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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이보게, 한 잔만 더 주게.]

         

       재탕을 요구하는 호환의 뻔뻔함에 혈압이 솟구쳤다.

         

       “벌써 세 번째인 건 알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잖은가. 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 호랑이 소원 하나쯤 들어주는 게 예의 아닌가?]

         

       “쁠르 드즜으믄 즈크뜨….”

         

       빨리 뒤졌으면 좋겠다고 고사를 지낸 뒤, 흙까지 핥아 바짝 말라버린 구덩이에 세 번째로 술을 따라주었다.

         

       [크으, 옛날 생각이 나는구먼. 이따금 산에 내려온 신선들과 술잔을 나누던 때가 좋았지.]

         

       “옛날에는 신선이 자주 내려왔나 봐.”

         

       [지금보단 그러했지. 그때는 지금과 달리 세상이 깨끗했으니.]

         

       “달라진 이유는 마기 때문인가.”

         

       [맞네. 마기가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이 세상 전체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지가 될 게야.]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술을 퍼먹던 녀석은 어느새 비어버린 구덩이를 아쉽다는 듯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곤 말을 이었다.

         

       마음이 약해진 백우진이 호리병을 들어 올렸다.

         

       “한 잔 더?”

         

       흔쾌히 수락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호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아쉬울 때야말로 끝내야 할 때지. 더군다나 이 이상 마셨다간 기껏 깨어난 정신이 다시 봉인될 판일세.]

         

       “음, 확실히 그건 그렇지.”

         

       새하얀 털을 뚫고 올라올 정도로 얼굴이 새빨갛다.

         

       저렇게 마시다가 정신줄 놓고 마기의 본능이 장악하게 되면 그보다 큰 민폐는 없으리라.

         

       [내게 살기를 드러내는 순간 다시 내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할 게야.]

         

       “결국 싸움으로 끝내야 하는 건가.”

         

       [자네에게 딱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주겠네. 마지막 남은 힘으로 이 몸을 잠시 멈출 것이야. 그때를 노리게.]

         

       “좋아.”

         

       [준비되면 내게 살기를 방출하시게.]

         

       “스읍.”

         

       후우.

         

       깊은 호흡을 이어가며 느슨해진 정신을 다시금 꽉 동여맨다.

         

       차갑게 식어가는 몸을 가열하여 재차 달구며 살기를 품은 두 눈으로 호환을 노려본 순간.

         

       크허허허엉!

         

       억눌려 있던 호환의 살의가 되살아났다.

         

       [크윽…,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렵구먼…!]

         

       이를 증명하듯, 청색으로 돌아왔던 좌안이 적색과 청색을 오가며 점멸하고 있었다.

         

       뜨겁게 달군 몸이 호환의 공격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추었던 술 향기가 또한 다시 흘렀다.

         

       [오, 이제 좀 낫구먼.]

         

       그 향기가 정신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주었다.

         

       온전히 본능에 따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인지, 놈의 움직임은 조금 전보다 한층 느려졌다. 덕분에 피하는 게 조금은 수월했다.

         

       [슬슬 준비하게.]

         

       태백호의 정신이 그에게 신호를 주었다.

         

       백우진은 이를 위해 크게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후우…!”

         

       단 한 번 주어지는 기회로 완벽하게 숨통을 끊어놓아야 한다.

         

       검병을 머리까지 끌어 올리고 검극을 호환에게 겨누었다. 자세는 더욱 낮추고, 체중이 모두 앞으로 향하도록 몸을 기울인다.

         

       준비를 끝마친 그 순간,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달려오던 호환의 몸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일세!]

         

       빠득!

         

       이를 꽉 깨물며 기운의 충돌로 폭발적인 속도를 얻어내는 벼락을 응용하여 용천혈에서 기운을 충돌시켜 앞으로 쏘아진다.

         

       콰릉!

         

       그와 동시에 검은 백섬검결의 찌르기 초식인 백섬광망을 운용하여 세상 천지에서 오직 자신만이 펼쳐낼 수 있는 새로운 초식을 만들어냈다.

         

       백뢰관천(白雷貫天).

         

       파지직!

         

       한 줄기 섬광이 되어 허공을 날아간 검끝이 멈춰 선 호환의 가죽을 손쉽게 꿰뚫고 나아갔다.

         

       단단한 가죽과 질긴 살을 뚫고 들어가 도달한 곳은 녀석의 심장이었다.

         

       푸슉!

         

       크와아아앙!

         

       놈의 고통어린 포효가 바로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귀에서 뜨거운 핏줄기가 새어 나온다.

         

       심장을 정확히 찌른 검을 그대로 손에서 놓았다.

         

       [크으…! 수백 년을 살았지만 이런 고통은 처음일세.]

         

       두 눈동자가 청색으로 돌아온 호환 아니, 태백호가 낮게 으르렁대자 백우진은 앞전에 파둔 구덩이에 다시 술을 흘려 넣었다.

