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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불이 모두 꺼진 락커룸 내부.

         

       고요함이 내려앉은 공간 위로는 휑한 느낌만이 맴도는 중이었다.

         

       어둠이 잠식한 풍경 안으로는 두 인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둘을 서로를 마주 본 채로 서있었다.

         

       한 명은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연갈색 머리의 청년.

         

       다른 한 명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칠흑색 머리의 소년.

         

       청년과 소년은 짙은 침묵과 함께 복잡한 시선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

         

       “……”

         

         

       잠시 이어지던 모호한 대치를 깬 것은 다름 아닌 청년 쪽이었다.

         

       청년은 작은 침음을 흘리며 눈을 피했다.

         

       그의 손에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짐가방이 들려있었다.

         

       머리 위로 검은색 모자를 깊게 눌러쓴 모습은, 영락없이 어딘가로 떠나는 이의 그것이었다.

         

         

       소년은 그런 청년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애처로운 흑안.

         

       청년은 차마 그 슬픔을 바라보지 못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 나루야… 형이 말이야, 조금 먼 곳으로 떠나게 돼버렸어…”

         

       “……”

         

         

       소년은 말이 없었다.

         

       그저 멈칫거리며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청년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잔뜩 움츠러들어있는 소년의 모습은, 청년으로 하여금 두 사람의 첫만남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안녕! 네가 나루구나?

         

       -내가 네 바로 윗기수 선배야! 창호 형이라고 불러!

         

       -뭐든 힘든게 있으면 말해, 내가 도와줄테니까!

         

         

       청년은 목이 매어오는 것을 느꼈다.

         

       분명 무엇이든 해결해주겠다고 호언장담 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로 떠나는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툭, 투둑…

         

       차가운 락커룸 바닥으로 떨어지는 몇 방울의 눈물.

         

       소년의 창백한 뺨에는 어느새 투명한 실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청년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량한 손길을 따라 소년의 고개는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했다.

         

         

       청년은 자꾸만 구겨지는 표정을 다잡았다.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얼굴 위로는 어색하게 오려 붙인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볼품없는 미소였다.

         

         

       “이별 선물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이거, 받아줘.”

         

       

       청년은 작은 에코백 하나를 건네주며 그리 말했다.

         

       그 안으로는 몇 권의 책들이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해묵은 겉표지에는 ‘슬픔을 지워내는 용사들’이라는 제목이 박혀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소년은 이게 무엇이냐고 묻는 것처럼 청년을 올려다봤다.

         

         

       “너가 특별히 좋아했던 소설이잖아… 어차피 나는 안 볼거니까…”

         

       “……”

         

         

       청년의 중얼거림에 소년은 푹 고개를 숙였다.

         

       소년의 상처 가득한 손이 에코백을 꽉 쥐었다.

         

       청년은 죄책감에 물든 눈으로 울먹이는 소년을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돌렸다.

         

         

       “그럼… 안녕, 나루야.”

         

         

       미안해.

         

       도망치듯이 떠나가서.

         

         

       -달칵, 끼이익…

         

       짧은 작별 인사와 함께 락커룸의 문을 열고 밖으로 향하는 청년.

         

       소년은 그런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기어코 울음을 터트렸다.

         

         

       “훌쩍, 흑…”

         

         

       그 울음 소리에 청년은 잠시 멈칫했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렇게, 소년의 곁에서 또 한 사람이 떠나갔다.

         

         

       .

       .

       .

         

         

       무더운 여름의 어느날.

         

       찬란한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며 푸른색의 풀잎들을 달구고 있었다.

         

       싱그러운 나뭇잎들 사이로는 진한 녹음이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그 흘러내린 계절의 향취는 창문을 타고 스멀스멀 방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띠리링! 띠리링!

         

       침대 옆에 놓여있던 알람 시계가 세차게 울어댄다.

         

       그 시끄러운 소음을 따라 꿈에서 깨어난 창호가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으으으……”

         

         

       작은 심음과 함께 비몽사몽 눈을 부비는 창호.

         

       그는 아직 감각이 맹한 손으로 머리맡을 더듬거리며 알람을 해제했다.

         

       알람이 꺼진 시계는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말없이 시간을 바라보던 창호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굳어있던 몸이 중력을 따라 무기력하게 널부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채로 가만히 눈의 초점을 잡고 있으면, 곧 하얀색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말의 무늬조차 존재하지 않는 밋밋한 배경.

         

       창호는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이내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안, 나루야… 형이 말이야, 조금 먼 곳으로 떠나게 돼버렸어…

         

       -그럼… 안녕, 나루야.

