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8

       흐아아.

         

       나는 왜 학생회에 가입한 걸까.

         

       학생은 역시 학생회지! 라는 마인드는 평화로운 세상에서만 가져야 했던 거 아닐까?

         

       칼과 총이 난무하는 이 세상은 너무 위험해…….

         

       마족 비공정을 탈출해 기사단의 비공정에 탑승한 파스텔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털썩 주저앉았다. 선실 카펫이 나름 푹신하게 몸을 받쳐줬다.

         

       “인생 너무 어려워 파스텔.”

         

       진짜 어려워.

         

       허리춤의 마검이 흩어지더니 정장 차림의 악마로 변했다. 악마가 미심쩍게 내려봤다.

         

       우와아, 악마님이다.

         

       “악마님! 악마니임!”

         

       파스텔은 울상으로 팔을 벌렸다.

         

       “나쁜 사람에게 위협당한 절 위로해 주세요!”

         

       꼬르륵.

         

       앗, 배고파!

         

       “아니아니!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만들어 주세요! 대빵 큰 아이스크림!”

         

       완전 커서 우와아아아앙 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

         

       이름하여…….

         

       우와아아아앙 아이스크림!

         

       허억.

         

       이름 짱 길음.

         

       완전 맛있겠다!

         

       악마가 말없이 몸을 숙이더니 양손을 뻗었다. 건장한 손이 파스텔의 양볼을 뭉개고 쪼물딱댔다.

         

       말랑말랑 쪼물딱쪼물딱.

         

       파스텔은 다른 의미로 우와아아아앙!

         

       계속 뭉개지자 볼이 살짝 빨개졌다.

         

       “제 얼굴은 아이스크림이 아닌데요!”

         

       붉은 눈동자가 다소 미심쩍게 바라봤다.

         

       『어린 크래프트.』

       “네에!”

         

       파스텔은 볼을 붙잡힌 채 대답하다가 뭔가 떠올랐다.

         

       “헉! 설마 이거 그건가요?! 아픈 부위에 얼음을 놓으면 시원해서 기분 좋듯이 양볼을 아프게 해서 아이스크림을 더 맛있게 먹는 거예요!”

         

       맞나 봐! 맞나 봐!

         

       나 천재인가 봐!

         

       악마가 어이없어하다가 볼을 잡은 손을 풀었다. 그리고 시선의 높이를 맞추려는지 한쪽 무릎을 꿇고 응시했다.

         

       『어린 크래프트, 1 더하기 1은 얼마지?』

         

       잉.

         

       갑자기?

         

       파스텔은 눈을 굴렸다.

         

       1 더하기 1에 엄청난 이치와 굉장한 난센스가 숨어있는지 고민하다가 자신 없는 표정으로 슬쩍 답했다.

         

       “2요……?”

         

       눈치를 보자 악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당연한 정답이니 말해줄 것도 없다는 태도였다.

         

       맞췄나 봐.

         

       『11 더하기 11은?』

         

       이미 한번 맞춘 파스텔은 자신감이 뿜뿜 올라왔다. 괜히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쉽게 맞추지 못할 난제네요. 하지만 명석한 제 두뇌 앞에 수수께끼는 존재치 않아요!”

         

       분홍 눈동자가 반짝반짝 번쩍번쩍!

         

       손을 번개같이 들었다.

         

       “22요!”

         

       두둥.

         

       완벽한 정답!

         

       나, 혹시 천재?

         

       『흠.』

         

       악마가 팔짱을 꼈다. 생각이 복잡한 표정이었다. 마치 자식에게 지능 테스트를 했더니 결과가 처참해서 미래가 걱정되는 듯한 반응이다.

         

       으잉.

         

       설마 정답은 22가 아닌가?

         

       설마설마 11 더하기 11도 제대로 못 맞춘 거야?

         

       나, 혹시 바보?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바보바보 파스텔이라니?!

         

       그럴 리 없어어!

         

       흐아아!

         

       새 문제를 내려는지 악마가 입을 열려 했다.

         

       헛.

         

       집중집중!

         

       더 이상 바보바보 파스텔 같은 오명은 용납할 수 없어. 반드시 맞춘다!

         

       두뇌 풀가동!

         

       오늘부로 천재천재 파스텔이라 불려질 일대기를 이곳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하아아아압!

         

       악마가 문제를 말했다.

         

       『791 곱하기 546은?』

         

       허억.

         

       파스텔은 숨이 멈췄다.

         

       짹짹 삐약삐약.

         

       정적이 흘렀다.

         

       악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대로군.』

         

       목소리에서 바보 취급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으아아.

         

       완전 바보 취급!

         

       졸지에 바보바보 파스텔이 된 파스텔은 굉장히 억울해졌다.

