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8

       “마법제에서 우승했을 때만 해도 학파를 이끌 인재라고 생각해 눈여겨 봤었는데, 정보부에 발을 담그더니 결국 일을 그르쳤네요.”

        “난 지금의 당신과는 만난 적 없어.”

        “이곳에도 정보는 들어옵니다. 특히 위계가 올라갈수록 마탑의 법칙을 피할 방법은 다양해지죠.”

       

        비아지오의 손에서 신문이 몇 개 더 떨어졌다.

        모두 시엔에 대해 적힌 기사가 실린 것들이었다.

        전지의 비석에 이름을 새긴 순간부터 2층에서 그녀를 영입하기 위해 마탑의 거의 모든 학파들이 몰려왔던 일.

        마법제에서의 우승과 살살이도 선정되었던 ‘현재 마탑에서 가장 주목받는 마법사 랭킹!’도 있었다.

       

        “검을 내려놓지 않겠습니까 시엔? 기왕이면 힘보다는 대화로 해결하고 싶네요.”

        “변명은 재판에서 하도록 해. 마탑에 검은별을 들인 죄는 순혈 마법사라도 면피하기 어려울 테니까.”

        “그 손수건을 가지고 내려간다 한들 저를 재판에 세울 순 없습니다. 최상층에 있는 저를 잡으러 올 수 있는 자가 행정부엔 없으니까요.”

        “……만물의 완결, 그 아버지가 여기에 있다. 힘은 흙으로 통합되며, 모호함 대신 체계와 확신만이 자리할 것이다.”

       

        어차피 복제체. 더 이상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시엔은 곧장 검에 손을 올리며 약관을 읊었다.

        부동, 파마, 영속의 성질을 담은 세 가지 구절은 연금학파에서 가장 처음으로 익히는 신비였다.

        66층에 진입한 시점에서 그녀보다 이것들을 잘 다루는 연금술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탑을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것이 아닌 위에서 내려온 순혈 마법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세계가 창조되었으니, 이곳에 적힌 경이로움을 따르라.”

       

        비아지오가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치자 시엔의 세검이 마치 꽃잎처럼 갈가리 찢어져 흩어졌다.

        그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천장을 밝히던 모든 촛대와 복도에 세워진 강철 갑옷, 바닥에 깔린 석재까지 모두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현자의 약관이란 납을 금으로 바꾸고 생명창조의 금기를 숭배하는 불경자들의 성배.

        특히 선행성이 엄격해서 하위 구절로는 절대 상위 구절을 깨뜨릴 수 없다.

        시엔이 검에 새긴 ‘부동’과 ‘영속’이 사라진 이유 역시 그것 때문이었다.

       

        “무기가 없으니 이제 대화를 할 수 있겠네요. 원한다면 동맹에 한 자리를 마련해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동맹?”

        “예, 아주 비밀스런 모임이죠. 당신도 마탑의 끝을 보기를 원한다면 합류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간섭기로 확인한 결과 비아지오가 인용한 구절은 자신의 지팡이와 다른 재질은 모조리 전장에서 지워버리는 능력이었다.

        하필이면 그의 마법이 내가 들고 있던 창의 날까지 사라지게 해버렸다는 게 문제였다.

        ‘창끝’이 없으면 기감도 투창도 모두 무용지물이다.

        일전에 아녜스에게 던졌던 일격이 석연치 않았던 것도 그렇고, 칠현자에 준하는 실력자들은 다들 하나씩 대비책을 갖고 있었다.

       

        역시 투창만으로는 한계가 있나.

        아니면 필격에 이어 기감을 이용한 네 번째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하나.

        고민하던 나와 다르게 시엔은 이미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그딴 제의는 필요없어. 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뿐이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이만 끝을 받아들이는 게 좋겠군.”

       

        시종일관 미소를 띄던 비아지오의 표정이 사라졌다.

        그는 차갑게 시엔을 노려보더니 지팡이로 그녀가 사용하던 세 개의 구절을 그대로 허공에 수놓았다.