         

         

       그의 뇌리에서는 방금까지 스쳐지나갔던 꿈의 한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창호는 귓가에 아른거리는 과거의 목소리에 뒤척거렸다.

         

         

       “……씨발.”

         

         

       별안간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욕지거리가 방 안의 고요를 거두었다.

         

       대상을 특정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은 어지럽게 주변을 맴돌았다.

         

         

       한 달.

         

       한 달이 지났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나루가 죽은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세계 검도 2위, 국가대표 선수. 한 건물 옥상에서 투신 자살해…]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

         

         

       얼마 전, 별 생각 없이 들어갔던 인터넷 기사에서 발견한 내용이었다.

         

       제목을 확인했을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창호는 ‘설마’라고 중얼거리면서 그것을 클릭했지만, 불길한 예감이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

         

         

       창호는 뒤늦게 나루의 부고를 접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과거의 순간들을 회상해야만 했다.

         

         

       -나루야, 좀 쉬면서 하자.

         

       -에이~ 좀 쉬고 하자니까! 휴식도 중요하다?

         

       -쉿, 우리 훈련은 잠깐 재껴놓고 구석에서 책이나 읽고 있을까?

         

       -괜찮다니까~ 안 들키면 되지!

         

         

       “……젠장.”

         

         

       끔찍하게 울렁거리는 가슴팍을 부여잡으며 창호는 표정을 구겼다.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머릿속은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았다.

         

       창호는 헛구역질과 함께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껴주었던 아이였다.

         

       친동생처럼 여기며 대해주었던 아이였다.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아이였다.

         

       원치 않는 불행의 굴레에 갇힌 채로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살아가던 아이.

         

         

       그렇기에 창호는 나루를 돕고 싶었다.

         

       그에게 손을 뻗어주고 싶었다.

         

       창호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를 감싸주기 위해 나섰다.

         

       한 순간의 치기로 이어졌던 행동, 그것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나 때문이야……”

         

         

       내가 다 망쳐버렸어.

         

       나 때문에.

         

       창호는 영문 모를 말들을 중얼거리며 침대보를 꽉 움켜쥐었다.

         

       거친 손길을 따라 한껏 일그러지는 천.

         

       그것은 마치 그의 후회가 담긴 기억의 한 조각을 담아내는 듯 했다.

         

         

       “……차라리, 그때 너를 데리고 도망쳤어야 했는데.”

         

         

       폭력 사건에 휘말려 반 강제로 검도계를 떠나게 되었던 그때.

         

       부모님을 모시고 도망치는 것처럼 시골로 내려오던 그때.

         

       내 전용 락커를 정리하고 국가대표의 자리를 떠나야만 했던 그때.

         

       망설이지 않고 너와 함께 도망쳤다면…

         

       악마 같은 작자에게 고문 당하던 너를 구해낼 용기가 있었더라면…

         

         

       너의 결말이.

         

       이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았을텐데.

         

         

       “내가 비겁해서…”

         

         

       창호는 입술을 씹으며 눈가를 가렷다.

         

       얼마 지나지 않아 투명한 실선이 그의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옅은 흐느낌은 여름 공기를 타며 방 안으로 울려퍼졌다.

         

       낡은 화면 속으로는 기억의 비디오 테이프가 돌아아고 있었다.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

         

       네가 사라지고 난 후.

         

       죄책감과 그리움에 사로잡혀 곱씹어보는, 미약한 기억의 편린.

         

         

       .

       .

       .

         

         

       나루의 죽음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

         

       창호가 국대에서 나루와 만나고, 형제처럼 지내게 된지 1년이 다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고된 일정을 소화해낸 직후.

         

       나루에게 얼굴이나 비추러 갈까, 하며 가벼운 걸음을 옮기고 있던 창호.

         

       그런 그를 누군가가 불러세웠다.

         

         

       “서창호.”

         

       “……?”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돌리던 창호는.

         

       곧 시야로 들어오는 한 남자의 모습에 안색을 딱딱하게 굳힐 수 밖에 없었다.

         

       검은 머리카락과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는 중년.

         

       거의 6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전혀 반가운 느낌이 들지 않는 얼굴이기도 했다.

         

         

       “……한철 선배님.”

         

         

       창호는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눈앞의 남자를 노려봤다.

         

       김한철.

         

       한국 검도계의 전설이라 불리우는 인물이자, 세계 대회 5연속 우승의 신화를 써내린 괴물.

         

         

       대한민국 검도 역사의 정점에 서있음과 동시에.

         

       현재 한국 검도 협회의 협회장 직위를 맡고 있는 사람.

         

         

       그리고…

         

       나루의 아버지 되는 이였다.