         

       “문제가 잘못됐어요! 갑자기 세자릿수 곱셈을 어떻게 맞춰요!”

         

       악마를 삿대질했다.

         

       “악마님도! 악마님도 정답을 모르시죠?! 똑똑한 전 다 알고 있어요! 어려운 문제를 내고 못 맞추는 광경을 지켜보며 희열을 느끼시는 거잖아요!”

       『정답은 431,886이다.』

         

       허억.

         

       파스텔은 입을 벌리고 굳었다. 그리곤 천천히 시무룩해졌다.

         

       “똑똑해서 좋으시겠어요…….”

         

       난 바보바보 파스텔이 맞아아.

         

       『어이구.』

         

       악마가 어이없어하며 일어났다. 무릎을 털더니 검은 정장을 가다듬었다.

         

       『네 연기 실력이 의심스러워서 확인해 본 거다. 크래프트 가문은 워낙 혈통이 흉흉하니.』

       “네에?”

         

       파스텔은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지금 겉과 속이 다른지 확인해 봤다는 뜻?

         

       마족 용병대장 앞에서 했던 연기가 생각보다 괜찮으니까 사실 이게 진심이 아닌지 미심쩍었다는 건가?

         

       으에.

         

       그냥 말하다 보니 적성에 맞았을 뿐인데.

         

       악마님 너무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악마님이 어떻게 나한테 크래프트 같다는 의심을 할 수 있어.

         

       물론 내 이름은 파스텔 러브 크래프트가 맞지만 어쨌든 너무해!

         

       파스텔은 급격히 뚱해졌다. 그래도 크래프트 저택에 감금돼 있던 악마의 사정을 감안해 입술만 삐죽였다.

         

       “제가 뭐 악마님께 속마음을 숨기고 그러겠어요? 아무것도 숨기는 거 없어요! 자신할 수 있어요!”

         

       말하다 보니 서운한 감정이 올라왔다.

         

       “물론 저도 사람이니까 어떤 것들은 숨길 때가 있죠! 하지만 듣고 보면 정말 별거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오늘 침대에서 몰래 주스를 마시다가 쏟아 버린 바람에 적신 베개를 침대 밑에 숨겨놨다거나, 또또……!”

         

       파스텔은 떠오르는 기억들을 따라 손가락을 하나 더 접다가 멈칫했다. 눈이 천천히 커졌다.

         

       허어억!

         

       자백해 버렸어!

         

       평생 들고 갈 비밀이었는데……!

         

       악마가 경악했다.

         

       『뭐라고?』

         

       파스텔은 시선을 피했다. 접던 손가락을 아무것도 아닌 양 스리슬쩍 폈다.

         

       어색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뭐가요?”

         

       더러워진 베개를 침대 밑에 숨기다니. 그런 나쁜 짓을 누가 했다는 걸까? 순진한 파스텔은 전혀 모르겠어.

         

       악마가 어깨를 잡아 왔다. 붉은 눈동자로 사납게 내려봤다.

         

       『말괄량이, 혼나기 싫으면 당장 자백해라. 그런 말썽을 얼마나 숨겼길래 손까지 펼쳐서 접던 거지?』

         

       흐아아!

         

       파스텔은 벌벌 떨었다.

         

       “아무것도 숨기는 거 없어요! 결백! 완전 결백!”

       『거짓말 치지 마라.』

         

       단호한 목소리.

         

       으아아!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세요……!”

         

       턱도 먹히지 않았다.

         

       파스텔은 왕창 자백하고 왕창 혼나게 됐다.

         

       들켰어.

         

       다 들켰어.

         

       침대 위에서 팡팡 뛰다가 다 마신 유리잔을 놓친 바람에 깨트리곤 식겁한 나머지 기숙사 마당에 몰래 묻어둔 것도.

         

       악마님이 해준 쿠키가 맛있어서 침실에 숨겨뒀다가 존재를 깜빡해 곰팡이 펴버린 쿠키를 마당에 몰래 묻었다는 사실도.

         

       “우아앙!”

         

       파스텔은 펑펑 울었다.

         

       “우아앙!”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잘못했어요……!”

       『흠.』

         

       악마는 눈물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듯했지만 자백으로 들은 게 많아서인지 단호히 내려봤다.

         

       『다시는 그러지 마라. 음식을 왜 침대까지 가지고 가는 거지? 굳이 먹고 싶다면 침대 옆 테이블에 두고 차분하게 먹던가 해라.』

       “죄송해요……!”

         

       눈물이 펑펑 터졌다.

         

         

         

       #

         

         

         

       파스텔은 훌쩍이며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눈물이 닦이자 눈시울이 붉긴 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얼굴 상태가 됐다.

         

       “어떻게 됐다구요?”

