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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진성의 직접 보자는 말을 들은 이아린은 즉시 화장실로 가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

       “토끼야! 지금 기니피그랑 염소 확인하고 싶다는데 가도 돼?”

       [ 네? ]

       “기니피그랑 염소 잘 살아있지?”

       [ 아니, 잘 있기는 한데…. 잠깐만요. ]

       “알았어! 오래비가 물건들 상태 확인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 알잖아. 지금 내가 사진을 찍은 게 없어서 말이야. 응?”

       [ 아니 잠깐, 오래비라면 당신의 그 주술사 오빠요? ]

       “어어, 맞아! 기억하고 있었네!”

       [ 아니 잠깐만요! 이렇게 갑자기 데리고 온다고 하면! ]

       “어쨌든 보러 가도 되지?!”

       [ 아니 잠깐…!]

       “알았어, 고마워~ 토끼야 곧 갈게!”

       [ 잠깐만요! ]

         

       그녀는 흔쾌히 엘라의 허락을 받고는 화장실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며 소리쳤다.

         

       “보러 와도 된대! 오라비, 이세린! 가자!”

         

         

         

        * * *

         

         

         

       “유학 와서 친구들 되게 많이 생겼는데, 애들이 다 이쁘더라고. 알지? 오래비도 러시아 여자들 이쁜 거 잘 알 거 아냐.”

       “흠.”

       “게다가 다들 AK-47은 얼마나 잘 다루는지 알아? 분해 조립은 순식간이고, 사격 실력도 엄청나다니까? 물론 나는, 음. 총은 별로 안 좋아해서 그걸로는 잘 안 놀았지만. 응.”

       

       이아린은 진성이 온 것이 기쁜지 유학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중에서 엄청 예쁜 애가 있더라고. 그 뭐지, 알비노? 머리카락이 하얗고 눈이 빨개서 나는 토끼라고 부르는 애가 있는데, 걔가 그렇게 예쁘더라니까. 그래서 친해지려고 노력해서 친구가 됐는데, 지금 그 애의 집에 염소랑 기니피그가 있어.”

       “알비노?”

         

       진성은 알비노라는 단어를 듣자 관심을 보였다.

         

       “응? 알비노 아니야? 다른 명칭이었어?”

       “아니. 네가 말하는 것이 백색증이라면 알비노가 맞느니라.”

       “아 뭐야~깜짝 놀랐네. 오래비가 그런 반응을 보이니까 내가 틀린 건 줄 알았잖아.”

         

       이아린은 슬쩍 눈을 흘기면서 진성의 팔을 쿡쿡 찔렀다. 자신을 깜짝 놀라게 한 벌이라는 듯 말이다.

       진성은 손가락이라기보다는 단단한 나무 같은 그녀의 손가락에 쿡쿡 찔리면서 알비노라는 단어에 묘한 향수를 느꼈다.

         

       ‘알비노, 알비노라.’

         

       알비노라는 것은 주술적으로 꽤 의미가 있는 단어였다.

       예로부터 알비노에 걸린 동물들은 귀한 대접을 받았고, 영험한 존재로 숭배받았다. 당장 동양에서는 사방신 중에 백호가 있었고, 백사나 백사자 같은 것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영물이라고 숭상받았다. 흰 코끼리 같은 경우엔 인도에서는 우주적인 상징을 품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구름과 비를 부리는 신성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다만 이렇게 대접받는 것은 오직 동물에게 한정된 일.

       알비노에 걸린 사람은 숭상을 받거나 호감을 받기는커녕, 끔찍할 정도의 배척을 받는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인간과 어설프게 닮은 대상을, 오히려 인간과 닮지 않은 대상보다 혐오한다는 이론.

         

       알비노 환자는 이 불쾌한 골짜기에 딱 들어맞는 대상이었다.

         

       알비노라는 것은 멜라닌 색소가 합성되지 않아 생기는 질병이다.

       선천성 유전 질환으로 인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

         

       당연하게도 유전 질환인지라 인종, 지역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제였다.

         

       황인, 흑인 사이에서 피부가 하얗고 눈이 빨간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취급을 받겠는가?

         

       과거 동양에서는 이런 아이가 태어나면 도깨비 취급을 하거나 이변의 징조라고 보았고,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미신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백인들이 가득한 서양은 나은 편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과거를 살펴보면 서양이 더 박한 면이 있었다.

         

       흡혈귀에 대한 전승이 있기에 여기서도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아니, 아예 배척의 대상을 넘어서 척살의 대상으로 지정되는 경우도 많았다. 흡혈귀는 사악한 것들이니 물리쳐야 한다면서 덤벼드는 광신도들에다가, 흡혈귀든 뭐든 상관없이 목을 잘라서 명성을 올리겠다고 덤벼드는 사냥꾼들까지.

         

       현대에 이르러서는 알비노는 저주를 받거나 이변의 징조가 아닌 단순한 질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런 정보가 널리 퍼짐에 따라 과거와 같이 ‘사냥감’이 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것도 선진국 이야기지.’

         

       회귀 전 진성에게는 친한 동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담비(Marten)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동료가 있었는데, 그 이름에 걸맞게 작은 몸집에 호기심이 많아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사고를 치던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백색증을 앓고 있었는데, 용병계에 들어올 당시에 눈알 하나와 손가락 3개가 사라진 상태였다.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에서는 알비노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었고, 알비노 환자의 신체를 이용해서 사용하는 주술과 주술 의식들도 있었다. 때문에 ‘재료’를 필요로 하는 주술사에 의해 ‘사냥’을 당했던 것이다.

