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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공자, 도… 동침이 무슨 소리야?”

     

    내 선언을 들은 아셀라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그녀의 기분은 이해 간다.

    잠은 혼자 자는 게 제일 편하니까. 옆에서 누가 코 골고 이 갈면 짜증 나잖아.

     

    하지만 지금은 강력 처방이 필요하다.

    언제까지고 아셀라가 아픈 티를 안 내겠다면 나도 강하게 나갈 수밖에.

     

    “복통 발작에 대해 말씀을 안 하신다면야 어쩔 수 없잖아요. 주치의가 매일 밤 직접 확인해야죠.”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황녀님이 그러시다가 정말 잘못되시면 그게 더 말이 안 되잖아요.”

     

    “아니.”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논리였다. 천하의 아셀라가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린다.

     

    자, 이제 누가 벌 받는 쪽이지?

     

    실제로 나는 매일 밤 아셀라의 방에서 자더라도 하나 불편할 게 없다.

     

    아셀라의 방은 운동장 마냥 넓어서 몸을 누일 곳은 얼마든지 있다.

     

    침낭 하나만 대충 가져와서 자면 그만이다.

     

    나는 용사파티의 경험이 있어서 돌바닥에서도 잘 잔다. 기척에 민감해서 아셀라가 조금만 끙끙대도 바로 일어날 수 있고.

     

    “공자, 진심이야?”

     

    “제가 업무 관해서 농담하는 거 보신 적 있으세요?”

     

    아셀라는 내 대답에 볼을 잔뜩 부풀리더니 베개를 집어들고는 내 어깨를 퍽퍽 때리기 시작했다.

     

    “나가.”

     

    “잠깐만요. 대답은 확실히 주셔야죠. 문제가 하나도 해결이 안 됐…”

     

    “나가!”

     

    나는 결국 아셀라의 방에서 강압적으로 쫓겨났다.

     

    하여간 늘 자기 맘대로지.

     

    아셀라가 밤새 얼굴을 문대서 구겨진 가운을 펼치는데 복도에 어째 사람이 많이 서 있었다.

     

    야간 근무였던 브루노는 물론이고 타냐, 시녀장 누님, 아셀라의 호위기사들도 전부 나와 있었다.

     

    밤새 아셀라가 큰일이었으니 다들 걱정돼서 대기하던 모양이다.

     

    근데 왜 기분 나쁘게 히죽대고 있어.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타냐가 가장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왜 또 도련님이래.

     

     

     

    ***

     

     

     

    천황궁.

     

    황궁의 중심에 위치하며 가장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진 붉은 건물이다.

     

    선택받은 몇 명의 귀족, 타국의 사절만이 몇 달을 기다려서야 그곳에 출입할 자격을 얻는다.

     

    말할 것도 없이 제국의 지배자인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서다.

     

    “쿨럭, 쿨럭. 흐음!”

     

    황제의 기침이 깊어지자 그의 주치의 세 명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옥좌에 앉은 황제의 용태를 살피고는 그를 알현하던 귀족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하, 하오나.”

     

    아직 약속된 시간을 모두 쓰지도 못했건만. 영지에 관한 용건을 모두 전해지 못했어도 어쩔 수 없다.

     

    귀족이 물러나고 황제는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주치의 한 명이 끊임없이 치유주문을 시전하지만 그의 기침은 멎지 않는다.

     

    “오늘은 이만 휴식하시옵소서.”

     

    “업무가 꽤 쌓이지 않았는가. 서류를 가져와라.”

     

    황제의 명에 비서장이 승인을 기다리는 서류철을 대령했다.

     

    황실 내의 각종 예산 보고서, 지방 귀족들의 출정 허가서, 외교 관련 문서.

     

    그가 젊은 시절 일으킨 정복전쟁으로 제국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사람 한 명이 모두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건만 그는 중요한 국정은 남에게 맡기지 않았다.

     

    진정 신뢰할 수 있는 신하는 자식뿐이라는 그의 가치관 때문이었다.

     

    타인에게 중요한 부분을 맡기면 반드시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거나 반역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그는 전쟁이 끝나고 제국이 넓어진 이후에도 핵심 업무는 직접 처리했으며, 노쇠한 지금까지도 이어왔다.

     

    ‘그나마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

     

    나이가 찬 권터나 헤이케에게 일부 지역 관리는 맡기고 있다.

     

    게오르크, 라우가, 아셀라는 아직 어리다. 경험이 적다. 그래도 곧 각자 기둥을 하나씩 받치리라.

     

    점점 황제의 부담은 줄어들 것이었다.

     

    언젠가 다른 승계권자가 전부 탈락하면 그 부담은 한 명에게 전부 몰리게 된다.