         

       갑옷을 걸친 기사가 어째 펑펑 운 거 같은 후작 각하의 용태를 보며 잠시 당혹스러워하다가 보고했다.

         

       “용병대장 트마우트가 타고 있던 비공정을 피해 없이 점령하고 수색했습니다. 각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선창의 거대 수납함을 제외하곤 별다른 특이점은 찾지 못했죠.”

         

       기사단은 기사급 한 명과 그 산하 인원으로 구성된다. 그래도 기사단원을 대충 기사로 불러주긴 했지만 기사와 기사급은 염연히 별개의 용어였다.

         

       앞에서 얘기하는 기사도 기사급이라기보단 그냥 행정 업무에 특화된 기사단원이라고 할까.

         

       다만 트마우트가 준기사급이긴 했어도 기사단이 들이닥쳤으니 저항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 거대한 수납함은 뭐래요? 용병대장 분이랑 논쟁해 보니까 뭔가 대단하고 굉장한 무기 같던데요. 선량한 민간인이 죽는다느니 하기도 했고요.”

         

       쇠사슬까지 칭칭 감겨 있는 밀반입품이라.

         

       기사단원이 난감해했다.

         

       “확인 중이긴 하지만 수납함 내부에 마법 처리가 돼 있어 당장으로선 정체를 알기 어렵습니다. 일단 마법 폭탄 종류가 아닐까 싶죠.”

       “혹시 폭탄 종류면 강제로 열기도 그렇겠네요?”

       “예.”

         

       민간인 학살을 언급하기도 했으니 공작 영애를 성공적으로 죽이면 겸사겸사 폭탄을 하늘섬 번화가에 터트리려고 했던 건가?

         

       으아.

         

       과격파 마족 무서워.

         

       기사단원이 고개를 저었다.

         

       “마족이니 허세를 부렸을 수도 있습니다.”

         

       헤에.

         

       파스텔은 팔짱을 끼고 고심했다.

         

       “이틀 뒤인 토너먼트 행사 전까지 정확히 뭔지 파악하긴 어려울까요?”

       “그렇습니다.”

         

       폭탄, 폭탄.

         

       파스텔은 상큼하게 웃었다.

         

       “그럼 대충 하늘에 버리죠!”

         

       여기 어차피 하늘섬이니까 땅 끄트머리에서 쓰레기 투척하듯이 던져버리면 슝~! 하고 추락해 버릴 거다.

         

       뭔가 대단한 철제 수납함?

         

       모르겠고.

         

       바이바이.

         

       트마우트와 대화할 때, 수납함의 내용물을 알고도 정박장에 반입할 수 있게 했다며 비난받았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정박장에서 벗어나게 하면 그만.

         

       벗어나는 걸 넘어 아예 버리면 더 안전!

         

       “그 사악한 트마우트 씨는 생포하셨나요?”

       “예, 현재 배후나 협력자가 있는지 심문 중입니다. 과격 행동파답게 자존심 때문인지 입을 안 열긴 하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겁니다.”

         

       잉.

         

       그 사람 그렇게 입이 무거웠던가?

         

       파스텔은 절찬 연기하다가 각종 비난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트마우트가 비난과 함께 은연중에 흘린 내용들도.

         

       으에.

         

       나 얼마나 성질을 긁었길래 입 무거운 사람이 비난까지 하며 정보를 흘린 걸까.

         

       뭔가 굉장히 나쁜 사람이 된 기분.

         

       미, 미안해요~.

         

       크래프트 모드를 연기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적성에 맞았어요.

         

       마치 악마님도 배신 때릴 수 있을 거 같은 기분?

         

       허억.

         

       갑자기 배덕감이.

         

       방금 악마님께 왕창 혼난 상황이라 배덕감이 더 뿜뿜.

         

       날 믿는 악마님을 배신 때리면 얼마나 짜릿할까.

         

       ―정말 크래프트를 믿은 거예요? 당연히 모두 거짓말이었어요. 우리의 관계도 약속도 모두 지금을 위해서였죠.

         

       흐응.

         

       ―순진한 연기에 속다니…….

         

       킥킥.

         

       ―바보 같아.

         

       충격받고 상처받은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허억.

         

       굉장히 짜릿한…….

         

       입이 헤 벌어지던 파스텔은 자신의 감상에 기겁했다.

         

       완전 나쁜 마음!

         

       나쁜 마음!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분홍 머리카락이 파닥였다.

         

       파닥파닥.

         

       기사단원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각하?”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허둥지둥.

         

       “예, 예.”

         

       파스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문하다가 중요 정보가 있으면 학생회로 보고해 주시고요! 수납함은 버려주세요!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각하.”

         

       나쁜 상상은 버리고 토너먼트!

         

       일대일 토너먼트로 갑니다!

         

         

         

         

         

       

       

    다음화 보기


           


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