         

       온몸이 토막나 아프리카 전역에 퍼질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탈출의 대가로 눈 하나와 손가락 3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사냥’ 당시 걸린 주술과 독 때문인지 사라진 부위는 다시는 재생할 수 없었고, 기계로 만든 의안과 의수로 결손 부위를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꼴을 당해놓고도 호기심을 못 이겨서 온갖 곳을 쏘다녔으니, 참으로 난 녀석이기는 하였다.’

         

       진성은 옛날 자신과 오랫동안 부대꼈던 동료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러자 이아린은 그 피식 웃는 것이 자신을 비웃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다시 쿡쿡 찔렀다.

         

       “뭐야아. 왜 웃어.”

         

       풋.

         

       진성에 이어 뒤에서 따라오던 이세린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이아린은 가볍게 따지면서 콕콕 찌르는 것만으로 추궁을 마친 진성과는 다르게 정색을 하며 이세린을 노려보았다.

         

       “알비노 그거 헷갈렸다고 지금 웃는 거야? 응? 웃겨?”

         

       이아린이 표범이 으르렁거리듯 목소리를 살짝 내리깔고 묻자 이세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사실 맞아.”

       “⋯쿨하게 인정했으니까 이번만 넘어갈게.”

         

       진성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점집이라?’

         

       노상 점집.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천막 형태의 점집이 바로 그것이었다.

         

       당장 한국만 하더라도 저런 점집은 번화가라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특별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흐음.’

         

       보잘것없는 외관과는 다르게 천막에서는 기묘한 상징들이 보였다.

       점집의 천막에는 자신이 점성술로 점을 본다는 것을 자랑하듯 천체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거기 있는 천체 중 몇몇 개에는 특별한 처리를 한 것인지 사향(麝香)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사향이라는 것은 사람을 유혹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손님을 끌어모아야 하는 처지에서 사향을 쓴 것은 그다지 특이한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 사향이 사용된 천체였다.

         

       달과 태양.

       목성과 명왕성.

         

       이 네 가지 천체에만 사향이 발려있다.

         

       저 천체들은 점성학에서의 의미도 깊은 천체였지만, 타로와도 아주 연관이 깊은 천체였다.

         

       달은 메이저 아르카나 1번, 마법사(The Magician)를 상징한다.

       태양은 메이저 아르카나 19번, 태양(The Sun)을 상징한다.

         

       목성은 메이저 아르카나 10번, 운명의 수레바퀴(Wheel of Fortune)를.

       명왕성은 메이저 아르카나 20번, 심판(Judgement)을 상징하는 천체였다.

         

       마법사, 태양, 운명의 수레바퀴, 심판.

       어찌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배치였으나….

         

       ‘흐음. 뭔가 기묘하도다.’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생기게 하는 기묘한 조합이었다.

       게다가 더 위화감이 생기게 하는 것은 그 천체의 각도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정방향도, 역방향도 아닌 기묘한 각도.

       게다가 그 각도는 너무나 절묘해서 천이 조금만 움직인다면 정방향이 될 수도, 역방향이 될 수도 있는 구도였다.

       게다가 마법적 처리를 한 것인지 수분이 닿는 곳의 색이 살짝 변하며 반짝거리는 모습이 되었는데, 그 모습이 별처럼 보이기도 하고 빛무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만약 비나 눈이라도 온다면 새겨진 천체의 모양을 일그러뜨리고 그 상징을 계속해서 바꿀 것이 분명했다.

         

       절대로 일반적인 점집에서 사용할법한 형태가 아니었다.

         

       더 이상한 것은 천막에서 피비린내가 풍긴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피비린내가 아니라, 잔류사념이 담긴 피의 냄새가 말이다.

       흑주술에서나 사용할법한 그런, ‘사악해진’ 피의 냄새가.

         

       “어? 오래비도 점에 관심 있어?”

       “흠?”

         

       진성이 점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이아린이 말을 걸었다.

         

       “저 점집 아저씨 되게 재밌던데. 오래비도 한 번 들어가 볼래?”

         

       재밌는 아저씨.

         

       진성은 이아린의 평가를 듣고 슬쩍 눈을 가늘게 떴다.

         

       “재미있는 아저씨라. 어떤 사람이더냐.”

       “흠. 좀 여성스러운 분인데, 나랑 이야기도 잘 통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좀 편안해지는 그런 느낌도 있고. 어쨌든 좀 재밌던데? 어때, 오래비도 한 번 들어가 볼래?”

         

       여성스러운 아저씨.

       편안한 느낌.

         

       진성은 그 두 단어를 듣고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단서만으로 떠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진성은 억지로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되살리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빈 후, 그것을 천막 앞에다가 던져놓았다.

         

       그리고는 이아린에게 가자고 말한 뒤 천막 앞을 떠났다.

         

       그리고 천막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녀의 집과 같은 모습의 주택이었다.

         

       이아린은 성큼성큼 그 집을 향해 걸어가더니 한 손으로는 문을 두드리고 한 손으로는 초인종을 사정없이 누르며 소리쳤다.

         

       쾅쾅쾅쾅!

       딩동! 딩동! 딩동!

         

       “토끼야! 우리 왔어!”

         

       그 모습에 이세린은 창피한지

       슬쩍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렸다.

         

       “무슨 초, 초등학생도 아니고….”

         

       노크한다기보다는 문을 부숴버리려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 지금 열게요!”

         

       집주인 역시 문이 부서질까 무서웠던 것이었을까.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이아린이 ‘토끼’라고 불렀던 여자의 모습이 보이고.

         

       “허.”

         

       진성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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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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