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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다행히 멀미는 하지 않았다. 가슴을 조금 졸이긴 했고, 길도 내가 지구에서 겪어본 아스팔트 길에 비해서 엄청나게 울퉁불퉁했지만 차 안에서 들은 제니퍼의 말로는 보급로도 겸하는 곳이라 길이 그렇게 거칠지 않다는 모양이다.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이것보다 훨씬 흔들리는 마차도 타고 다녔다. 자동차와는 다르게 서스펜션도 없는 마차가 많았으니까. 그 안에서 안전띠를 맸던 기억도 없고.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옆 창문 정도만 뚫린 경우가 대부분인 마차와는 다르게, 자동차 조수석은 앞에 시야를 방해하는 존재가 전혀 없었다. 속도는 시속 80km 정도였지만, 오랜만에 앞 시야가 탁 트인 자동차 안에서 안전띠도 없이 앉아있으니 오금이 저렸다.

        

       게다가 자동차라는 것 자체가 많이 없는 세계의, 통행량이 극히 적은 시골이라서 차가 무척 시원하게 달렸다.

        

       상쾌한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무서운 이상한 기분으로 차를 타고 나아가기를 약 40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숲속의 한 기지였다.

        

       “군인들이 지내는 곳은 아니다. 윈터필드의 넓은 숲을 지키는 사냥꾼들이 지키는 곳이지.”

        

       차를 적당한 장소에 세워두면서 제니퍼가 말했다.

        

       “하긴, 무장 수준만 본다면 우리 사병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제니퍼는 나를 흘끗 보면서 말했다.

        

       “황녀님이 보기에는 조금 거슬릴까?”

        

       “아닙니다.”

        

       나는 즉답했다.

        

       애초에 이런 건 내가 아니라 황제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고, 범위를 조금 더 넓히더라도 차기 황제가 될 앨리스가 신경 쓸 부분이었다.

        

       윈터필드는 공작 중에서도 충성스러운 자들이었다. 이 사병집단은 북부의 군벌이 쳐들어왔을 때 영지의 숲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황제의 머리를 노리고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녀님!”

        

       차 문을 열고 제니퍼가 밖으로 나가자, 곧장 수염이 덥수룩한 사냥꾼이 달려왔다.

        

       머리에 두꺼운 털모자를 썼다. 우샨카라고 하던가? 2차 세계대전의 소련군 병사가 썼을 법한, 귀마개가 달린 두꺼운 털모자였다.

        

       물론 사냥꾼이 입고 있는 옷은 군복은 아니었다. 털 코트 안쪽으로 언뜻 보이는 붉은 체크무늬 셔츠와 튼튼한 청바지를 보면 사실 사냥꾼보다는 나무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 둘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산속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면 1년 365일 나무를 베어다가 땔감으로 써야 했을 테니까.

        

       “이봐들, 공녀님이 오셨다!”

        

       사냥꾼 아저씨가 그렇게 외치자, 여기저기서 이 아저씨와 비슷한 복장의 다른 아저씨들이 여기저기서 우수수 쏟아져나왔다. 기지, 라고 해야 할지, 여기저기 세워진 통나무집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죄다 털이 덥수룩했다.

        

       “잘들 지냈는가?”

        

       “예, 물론이지요!”

        

       아저씨가 공손하게 모자를 벗자, 안에 있던 엉겨 붙은 머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머리카락도 오랫동안 자르지 못한 모양인지 아무렇게나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낮부터 한잔 걸친 것인지 조금 붉게 달아오른 사냥꾼 아저씨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공녀님. 그런데…….”

        

       이야기하던 아저씨의 시선이 뒤늦게 차에서 내린 나에게로 향했다.

        

       당연히 바깥으로 나오던 다른 아저씨들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런 곳에 십 대 소녀가 찾아왔으니 그럴 만도 할까. 여기에는 여자가 따로 없어 보였으니까.

        

       “제도에서 오신 황녀님이시다.”

        

       “오.”

        

       제니퍼의 말에 아저씨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황가에 별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 시선을 기지 바깥으로 보내는 것을 보면 나를 호위하는 병력도 같이 온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뭐,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황녀라는 신분보다는 학생이라는 신분이 우선이니까. 내 제자로서 와 있는 것이기도 하니, 너희들한테 특별한 취급을 받을 생각은 안 하고 있을 거야.”

        

       내가 황녀 신분으로 왔다고 하더라도 그런 취급은 받을 생각 없지만.

        

       “산을 오르려고 한다. 등산 장비를 빌릴 수 있겠는가? 내가 어렸을 때 지냈던 곳은 그대로 있겠지?”

        

       ……여기서 지냈던 적이 있었던 건가?

        

       하긴, 그 산 위에서 사는 검성을 만나려면 윈터필드 중심보다는 여기서 지내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습니다. 아마 쓰시던 옷도 그대로 있을 겁니다.”

        

       “고맙다.”

        

       ……옷?

