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줄을 타고 내려와야 할 신이 바로 내려오다니.
하기야 이 정도는 되어야 이런 일들이 가능할 테지만….
“그럼 성녀님의 몸에 있는 멍이 신의 자국이란 말입니까?”
“따지자면 그렇기는 한데…”
몽고반점의 설화가 있다.
삼신할매께서 얼른 나가라고 찰싹 때려서 멍이 남는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다.
유전적으로 타고 난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에 몽고반점을 타고 날 유전자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진짜로 내 몸주신이 남긴 자국이 맞았다.
내 긍정에 주변에 있던 모든 신관들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성녀께서….성흔을 타고 나시다니…”
성흔…?
따지고 보면 또 성흔이 맞기는 한데….
“성녀께서 타고나신 신성력은 또 어떻습니까? 이는 전례에 없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신성력이 굉장히 많은 것도 맞다.
지금도 허공에 있던 신성력이 성녀에게로 흘러 들어가는 중이었다.
똘망-
“…?”
똘망 –
“……..?”
뽀송뽀송한 피부를 가진 아기 성녀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새하얀 눈이었다.
홍채와 동공마저 하얀색이었지만 색깔이 미묘하게 달라서 구분은 가능했다.
똘망 –
분명 보이지 않을텐데 나를 따라다니는 눈.
“음…? 이건 또 뭐야?”
이제 보니 눈으로 나를 보는 게 아니었다.
마치 나와 비슷한 느낌.
영안으로 무언가를 볼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저건 분명히 영안이 아니다.
“이게 신안이라는 거구나.”
똘망 –
“나도 비슷한 걸 가지고 있는데…”
미간에 집중을 하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바람이 보이고 냄새가 만져진다.
오감을 초월한 신비한 감각.
내 영안과 성녀의 신안이 서로 마주했다.
“우으…?”
무언가 말을 하려는 성녀.
작은 옹알 거림의 끝에 미소가 만들어졌다.
싱긋.
“확실히 나를 보는구나?”
굉장히 신비로운 느낌이다.
어린 성녀의 눈이 주변을 향해 돌아갔다.
아직은 세상이 신기한지 쉴 새 없이 여러 군데를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스에게서 눈이 멈췄다.
“허억…! 성녀님께서…”
눈이 돌아다닐때마다 신관들이 감격한 듯 숨을 내뱉었다.
아기의 시선을 받은 것치고는 요란한 반응이었다.
싱긋.
순수한 미소.
작게 꼬물거리는 입술.
그곳에서 옹알이가 터져 나왔다.
“아우으…”
옹알이를 받은 성기사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으며 우렁차게 외쳤다.
“서…성녀님의 말씀을 받드옵니다!”
“….?”
받들긴 뭘 받들어?
뭐라고 말 한 건지는 아는 걸까?
“우으…?”
“며, 명을 받드옵니다!”
“뭘 명 받은 거야…?”
그 반응이 재밌었던 걸까.
아기가 웃음을 터뜨렸다.
“꺄륵….!”
“허억…!”
이번에는 교황아저씨가 앞으로 나섰다.
“내 그대의 소속을 물어도 되겠소? 이름을 알지 못해 미안하오.”
“교…교황이시여 저는 이제 막 수습 기사가 된 가일린이라 하옵니다.”
“가일린 경, 그대는 성녀님을 웃게 하였소. 그대의 공을 치하 하오.”
지금, 이게 뭐 하는 상황일까?
아기를 웃게 한 것이 뭐라고 치하까지 한다는 말인가?
감격한 가일린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평생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너무 컸지 싶었다.
성녀가 울음을 터뜨렸으니까.
“응애….!”
“허억…!”
성녀를 안고 있던 여자 신관과 그 주변에 있던 신관들이 다급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성녀시여! 눈물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저게 도대체….
“야이 미친 사람들아! 아기한테 뭐 하는 짓이야?”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아기한테 눈물을 거두어 달란다고 울음이 그치냔 말이다.
성녀라서 굉장한 존재인 것은 이해하지만 아무리 봐도 미친놈들 같았다.
“비켜요. 내가 달랠테니까.”
때마침 성녀도 나에게 오려는 듯 팔을 바둥바둥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성녀를 안고 있던 여자신관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성녀님의 뜻대로 하소서…”
“난리났네, 난리났어.”
포대기에 쌓인 성녀를 받아들자 울음이 뚝 그쳤다.
방긋 –
방긋 –
“저…저럴 수가…성녀께서 단번에 눈물을 거두시다니…”
“우리가 불손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오.”
“경께서는 불손한 마음을 품었는가?”
“제 마음 어딘가에 있는 것을 꿰뚫어 보신 게 아니겠습니까?”
아주 놀고들 있었다.
“정신 나간 사람들…”
어째 점점 정상인이 사라져 가는 기분이다.
하긴 눈앞에 성녀가 있는데 정신을 차릴 신관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저런 거 보고 배우면 안 된다?”
“꺄륵…”
다행히도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 품이 마음에 드는 것일까.
세레나도 그렇고 성녀도 그렇고 내 품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부….!”
성녀가 작은 팔을 바둥거리며 휘저었다.
“음…? 이거?”
그 팔이 향하는 방향은 내 허릿춤에 꽂혀 있는 방울이었다.
