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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눈 앞의 권력자. 가만히만 있어도 수상한 의심인물.

         아론이 존나 수상하다. 친절이 과해서 미칠 것만 같다.

         

         “파트너십 계약이라… 미리 만들어두신 사본이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아주 러프한 초안이래도 괜찮습니다! 회사를 배제한 개인간의 계약은 처음인지라 굉장히 설레는군요!”

         

         왜 이렇게 격앙되고 기뻐하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니, 태도가 변화한 기점은 바보라도 알 수 있다. 내가 그의 최후통첩마저 거절했을 때 한 번, 그리고 역으로 협력을 요구했을 때 또 한 번.

         

         “공증인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당장 이 자리에 모셔도 의심받지 않을 수 있는 고위층은…… 엘리시움 지부장님께라도 연락 드려볼까요?”

         

         뜻밖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걸로 수세에서 벗어나고자 한 건 맞다.

         그렇지만 ‘회사에겐 비밀로 뒤에서 몰래 우리끼리만 도움을 주고받자!’ 같은 음습한 의도를 담은 역제안이 이런 반응을 끌어냈는 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기업 임원답게 무슨 계약 성애자… 같은 망측한 성벽을 가진 별종이라도 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해리성 인격 장애? 안 그래도 최근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던 인간 때문에 개고생을 한 참인데 또?

         아니면 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은 이 남자도 실은 회사생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일탈이 간절했다든가?

         

         “작성한 계약서 진본의 보관은 당연히 뉴 센츄리 은행(New Century Bank) 금고에? …아! 아예 믿을 만한 프라이빗 뱅크(Private Bank : 법인화 되지 않은 은행의 직원이 예금주를 직접 찾아가 일대일로 업무를 처리해 예금내역도, 보관위치도 모르게 하는 사업)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만… 그만!”

         

         그건 원작에서 반란 모의하던 애들이나 파이브 아이즈에서 썼던 방식이잖아?!

         지금 누구를 일급 수배대상자랑 동급으로 취급하는 거야…!

         

         반짝이는, 실상은 그런 표현으로도 설명하기 모자란 초롱초롱한 눈길을 향해오는 아론을 일단 제지했다.

         기세에 넘어가 나까지 냉정을 잃어서야, 바꾸는데 성공한 일의 흐름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니 조심조심 나아가야 한다.

         

         “…이런 실례를! 발안자께서 계신데 제가 지나치게 흥분했군요. 미스 아나스타샤의 뜻을 먼저 경청하겠습니다.”

         

         “경청은 조금 너무 나갔고….”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변화가 더 짙게 체감된다.

         

         대가 없는 호의만큼 달콤한 독도 없다지만.

         그것도 상대방이 속아넘어갈 여지가 존재할 때나 가능한 것 아니던가? 홀로 시도하는 착한 경찰, 나쁜 경찰 전략도 아니고. 이제 와서 다시 나긋나긋한 태도로 되돌아간다고 이쪽이 헤벌레~ 한 채로 따라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아?”

         

         …아니지, 아론이 만약 그렇게 불확실한 기대값을 바라고 취한 행동이 아니라면?

         가령 훨씬 더 단순한. 잠깐의 방심이나… 다른 변수를 만들기위해 시간을 끌었다면…!

         

         경직된 사고가 간신히 거기까지 미친 순간, 그가 기다려 마지않던 노림수가 등장했다.

         

         쿵—!!

         

         육중한 발소리에 고개가 돌아간다.

         와이즈맨의 사무실에서도 느꼈지만, 여기의 매끄러운 자동문은 인기척도 완벽하게 차단하는 주제에 열릴 때도 유별난 소음이 없어서 나 같은 일반인으로선 집중하지 않는 이상 눈치를 채기 어려웠다.

         

         그 결과… 바이러스를 살포할 태세도 미처 갖추지 못한 채로. 아마 이쪽을 잡으러 온 징수 부대와 대놓고 눈이 마주쳤다.

         

         “……하.”

         

         정신을 바짝 안 차리면 눈 뜨고도 코 베인다더니. 역시 적진 한복판에서, 그것도 사소한 농담조차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인간 앞에서 함부로 긴장을 푼 건 실수였다.

         

         그나마 살해 의도는 없는지 놈들의 손에 들린 건 테이저 건과 진압용 고무탄이 장전된 산탄총.

         …시발. 저것도 뒤지게 아플 텐데, 이쪽이라고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예정은 없었다.  

         

         저것들이 발사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내부 자료들에 유의미한 피해를 입혀야 나중에라도 협상할 거리가 존재할 것이다.

         

         물리적 충격에 연결이 끊기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고려할 여유도 없이 나는 눈을 감고 신호를 방출했….

         

         “……이런, 호출명령을 철회하는 걸 잊다니… 너무 성급하긴 했군요. 전부 나가셔도 됩니다. 아니, 아예 전부서의 방호 근무 체재를 이 시간부로 종료하겠습니다.”

         

         “……?”

         

         일순간에, 아론 드레이퓨스라는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심상치 않게 경직되고 감정이 억눌린 목소리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나는 물론이고 사무실 안으로 돌입해온 병력들도 우뚝 굳어버렸다.

