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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제가 말려도 안 들으실거죠?”

       “네.”

       “알겠어요. 일단 도와는 드릴게요.”

       “고마워요. 엔리.”

       “잠시 있어봐요. 생각할 게 많으니까. 일단 방송을 위한 기기는 우승상품으로 올 VR기기로 대처한다 치고, 다른 게.”

       

       엔리의 입에서 다소 전문적인 내용들이 쏟아져 나왔다.

       

       방송의 설정이라던가, 송출에 관해서라던가, 관리에 대해서라던가.

       

       일단은 듣고 있었지만 그 중에 이해한 것은 십분지 일이 되지 않았다.

       

       터놓고 말을 하자면 나는 엔리가 하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로봇과 다를 바 없었다.

       

       “아라 씨. 이해 못했죠?”

       

       대략적인 설명을 끝마친 후 엔리가 한 말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엔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자신의 손바닥으로 미간을 꾹꾹누르며 한탄하듯 목소리를 냈다.

       

       “나중에 설정 도와드리러 갈게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와아. 진짜 아무것도 없네요.”

       

       내 VR룸에 온 엔리는 새하얀 공간을 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이렇게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죠.”

       “꾸밀 필요가 있느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어차피 여기는 게임을 위해 거쳐가는 공간일 뿐이지 않으냐. 

       

       “아라 씨. 집도 이렇게 휑한 건 아니죠?”

       “비슷할 것 같다만.”

       

       내 현대에 오고 나서 집에 들여놓은 물건이 없다시피 하니 말이다.

       

       그나마 산 것이라고는 식기뿐이니 겉으로 보면 내 현대에 왔던 날 본 집과 지금의 집은 똑같으리라.

       

       청소만 잘 한다면 지금 모습 그대로 팔아도 될 수준 아닐까 싶다마는.

       

       “막막하네요.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어요.”

       “굳이 꾸며야 하느냐?”

       “해야죠. 방송 중 절반은 여기서 머물러야 할 텐데. 그 때마다 시청자들한테 정신병원처럼 새하얀 것만 보여줄 거에요?”

       

       거 말이 좀 거칠구나. 정신병원이라니.

       

       그럼 매일 VR에 들어올 때마다 이 곳에 머무르는 나는 정신병자라도 된다는 것이냐.

       

       “어쨌건 어떤 식으로 꾸밀 건지 생각 좀 해주세요. 다른 건 도와준다 치더라도 이건 아라 씨 취향에 맞춰야죠.”

       “그냥 그대 멋대로 해도 된다마는.”

       “안돼요.”

       

       엔리의 대답이 단호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민을 해야 했다.

       

       갑자기 이 곳을 어찌 꾸밀지 생각해보라 해도 말이다. 본인의 미적 감각은 그런 걸 단박에 떠올릴 정도로 뛰어나지 않다.

       

       그런 발상이 바로바로 떠올랐으면 내 화가를 하고 있었겠지.

       

       “생각나는 거 아무거나 말씀해 주셔도 괜찮으니까요. 추억의 공간이라던가, 인상 깊었던 장소라던가.”

       “흐음. 잠시 기다려 보거라.”

       

       생각이 나는 거라.

       

       본인이 어느 장소에 관해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다.

       

       “한 번 제멋대로 읊어보마.”

       “넵.”

       “바닥엔 기름을 먹인 종이를 깔았는데 그 색은 황토에 가까웠다.

       벽은 검은 색의 목재로 되어 있었는데 덕택에 밤이 되면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지.

       가구는 대개 붉은 색이거나 검은 색이었는데 어느 쪽이건 장인의 손길이 닿아 고급스러웠다.”

       

       천마신교의 풍경은 언제나 내 머릿 속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으니, 어딘가의 풍경을 떠올릴 때면 항상 천마신교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천마신교를 추억하지 않는다.

       

       악몽으로써 기억할 뿐이다.

       

       허나 천마신교의 모든 것이 악몽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단 한 장소.

       

       그 한 곳 만큼은 내게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막 무림의 세계에 전생 당했을 무렵 내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사람.

       

       나를 천마가 될 재목이라 여기지 않고 단순히 자신의 딸로써 아껴주었던 사람.

       

       소천마가 되고서 채 1년도 있지 않아 돌아가셨음에도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은 사람.

       

       전생의 나는 고아였기에 나의 첫 어머니가 되었던 사람.

