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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허억! 허억! 비, 빌어먹을!”

       “왜 그렇게 호들갑이오? <현상거절>에게 습격을 가한다고 하더니.”

       

       <페이즈 체인저>는 호텔에 모습을 드러낸 <공간왜곡>을 보며 의아한듯 물었다.

       

       김인만 덕분에 그는 지하를 나올 수 있었다. 지하 시설이 붕괴하는 순간, 그가 나타나 함께 공간을 도약한 것이다. 뭐…… 냉정하게 말하면 <페이즈 체인저>가 쏟아지는 토사에 휩쓸려 죽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지만.

       

       “조력자가 나타났다. <비를 내리는>과 <성녀> 말이야!”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 그의 주변에 강자들이 모이는 건 당연한 운명이오.”

       

       허허.

       

       자신과 동년배인 주제에, 아저씨 같은 너털웃음을 흘리는 <페이즈 체인저>를 보며 김인만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놈은 이게 문제다. 모든 일에 진중함 따위는 보이지 않고, 구름 흐르는 걸 구경하는 신선처럼 구는 성격이!

       

       “……결국, 실패인가?”

       “으, 으음!”

       

       김인만은 자신의 전신을 옭아매는 서늘한 목소리에 침음을 삼켰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 고급 객실 안에 있던 것은 <공간왜곡>과 <페이즈 체인저>가 전부가 아니었다.

       

       “하, 한석구 부회장……!”

       

       김인만의 시선 끝에는 여유 가득한 모습으로 독한 양주를 들이키는 한석구가 있었다. 비밀 연구소를 방어하는 것. 그게 일성의 황태자인 그가 내린 명령이었다. 

       

       하지만.

       

       “내, 내가 말하지 않았어?! 애당초 이곳이 아니라, 섬 바깥으로 한유리를 옮기는 게 맞다고!”

       

       경멸 어린 시선을 받은 김인만은 항변하듯 소리쳤다. 애당초 그는 이 계획을 반대했다. 

       

       히어로 아카데미가 어떤 곳인가?

       

       하늘을 가르고, 섬을 베는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다. 물론 <공간왜곡>과 <페이즈 체인저>라는 전력이 막강한 것은 사실이나…… 이곳엔 그에 준하는 놈들이 빌어먹을 만큼 많지 않나.

       

       “……버릇 없는 놈.”

       “뭐야? 이 일반인 나부랭이가 어디서 감히!”

       

       한석구의 나지막한 목소리. 그걸 들은 김인만이 분노하며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의 시선엔 한석구는 특별한 것 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애당초 ‘초능력’도 없는 주제에, 감히 그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그런데 이런 모욕이라니?

       

       “참을 수 없군. 동업자 신분이니 ‘계약’에 따라 움직였어. 그런데 날 무시해?”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석구를 쏘아본 김인만은 열변을 토해냈다. 그런 김인만의 외침을 심드렁한 얼굴로 바라보던 한석구는 귀찮다는 눈빛으로 그에게 손짓했다.

       

       “뒤를 조심해.”

       “그게 무슨 개소…….”

       

       쉬이이익!

       

       그 짧은 순간.

       

       김인만은 귀를 의심했다. 소리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공간을 뛰어넘은 차원의 균열. 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퍼걱!

       

       “커, 커허어어억!”

       

       날카로운 물의 창이 김인만의 우측 상반신을 꿰뚫고 지나간다.

       

       쿠웅!

       

       초능력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그것은 그제서야 기세를 잃고 호텔 방 구석에 처박혔다.

       

       “끄, 끄아악! 사, 살려줘! 의료진! 의사! 아무나 불러!”

       

       불의의 일격이 자신의 안방 같던 균열에서 튀어나왔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기습에 당한 김인만은 바닥에 쓰러져 소리쳤다.

       

       “출혈이 심하오. 움직이지 마시오.”

       “뭐, 뭐라고? 지, 지금 그게 할 소리야?”

       

       평온한 <페이즈 체인저>의 목소리에 김인만은 눈을 부라렸다.

       

       머리가 띵하고 손발이 벌벌 떨린다. 그만큼 김인만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걱정 없었다. 그의 동업자가 바로 그 일성의 황태자. 당장 히어로 아카데미 내엔 일성 재단 소속의 병원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저들은 보통내기가 아니오. 특히나 <현상거절>, 그는 나와 생사결을 펼칠 정도로 강력하지.”

       “……그런가? 그렇다면 계획을 일시적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었군. 이미 <신인류 계획>은 첫 삽을 떴으니 말이야.”

       “뭐, 뭐하는 거야? 어?!”

       

       김인만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끔찍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 피를 콸콸 흘리고 있는데 저 두 남자는 어찌 이리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단 말인가.

       

       거기다.

       

       슥슥.

       

       <페이즈 체인저>의 하는 꼴이 엽기적이었다.

       

       김인만을 돕기 위해서 다가온 줄 알았으나, 그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한유리의 초능력을 봉인했던 새하얀 ‘밧줄’을 김인만의 온몸에 감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적합 실험체는 찾았소. 하지만 걱정이오. 실험체가 버틸지.”

       “걱정하지 마라. 이미 한유리에게 씨앗이 뿌려졌다. 이 녀석도 씨를 뿌려두면, 언제고 수확할 시기가 다가올 거야.”

       “흠! 믿겠소. 그 누구도 아닌 일성의 황태자가 하는 말이니 말이오.”

       “…….”

       

       김인만은 입을 쩍 벌린 채로 두 남자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지금, 자신이 들은 게 사실인가?

