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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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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릎까지 오는 부츠가 흐릿하 게 일그러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혐오스러운 얼굴이 희뿌연 안개에 삼켜진 것처럼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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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렁거림 사이로 살며시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흔적에 아이리스는 어쩐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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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제멋대로 바짝 긴장하고 숨이 멈춰버린다.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멍한 얼굴로 흐릿해졌다가 돌아오는 노예 상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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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왜 이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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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이 울렁거리고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고열에 시달리는 것처럼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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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학..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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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혀있던 숨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와 어깨가 마구 들썩거렸다. 새빨간 안개 때문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노예 상인이 휘두르던 검에 독이라도 발라져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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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지만, 그 어떠한 말도 대답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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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빡,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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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노예 상인의 팔이 익숙한 이의 팔처럼 보였고, 피로 흠뻑 젖은 옷이 눈에 익었다. 똑똑한 아이리스는 곧바로 어떠한 ‘정답’을 떠올렸지만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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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을 머릿속에 넣어둘 필요는 없었다. 멍하니 흐릿한 노예 상인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아이리스를 툭툭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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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봐 이만 들어가라. 다음 경기 준비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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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하니 시선을 돌리자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에 일반 사람보다 두배는 커 보이는 머리 크기, 2m는 되어 보이는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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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봐도 힘 좀 꽤 쓰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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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쓰러져 있는 노예 상인을 바라보았다. 공기가 맑아진 이후부터 노예 상인의 형제가 뭉개지는 횟수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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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 안 들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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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한쪽 팔이 거칠게 붙잡혀 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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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이런 가벼운 몸으로 경기를 뛰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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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깜짝 놀란 듯 아이리스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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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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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이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몸이 흔들리자 아이리스는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토해낼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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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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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습에 남자가 거칠게 아이리스를 던져버렸다. 아이리스는 땅바닥을 구른 후 본능적으로 옆에 떨어진 검을 손에 쥐었다. 리안이 죽으면서 계약이 풀린 마검 가르간도아가 아이리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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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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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을 쥐는 것과 동시에 아이리스의 시야가 크게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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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 너 같은 괴물은 살아있어선 안 돼.
    너,너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괴물이야?
    끔찍해! 괴물! 괴물!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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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비명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리스는 시야가 더 크게 출렁거리는 걸 느끼면서 입가를 가리던 손을 아래로 내려 바닥을 짚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닥에 엎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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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만한! 물건이군? 
    언니,언니,언니니니니.
    있잖아? 나 살고, 싶어?
    히히 맞아,히히 맞아, 히히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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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겨우 억눌러 놓았던 끔찍한 기억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목소리 톤이 이리저리 튀고 같은 말이 몇 번이고 반복되어 들려왔다. 칠판을 긁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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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 제발,제발 그만…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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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명을 내지르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더욱 많아질 뿐 멈추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모든 기억을 되찾은 사람처럼 온갖 기억이 튀어나와 시야를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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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우욱…싫어,아아악! 오,빠…오빠..오빠 살려줘.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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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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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네가 죽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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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자와 남자 어린아이와 노인의 목소리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아이리스는 목소리의 기괴함보다 그 내용에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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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네가 저지른 짓을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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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이 제멋대로 끼긱 옆으로 돌아간다. 마치 누군가가 머리를 잡아 억지로 옆으로 돌린 것처럼 한계까지 옆으로 돌아간 머리는 이내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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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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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멍한 얼굴로 ‘오빠’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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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왜? 왜..? 분,명 노예..상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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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어버린 제 오빠를 바라보며 아이리스는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웃음을 지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마주하자 반사적으로 몸이 웃음을 흘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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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냐…아니야. 이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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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넋을 놓은 채 그런 말만 중얼거렸다. 그녀의 정신이 산산이 부서져 내려가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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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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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그 남자가 리안의 목덜미를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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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 다행히 목이랑 다 잘 붙어있네. 조각나면 치우기 힘들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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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그리 말한 후 리안을 반쯤 질질 끌며 어딘가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는 멀어지는 제 오빠를 보기만 할 뿐 따라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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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찌른 것이 오빠라는 것을, 오빠가 죽어버렸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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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삶의 목표는 오로지 리안 뿐이었다. 그런 그를 자신이 직접 찔러 죽여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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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내가 죽인 건 노예 상인이었어. 그러니까…그러니까 아니야. 그래 이건 전부 그 이상한 안개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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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속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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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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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손에 들린 검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나왔던 입구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아이리스가 대기 장소로 들어가자 쥐 수인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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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제…올,라갈 수 있어?”
