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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페룬 대륙의 동쪽, 하무트교 임페그린 지부.

       

       가면을 쓴 사내가 지부장실에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지부장님! 감식 결과가 나왔습니다!”

       

       가면 쓴 사내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으나, 지부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호오. 그래? 결국 감식 결과가 놈을 찾는 것보다 빨리 나오고야 말았구나.”

       “…면목이 없습니다.”

       

       가면 쓴 사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나마 이것도 빨리 나온 편인데….’

       

       음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자들 중 가장 실력 좋은 마법 분석가를 데리고 와서 멜른 산 주변의 마나 흔적 표본을 채취하고, 그걸 분석해 정보화하는 과정은 고작 며칠 만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안 그래도 한정된 인원을 풀어 대륙 동부에서 ‘용을 깨울 자’가 숨어 지낼 만한 곳을 싹 다 뒤지고 있는 판국인데, 막대한 돈까지 들여 분석가를 찾아 고용하고 멜른 산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표본을 같이 수집하느라 그 역시 과장 좀 보태 눈알이 빠질 뻔한 터였다.

       

       하지만 지부장 앞에서 그런 불평을 한마디라도 했다간 당장 목이 날아갈 것이 뻔했기에, 그는 잠자코 보고를 이어 갔다. 

       

       “감식을 한 마법사의 말에 따르면, 놈이 사라진 멜른 산에서 결계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결계라. 어떤 종류지? 범위는?”

       “이걸 보십시오.”

       

       가면 쓴 사내는 품에서 스크롤 하나를 꺼내 바닥에 놓고 쫘악 펼쳤다. 

       그러고는 손을 스크롤 한쪽에 댄 채 마력을 흘려 보냈다. 

       

       지이잉—

       

       그러자 스크롤에서 마치 홀로그램처럼 푸른 마나 입자들이 나와 멜른 산의 축소형 모델을 만들었다. 

       

       이윽고 사내가 스크롤 옆쪽으로 손을 옮겨 마나를 미량 흘려 보내자, 멜른 산의 특정 지역에 붉은색 가루가 띄엄띄엄 뿌려졌다. 

       

       “마나 표본이군. 이게 전부인가?”

       “예. 샅샅이 뒤졌지만 이게 전부였습니다.”

       “흠. 계속해 봐라.”

       

       곧 붉은색 가루가 모이더니 어설픈 타원형을 이루었다.

       

       “몇 안 되는 표본이었습니다만, 분석가가 며칠 동안 공을 들인 결과 이런 형태의 이동형 결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동형 결계는, 분석가의 말에 따르면 환각형 결계였다고 합니다.”

       “환각형이라고?”

       

       지부장의 눈이 찌푸려졌다. 

       

       “분석가의 실력은 확실한 거겠지?”

       “그, 그렇습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환각형 결계의 안쪽에 한 번 더 좌표 이동형 결계가 꼬아져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마 추적을 어렵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됩니다.”

       

       그 말에 비로소 지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중 결계라…. 적어도 ‘용을 깨울 자’ 본인이 탈출을 위해 설치해 둔 건 아니겠군.”

       “불가능합니다. 이 정도로 섬세한 결계를 설치할 수 있는 수준의 마법사는 분석가가 아는 한 제국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일 거랍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내가 한 번 더 마나를 흘려 보내자, 결계 내부에 있는 입자의 좌표값이 공중에 출력되었다. 

       

       그 좌표를 본 지부장의 얼굴이 굳었다.

       

       “이 좌표값은….”

       “그렇습니다. 아공간亞空間 좌표 형식입니다.”

       

       만약 좌표값이 대륙 어딘가에 실존하는 값이었다면, 그 값이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대략적인 위치라도 추적이 가능했을 터. 

       

       하지만 해당 좌표가 아공간을 가리키는 이상.

       

       “…반대편에서 어디로 튀어나왔는지 추적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소리군.”

       “지독합니다. 대체 몇 번을 꼰 건지…. 이 정도면 드래곤이 직접 설치한 결계라고 해도 믿을 정돕니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있다.”