     

    과거에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황제는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자신이 걸어온 길이 정답이라 여겼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도 반복시키고 있었다.

     

     

    “쿨럭, 쿨럭!”

     

    “폐하.”

     

    주치의들의 심려가 깊다. 황제는 자신의 목숨이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적어도 모든 자식들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 진검승부를 벌이는 장면은 보고 싶건만.

     

    혹시나 이번 퇴궁을 계기로 게오르크가 각성해 권터나 헤이케보다 뛰어난 군주가 될 지도 모를 일 아닌가.

     

    자식들의 성장을 보지 못하고 죽어버려서야 후계자를 제대로 정하지 못한 한심한 황제로 남아버린다.

     

    황제는 자신의 삶에 어떠한 오점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전쟁 때 활용하던 마법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마법은 사고가 날 확률이 너무나 높다.

     

    무엇보다 카밀라.

     

    그 마녀는 욕심이 너무 많다. 강력한 마도병기에 혹해 그녀를 품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셀라는 생각보다 물건이다.’

     

    아셀라는 황실의 병기라고만 생각하던 황제였지만 카밀라가 나간 후의 월광궁을 보니 조금씩 편견이 바뀌고 있었다.

     

    아셀라는 그 어린 나이에도 비범한 총명함과 국정 능력을 가졌다.

     

    승계권자들에게 궁을 하나씩 나눠준 건 바로 지금처럼 그들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비무대회에서 보여준 기사들의 능력도 훌륭했고, 경제 감각도 있어. 인재를 모으는 능력도 있다.’

     

    서류를 들춰보던 황제는 월광궁에서 올라온 보고서에 눈이 갔다.

     

    “고트베르크.”

     

    재미있는 청년이었지.

     

    보고서는 그가 작성한 것이었다.

     

    팔락, 페이지를 넘기니 최근 월광궁에서 진행한 자원봉사 내용이다.

    치료한 환자들의 통계 데이터가 일목요연하게 적혀있다.

     

    무엇보다 그가 제작한 기침약의 효능을 쉽게 알 수 있다.

     

    기침약으로 9할 이상의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었으며 노인에게도 부작용이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흐음.”

     

    황제는 결투 재판에서 고트베르크와 나눴던 대화를 일일이 기억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약속을 지키고 증명하는 자라고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앰브로시아.”

     

    “예, 폐하.”

     

    황제가 1주치의를 불러 명령했다.

     

    “고트베르크가 가져왔던 약제를 먹어보겠다.”

     

    “약제… 알겠습니다.”

     

    1주치의는 약간 꺼림칙했지만 황제의 명령이 최우선이었다. 즉시 약제를 대령했다.

     

    내의원에서 들려오는 고트베르크의 행보로 보아 황제에게 위해를 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황제가 까만 콩 같은 기침약을 입에 넣고 물과 함께 삼킨다.

     

    “으음.”

     

    잠시 후.

     

    황제는 오랜만에 기침이 멎고 탁 트인 가슴팍의 감각을 즐길 수 있었다.

     

    “호오.”

     

    황제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1주치의에게 말했다.

     

    “앰브로시아, 고트베르크에게 가서 전해라.”

     

     

     

    ***

     

     

     

    “폐하께 추가로 약제를 진상 올리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아무래도 그대의 기침약이 꽤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오.”

     

    황제의 1주치의인 앰브로시아가 내게 직접 와서 황명을 전했다.

     

    황명을 들을 땐 황제가 앞에 있는 것처럼 예를 표해야만 하기에 나는 별안간 사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네리아 또래의 여자아이니 어째 진지해지질 않는다.

     

    뭐, 앰브로시아가 실제로 어린 건 아니고 치유사로서 가진 재능의 대가로 성장저해를 받은 것뿐이다.

     

    전대 성녀의 먼 친척의 자손이라는 듯하다. 잘 따져보면 나랑도 친척일 것 같다.

     

    성녀들의 대가는 다 성장저해인가?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나는 예를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잘됐네요…! 제작, 제작….”

     

    “협력할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클로에와 휴고도 적극적이었다.

     

    “흠흠, 좋은 기회 아니겠소. 내의원에서 입지를 늘려보시오.”

     

    파벌은 조금 더 키우고 싶다.

    하지만 당장 사무실도 이렇게 작아서야 쉽지만은 않다.

     

    앰브로시아의 협력을 받고 싶은데.

    그녀가 다른 파벌에 한두 마디 던져주는 정도로도 작업이 꽤 수월해진다.

     

    조금 꼬셔볼까.

     

    “조언 감사드립니다. 다만 현재 내의원은 파벌이 꽤 단단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말입니다.”

