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8

    검은 옷을 입은 닌자들이 일제히 빠져나간 컨테이너 안에는 얼마 전까지 벌어지던 전투의 열기만이 남아있었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며,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뜨거운 열기를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한창 싸울 때와는 전혀 다르게 조용해진 컨테이너의 좁은 공간은 피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슬슬 전투가 끝났음을 실감할 때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소리를 질렀다.

    “아! 살았다!”

    망치를 번쩍 들고 내지르는 기쁨의 탄성.

    솔직히 닌자들이 갑자기 도망간 이유가 뭔지도 모르겠고.

    닌자들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살아남았다는 게 좋았다.

    뒤를 돌아보니, 혜진이는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다.

    성격이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황금뿔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의뢰인은 꽤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닌자가 나타나서 죽이려고 들면 충격을 받을 법했다.

    깡깡.

    갑자기 컨테이너 벽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서 휙, 하고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니 그곳에는 익숙한 노란 양복을 입은 선배가 서 있었다.

    “생각보다 큰일이 있었나 보네?”

    익숙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웃는 얼굴로 선배가 돌아왔다.

    ***

    컨테이너 안을 살펴보니, 핏물이 잔뜩 흐르는 난장판이었다. 

    컨테이너 안에 널브러진 닌자의 시체는 총 3구. 

    총상으로 인한 사망은 1명, 이건 후배 2호가 쏴서 죽인 거로군.

    으깨진 시체가 2명, 이건 후배 1호가 한 거네.

    역시 탈인간의 근력이야.

    닌자들은 캠프 주민만 노리는데, 후배들이 전투를 벌이게 된 건 의뢰인 때문이겠지.

    내 예상대로 의뢰인이랑 캠프 주민들은 동류다.

    아마, 오브젝트의 피해자던가 그 부산물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선배!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연락도 안 하고!”

    “최대한 빨리 온 거야. 그리고 저 닌자들이 재밍이라도 했는지, 휴대폰이 먹통이야.”

    나는 핸드폰을 들고 흔들면서 말했다.

    “이 검은 옷의 괴한들이 의뢰인을 노렸나 보지?”

    “네, 다짜고짜 의뢰인을 노리더라고요. 갑자기 닌자가 나타나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세요?”

    후배 1호는 꽤 힘들었는지, 땀에 푹 절어 있는 상태였는데, 다행히 별다른 상처는 없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후배 2호는 꽤 멀쩡해 보이고, 의뢰인은 약간 충격을 받은….

    으음.

    의뢰인이 쪼그라들었는데?

    의뢰인이 인간이 아닌 건 이제 거의 확정이야.

    뭐, 의뢰인이 인간이든 오브젝트든 외계인이든 별로 상관은 없지.

    짝짝.

    박수를 두 번 쳐서 주의를 돌렸다.

    “자,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정해졌어. 캠프 북부에 있는 지하 수로야. 아마 그곳에 의뢰인이 찾아달라고 했던 의뢰인의 남동생이 있을 것 같아.”

    후배들과 의뢰인을 재촉했다.

    이번 의뢰도 어느새 마무리 단계에 도달했다. 

    지하 수로에서 의뢰인의 남동생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

    지하 수로를 지나서 있는 거대한 지하 구조물.

    핏물이 가득한 지하실. 

    지하실에는 닌자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몇백은 많은 연구원의 시체도 쌓여있었다.

    큭큭큭.

    소장은 피를 토하면서 웃고 있었다.

    닌자의 칼을 몸통에 몇 개씩 꽂은 채로 그저 웃고 있었다.

    “슬슬, 이 캠프도 버려야 할 때인가? 별 이상한 놈들마저 방해하는 꼴을 보니 자리를 옮겨야겠어.”

    소장이 돌아본 곳에는 이 지하실의 유일한 인간이 묶여있었다.

    심각한 고문을 당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자.

    “그래도 다행이군. 나름대로 성공한 실험체가 있어서 말이야.”

    소장은 유일한 생존자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쉬지 않고 주절거렸다.

    “정말로 오브젝트가 인류의 소망에서 발생할 줄이야. 다만 성공 사례가 하나뿐이니, 아직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이르긴 한가?”

    주변을 돌면서 생존자의 상태를 확인한 소장은 돌아서며 말했다.

    “이 정도 상태면 장거리 이송도 충분히 버티겠군.”

    소장은 양손을 벌리고 소리쳤다. 

    “연구소 이전을 시작하자!”

    소장의 외침이 지하실 내부에 퍼지자, 시체처럼 쓰러진 연구원들이 꿈틀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눈알이 터지고,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내장을 흘리면서도 움직이는 연구원들의 표정은 우울해 보였다.

    ***

    캠프 북쪽에 도착하자, 황량한 풍경과 대비되는 커다란 하수도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확실히 이곳이겠군.”

    “선배. 정말 이곳이 맞는 거예요?

    후배 1호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핏물을 토해내고, 입구부터 시체가 즐비한 배수로는 꺼림칙할 법도 하지.