         

         “미스터 드레이퓨스, 실내 스캐닝 및 타겟의 무장상태도 확인을 마쳤습니다. 간과한 위협은 없으니 곧바로 제압할 수 있….”

         

         행여나 내가 협박이라도 해서 아론에게 철수를 강요하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대표로 나선 병사가 상황을 브리핑하려고 했지만.

         

         끼긱…!!

         

         대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양팔이 테이블을 쪼개 버릴 기세로 누르고는 상반신만을 의자에서 일으켰다.

         

         

         “당장. 전부. 나가라고. 꼭 여러 번 말씀드려야 알아들으시겠습니까?”

         

         

         “”…….””

         

         어… 음….

         

         기업이라고 업무에 숙달된 인력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건 아닌 만큼, 그저 기분이 상했다고 마구잡이로 직원을 감축할 리는 없었다.

         그러나 더 버티다가는 진짜로 본보기삼아 몇 명 정도는 실종될 것 같은 분위기에, 그들은 진영을 갖추고 들어온 속도보다도 빠르게 밖으로 물러났다.

         

         “…수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드린 점. 정말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군요. 죄송합니다 미스 아나스타샤.”

         

         기껏 기회를 잡은 병력도 물려버리고. 열화와도 같은 태도를 구태여 보여준 그의 깊은 저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아무리 헤픈 면모가 있어도 눈앞의 인물은 명백한 괴물이라는 것과 돌연 방해받는 걸 굉장히 싫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진짜 다중 인격자라면 이 파트너십 계약에 진지하게 흥미를 보이고 있는 순간에 일을 진행해서 재빨리 끝을 봐야 한다는 것도.

         

         “…물리적인 계약서는 따로 남기지 않겠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르게 쓰일 여지를 남기고 싶지는 않네요.”

         

         “그건… 꽤 아쉽군요.”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그를 조심조심 살폈다.

         

         방금 그런 걸 보여주고도 경계하지 말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는지 선선히 수긍하는 듯했으나. 계약 이행을 강제할 능력 따위는 원래도 이쪽엔 없었으니까 넘기더라도, 아무런 상징도 없이 대충 넘어갈 마음은 없었다.

         

         “대신… 서로가 서로를 도울, 각자가 원하는 목표이자 야망을. 이 아슬아슬한 협력관계의 증표로서 공개하도록 하죠. 어떤 거짓도 없이, 오직 진실말을 맹세하고.”

         

         “……오호라.”

         

         어디까지나 대등하게. 어디까지나 무결하게.

         

         피차 이용하는 관계라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약점을 넘겨주는 게 맞겠지만, 애써 숨긴 걸 또 공개할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지금부터 꺼낼 얘기만 해도 미래에는 걸림돌이 될지도 몰랐고.

         

         준비해 놓은 랜섬웨어 바이러스와는 전혀 다른 코드 덩어리를 머리속으로 합성하면서, 악수를 청하듯 한쪽 손을 아론을 향해 내밀었다.

         

         “나,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만으로는 감히 만들 수도 없는. 어떤 고도의 장치를 완성하는 게 삶의 목표입니다.”

         

         그럴싸한 연기와 적당한 변명으로 넘어갈 만한 상대가 아니었기에. 정말 공개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쥐어짠 사실만을 담아 그에게 내던졌다.

         

         …실제로 도움을 받는 건 크게 바라지도 않고.

         그냥 적대하지 않는 선에서,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잘 마무리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

         

         “저, 아론 드레이퓨스는 우선 확고부동한 파라다이스의 이인자로 자리매김하는 게 당면 과제겠군요. 목표는… 뭐 미스 아나스타샤의 조력을 경험해보고 차차 말씀드리도록 할까요?”

         

         “…치사하긴.”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쪽의 정보만 쏙 빼먹고 본인의 의도는 어떻게든 숨기려 하기는… 그래도 이 정도는 에상 범주내의 결과이다.

         

         이러면 적어도 이득을 취했다고 여겨 너그러움을 발휘하던가, 순순히 계약 같지도 않은 계약 자체에는 동의하겠지.

         

         마주 내밀어진 손을 가볍게 쥐고 신호를 흘려보낸다.

         괜히 임플란트를 건드려서 지난번처럼 의식끼리 정면충돌 하려는 건 아니고, 아론의 사이버웨어로 완성한 문서파일을 전송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건… 계약의 흔적입니까?”

         

         “…지극히 간단한 상징물이야.”

         

         위조나 조작도 지나치게 쉽고, 직접 확인한 사람도 달랑 둘뿐이라 발뺌하기도 편한. 이 시대에서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전자 계약서.

         

         그저 형식만 맞추기 위해 급하게 만들어낸 그 문서에는 우리가 각자 떠든 말만 덩그러니 기록되어 있어서 일종의 선언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데 그런 조악한 데이터에도 그는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휴, 역시 공들여서 손해볼 일은 세상에 없….

         

         “그럼 저희는… 이제부터 파트너가 됐군요!”

         

         “…쓸데없이 이상한 어감 강조하지 말고, 그냥 전략적 동반자라고 해두시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외박하면서 휴대폰으로 써보려고 했는데… 저는 폰으로는 글이 전혀 안 써지네요.

    일단 엄청난 지각이지만, 급하게나마 돌아와서 마무리 했습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 눌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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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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