       

       어머님이 살아계실 적 그 분께서 머무르던 방만큼은 내게 추억이라 할만한 곳이었다.

       

       이 빌어처먹을 천마로서의 삶을 이어가게 만든 족쇄를 어찌 잊겠는가.

       

       내게서 권한을 넘겨받은 엔리는 나의 설명에 따라 장소를 꾸미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목재로 만들어진 벽으로 바뀐다.

       

       장판이 깔리고, 가구가 생겨나고, 여러 장식품들이 그 위에 자리 잡는다.

       

       세세한 부분은 엔리의 설명에 따라 내가 직접 만들어 내니 순식간에 방 하나가 완성됐다.

       

       “확실히 아라 씨한테는 무협 풍이 어울리죠.”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만족스레 보는 엔리를 뒤로 한 채 눈을 감았다.

       

       일정 경지에 오른 무인에게 감정이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었으니.

       

       마음의 요동을 다스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호흡을 하며 다시 눈을 뜬다.

       

       “만족스러우신가요?”

       “잘 만들기는 했다만 이 장소는 못 쓰겠구나.”

       “왜요?”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곳이 아니라서 말이다.”

       

       당장에 떠오른 것을 바탕으로 만들기는 했다만 이 곳은 가벼운 마음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이곳은 내 추억의 중심이자 마음의 중심이다.

       

       타인에게 이 곳을 보이고 싶진 않구나.

       

       “으음. 그럼 여긴 일단 내버려 두고 다른 장소를 만들어 볼까요?”

       

       엔리는 그 이상을 묻지 않았다.

       

       말을 억지로 돌리는 것이 내가 이 장소를 신경 쓴다는 것 만큼은 눈치를 챈 모양이다.

       

       어떤 때에는 뻔뻔하고, 어떤 때에는 사려가 깊으니 종잡을 수가 없구나.

       

       “그래도 되느냐?”

       “안 될 건 없죠.”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새로이 만들기로 한 장소는 천마신교의 본관이었다.

       

       한 때 아버님께서 모든 이들의 위에 군림하던 장소이자, 후일 내가 아버님을 대신하여 서게 된 자리.

       

       억지로 세워져 우상으로 숭배 받았으나 그에 질려 내던지게 된 자리.

       

       내게 누군가를 들이는 장소라 하면 이 곳 밖에 없었다.

       

       본인의 상상이 천마신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긴 하다만 어쩌겠느냐. 본인의 생 중 대부분은 이 곳에서 살았던 것을.

       

       “이 정도면 괜찮지 않겠느냐?”

       

       대략 완성을 한 후에 엔리에게 묻자 그녀는 침음성을 내뱉더니 근처에 조명 몇 개를 더 설치했다.

       

       “좀 어두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 정도면 되겠죠.”

       

       그리고는 나를 한 가운데에 세우더니 저 멀리서 감상을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잘 어울리네요.”

       “그럼 일단 이것으로 마무리 하자꾸나.”

       

       겨우 장소 하나를 만들었을 뿐인데 반나절이 지나갔구나.

       

       그나마 엔리가 이런 걸 만드는 데에 숙달이 되어 있어서 망정이지. 홀로 이것들을 만들려 했다면 며칠이 걸려도 모자랐을 것이다.

       

       “이제 방송 설정 시작하죠. 터렛 로그인하고 저한테 권한 넘겨주세요.”

       “기다려 보거라. 계정을 만들어야 해서 말이다.”

       “아직도 안 만들었어요?”

       “내가 터렛에 들어갈 일이 없는데 왜 계정을 만들겠느냐.”

       “…설마 해서 물어보는 건데 제 방송 본 적 없는 건 아니죠?”

       “없다.”

       

       내가 단언하자 엔리의 눈이 커다래졌다.

       

       “왜 현실에서 매일 보다시피하는 그대의 얼굴을 집에 돌아와서 또 봐야 하느냐.”

       “너무해요!”

       “엔리 그대도 본인이 방송하는 걸 본 적 없지 않으냐.”

       “그야 방송을 안 하셨으니까요!”

       

       푸흐흐. 그래. 방송을 안 했으니 못 봤지.

       엔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본인의 무관심에 화가 났다는 티를 냈지만 내게는 아이의 투정으로 보일 뿐이었다.

       

       “농이다. 설마 한 번을 안 보았을까.”