    “그래. 바로 올라갈 수 있을 거다. 우선 원래 있던 층에서 짐을 챙기고 -…”
    “아냐, 바로…바로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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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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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말문이라도 트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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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보다 훨씬 유연하게 대답하는 아이리스의 모습에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의문을 가볍게 털어냈다. 투기장은 갑자기 미쳐서 돌변하는 놈이 널리고 널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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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갑자기 말문이 트인 것 정도는 별거 아닌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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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은 곧바로 아이리스를 엘리베이터에 태워 리안이 머물던 층에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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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이 하나 비어있긴 한데, 아직 정리를 -…”
    “오,빠의 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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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은 콧수염을 찡긋거리며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다가 피범벅이 된 아이리스를 더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 노예에게 아이리스를 리안의 방으로 데려다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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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한 표정으로 노예와 함께 떠나는 아이리스를 보며 쥐수인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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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가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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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난리 칠지도 모르니 당분간 아이리스 앞으로 배정되는 일은 다른 놈을 통해서 전달해야 할 것 같았다. 쥐수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나고 아이리스는 리안의 방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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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잠겨있지 않아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휙휙 저으며 리안을 찾고자 눈을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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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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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마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빠져 떨어뜨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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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마검이 바닥을 구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전보다 훨씬 넓은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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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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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으로 연신 리안을 찾으며 번뜩이는 눈으로 온 방 안을 뒤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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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방은 물론, 화장실부터 옷장 안까지 뒤적거렸지만 리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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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대뼈가 울렁거렸다. 아이리스는 온몸이 차게 식어가는 걸 느끼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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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분명 잠깐 일..일이 있어서 외,출한 것뿐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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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는 강하게 고개를 저은 후 활짝 열린 옷장 안에 걸린 리안의 옷을 꺼내 품에 껴안은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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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옷도 여기 다 있잖아. 나도,오빠 동생인 나도..여기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금방 돌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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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애써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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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옷을 끌어안은 채, 그의 체향이 가득한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린 채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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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조용히 문이 열린다. 그러면 자신은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달려가면…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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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리안의 옷을 껴안은 채 과거를 더듬으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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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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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과 낮의 경계. 세상이 어둠에 집어삼켜지기 시작한 시간에 누군가가 아이리스가 숨을 죽이고 있는 방으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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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발걸음 소리를 통해 방으로 찾아온 사람이 리안이 아니라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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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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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노크 소리가 들려와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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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손님께서 너희 오빠를 만나게 해주신다고 하니 나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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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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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황급히 달려 나갔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가느다란 침 형태의 마검이 그녀의 발목에 찰싹 달라붙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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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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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게 문을 열자, 투기장에서 아이리스를 던져버렸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이리스의 손목을 잡아끌려 했지만, 아이리스가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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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그래, 네 맘대로 해라. 제대로 따라오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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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아이리스와 입씨름을 하려다가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인지하고는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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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보고 싶었던 아이리스는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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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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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앙쇼의 방 앞이었다. 아이리스는 이미 눈이 돌아간 상태였기에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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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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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 조절이 힘들어 문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소리를 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리스는 빠르게 걷다가, 결국에는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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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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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이 정도 달린다고 그녀가 지칠 리는 없었지만, 감정이 격해진 탓에 숨까지 거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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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만이 주변을 환히 밝혀주고 있는 음침한 복도를 빠르게 지나치자 복도 끝에 양쪽으로 열리는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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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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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문을 부숴버릴 것처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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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악,학…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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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를 높이며 탁 트인 거실에 도착한 아이리스는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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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마침 잘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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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는, 가슴이 꿰뚫린 리안의 텅 빈 눈동자가 아이리스를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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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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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까지 오는 부츠가 흐릿하 게 일그러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혐오스러운 얼굴이 희뿌연 안개에 삼켜진 것처럼 일렁거렸다.