        

       “이쪽으로 와라. 내가 어렸을 때 입던 등산복 정도면 맞을지 모르겠군. 가슴이 조금 끼일 수도 있겠다만.”

        

       농담하는 제니퍼의 뒤를, 나는 조금 의아한 채 따라갔다.

        

       *

        

       ……확실히.

        

       다리가 훤하게 드러나 보이는 교복 치마를 입고 산을 오르는 것은 미친 짓이다. 사람이 다져놓은 길이라고 하더라도 산길은 엄청나게 울퉁불퉁하니까. 게다가 산 특유의 한기도 어마어마해서, 다리 사이의 비어있는 곳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두꺼운 바지를 입고도 이런 상황이었으니 내가 그냥 두꺼운 스타킹 차림 그대로 따라왔으면 얼마나 추웠을지, 상상만 해도 살이 떨렸다.

        

       게임에서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복장이 바뀌지 않으니까 자꾸 간과하게 된다.

        

       ……만약 제니퍼가 어린 시절 여기서 지낸 적이 없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후우.”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제니퍼에게도 들리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산에 올라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었으니까.

        

       사실 미친 듯이 헥헥대며 바닥에 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꾹 참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평소에 최소한으로 해둔 운동 덕분에 퍼지는 일은 없었다. 의외로 제니퍼는 내 사정을 봐준다는 듯 천천히 산을 올랐고, 산길도 내 예상보다는 훨씬 잘 나 있었다. 마을이나 도로처럼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고 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사냥꾼들이 다니는 길이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발을 헛디디거나, 너무 비효율적으로 걸어서 힘이 너무 들거나 할 때마다 시간을 조금씩 뒤로 돌려서 다시 시도하며 올라왔으니, 적어도 체력 손실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에서 최소화할 수 있었다.

        

       “뭐, 산에 사는 사람이라도 모든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제니퍼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래도 게임상에서 길이 있다면 최소한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다만 여기까지 오는 데 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 친구들이 나를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련 끝나면 얼른 돌아갈 거니까 별로 상관없겠지.

        

       물론 시간은 제니퍼를 만나러 가기 전으로.

        

       *

        

       “스승—”

        

       대놓고 절벽 위에 지어진 검성의 집의 문을 허락도 없이 열고 들어가던 제니퍼가 얼른 옆으로 몸을 피했다.

        

       작은 항아리 하나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어이쿠.”

        

       제니퍼는 그런 소리를 내긴 했지만, 딱히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 못난 녀석!”

        

       그리고 나도 놀라지는 않았다.

        

       “무슨 낯짝으로 여기로 돌아왔느냐!?”

        

       “얼굴이 아직 멀쩡하니 이런 낯짝으로 돌아왔지요, 스승님.”

        

       “허…….”

        

       제니퍼가 대놓고 뻔뻔하게 대답하자, 오두막 안쪽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스승님의 검법, 반 정도는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반푼이 제자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

        

       그리고 제니퍼의 그 말에는 아예 할 말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스승님께 소개하고자 하는 이가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라. 애초에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럴 생각이 아니냐?”

        

       “바로 맞추셨습니다.”

        

       “못난 녀석.”

        

       마치 말버릇처럼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제니퍼는 내 쪽을 보면서 고개를 까딱인 뒤 자기가 먼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제니퍼를 뒤따라 들어간 오두막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했지만, 안쪽을 보니 제대로 지어진 통나무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 말린 나무를 제대로 쌓아서 만들었는지 바람 한 줄기 새어 들어오지 않았고, 내부에는 온갖 짐승의 가죽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사실 검성의 집이라기보다는 숲속 사냥꾼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벽난로 위쪽에는 동물 머리 박제가 아니라, 대놓고 ‘카타나’라고 불릴법한 칼이 세 개 걸려있었다. 모두 길이가 달랐다.

        

       “흠.”

        

       먼저 들어간 자기 제자보다는 뒤따라 들어가는 나를 더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검성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아, 이 사람이 검성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게 기른 흰 수염. 뒤로 묶어 올려서 마치 일본식 상투처럼 보이는 하얀 머리카락.

        

       다만 인종은 동양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서양인의 모습이었다. 솔직히 눈동자만 봐도 푸른색이었으니까.

        

       설정에서는 젊은 시절에 동방으로 가 검성의 이름을 따고 돌아왔다고 했던가.

        

       “이 아이인가?”

        

       “예.”

        

       “예끼 이놈.”

        

       제니퍼의 말에, 검성이 버럭 화를 냈다.

        

       “이런 재능도 없는 녀석을 데리고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

        

       어.

        

       보자마자 밑천을 간파당해버렸네.

        

       하긴, 검성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 사실 루카스나 황제도 나를 엄청나게 이상한 존재로 보고 있을 테니까.

        

       “궁금하시면 한 번 검이라도 휘둘러 보시죠.”

        

       “뭐라?”

        

       예?

        

       라고 반응하기에는 이미 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역시 캐릭터를 잘못 잡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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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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