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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이상한 늙은이에게 붙잡혀 정원에서 오전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밀짚모자에 멜빵바지, 그리고 손에 든 도구들.

       노인의 겉모습을 보아하니 호텔 측에서 고용한 정원사인 것 같았다.

       우리가 폭탄으로 날려버린 후원을 수리하기 위해 온 모양이었다.

         

       그는 내 곁으로 다가와 내가 하는 작업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대뜸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던지는 말에서 그의 속셈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실력에 트집을 잡고 직업 정신을 꼬집으며 훈계를 하긴 했지만, 결국에 말하는 건 자기가 시키는 대로 일 좀 해달라는 소리였다.

         

       그냥 도와달라고 말하면 어디 덧나나.

       노인의 덮어놓고 달려드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우리가 망가뜨린 정원이기도 했고, 또 새로 얻은 기술로 실험해보고 싶은 것도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보고 지시를 내리면서 간간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짚어주었다.

         

       그렇게 일하기를 몇 시간.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충분하다 싶은데도 노인은 일 시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짐짓 화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으나, 볼살이 씰룩이는 것을 보니까 만족스러운 걸 감추려는 티가 확 났다.

       뒷짐 지고 가만히 서서 편하게 돈을 버니 즐겁겠지.

         

       저래놓고 자기 밑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 은근히 권하는 걸 보면 낯짝이라는 게 없는 인간 같았다.

         

       다행히 적절한 순간에 호텔의 지배인이 내려왔다.

       그는 엘라가 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떠나면서 뒤를 돌아보니, 노인이 지배인과 대화를 나누며 나를 향해 아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뻔뻔한 늙은이 같으니.

       나는 한 마디 쏘아주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그래도 나 나름대로 소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 얻은 아이템 ‘스킬북’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졌다.

         

       스킬북은 단원들의 평균 호감도 10을 달성하면서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이었다.

       그 외형은 내가 게임에서 알고 있던 모습과 같았다.

       밝은 흙색의 가죽 표지를 달고 있는 낡은 책이었다.

         

       트릴 트릴로의 주연 3인방은 스킬북을 사용해 새로운 기술을 해금하거나 터득한 기술을 강화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의 게임에서 모든 기술을 익힐 수는 없었다.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스킬북의 수는 제한이 있었다. 터득 가능한 기술 수에 비해 스킬북의 수는 명백히 적었다.

         

       스킬북은 하나하나를 전략적으로 계산해서 써야 했다.

       어떤 기술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달라졌다.

         

       검술과 방패술 위주로 찍은 평타 검방 전사와 사격 계열 기술을 익힌 원딜 도적, 다면체의 생성 레벨과 강도를 주로 올리는 방어 마법사가 일반적이고 정석적인 구성이었다.

         

       그러나 밀치기와 마비 고함 등을 조합한 무한 스턴 전사나 삼단 점프와 회피기를 활용해 모든 공격은 피하면 그만이라는 고인물 전용의 컨트롤 도적, 염동력만 미친 듯이 올려 맵 위를 날아가는 비행 마법사(빨리 깨기 기록을 위해 필수적이다!) 같은 트리를 타는 방법도 있었다.

         

       그 외에도 전사의 내성단련과 갑옷 강화, 가시 망토를 조합하여 몸을 비벼서 피해를 주는 몸빵 전사라든지, 도적의 협상 기술을 극단적으로 활용해 대화 선택지로 전투를 최대한 건너뛰는 아가리 도적, 다면체를 공학 기술까지 동원하여 활용하는 레고 마법사 등의 변태적인 플레이도 가능했다.

         

       덕분에 게임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이런저런 스타일을 시도함으로써 아예 다른 게임을 즐기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6인의 서포터 캐릭터 조합까지 고려하면, 여러 번 엔딩을 본 사람조차 존재하는 플레이 스타일의 반의반도 경험하지 못하고 게임을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얻은 스킬북의 효능도 게임에서 나온 것과 유사했다.

       이 역시 기술을 개발하거나 강화할 수 있었다.

       다만 여기서는 게임에서처럼 제약이 없었다.

       모든 기술에 대해서 적용할 수 있었다.

         

       말타기, 활쏘기 같은 기예는 말할 것도 없고 연필 돌리기나 커피 내리기 같은 잡기까지.

         

       나는 스킬북을 펼쳤다.

       

       

       스킬북

       -1. [원예]

       -2. [이 스킬 칸을 개방하려면 데볼루트 100이 필요합니다.]

       -3. [이 스킬 칸을 개방하려면 데볼루트 200이 필요합니다.]

       -4. [이 스킬 칸을 개방하려면 데볼루트 300이 필요합니다.]