       

       <페이즈 체인저>와 일성의 부회장 한석구. 그들은 자신을 두고 이미 ‘실험체’라 부르고 있었다.

       

       “처, 처음부터……?”

       

       김인만의 동공이 공포에 젖어들었다. 애당초 그를 차원의 균열, 그 틈바구니에서 꺼낸 것도 모두 이걸 목적으로 저지른 일이란 말인가.

       

       “살려줘……! 계약 내용과 다르잖아. 너희가 말한 건……!”

       

       푸슉!

       

       “끼아아아악!”

       

       어마어마한 출혈과 공포. 그 무게에 짓눌린 김인만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튀어나왔다.

       

       * * *

       

       지상으로 복귀하는 건 아주 쉬웠다.

       

       쿠구구구…….

       

       땅이 움직인다. 뭐라고 표현할까, 지반 자체가 마치 에스컬레이터처럼 움직인다고 할까?

       

       “언제부터 이런 능력을 쓸 수 있었던 거야?”

       “몰라! 조금 전인데… 혜성이가 다쳤다고 생각하니까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면서…… 막, 막 힘이 끓어올랐어.”

       “힘이?”

       “응! 마치 본능에 각인된 것처럼!”

       

       송수아의 생글생글한 미소에 나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힘이 끓어올라? 능력의 강화?

       

       이건 <각성>이다. 대부분 초능력자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 겪는 일로, 현시점에서 선택받은 극소수의 능력자만 경험할 일이고.

       

       ‘이게 재능충인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나, 하늘에 버림 받아 끝내 허무하게 떨어지는 꽃잎. 그게 송수아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 걸? 변해버린 운명은 더욱더 송수아라는 꽃을 화려히 피워냈다.

       

       ‘송수아의 능력은 ‘날씨’가 아닌 ‘자연’의 힘.’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었다. 워낙에 빨리 퇴장하는 캐릭터기에 이런 비밀까지 숨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어느덧 우리는 지상에 도착했다. 동시에 몰려드는 인파를 헤치고 걷고 있자니, 내 등 뒤에 업힌 한유리가 잠이 덜 깬 소리를 흘렸다.

       

       “유리몬! 정신이 들어?!”

       “다행입니다.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자 곧장 송수아와 안젤리카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음, 어, 아? 지금… 내가 왜 여기?”

       

       게슴츠레 눈을 뜬 한유리는 어울리지 않게 멍청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야 깼네.”

       “……꺅! 임혜성?! 왜, 왜 나를 업고 있는 거야?”

       

       깊은 잠에서 깨어난 한유리는 놀란 소리를 내뱉었다. 설마하니 자신이 내게 업힌 줄은 모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너, 너 엄청 위험했어! 막, 막!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게 또 일성의 소행이고, 혜성이가 막막, 화가 나서 너를 찾으러 가서, 그리고 또, 또또…….”

       

       송수아는 팔을 열심히 파닥거리며 설명했다. 미안한데, 나조차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거든?

       

       “정신 없어.”

       “으읏!”

       

       입을 삐죽 내밀며 토라진 듯한 송수아. 그 모습이 퍽 귀여웠지만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이 상황이지 않나.

       

       “설명이 필요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강의 상황은 이미 예측했던 우리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정확한 상황을 전해 들을 필요가 있었다.

       

       “……일성이야.”

       “일성?”

       “응, 아버지가 나를 불렀어. 그래서 만났고, 아버지가 권한 차를 마시고 난 뒤…… 학생회로 돌아왔어.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복통이 일었고.”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납치된 건가?”

       “응. 설마하니 아버지가 나를 노릴 줄은 상상도 못했어.”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애당초 한유리를 노릴 사람은 아카데미 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니까. 만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학생회장을 그 누가 미워할까.

       

       “……아버지가 너를 노린 이유는?”

       

       하지만, 우리는 더 이 사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한유리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마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물러날 수 없었다. 일성의 목적, 그들이 한유리를 노린 명확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야…… 한석구에게 한유리는 둘도 없는 딸이 아닌가. 그런 딸을 실험체로 사용한 미친 짓거리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아버지가 내게 제안했거든. 프로젝트의 이름은 <신인류 계획>이랬어.”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렸다.

       

       역시 ‘나’다. 이 타고난 추리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한 거구만.

       

       “임혜성.”

       “……왜?”

       “당신, 땀을 얼마나 흘린 거야? 등이 엄청 축축해.”

       

       이 상황에 불평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리 생각한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땀이 아니야.”

       “……그럼?”

       “이거 피야. 나도 다쳤거든?”

       “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성녀>한테 치료받았으니까.”

       

       설마하니 등짝이 축축한 원인이 피일 줄은 몰랐던 건지, 한유리가 놀라 뾰족한 소리를 내뱉었다.

       

       휙!

       

       그리고 내 뒤에 업힌 한유리는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가녀린 소녀입니다.”

       “나, 나는 능력을 사용하느라. 유리가 싫은 건 아니구우.”

       

       <성녀>와 <비를 내리는>은 열심히 책임을 회피했다.

       

       송수아는 참작의 가능성이 있었으나, 안젤리카가 지껄이는 건 한낱 개소리에 불과했다. 하나하나가 초인급 신체 능력을 가진 ‘랭커’가 가녀린 소녀는 얼어죽을.

       

       피식.

       

       “뭐, 상관 없나.”

       

       헛웃음을 흘린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겼다.

       

       목적지는 신성교단, 아카데미 지부. 일성에게 반격의 서막을 알릴 임시 베이스 캠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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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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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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