“이건 함부로 가지고 노는 게 아니야…”
방긋거리며 웃는걸 보니 또 마음이 약해진다.
“잡는 건 안 되고, 잠깐만 보여 줄게.”
나는 방울을 손에 잡아서 성녀의 눈앞에 내밀었다.
싱긋.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걸까?
그 표정이 제법 반가워 보였다.
하긴, 이 방울로 신성력을 모아서 전해줬으니까.
딸랑 –
방울을 한번 흔들어 주니 미소가 더 밝아졌다.
티없이 맑은 웃음.
나는 이런 웃음을 제일 좋아한다.
복잡한 염과 업이 느껴지지 않는 진짜 웃음이니까.
딸랑 –
딸랑 –
옆에서 알루어드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렇게 함부로 흔들어도 되는 겁니까?”
“왜?”
“크리스님께서는 신의 응답을 구하실때 방울을 흔들지 않습니까?”
“참나, 방울이 뭐 대단한 거라고.”
지저분한 잡귀나 언데드한테 흔드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나았다.
아기의 장난감이 될지언정 지금 흔드는 방울은 예쁜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아기 웃는 거 보여?”
“아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방울은 이렇게 사람 웃게 만들어 주라고 있는 거야.”
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한다는 게 별거 있겠는가.
다 잘 먹고 잘 살라고 하는 건데.
“꺄르륵!”
“진짜 마음에 드나보네.”
그런데 어째 방울을 흔들다 보니….
입이 근질근질 거렸다.
이건 몸주신이 내리는 공수가 아니다.
다른 신이 보내는 감정이지.
“으음….”
딸랑 –
딸랑 –
이 할아버지도 어지간히 신이 난 것 같았다.
아주 푸근한 감정이 느껴져 왔다.
나에게 교황을 처음 소개해 줄 때처럼 팔불출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이 더 심한 편이긴 하지만….
“어라…?”
근질거리는 게 더 심해졌다.
꼭 뭔가를 말하려는 느낌.
중요한 내용 같았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직접 내 입을 열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원하지 않았고, 몸주신도 원하지 않는 일이니까.
하지만 전달하려는 내용만은 선명하게 머리에 떠올랐다.
“달빛이네…”
밤을 비추는 달빛.
은색의 머리카락과도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지금의 상황과도 잘 어울렸다.
밤중에 길을 잃지 않도록 비추는 달빛.
“여명이 밝았으나 그 또한 밤이니, 길을 잃지 말라…”
참 친절한 신이 아닌가.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이들의 몫인데, 달빛도 비춰주고 말이다.
“성녀의 이름은 루나에요.”
내가 이렇게 말해 준다고 믿으려나?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교황도 영감도, 그리고 다른 신관들도 멍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시죠?”
교황 아저씨가 머리를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방금 그대가 성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신성력이 요동쳤소.”
이런 식으로 도와줬나보다.
“모두 들으시오!”
“성하의 말씀을 받드옵니다!”
“일리아님께서 루나라는 이름을 내리셨으니, 모두를 성녀의 탄생을 경배해야 할 것이오!”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우렁찬 울음도.
“응애!”
“서..성녀님께서….!”
“바…방금 소리를 지른 자들을 모두 잡아 들이겠사옵니다! 성녀께서는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성녀를 제대로 키울 수나 있을까?
딸랑딸랑 –
방울을 흔들며 루나의 몸을 몇 번 보듬어 줬더니 금세 울음이 그쳤다.
“그보다… 교황아저씨?”
“무슨 일이라도 있소?”
이제는 슬슬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때에 맞춰 도착하려면 제법 빠듯했으니까.
“어디 말 구할 때 없어요?”
걸어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
그렇다고 워프하기에도 인원이 너무나 많았고.
“크리스님, 어딘가로 가실 작정입니까?”
한스의 말에 나는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원하러 안 갈 거야? 우리 영감님들 고생하고 계시는데?”
대답은 클라인 영감님에게서 들려왔다.
“근처에 있는 신전에 말을 준비하라 일러두었다.”
“역시…”
이 정도의 인원이면 제법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번처럼 안타까운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성을 지키던 병사들 보다 수가 많아 보였으니까.
“성기사들만 추려 먼저 출발할 생각이다.”
“얼마나 걸릴까요?”
“전력으로 달려도 짧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성녀를 데리고 그런 곳으로 가도 되냐는 것인데….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겠지만, 이 정도의 인원이 함께하면 성녀는 안전할 것이다.”
그것도 그렇긴 하다.
교황아저씨도 여기 함께 있으니까.
오히려 얼마 전까지 음모가 판을 치던 그곳이 더 찝찝하기는 했다.
“바로 가시죠.”
몸을 움직이려니 알루어드가 옆으로 바짝 붙어섰다.
“크리스님, 다시 올라타십시오.”
그 손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내가 타고 온 상여였다.
성검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저걸 또 타라고?”
“말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텐데…성녀님을 안고 걸어가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은 좋은데 말이다.
솔직히 나는 꺼림칙 했다.
방금 태어난 아이를 안고, 상여에 올라타라고…?
이런 내 고민은 단번에 해결되었다.
루나의 옹알이 한 번으로.
“아우으…!”
“서, 성녀님의 명을 받듭니다!!!”
“…..?”
도대체 무슨 명을 받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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