       

        “내가 엔리코의 뒤를 이어 칠현자의 자리에 오르면 너를 파면할 거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연금학파의 신비에 접근할 수 없게 되겠지.”

       

        마탑에서 신비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

        특히 학파에서 파문당하는 건 ‘검은별’ 출신인 이자젤 정도는 되어야 가능했다.

        그만한 꼬리표가 붙는다는 걸 각오하고 연금학파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건 쉽지 않다.

       

        “당신이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

        “당연한 결과를…….”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아니,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각오했어. 이곳에 올라오기 한참 전부터.”

       

        그러나 시엔은 한 차례 나를 돌아보더니,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대며 읊조렸다.

       

        “마장이 부서지는 일을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거든.”

        “그게 무슨 뜻이죠?”

        “……천칭에 바친다.”

       

        순간, 나는 릴리벨을 떠올렸다.

        만약 시엔이 내게 패배한 설욕을 하겠다고 하층에 남아있지만 않았다면 훨씬 높은 곳으로 갔을 거라던 그녀의 말을.

       

        “이 손에 다시 검을.”

       

       

       

        *

       

        순간 저택이 기울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집중하자 기울어진 것은 저택이 아니라 비아지오가 점유한 주위의 법칙이었다.

        대가를 얹는 천칭.

        점성학파의 신비를 사용한 시엔이 자신의 힘으로 그 균형을 되돌리려 하고 있었다.

       

        쩌적, 쩌저적!

       

        재로 화하였던 검신이 공간을 찢고 그녀의 손아귀에 다시 쥐어졌다.

        마탑의 모든 마법사를 통틀어 두 개의 신비를 사용하는 케이스는 듣도 보도 못하였다.

        순혈 마법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는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 드러난 것이 눈에 보였다.

        그의 목을 벨 듯한 기세로 시엔이 거리를 좁힐 무렵,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가볍게 찔러왔다.

       

        피딱지가 늘러붙은 붉은 단검을 손에 쥔 아녜스였다.

       

        “참으로 보기 드문 재능이군. 본디 신비란 인간이 손에 쥐기에 하나로도 벅차거늘.”

        “저도 처음 알았어요.”

        “아마 눈치 빠른 점성학파 측에서 미리 손을 써둔 모양이지. 이 사실이 알려지면 모든 학파가 저 아이에게 손을 뻗을 테니.”

        “…….”

       

        어디서 주워온 포대자루를 몸에 두른 채 태연자약하게 전투를 구경하는 아녜스.

        설마 찌르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 이미 찔린 건가?

        저주의 대가인 만큼 그녀에게 창을 쓰지 못하는 나를 제압하는 건 너무나 간단할 터였다.

       

        그러나 아녜스는 자신의 단검을 손으로 뽀각! 하고 부수며 내게 내밀었다.

       

        “필요한가?”

        “아…… 창날 대신이요?”

        “필요하다면 주겠네. 내가 묻는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한다면.”

        “어떤 거죠?”

       

        설마 관리자 계정의 비밀번호인가?

        아니, 아녜스는 갤러리에 대해 잘 모르니 오히려 바깥의 자신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허나 자신의 키가 지금으로부터 몇 센치나 줄었는지 듣게 된다면 그냥 이 자리에서 날 죽이고 자살을 택할지도 몰랐다.

        차마 얼음 정수기와 똑같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펄펄 끓는 진실에 새하얀 거짓을 세 티스푼 정도 타자.

       

        평소 내가 들고 다니는 창을 기준으로 삼분지 이 정도면 어떨까.

        아니, 그건 지금과도 별 차이 없을 것 같으니까 절반쯤?

        하지만 머리 부분이 휑하게 사라진 창대에서 절반이라면 너무 가혹하게 짧았다.

        그렇다고 이십 센치 쯤 되는 창날을 포함한 길이를 고려하기에는 나의 양심이 도저히 허락치 못하는 부분.

       

        비아지오에게 밀리는 시엔을 돕기 위해 얼마나 내면의 자신과 타협해야 하는가.

        미묘한 차이를 두고 고뇌하던 내게 아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실패했느냐?”