일렁거림 사이로 살며시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흔적에 아이리스는 어쩐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몸이 제멋대로 바짝 긴장하고 숨이 멈춰버린다.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멍한 얼굴로 흐릿해졌다가 돌아오는 노예 상인을 바라보았다.

‘왜…왜 이런 거지?’

속이 울렁거리고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고열에 시달리는 것처럼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학,학..하악..”

막혀있던 숨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와 어깨가 마구 들썩거렸다. 새빨간 안개 때문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노예 상인이 휘두르던 검에 독이라도 발라져 있었던 걸까?

온갖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지만, 그 어떠한 말도 대답이 되지 못했다.

깜빡,깜빡.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노예 상인의 팔이 익숙한 이의 팔처럼 보였고, 피로 흠뻑 젖은 옷이 눈에 익었다. 똑똑한 아이리스는 곧바로 어떠한 ‘정답’을 떠올렸지만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을 머릿속에 넣어둘 필요는 없었다. 멍하니 흐릿한 노예 상인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아이리스를 툭툭 두드렸다.

“이봐 이만 들어가라. 다음 경기 준비해야 해.”

멍하니 시선을 돌리자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에 일반 사람보다 두배는 커 보이는 머리 크기, 2m는 되어 보이는 키.

딱 봐도 힘 좀 꽤 쓰게 생겼다.

아이리스가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쓰러져 있는 노예 상인을 바라보았다. 공기가 맑아진 이후부터 노예 상인의 형제가 뭉개지는 횟수가 늘었다.

“내 말 안 들리냐?”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한쪽 팔이 거칠게 붙잡혀 당겨졌다.

“뭐야? 이런 가벼운 몸으로 경기를 뛰었다고?”

남자는 깜짝 놀란 듯 아이리스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우웁..”

머릿속이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몸이 흔들리자 아이리스는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토해낼 것만 같았다.

“아,씨…”

그 모습에 남자가 거칠게 아이리스를 던져버렸다. 아이리스는 땅바닥을 구른 후 본능적으로 옆에 떨어진 검을 손에 쥐었다. 리안이 죽으면서 계약이 풀린 마검 가르간도아가 아이리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쿵!

마검을 쥐는 것과 동시에 아이리스의 시야가 크게 출렁거렸다.

괴물, 너 같은 괴물은 살아있어선 안 돼.
괴물, 너 같은 괴물은 살아있어선 안 돼.

너,너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괴물이야?
너,너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괴물이야?

끔찍해! 괴물! 괴물! 괴물!
끔찍해! 괴물! 괴물! 괴물!


머릿속에 비명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리스는 시야가 더 크게 출렁거리는 걸 느끼면서 입가를 가리던 손을 아래로 내려 바닥을 짚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닥에 엎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쓸만한! 물건이군?
쓸만한! 물건이군?

언니,언니,언니니니니.
언니,언니,언니니니니.

있잖아? 나 살고, 싶어?
있잖아? 나 살고, 싶어?

히히 맞아,히히 맞아, 히히 맞아?
히히 맞아,히히 맞아, 히히 맞아?


아이리스가 겨우 억눌러 놓았던 끔찍한 기억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목소리 톤이 이리저리 튀고 같은 말이 몇 번이고 반복되어 들려왔다. 칠판을 긁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아아 -, 제발,제발 그만…그만!”

비명을 내지르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더욱 많아질 뿐 멈추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모든 기억을 되찾은 사람처럼 온갖 기억이 튀어나와 시야를 어지럽혔다.

“으우욱…싫어,아아악! 오,빠…오빠..오빠 살려줘. 리안!”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리안은 네가 죽였잖아?
리안은 네가 죽였잖아?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자와 남자 어린아이와 노인의 목소리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아이리스는 목소리의 기괴함보다 그 내용에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자, 네가 저지른 짓을 봐봐.
자, 네가 저지른 짓을 봐봐.

얼굴이 제멋대로 끼긱 옆으로 돌아간다. 마치 누군가가 머리를 잡아 억지로 옆으로 돌린 것처럼 한계까지 옆으로 돌아간 머리는 이내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어…?”

아이리스는 멍한 얼굴로 ‘오빠’를 내려다보았다.

“어,왜? 왜..? 분,명 노예..상인이…”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어버린 제 오빠를 바라보며 아이리스는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웃음을 지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마주하자 반사적으로 몸이 웃음을 흘린 것이다.

“아,냐…아니야. 이거 아니야…”

아이리스는 넋을 놓은 채 그런 말만 중얼거렸다. 그녀의 정신이 산산이 부서져 내려가던 그때.

덥석.

아까 그 남자가 리안의 목덜미를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휴, 다행히 목이랑 다 잘 붙어있네. 조각나면 치우기 힘들단 말이지.”

남자는 그리 말한 후 리안을 반쯤 질질 끌며 어딘가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는 멀어지는 제 오빠를 보기만 할 뿐 따라가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찌른 것이 오빠라는 것을, 오빠가 죽어버렸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연했다.

지금의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삶의 목표는 오로지 리안 뿐이었다. 그런 그를 자신이 직접 찔러 죽여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내가 죽인 건 노예 상인이었어. 그러니까…그러니까 아니야. 그래 이건 전부 그 이상한 안개 때문이야.’