       “…그렇죠?”

       “다만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가 갈려 오래 보진 못 하겠더구나.”

       

       지난 번 방송을 보러 갔을 때 엔리는 총을 들고서 사람들과 싸우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본인도 총기라는 무구에 능숙치 못해 배운다는 느낌으로 지켜보았으나 엔리가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답답함이 속에서 차올랐다.

       

       단적으로 말해 그녀는 평소 생각이라는 것을 안 하고 살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잘못을 수없이 해댔지.

       

       그러고도 패배를 하면 본인의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요소부터 탓해 댔으니 어찌 성이 나지 않을까.

       

       총기라는 것에 무지한 나도 이러한데 평소 그 게임을 하던 이들이 어찌 생각할 지야 뻔했다.

       

       채팅창에서 울분을 토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더구나.

       

       본인에게도 계정이 있었다면 그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야.

       

       “저 평균보다 잘하는 편이거든요? 아라 씨도 직접 게임해보면 제가 잘 한다는 걸 알게 될 걸요?!”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본인이 그대보다 못 할 것이라고? 몸을 움직이는 게임인데?

       

       설령 총이라는 무구가 어색하다 한들 본인이 그대보다 못할 리가 없지 않으냐.

       

       까놓고 말을 하자면 내 쏘아지는 총알을 보고 피할 수 있을 것 같다만.

       

       내가 이렇게 되묻자 엔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모양이구나.

       

       “계정 이제 다 만드셨죠?”

       

       곤란해지니 말을 돌리는 것이야?

       

       후흐. 알겠다.

       

       오늘 그대는 도와주러 온 것이니 더 골리지 않으마.

       

       엔리에게 계정의 권한을 넘겨주자 그녀는 몇 개의 창을 주변에 띄우더니 이것저것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 손놀림이 어찌나 현란하지 나로썬 그녀가 무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넘쳐나는 글자 속에서 어찌 저리 망설임이 없을 수가 있는지.

       

       “일단 기초적인 설정은 다 해놨어요. 나머진 방송을 하면서 조정을 해야 해요.”

       

       엔리가 설정을 끝마치는 데에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놀라운 숙련도였다.

       

       역시 몸을 움직이는 것만 아니면 믿음이 가는 아해라니까.

       

       “더 필요한 거 있어요? 기왕 도우러 온 김에 다른 게 있으면 말해봐요.”

       “안 그래도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기는 했다.”

       “뭔데요?”

       “커스터 마이징은 어떻게 바꾸어야 하느냐? 슬슬 한 달이 지났으니 이제 바꿀 수 있을 터인데 방법을 모르겠구나.”

       

       현실에서는 아직 비녀를 받지 못하였으나 VR의 세계 안이라면 머리를 바꾸어 비녀를 착용할 수 있을 테지.

       

       그거 아느냐. 내 어머님의 주신 선물을 낄 날만을 여태 헤아리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빨리 착용을 하고 싶구나.

       

       “어. 단순히 VR커마를 바꾸는 거라면 언제든 할 수 있는데요.”

       “무어라?”

       “한 달이 걸린다고 한 건 게임 커마죠. VR커마는 언제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어요.”

       

       순간 할 말을 잊어버렸다.

       

       본인이 착각을 한 것이라고?

       

       내 비녀를 낄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거늘 사실 처음부터 낄 수 있는 것이었단 말이더냐?!

       

       “권한 있으니까 바로 바꿔드릴게요. 어떻게 해드려요?”

       “…그냥 머리만 길게 해다오.”

       

       커스터 마이징이란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엔리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툭툭 건드리니 내 어깨 근처에 있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등 근처까지 길어졌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단 말이더냐.

       

       “이 정도면 될까요?”

       “그래. 충분하다.”

       

       한숨을 푹 내쉬며 비녀를 불러왔다.

       

       생일 날 어머니가 주신 비녀는 여전히 옥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비녀 쓸 줄 아세요?”

       “안다. 다른 이에게 억지로 배웠으니까.”

       

       빙궁의 아해는 실로 열정적인 교육자였다.

       

       이 정도는 당신이 할 줄 알아야 한다며 내게 억지로 교육을 시켰지.

       

       생각해보면 그 때 이후로 머리를 기른 게 처음이기도 하구나. 세월로 따지자면 수십 년에 가까운가.

       

       잘 되려나 모르겠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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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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