         

         

       .

       .

       .

         

         

       훈련장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카페 안.

         

       구석진 곳에 위치한 테이블에서는 두 남자가 마주 앉아있었다.

         

       연갈색 머리의 청년과 검은색 머리의 중년.

         

       서창호와 김한철이었다.

         

         

       “그래서… 어쩐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창호가 싸늘한 눈빛으로 한철을 쏘아보며 물었다.

         

       그 눈빛에는 경멸과 혐오, 배신감 같은 것들이 진하게 뒤섞여 있었다.

         

       어린 시절 동경했던 영웅의 추악한 면을 마주한 아이의 눈이었다.

         

         

       “오랜만이군… 대충 6년 만인가.”

         

         

       한철은 그런 창호의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창호는 뻔뻔한 한철의 태도에 속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예… 오랜만이군요.”

         

       “반응이 영 시원찮군.”

         

         

       감정이 매마른 목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놓여진 커피잔을 매만지는 한철.

         

       그는 검지 손가락으로 잔을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찾아온 이유는… 말 하지 않아도 알겠지.”

         

       “……”

         

         

       창호는 입을 다물었다.

         

       이유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외면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지난 1년 동안, 네 놈이 내 아들과 가까이 지냈다는 것을…”

         

         

       창호가 속한 훈련 맴버들 사이에는 한 가지의 불문율이 존재했다.

         

       바로 ‘김나루’라는 아이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나루라는 애 말이야… 협회장님의 아들이라는 애.

         

       -걔랑 얽힌 선배들은 다 끝이 안 좋았어.

         

       -조금이라도 호의를 보이거나, 친절하게 대해주면…

         

       -의문의 폭력 사건에 휘말리거나, 이상한 부상을 당해서 반 강제로 은퇴를 당했다고 해…

         

       -그러니 되도록이면 쟤랑은 엮이지 않는게 좋아.

         

         

       창호는 속으로 선배들이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곱씹었다.

         

         

       “알고 있겠지? 그동안 많이 봐줬다는 것을…”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 아들에게서 떨어져라.”

         

         

       창호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철은 고집스러운 창호의 태도에 한숨을 쉬며 그를 응시했다.

         

       그 공허한 눈동자는 일말의 생기 한 점 없이 거멓게 죽어있었다.

         

         

       “선수 생활을 생각해라… 그까짓 잔정 때문에 네 인생 전부를 망쳐버리고 싶은 거냐?”

         

         

       이건 경고다.

         

       너의 삶에게 전하는 경고.

         

         

       “잘 생각해봐라.”

         

         

       한철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잔을 기울였다.

         

       태연한 말투와 행동은 창호의 이빨이 갈리도록 만들었다.

         

       저 말이 정녕 아버지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인가.

         

       커피잔을 들고 있던 창호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우그득…!

         

       일회용 컵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며 우그러졌다.

         

       형태를 따라 범람한 내용물은 청년의 손을 차갑게 적셨다.

         

       창호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가다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대체 이러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라니.”

         

       “그 가련한 아이를, 이토록 잔인하게 몰아세우는 이유 말입니다…!”

         

       “……”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루가 받는 훈련들은 어딘가 한 군데씩 나사가 빠져있었다.

         

       이상한 갖가지 무기들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대련을 시킨다던가.

         

       일주일에 한 번씩 마라톤 코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뛰게 만든다던가.

         

       훈련을 한답시고 하루 종일 구타를 한다던가.

         

         

       모두 정상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있는, 이상한 훈련이었다.

         

       그것들은 ‘훈련’보다는 ‘고문’에 가까워 보였다.

         

       악의로 가득 찬 지독하기 짝이 없는 고문.

         

       훈련 따위는 안중에도 없도, 고통을 주는 것에만 치중한 듯 한.

         

         

       “대체… 그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러시는 겁니까…?”

         

         

       창호의 물음에 한철의 동공이 한층 어두운 색감으로 물들었다.

         

       칠흑이 깊게 녹아내린 흑안은 마치 달빛이 없는 밤하늘처럼 보였다.

         

       한철은 싸늘하게 답했다.

         

         

       “그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다.”

         

       “미친 새끼.”

         

         

       창호는 저도 모르게 걸쭉한 욕설을 토해냈다.

         

       한철은 전혀 개의치 않으며 죽은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이내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택해라. 계속해서 내 아들과 가깝게 지낼 것인지, 아니면 멀어질 것인지.”

         

         

       참고로 나는 후자를 추천한다.

         

       진심으로 말이다.

         

         

       .

       .

       .

         

         

       이후의 이야기는 뻔했다.

