        

       “아, 여기, 그…… 아마 마쓰다 백화점이라고 치면 나올 텐데.”

        

       [알았어. 금방 갈게. 거기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전화가 뚝 끊어졌다.

        

       …….

        

       뭐지.

        

       왠지 아빠가 마지막에 말할 때 엄청 화가 난 것 같이 들렸는데.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 하고, 소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엔마라자님, 후원 감사합니다!

    첫 후원을 제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이 마음에 드셨다니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제가 글을 쓰면서 느낀 즐거움을 독자 여러분께서 똑같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복받은 작가가 또 있을까요. 글 쓰는 것을 즐겁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제가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저의 글을 언제나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서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다음화를 읽어주신다는 확신이 있기에, 누군가 다음 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저는 오늘도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제 글을 읽어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 글의 절반도 쓰지 못했을겁니다.

    매일 늘어나는 조회수와 선작수, 그리고 추천수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하물며 이렇게 후원까지 해 주시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죠. 불과 작년 초만 해도 저는 저의 글이 독자 여러분께 읽힐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으니까요. 작년 중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저의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시는 독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매일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저의 글을 읽기 위해서 들이신 시간, 그리고 비용이 아깝지 않도록 주인공들의 여정의 끝까지 제대로 써내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도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늘 즐겁고 보람찬 나날을 보내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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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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