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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몇 번이나 떠오르며 격하게 헹가래를 받은 후에야 나는 겨우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이 정도로 격하게 환대할 줄은 몰랐네.

       

       “디안 님! 드디어 오셨군요!”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려니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시끄럽게 인사를 건넸다.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핀 나는 곧 몇몇을 알아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다들 멀쩡히 살아들 계시네요.”

       

       “이게 다 디안 님과 라이너스 경 덕분이지요!”

       

       “어떻게 된 게 10년이 지나도 얼굴이 거의 변한 게 없으세요?”

       

       “그런데 아저씨는 고생을 좀 하셨나 봐요. 엄청 늙으셨어요.”

       

       “하하하!”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건 내 기억력이 유별나게 특출나거나 해서가 아니다.

       

       그때 마왕군 소대를 물리쳤을 때 이미 마을은 불길에 휩싸여 무너지고 있는 상황.

       

       당장 마을 사람들은 집을 잃은 난민 신세가 되었고 여기서 꾸물대다간 진군하는 마왕군에게 꼼짝없이 노출되고 만다.

       

       그래서 라이너스와 나는 고민 끝에 대대 본부로의 후퇴길에 마을 사람들을 데려가기로 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걷지 못하는 아주 어린 아이와 노인들도 섞여 있어서 이틀 내로 예상하던 복귀가 무려 나흘로 늘어나게 되었다.

       

       또 그때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거고.

       

       천만다행으로 그 나흘 동안 더는 마왕군과 조우하지 않았고 모두 무사히 대대 본부에 도착.

       

       그 공로를 인정받아 나와 라이너스는 훈장을 받게 된 것이다.

       

       “자자, 다들 진정하세요.”

       

       흥분한 사람들 사이에서 여자 한 명이 걸어나왔다.

       

       “안녕하세요, 디안 님? 저 기억하세요?”

       

       “으음. 글쎄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여자가 싱긋 웃었다.

       

       “정말 기억 못하세요? 나중에 커서 디안 님하고 결혼하겠다고 했던.”

       

       “으에엥?!”

       

       그 말에 깜짝 놀라자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어댔다.

       

       “못 알아 보시는 게 당연하지. 10년 동안 훌쩍 커버렸으니.”

       

       “그럼 이제 결혼하는 거냐, 메릴다?”

       

       “하하하!”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라이너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그 애가 맞다, 디안. 지금은 마을의 행정관 대리를 하고 있지.”

       

       “행정관 대리라고?”

       

       “그래. 공립 아카데미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거든. 머리가 굉장히 좋은 친구야.”

       

       “허…. 브룬스웰 10년 동안 세상이 변하기는 변했구나….”

       

       저 여자애는 이 마을의 구세주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라이너스가 마을을 구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

       

       저 애가 갓난쟁이 동생을 등에 업고 도망치다 넘어지는 것을 보고 우리 둘은 앞다투어 마을로 뛰어들었지.

       

       분명 그때까지만 해도 코흘리개였는데 벌써 저렇게 컸다고?

       

       거기다 행정학 전공으로 공립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자기 마을 행정관 대리를 하고 있다고?

       

       어른의 10년과 아이의 10년은 확실히 다르구나.

       

       “이게 다 라이너스 경과 디안 님께서 후원해 주신 덕이죠. 두 분께서 후원하신 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으니까요.”

       

       그건 라이너스 혼자 준 돈이라고 말하려 했으나 라이너스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막았다.

       

       “이럴 게 아니라 디안에게 다시 일어선 마을을 보여주는 건 어떤가.”

       

       “좋아요!”    “갑시다!”

       

       라이너스의 제안에 사람들이 환호하며 메릴다를 필두로 나를 마구 떠밀기 시작했다.

       

       나는 파도에 휩쓸리는 조각배처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로 들어갔다.

       

       라이너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열의 후미에 천천히 따라왔다.

       

       “어? 뭐야?”

       

       마을 입구에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타타노크 마을은 10년 전의 참혹했던 때를 뒤로 하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당시 불타고 무너져 내린 집들은 이제 깔끔하고 단단한 벽돌집으로 재건, 집집마다 꽃들이 심어져 화사한 분위기를 풍겼다.

       

       널찍한 포석이 깔린 중앙광장의 가운데에는 시원한 물을 뿜어내는 큰 분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분수에는 하얀 대리석 조각상이 있었는데 하나는 당연히 라이너스고 다른 하나는… 설마 나냐?

       

       나와 라이너스를 묘사한 작은 조각상이 서로 나란히 어깨동무를 한 채로 손에 잘린 마왕군의 대가리를 들고 있었다. 민망하네.