아이리스는 속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스릉.

그녀는 손에 들린 검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나왔던 입구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아이리스가 대기 장소로 들어가자 쥐 수인의 모습이 보였다.

“나,이제…올,라갈 수 있어?”

“그래. 바로 올라갈 수 있을 거다. 우선 원래 있던 층에서 짐을 챙기고 -…”

“아냐, 바로…바로 갈래.

쥐 수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갑자기 말문이라도 트인 건가?’

전보다 훨씬 유연하게 대답하는 아이리스의 모습에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의문을 가볍게 털어냈다. 투기장은 갑자기 미쳐서 돌변하는 놈이 널리고 널린 곳이다.

아이리스가 갑자기 말문이 트인 것 정도는 별거 아닌 변화였다.

쥐 수인은 곧바로 아이리스를 엘리베이터에 태워 리안이 머물던 층에 데려다주었다.

“방이 하나 비어있긴 한데, 아직 정리를 -…”

“오,빠의 방은?”

쥐 수인은 콧수염을 찡긋거리며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다가 피범벅이 된 아이리스를 더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 노예에게 아이리스를 리안의 방으로 데려다주라고 말했다.

환한 표정으로 노예와 함께 떠나는 아이리스를 보며 쥐수인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나 보지?’

나중에 난리 칠지도 모르니 당분간 아이리스 앞으로 배정되는 일은 다른 놈을 통해서 전달해야 할 것 같았다. 쥐수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나고 아이리스는 리안의 방에 도착했다.

문이 잠겨있지 않아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휙휙 저으며 리안을 찾고자 눈을 반짝거렸다.

챙그랑.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마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빠져 떨어뜨린 것이다.

아이리스는 마검이 바닥을 구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전보다 훨씬 넓은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빠,오빠…”

입으로 연신 리안을 찾으며 번뜩이는 눈으로 온 방 안을 뒤적거렸다.

모든 방은 물론, 화장실부터 옷장 안까지 뒤적거렸지만 리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대뼈가 울렁거렸다. 아이리스는 온몸이 차게 식어가는 걸 느끼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분명 잠깐 일..일이 있어서 외,출한 것뿐일..거야.”

머릿속에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는 강하게 고개를 저은 후 활짝 열린 옷장 안에 걸린 리안의 옷을 꺼내 품에 껴안은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옷,옷도 여기 다 있잖아. 나도,오빠 동생인 나도..여기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금방 돌아올 거야!”

아이리스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애써 지워버렸다.

리안의 옷을 끌어안은 채, 그의 체향이 가득한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린 채 숨을 삼켰다.

멀리서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조용히 문이 열린다. 그러면 자신은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달려가면…그러면…

아이리스는 리안의 옷을 껴안은 채 과거를 더듬으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밤과 낮의 경계. 세상이 어둠에 집어삼켜지기 시작한 시간에 누군가가 아이리스가 숨을 죽이고 있는 방으로 찾아왔다.

아이리스는 발걸음 소리를 통해 방으로 찾아온 사람이 리안이 아니라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똑똑똑.

그래서 노크 소리가 들려와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이! 손님께서 너희 오빠를 만나게 해주신다고 하니 나와라!”

“….!”

팟!

아이리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황급히 달려 나갔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가느다란 침 형태의 마검이 그녀의 발목에 찰싹 달라붙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덜컹!

거칠게 문을 열자, 투기장에서 아이리스를 던져버렸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이리스의 손목을 잡아끌려 했지만, 아이리스가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피해버렸다.

“하…그래, 네 맘대로 해라. 제대로 따라오기나 해.”

남자는 아이리스와 입씨름을 하려다가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인지하고는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리안이 보고 싶었던 아이리스는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들어가.”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앙쇼의 방 앞이었다. 아이리스는 이미 눈이 돌아간 상태였기에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덜컹,쩌적.

힘 조절이 힘들어 문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소리를 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리스는 빠르게 걷다가, 결국에는 달려 나갔다.

“학,하악…!”

고작 이 정도 달린다고 그녀가 지칠 리는 없었지만, 감정이 격해진 탓에 숨까지 거칠어졌다.

촛불만이 주변을 환히 밝혀주고 있는 음침한 복도를 빠르게 지나치자 복도 끝에 양쪽으로 열리는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콰앙!

아이리스는 문을 부숴버릴 것처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악,학…오빠!”

목소리를 높이며 탁 트인 거실에 도착한 아이리스는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아, 마침 잘 오셨습니다.”

거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는, 가슴이 꿰뚫린 리안의 텅 빈 눈동자가 아이리스를 직시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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