       

        그녀가 던진 말은 고민 따위 할 필요 없던 질문이었다.

       

        “저 아이에게 건 저주가 풀렸을 때 알았다. 내가 쓴 해주는 내가 직접 가르친 방식이라는 것을.”

        “…….”

        “추종자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허나 지금의 나는 제자 따위를 들일 이유가 없으니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더 이상 등반을 못 하게 된 것이겠지. 그래서 묻는 것이다.”

       

        나는 그제야 그녀와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렸다.

        죽은 용의 시체에서 나온 독이 산맥과 계곡을 오염시켜, 하늘에서 전쟁의 시취를 머금은 거무죽죽한 빗물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비구름을 마치 유해처럼 몰고 다니던 내가 수백 년 전부터 존재했었다는 기이한 건축물 앞에 도착했을 무렵.

        그때의 나와 똑같은 표정을 한 지금의 스승과 마주했었다.

       

        ‘너는 희한한 아이로구나. 손에 그렇게나 이형의 피를 묻히고서도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다니.’

       

        ‘성정이 다소 뒤틀려 있으나 곧은 신념 하나로 이곳까지 왔구나. 마법에 재능이 전무하면서도 탑에 오르고자 하는 열망만큼은 지금껏 봐 온 누구보다 강하다니.’

       

        ‘나 또한 그랬었다. 허나 더 이상은 몸이 따라주질 않는구나.’

       

        ‘너를 그 지옥에서 꺼내준다면 나를 대신하여 이 탑을 끝까지 올라가 주겠느냐?’

       

        입구로부터 단 세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있던 나를 아녜스는 사력을 다해 질질 끌어 안으로 데려왔었다.

        그때 그녀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대로 마탑 앞에 엎어져 객사했을 것이다.

       

        “신비의 파편을 타고난다는 것은 저주스런 일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저주해보려 하였으나, 모든 걸 바치고서도 실패했다고 한다면 더는 삶의 의미가 없구나.”

       

        아녜스는 허탈한 듯 스스로 조각낸 단검을 바라보았다.

        악의의 층에 올랐을 무렵의 자신으로서는 충격적인 일이겠지.

        그녀가 어느 시점에서 등반을 포기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장담할 수 있었다.

       

        “아뇨,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응?”

        “제가 여기에 왔으니까요.”

        “그 말은…….”

       

        나는 부러진 단검의 파편을 창대 끝부분에 박아넣었다.

        그러자 기감이 돌아오며 창끝이 가리키는 표적이 좁은 복도를 지나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해주로는 66층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대적할 실력이 되지 못한다.

        그야 당연하겠지. 나는 지금 고행의 층의 시련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다시 이곳에 걸음하게 될 때, 그녀에게 확신을 심어줄 자신은 있었다.

        루벤, 시엔, 비아지오, 그리고 아녜스 자신까지 포함하여 지금껏 66층에 올라왔던 마법사 중 가장 강한 이가 탄생하리라는 확신을.

       

        “편하게 지내셔도 됩니다. 파티에 가서 밥도 좀 얻어먹고, 길고양이들이랑 영역다툼도 하고 그러세요.”

       

        나는 남은 기감을 모조리 끌어모아 딱 하나의 묘리를 창에 실었다.

        거의 일주일 째 잠을 자지 못한 탓에 정신력이 바닥나 있었지만 뇌수의 밑바닥까지 긁어내어 투창을 준비했다.

       

        반드시 명중하는 기술도 아니었고.

        반드시 꿰뚫는 기술도 아니었고.

        반드시 부수는 기술도 아니었지만.

       

        필멸(必滅), 반드시 멸하는 창이었다.

       

        “제가 스승님을 대신해 이 탑을 끝까지 오를 테니까.”

       

        짧은 심호흡과 함께 창대가 손을 떠나갔다.

        칼날은 뒤틀린 공간에서 맞부딪히는 두 개의 신비 중 하나에 틀어박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진지한 부분이 많은 챕터였네요.
    생각보다 가벼운 분위기와 잘 엮어내기가 어려워서 글쓰기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내일로 마무리하고,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