         

       창호는 잠깐의 침묵 끝에 나루의 곁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후회하게 될거다.

         

         

       한철은 그런 한 마디를 남기고는 카페를 나섰다.

         

       창호는 한철이 떠나간 테이블에 멍하니 남아있었다.

         

       그렇게 둘 사이의 만남이 있고 몇 달 뒤, 창호는 의문의 폭력 사건에 휩쌓였다.

         

         

       [충격! 현 검도 국대 서창호 선수, 폭력 사건에 휘말려……]

         

       [일전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인해 협회는 서창호 선수를 검도계에서 방출시키기로 결정……]

         

       [현 검도 협회장, 김한철. 이번 사건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다.’ 라고 의사를 밝혀……]

         

         

       창호는 발버둥 칠 틈도 없이 급류에 휩쓸렸다.

         

       몸 담고 있던 자리에서 순식간에 튕겨져 나와버린 창호는, 결국 도망치듯이 떠나야만 했다.

         

         

       .

       .

       .

         

         

       “씨발…”

         

         

       상념에 빠져있던 창호가 별안간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그 공허한 울림은 텅 빈 방 안으로 잔잔하게 뻗어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덧없이 바스라졌다.

         

         

       -저는… 나루의 곁에 남겠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두지는 않겠어.

         

         

       같잖은 다짐이었다.

         

       자신을 실망시킨 어릴 적 영웅에게 내세운 찰나의 오기였고.

         

       아직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섰던 젊은이의 치기였으며.

         

       자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나루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는 멍청한 오만이었다.

         

         

       창호는 이를 악물며 연신 눈가를 닦아냈다.

         

       떨리는 입술 사이로는 힘없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곁에 남기는 개뿔… 병신 같은게…”

         

         

       그날 다졌던 다짐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폭풍을 몰고왔다.

         

       폭력적이었고.

         

       압도적이었으며.

         

       감히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잔혹했다.

         

         

       창호는 결국 한철의 손길을 이겨내지 못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결과로 창호는 자신이 쌓아올렸던 모든 것을 잃었고.

         

       나루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되었다.

         

         

       “그때… 그냥 그렇게 도망치면 안 됐는데…”

         

         

       모든 것을 잃고 그렇게 도망칠 것이었다면.

         

       그때 나루를 홀로 두고 락커룸을 나서서는 안됐었다.

         

       차라리 그의 손을 붙들고 함께 도망쳤어야 했다.

         

       거대한 영향력 앞에서 겁을 집어먹고 꼬리를 내릴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했어야만 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부숴냈으니.

         

       그 파편들을 해쳐내어 지키고자 했던 것이라도 끝까지 지켜내야 했는데…

         

         

       “나 때문이야… 내가, 그날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했더라면…”

         

         

       차곡차곡 쌓인 죄책감은 아픈 기억을 이루고.

         

       그 기억은 감정의 한 켠을 채운다.

         

       나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당에 창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그저 아득한 후회의 탑을 올려다보며 씁쓸하게 상처를 핥는 것 뿐이었다.

         

         

       “읏, 윽…”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창호.

         

       여름의 햇살이 창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따스한 빛줄기가 초췌한 얼굴을 비출 때마다 미약한 온기가 그의 뺨을 쓸었다.

         

         

       실로 불쾌한 감각이었다.

         

       창호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뻗어 커튼을 쳤다.

         

       따스한 햇빛이 자신의 뺨에 닿았던 작은 소년의 손을 생각나게 해서.

         

       창호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창밖으로는 매미의 울음 소리가 울리고.

         

       공기는 여름의 뜨거움을 머금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여름이라는 계절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듯 했다.

         

       그러고 보니 항상 여름이었다.

         

         

       -안녕! 네가 나루구나? 내가 네 바로 윗기수 선배야! 창호 형이라고 불러!

         

         

       너를 처음 만났던 계절도.

         

         

       -그럼… 안녕, 나루야.

         

         

       내가 너를 떠나갔던 계절도.

         

         

       -나루가… 자살, 했다고…?

         

         

       너가 세상을 떠나갔던 계절도.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언어들이 흘러나온다.

         

       그 언어들을 흘려내는 목소리는 중얼거림보다는 통곡에 가까웠다.

         

       그것은 감정의 분출이었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 소리가 창호를 조롱하는 듯 했다.

         

         

       창호는 귀를 막고 웅크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름은 지나가지 않았다.

         

       그저 무더운 열기로 주저앉은 그의 몸을 비참하게 녹여낼 뿐이었다.

         

         

       그래, 여름.

         

       한 없는 여름이었다.

         

       소년을 앗아간, 지독하게도 잔인한 여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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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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