       -5. [이 스킬 칸을 개방하려면 데볼루트 500이 필요합니다.]

         

       -[안마] [요리]

         

         

       장비 가능한 스킬은 현재 하나였다.

       나머지 장비칸을 열기 위해서는 데볼루트가 필요했고, 최대 5개의 기술까지 한 번에 장비할 수 있었다.

       지난 사흘간 몇 가지 기술을 시험해봤다.

         

       안마: 데볼루트 35

       요리: 데볼루트 70

       원예: 데볼루트 45

         

       해당 기술을 스킬북의 장비 칸에 장착하면, 나는 그 기술을 달인 이상의 경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 실험해 본 기술은 안마였다.

       내가 안마 기술을 장착한 순간 나는 메트로폴이 자랑하는 안마사들을 뛰어넘는 손기술을 손에 넣었다.

         

       남다른 몸 구조로 안마사들을 애먹였던 유라크네의 몸조차 손끝을 대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녀의 근육과 관절의 어디를 어떻게 주물러야 할지 느낄 수 있었다.

         

       -아흐읏! 다, 단장님!

         

       내 안마 기술은 완벽했다.

       그동안 100%의 안마를 받지 못했던 그녀가 어제 처음으로 다른 단원들이 그렇게나 극찬하던 ‘몸이 녹아내린다.’라는 느낌을 경험하게 됐다.

         

       그녀는 민소매 셔츠를 걸치고 엎드려 누워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3번째 어깨, 여기는 어떻습니까?

       -흐으윽, 조, 조하요!

       -4번째 어깨, 여기는요?

       -아아! 흐극!

       -5번째 어깨? 이쪽 부위는…….

       -저……다, 단장님? 더 아래쪽으로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서 외치는 그녀.

       허리에 달린 2개의 팔을 주무르다 말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기술’이 감각적으로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유라크네가 요구하는 거기는 안마 포인트가 아니라고.

         

       -네? 저기를 주물러 달라고요?

       -아……. 제, 제가 잘못 느꼈어요! 아니에요…….

         

       안마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기술이 안마와 같은 결과는 내는 것은 아니었다.

       미적인 부분이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은 기술만으로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요리 같이 입맛마다 취향이 솔직히 갈리는 부분이 그랬다.

         

       방금 실험해봤던 장인 기술의 영역에서도 허점이 보였다.

       분명 내 기술은 완벽했지만, 일하는 도중 놓치는 부분이 꽤 많았다. 정원사 늙은이는 이런 상식적인 것도 모르냐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건 기술만으로 해결 불가능한 경험과 상식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일반 기술, 미적 기술, 장인 기술.

       3가지 실험을 통해 스킬북의 활용도와 한계를 체감했다.

         

         

       이름: 프랑크 원더스타인

       나이: 27

       직업: 바이오맨서

       -데볼루트: (67/200)

       -근육 강도: 4.0 (3대 1000)

       -조직 경도: 4.0 (판금 갑옷)

       -세포 재생력: 4.0 (치타)

       특성

       : [웃는 남자]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쌓아두었던 데볼루트로 3대 기초능력치를 강화했다.

       이걸로 이제 맨몸으로 이 시대의 ‘기사’들과 비슷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강화하는 것은 조금 미루어 두었다.

         

       3.0에서 4.0으로 올리는 데는 각 항목당 데볼루트가 20씩 들었다.

       그리고 4.0에서 5.0으로 올리는 데는 각 항목당 30을 요구했고, 5.0에서 6.0으로 올리는 데는 항목당 50씩 요구했다.

         

       이런 능력치가 다들 그렇듯 올라갈수록 자원 요구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호텔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옷을 평소의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허공에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원더스타인의 평상복’으로 변경합니다.]

       [‘호텔 일꾼’ 복장이 반환되었습니다. 세탁비와 수선비로 1 데볼루트가 청구됩니다.]

         

         

       세탁비와 수선비라니.

       이 능력도 그렇게 싸지는 않았다.

       입을 때는 대여비를 요구하더니.

         

       [의상실]은 서커스단의 명성 50을 달성한 보상으로 [단원 관리]에 추가된 기능이었다.

       내가 눈으로 보거나 접촉한 복장을 기억해뒀다가 원하는 때 꺼내서 입을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옷이 입는 사람의 체형에 딱 맞는 형태로 제공된다는 것이다. 이 기능은 나만이 아니라 모든 단원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 있었다.

       즉, 내가 손가락 하나 튕기는 것만으로 모든 단원에게 나와 같은 정장을 입힐 수 있었고, 아까처럼 호텔 일꾼 복장으로 갈아입히는 것도 가능했다.