     

    “소녀도 잘 알고 있소. 2황자파가 몰락해서 팔켄하인의 발언권이 약해진 덕에 양강이던 알베리치 주교가 신이 났지.”

     

    “하하, 내의원에서 가장 입김이 강하신 분은 결국 앰브로시아 자매님 아니십니까?”

     

    “흠흠. 위아래 물 구분할 줄은 아는 친구로군. 바로 그렇소.”

     

    앰브로시아가 짧은 몸을 쭉 뻗대며 자신 있게 가슴을 폈다.

     

    “알베리치 주교도 팔켄하인 경도 소녀가 봐주고 있단 걸 잊어버리는 것 같소. 폐하의 주치의인 소녀가 맘만 먹으면 어느 누구나 찍소리도 못한단 말이오.”

     

    앰브로시아는 황제의 주치의기에 파벌을 키울 필요가 없을 뿐, 마음만 먹으면 내의원에서 영향력을 늘리기 가장 쉬운 사람이다.

     

    “그럼요. 신앙심도 신성력도 내의원에서 가장 위대하신 자매님 아니시겠습니까.”

     

    “어허, 그렇게 입발린 소리를 한다고 소녀가 3황녀파에게 이권을 챙겨줄 일은 없을 것이오.”

     

    말은 그렇게 해도 앰브로시아는 대놓고 하는 아부가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입발린 소리가 아닙니다. 제게는 어느 주치의보다도 자매님이 가장 커다란 거인으로 보입니다.”

     

    “…소녀의 심성이 좀 크긴 하지.”

     

    앰브로시아의 입꼬리에서 흐흐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역시 좋아하네.

     

    10년 후의 네리아도 성장저해에 걸려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기에 크다는 표현을 섞어 칭찬해주면 굉장히 좋아했다.

     

    “흠흠. 의사 고트베르크, 황명을 받들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이라도 있는가?”

     

    걸려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폐하께 진상드릴 약제는 특별히 신경 써서 제조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이 환경에서는 조금 품질에 염려가 가지 않겠습니까.”

     

    “음… 일리가 있군.”

     

    앰브로시아가 너저분한 짐들로 가득 찬 내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동의했다.

     

    “1층에 남는 사무실 좀 없겠습니까? 기왕이면 200평 정도로.”

     

    “그렇게나 필요한가?”

     

    “창고, 제조실, 수술실 등 여러 가지 용도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자리야 있네. 게오르크군의 파벌이 사실상 휴업 상태 아니겠나. 팔켄하인 경과 이야기해 보게. 합의해오면 소녀가 추진해주지.”

     

    “하하,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마음이 넓으십니다.”

     

    “마음이 넓다… 후훗, 좀 그런 편일세. 그렇고말고.”

     

    앰브로시아는 내 칭찬을 듣고 기세가 등등해져서는 가슴을 쭉 폈다.

     

    그녀가 사무실을 나가고 클로에가 내게 말했다.

     

    “안 넓죠?”

     

    “쉿.”

     

    타냐는 방금 대화를 듣고는 살짝 불만인 듯 어깨를 으쓱했다.

     

    “기어이 사무실을 옮길 생각이시군요, 선생님.”

     

    “큭큭. 내가 언제까지고 4층짜리 계단을 오르내릴 줄 알았어?”

     

    “체력은 좀 더 키우셔야 합니다.”

     

    “운동은 하고 있어. 내가 하기 싫을 때 강제로 해야 하는 상황이 싫은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아뇨.”

     

    타냐가 고개를 저으며 딱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거 참 너무하네.

     

    나는 사탕을 빼물고 팔켄하인을 만나보기로 했다.

     

    ‘제국의 머리가 내 약을 먹을 기회다.’

     

    지금은 알음알음 전해지는 단계인 의학이 제국에 한 번에 확 퍼져나갈 찬스일지도 모른다.

     

    모처럼이니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

     

     

     

    ***

     

     

     

    일과를 마친 지친 몸으로 잘 준비를 한다.

     

    수면복으로 갈아입고 이불을 펼치는데 달칵, 또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또 브루노인가 했더니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황녀님?”

     

    분홍색 잠옷을 입은 아셀라가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품에는 커다란 베개를 하나 안고 있다.

    베개가 반쯤 가린 아셀라의 얼굴이 야간용 램프 빛을 받아 어둠 속에서 일렁였다.

     

    “…뭐 해.”

     

    “황녀님이야말로 뭐 하세요.”

     

    아셀라가 한참 입술을 꼬물댄다.

     

    방문 문고리를 잡은 손가락을 어쩔 줄 몰라서 이리저리 허둥대다가.

     

    결국 탁, 문을 닫고는 그 앞에 슬며시 등을 기댄다.

     

    아셀라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했다.

     

    “…같이 자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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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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