       

       그 주변에서 라이너스가 뭐고 재건 행사가 뭔지 모르는 어린 꼬마들이 분수에 들어갔다 나왔다 웃었다 뛰었다 하면서 즐겁게 노는 중.

       

       이것만 해도 놀라운데 심지어 저쪽에는 학교까지 세워져 있다.

       

       이 세계는 현생과 달라서 의무교육 같은 시스템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대도시도 아닌 마을에 학교가 있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정말로 그 건물은 교실 몇 개로 이루어진 학교였다.

       

       마을의 학식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여기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 결과 인근에서 아카데미 진학률이 가장 높은 마을이 되었다고.

       

       현생으로 치자면 어디 읍면리 작은 부락 출신 애들이 대부분 인서울 대학에 들어갔다고 보면 딱 맞다.

       

       애초에 여기 세상에서는 아카데미 자체가 들어가기 굉장히 어려운 고등교육기관이라서.

       

       “이건 진짜… 다른 마을이라 해도 믿겠네….”

       

       “그렇죠? 10년 동안 모두가 열심히 했어요. 라이너스 경과 디안 님께서 꾸준히 후원해 주신 덕이 가장 크고요.”

       

       메릴다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라이너스 녀석. 돈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마을 하나를 되살릴 정도일 줄은 몰랐네.

       

       하긴 대륙의 영웅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정상이겠지.

       

       마을이 어찌나 커졌는지 모든 곳을 돌아보는 데에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제는 타타노크 마을이 아니라 타타노크 시라고 표현해야 맞을 듯.

       

       “안 그래도 조만간 도시의 승격을 신청할 생각이에요. 승격을 위한 모든 조건을 최근에 다 갖췄거든요.”

       

       메릴다가 내 말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우리 마을에도 정식으로 행정관이 배정되고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겠죠. 이게 다 라이너스 경과 디안 님께서 저희를 구해주신 덕분이에요. 두 분이 아니었다면 마을은커녕 모두가 그때 죽었을 거예요.”

       

       메릴다가 말을 이었다.

       

       “저희는 모두 디안 님께서 마을에 와주시기를 기다렸어요. 라이너스 경께서야 매년 저희를 찾아주시지만 디안 님께서는 지난 10년간 단 한번도 와주시지 않으셨잖아요? 그때 디안 님의 결단과 용기가 어떤 결과를 일궈냈는지 꼭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메릴다는 양팔을 펼쳐 이제 준도시급이 된 마을을 가리켰다.

       

       “보세요, 디안 님. 이건 모두 라이너스 경과 디안 님께서 만드신 거예요.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이후 태어난 아이들의 삶까지도 구원해 주셨어요.”

       

       “그래…. 참 다행이다. 이렇게 모두 다 잘 된 모습을 봐서.”

       

       거참 기분이 묘하네.

       

       고작 서른여 명의 마왕군에게 속절없이 불타 없어진 타타노크 마을이 이제는 시로 승격 직전이란 말인가.

       

       우리가 구해준 아이는 아카데미를 졸업해 행정관 대리를 하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일부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마을은 점점 발전해 이리도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 되었군.

       

       마을을 모두 둘러본 후 우리는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커다란 마을회관 내부는 마치 결혼식장 뷔페처럼 음식들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내가 마을을 방문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한 잔치란다.

       

       “디안 님. 한 말씀 해주세요. 모두 기다리고 있어요.”

       

       메릴다가 나를 단상 위로 밀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디안입니다. 우리가 헤어진 지 벌써 10년이 흘렀군요.”

       

       마을 사람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전 캄캄한 밤에 불타 없어진 마을을 뒤로 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후방으로 떠나던 때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웃기게도 제법 바람이 훈훈한 밤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여기저기서 맞다는 동조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때 저는 솔직히 말해서, 마을이 완전히 사라질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렇게나 멋지게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라이너스 경과 디안 님 덕분이에요!”

       

       누군가 소리쳤다.

       

       “들었습니다. 라이너스 경이 우리 둘의 이름으로 마을에 계속 후원을 했다고요.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 여러분의 재건 의지가 없었다면 천만금을 쏟아 부어도 오늘의 타타노크 마을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일부는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습니다. 제가 그날 밤의 결심으로 여러분을 구했던 것을 만천하에 인정받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가 단지 ‘조용히 살고 싶다’라는 마음에 외면하며 남겨두고 떠났던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이렇게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디안 님!”

       

       “디안 님이 저희를 구원해 주셨어요!”

       

       일부의 흐느낌은 이제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라이너스를 슬쩍 보니 놈은 세상 온화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 #

       

       

       지금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마을회관의 지붕에 납작 엎드린 리나는 멍청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디안 교수님이 라이너스 경하고 뭘 어쩌고 어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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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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