    배수로 입구에 쓰러진 닌자 시체를 보면 닌자들이 일제히 향한 곳은 여기가 분명해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무수한 시체들이 생기를 잃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핏물에 푹 잠긴 시체들.

    닌자들의 시체가 가득 깔린 지하 수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점점 그 숫자가 늘어만 갔다.

    시체가 어찌나 많은지, 배수로에서는 물 대신 핏물을 잔뜩 토해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잔뜩 긴장한 일행이 보였다.

    후배 1호는 망치를 들고 사방을 경계하며 내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후배 2호는 총알을 다시 채워놓은 리볼버를 양손으로 꼭 쥔 채, 의뢰인 옆에 딱 붙어있었다.

    의뢰인은 왠지 상태가 이상했다. 

    조금 몽롱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하수도의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가자, 생소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배수로를 흐르는 짙은 핏물과 심장 소리가 어우러져서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수도를 따라서 점점 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들어갈수록 시체의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체는 닌자의 시체뿐이었다.

    도대체 닌자는 뭐랑 싸운 거지?

    심장 소리도 점점 커졌다.

    이제는 소리의 영역에서 벗어나 벽이나 바닥이 울릴 정도로 커졌다.

    하수도의 끝에는 의외로 깔끔한 공터가 우리를 반겨줬다.

    커다란 심장 소리가 울리고, 벽면에서는 정체불명의 핏물이 계속 흐르는 정체불명의 공간. 

    공터의 외곽에는 닌자의 시체가 가득했고, 공터의 중앙에는 하얀색 실험복을 입은 자들이 우리를 반겨줬다.

    “오랜만이군! 노란 옷의 탐정.”

    중앙에서 비틀린 웃음을 짓고 있는 연구 소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중앙 연구소에서 봤던 연구 소장과 똑같이 생긴 존재가 생기 넘치는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 연구소에서 봤던 소장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내 느낌상으로도 그랬고, 외눈 안경에 비치는 문구들도 다른 존재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중앙 연구소에서 봤을 때는 [소장으로 있는 한, 연구소는 파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이런 문구였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문구로 변해있었다.

    [소장이 존재하는 한, 연구원들을 소유한다.]

    [연구가 끝나지 않는 한, 소장은 재생한다.]

    [소망을 이루지 않는 한, 연구는 끝나지 않는다.]

    내 외눈 안경은 정보를 누락하거나 아예 안 보여주는 경우는 있었지만, 적어도 같은 오브젝트를 보면 언제나 같은 문구를 보여줬었다.

    즉, 지금 눈앞의 소장과 중앙 연구소의 소장은 전혀 다른 오브젝트라는 뜻이었다.

    ‘찾았다.’

    내가 찾던 인물은 역시 여기 있었다.

    의뢰인이 찾아달라고 부탁한 남동생.

    인명부에서 봤던 사진과 똑같이 생긴 청년이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피투성이에, 밧줄로 의자 위에 묶여있긴 했지만 말이다.

    “동생이에요! 동생이 저기 있어요!”

    그때 의뢰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역시 그 손가락은 피투성이 청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의뢰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동생이라?

    남동생의 나이를 초등학생 정도로 생각하던 후배 1호와 2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의뢰인의 말을 들은 연구 소장은 사나운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실험체를 훔쳐 가려는 도둑들이었군.”

    낮게 긁는 듯한 소장의 목소리와 함께, 주변에 늘어서 있던 연구원들이 일제히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

    옴뇸뇸.

    산처럼 쌓인 푸딩을 먹으니 행복했다.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푸딩!

    그렇게 푸딩을 쌓아놓고 먹고 있을 때,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에서 들려오는 작고 미약한 소리.

    너무 작아서 무시하고 푸딩을 먹으려고 할 때, 조금 더 분명하게 들려왔다.

    애오오오오오옹!

    유령 고양이의 다급한 울음소리였다.

    아, 유령 고양이!

    까맣게 잊고 있었네….

    즐거운 닌자 피라미드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어.

    설마,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지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추적하기 위해서, 유령화로 그대로 지면을 파고들었다.

    파고들어 간 지면 밑에는 피 냄새로 가득한 방이 하나 있었다.

    고양이를 찾으려고 들어온 지하에서, 악의의 근원을 찾아냈다.

    처음 내가 찾으려고 했던 장소였다.

    꺼림칙한 악의가 터져 나오던 장소.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온 피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회색의 콘크리트를 검붉게 물들이고, 바닥에 고인 핏물은 요사스러운 빛을 냈다.

    피 냄새가 어찌나 고여있던지, 마치 쇠를 핥는 것 같은 느낌.

    그 방 중앙에는 의자에 묶인 시체가 하나.

    목이 없는 시체.

    그 시체에서 내가 느꼈던 악의의 편린이 느껴졌다.

    자세히 살펴봐야 알 수 있을 정도로 희미했지만 분명했다.

    하지만 악의를 풍기던 어떤 ‘것’은 이미 여기 없었다.

    흐음 도대체 뭐였던 걸까?

    애오오오오오옹!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는 상당히 다급해 보였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