         

       “드시오.”

         

       마기의 통제에서 온전히 벗어난 그를 대하는 말투 또한 달라졌다.

         

       [허허, 고맙네.]

         

       웅덩이 앞에 힘겹게 주저앉은 태백호는 조금 전과 달리 혀만 날름거리며 가볍게 목을 축였다.

         

       [십 년 전,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였어. 놈들이 나를 찾아왔지.]

         

       수백 년을 살다가 이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다.

         

       “마교도?”

         

       [그래. 같잖은 마석 하나를 내게 들이밀면서 나를 마물로 만들겠다지 뭔가.]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콧바람을 흥! 하고 쏘아보낸 태백호가 말을 이었다.

         

       [곧장 곤죽을 내주었지. 살아봤자 세상을 더럽히기밖에 못할 놈들이니 손속에 사정 따위는 두지 않았어.]

         

       죽음을 눈앞에 두었다곤 하나 고작 마석 하나에 태백호가 마물이 될 리가 없었다. 도리어 자신의 앞에서 천마를 연호하는 마교도들의 머리통을 앞발로 전부 짓이겨 버렸다.

         

       [그렇게 몇 년쯤 지났나. 또 다른 불청객이 나를 찾아오더군.]

         

       “또 마교도였소?”

         

       [마교도…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군.]

         

       가볍게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태백호가 치켜뜬 두 눈동자에 미약한 공포가 깃들었다.

         

       [이번에 나를 찾아온 이는 스스로를 천마라 칭했네.]

         

       “……!”

         

       천마(天魔)!

         

       일황과 삼존 위에 놓인 그 이름이 마침내 거론되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어이하여 이리로 옮겼는가 물었더니 천마는 그렇게 말하더군.]

         

       “그대의 존재가 실로 존귀하니 내 직접 찾아와 수하로 거두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다 여겼을 뿐.”

         

       […라고 말일세.]

         

       백우진이 불신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거짓말 아니오?”

         

       [어허,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네!]

         

       “그래서, 그 다음은.”

         

       [천마의 마기는 마석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네. 아무리 죽음을 코앞에 두었다지만 이 내가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마물이 되었으니 말이야.]

         

       그때를 떠올린 태백호의 거대한 체구가 부르르 떨렸다.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표정에서 싫은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그 뒤는…, 자네가 알고 있는 대로일세. 창귀를 이용하여 나를 따르는 마을 사람들을 조종하여 인간을 제물로 바치게 했지….]

         

       그의 눈동자에 수많은 후회가 내비쳐졌다.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 하는데…,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구먼.]

         

       그러면서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데, 속셈이 훤히 드러났다.

         

       “…내가 대신 전해주겠소.”

         

       [허허, 고마우이.]

         

       대체 저 호랑이 얼굴에서 왜 다양한 표정들을 읽어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태백호에게서 느껴지는 생기가 점차 옅어져 갔다.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힘없는 청색 눈동자가 백우진을 올려다봤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 결심이 선 듯, 그의 머릿속에다 대고 말을 걸었다.

         

       [자네에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되겠나.]

         

       “또 뭐요.”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대답 속에서 따스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저 동굴 깊숙한 곳에 내 아이가 잠들어 있네.]

         

       “아이?”

         

       [기실 이곳에는 소중한 것이 잠들어 있었어. 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수호신 같은 것이었지.]

         

       이 산에는 태백호가 지켜야 할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러다 악인들 또는 짐승에게 물어뜯기기 직전의 사람들 몇을 구했고, 구명지은을 입은 이들이 태백호를 산신으로 모시며 살아가기 위해 만든 곳이 이곳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소중한 거라면….”

         

       [나도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네. 그저 태어날 때부터 내 아비에게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사명이라 전해 들었을 뿐.]

         

       “그 아이 또한 그것을 위해 태어난 건가.”

         

       [맞네. 원래는 내 뒤를 이어 이 산을 지켜야만 했지. 헌데, 상황이 달라졌어.]

         

       힘없이 축 늘어지는 태백호의 귀를 보고 백우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자네 짐작대로 천마가 그것을 가져갔네. 어쩌면…, 내가 아닌 그것이 천마가 직접 여기까지 온 목적이 아닐까 싶으이.]

         

       “그럼 그것을 꺼낼 때 봤을 거 아니오. 그게 무슨 물건인지.”

         

       태백호가 고개를 저었다.

         

       [묘한 기운을 뿜어내는 천에 싸여 있었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크기가 사람 주먹만 한 정도라는 것일세.]

         

       “주먹만 한 크기의 무언가라….”

         

       짐작 가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소설에서도 다루지 않은 내용이었다.

         

       허나 천마가 이곳까지 와서 가져가야 할 물건이라면 필시 높은 중요도를 지닌 물건일 터.

         

       생각에 잠긴 사이, 태백호의 말이 이어졌다.