         

       다시 손가락을 놀려 의상실 기능을 닫았다.

         

       의지력만으로 상태창을 다룰 수 있는 나였지만, 의상실 기능만은 굳이 수동으로 다루는 이유가 있었다.

       어제 저질렀던 실수 때문이었다.

       그건…….

       

       “앗, 단장님!”

         

       말 꺼내기가 무섭게 유라크네와 마주쳤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오는 길이었다.

         

       보라색 머리를 비녀로 질끈 묶어 올린 여인이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화들짝 놀라 얼굴을 돌렸다.

       그녀의 갈색 피부 위로 붉은 홍조가 떠올랐다.

       그녀는 여섯 팔을 꼼지락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당황한 그녀와 달리 평온한 얼굴로 미소지었다.

       물론 속으로는 나도 그녀만큼이나 상당히 민망해하고 있었다.

         

       어제 그녀와 차를 마시는 도중에 발생한 일 때문이었다.

       재판 사건이 마무리되자 나는 새로 얻은 보상을 이리저리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녀에게 안마해준 것도 그 일환이었다.

       안마를 마치고 나자 땀에 푹 젖은 그녀의 민소매 셔츠를 보고 나는 ‘의상실’ 기능을 사용해 좋은 옷으로 갈아입혀 줄까 생각했다. 젖은 셔츠는 보기만 해도 찝찝해 보였다. 저런 옷은 벗는 게…….

         

       크흠.

       의지력으로 상태창을 작동시키는 것의 위험성을 그때 알게 되었다.

       비명과 민망함, 부끄러움, 변명의 시간이 있었다.

       내가 급히 입혀준 옷을 부여잡고 유라크네는 내 방에서 뛰쳐나갔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의상실에서만 의지력으로 작동하는 옵션을 빼버린 이유는 그래서였다.

         

       “조, 좋은 아침, 아, 아니, 점심, 그, 그러니까 날이네요, 아하하.”

         

       유라크네가 어색한 인사말을 건넸다.

       그때 이후로 지금 우리는 처음 마주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녀의 뒤로 부단장과 해골 광대가 따라 내려온 것이다.

         

       “왜들 그러고 있어요?”

         

       엘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와 유라크네는 딴청을 피는 가운데, 스벤이 해골을 덜그럭거리며 유쾌하게 외쳤다.

         

       “저는 봤습니다, 핫핫! 땀에 범벅이 된 여인이 들어갈 때와 다른 옷을 입고 나오는…….”

       “닥쳐요, 스벤!”

         

       유라크네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여섯 팔을 빙빙 휘둘렀다.

       해골은 유연한 동작으로 그녀의 공격을 능숙하게 피했다.

       그는 그 와중에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낄낄거리는 여유까지 보였다.

         

       저번 개막식의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후로 단원들의 호감도가 조금씩 올랐다.

       일부는 나와 마주쳤을 때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이 해골 놈은 그 정도가 심했다.

       그동안 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양반이 이제는 슬쩍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거는 걸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엘라가 지나가듯 말해줬다.

         

       저것이 바로 ‘광대’라는 자들의 천성이라는 것을.

       그들은 칼날 끝에 선 상황에서도 말을 아끼는 법을 몰랐다.

         

       황제 앞에서도 제국의 정치 상황을 조롱하는 말을 던지다 사지가 찢기고, 공작 본인 앞에서 바람난 공작부인에 대한 농담을 던졌다가 목이 잘린 일화를 들었을 때, 광대들은 입조심을 생각하기보다 나도 죽을 때는 저렇게 죽어야지 하고 꿈꾸는 자들이었다.

         

       물론 실제로 행동에 옮길 정도로 용기 있는 자들은 한 줌이었지만, 광대들은 교황 앞에서 신을 가지고 깐족거리는 것을 일생일대의 로망으로 삼고 있다고 들었다.

       

       스벤도 그동안은 어찌어찌 두려움도 있고 잘 참았던 거 같은데, 분위기가 좀 말랑해지자 더 이상 광대 기질을 누르지 못하고 마구 발산해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대고 나도 화를 낼 생각은 없었다.

       엘라의 눈을 피해 나는 그에게 입을 꾹 잠그는 동작을 해 보였고, 스벤은 정말 즐거운 듯 낄낄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치지들 말고 빨리 가죠?”

         

       엘라가 빽 고함을 지르자 그제야 유라크네와 스벤은 쫓고 쫓기는 몸싸움을 멈췄다.

       내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고, 둘이 내 뒤를 따랐다.

       엘라는 뭐가 급한지 혼자 저 앞으로 달려가 마차 안에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시행하는 시험의 과제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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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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