         

       [내 대에서 사명이 끝났으니, 내 아이는 자유의 몸이 된 게야.]

         

       그가 하고자 하는 부탁이 무엇인지 느낌이 왔다.

         

       “설마 그 아이를 나보고 맡아달란 겁니까?”

         

       [부탁함세.]

         

       날 때부터 천방지축 마음대로 쏘다니던 철없는 아이다. 거기에 자유까지 주어졌다는 걸 알면 대책 없이 돌아다니다 인간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큰 호랑이를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키운단 말이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척이나 작다네.]

         

       “…….”

         

       거부할 이유가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이야 한없이 미약한 아이네만, 언제고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되어줄 게야. 그것만은 내 장담함세.]

         

       마음이 점차 기울기 시작했다.

         

       확실히 태백호라면 장차 벌어질 일들에서 언제고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존재였다.

         

       “정말 작소?”

         

       [말했듯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무척이나 작네. 이를테면… 옳거니, 저 작은 돌덩이와 비슷하겠어.]

         

       그가 가리킨 돌덩이는 성인 손바닥 두 개만 한 크기였다. 저만한 정도라면 확실히 키우는 부담감은 적을 터였다.

         

       “좋소. 내가 맡아서 잘 키워보겠소.”

         

       [고마우이…. 정말 고마워.]

         

       타오르는 불꽃이 꺼져가듯, 그의 생기 또한 다 타버린 장작불처럼 미약한 불씨만이 남았다.

         

       [내가 죽거든…, 내 배를 갈라보게. 마기에 물들어 쓸 데가 있을진 모르겠으나…, 내단이 있을 게야.]

         

       “알겠소.”

         

       [슬슬 끝이 보이는구먼…. 혹, 내게 물을 것이 남아 있는가?]

         

       감길 듯, 말 듯한 그의 눈동자를 보며 백우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말이오….”

         

       [기탄없이 얘기하게. 죽는 마당에 뭔들 대답을 못 해주겠나.]

         

       “그렇다면 내 조금 더 당당히 물어보겠소.”

         

       흠흠!

         

       목청을 가다듬은 백우진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보았다던 천마는…, 남자요, 여자요?”

         

       [허허, 미친놈이로고.]

         

       설마 죽어가는 영물에게 묻는다는 게 천마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을 줄이야.

         

       [천마가 여자면 어떻고, 남자면 어떻기에 그걸 묻나.]

         

       “내게는 아주 중요하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의미없는 질문일 수도 있으나 백우진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다.

         

       천마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질 테니.

         

       [내가 본 천마는…, 여자였네.]

         

       비로소 끝이 찾아왔다. 태백호는 제 영혼이 육신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음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마침내 태백호의 숨이 완전히 멎었다.

         

       가만히 서서 그를 지켜보던 백우진은 고개를 숙인 채, 쥐고 있던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천마가…, 여자란 말이지.”

         

       이상한 괴물 놈들을 키우는 탓에 기대도 하지 않았건만.

         

       고개를 든 백우진의 눈동자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기다려라, 천마!”

         

       내 최대한 빨리 너를 보러 갈 테니.

         

       “핑크 머리가 아니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새롭에 각오를 다친 백우진은 태백호가 남기고 간 사체로 다가가 아랫배 쪽을 가른 뒤, 손을 집어넣었다.

         

       “이건가…?”

         

       내단으로 짐작되는 것이 손끝에 만져지자, 이를 쥐고 잡아당겼다.

         

       “윽.”

         

       엄지만 한 크기의 내단에서 뿜어내는 마기는 마석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일단 씻자.”

         

       호리병의 술을 부어 내단에 묻은 피를 깨끗이 씻겨낸 뒤, 옷자락을 부욱 찢어 내단을 가운데에 두고 조심스레 감싸 제 품에 넣었다.

         

       갑자기 가슴이 든든해졌다.

         

       백우진은 진법을 파훼할 때 사용했던 지진의 규모를 작게 사용하여 커다란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그 안에 태백호의 사체를 밀어 넣었다.

         

       단단하고 질긴 그의 가죽이라면 분명 쓰임새가 많겠지만, 길지는 않아도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나누었던 상대를 그토록 해체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디 다음에는 자유의 몸으로 태어나시오.”

         

       수백 년 동안 짊어진 사명의 무게는 어떠했을까. 아마 세계의 명운을 짊어졌던 때의 자신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았으리라.

         

       “평안하시오.”

         

       이제부터는 부디 평안하길 바라며, 백우진은 그를 묻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정까지 올리려고 했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감에 있어서 어느 정도 중요한 사실들을 풀어내는 부분이었기에 잠시 생각하느라 늦었습니다…

    또한 전투를 마침으로써 에피소드가 끝난 건 맞지만, 이후의 뒤처리 과정을 넣지 못했습니다.

    그런 만큼 내일도 연참을 하여 후일담과 더불어 새로운 에피소드의 시작을 선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월요병 잘 이겨내시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저녁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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