       “…예? 진짭니까?”

       

       지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면 쓴 사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럼 놈이 이미 결계를 설치한 드래곤의 레어로 이동했고, 거기서 해당 용을 깨웠을 가능성도….”

       

       만약 ‘용을 깨울 자’가 레드 드래곤 혹은 블랙 드래곤을 동면에서 깨워 이미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면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바로 조금전 하무트님께 받은 계시에 따르면 아직 동면에서 깨어난 드래곤은 없다. 애초에 이렇게 여러 번 꼬아 놓은 데다가, 만든 지 천 년이 지난 낡아빠진 결계야. 지금까지도 반대쪽 좌표값이 정확하게 고정되어 있는 게 이상하지.”

       

       아무리 10서클의 마법을 쓸 수 있는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복잡한 결계를 천 년이나 완벽하게 유지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게 가능할 만한 드래곤이라 하면, 마법의 극의에 도달했다고 알려진 은룡 정도겠지만….’

       

       최후의 은룡, 카르사유는 다른 드래곤들과 다르게 동면에 빠지지도 못하고 천 년 전에 죽어 소멸했다.

       

       “하긴, 그렇겠군요. 그럼 대륙 어딘가에 랜덤으로 떨어졌다는 소린데…. 그럼 운이 나쁘면 북부 설산에 떨어져 얼어 뒈지기 일보직전일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다만 아직 하무트님께서 놈이 살아 있는 건 확실하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린 놈을 반드시 찾아 죽여야 한다.”

       

       지부장은 손을 휙 저어 눈앞의 홀로그램을 흩었다. 

       

       “수색 범위를 늘린다. 다른 지부에 증원을 요청해 북부와 남부로 흩어져 놈을 찾고, 서부는 시프 길드에게 연락해.”

       “알겠습니다!”

       

       지부장이 낮게 읊조렸다. 

       

       “어차피 놈의 능력이 발현되기 이전일 테니, 발견만 하면 즉시 처리할 수 있다.”

       

       놈도 필사적으로 도망친 걸 보면 자신이 쫓기는 입장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

       

       게다가 놈은 ‘용을 깨울 자’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 능력도 가지지 못한, 용 없이는 그저 하나의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아마 지금쯤 어딘가에서 홀로 벌벌 떨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겠지. 크흐흐.”

       

       ***

       

       “쀼우!”

       

       실비아가 오자 누운 상태로 고개를 젖혀 거꾸로 실비아를 본 아르가 반가운 듯 쀼 소리를 냈다. 

       

       “쀼?”

       

       킁킁.

       

       곧 맛있는 냄새를 맡은 듯, 아르의 작은 콧구멍이 벌렁였다. 

       

       실비아는 그런 아르의 콧구멍을 보며 작게 ‘너무 귀여워….’라고 중얼거리고는 빙긋 웃으며 들어와 치킨 봉투를 아르 앞에 놓았다.

       

       “아르도 치킨 먹을까? 방금 튀겨서 아주 따끈따끈하거든.”

       “쀼웃!”

       

       방금 케이크 조각, 구운 소시지, 그리고 푸딩을 먹은 아르였지만, 아르는 언제 뭘 먹었냐는 듯 몸을 뒤집어 벌떡 일어났다. 

       

       실비아는 조금 장난기가 발동한 듯, 이미 살짝 뚠뚠해진 아르의 배를 검지로 쿡 찔렀다. 

       

       “근데 아르는 이미 배가 불러 보이는 걸? 치킨은 나랑 레온 씨랑 먹어야겠는데.”

       “쀼, 쀼웃?”

       

       아르는 그 말에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뀨우!”

       

       그러고는 뽈록 나온 자신의 배를 손으로 다시 들어가게 하기라도 하려는 듯 꾹 눌렀다. 

       

       “뀨웃.”

       

       물론 전혀 달라진 건 없었지만, 아르는 나름 애썼다고 생각했는지 허리에 손을 척 얹으며 이제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치킨을 바라보았다. 

       

       “푸흐흐. 귀여워. 그래. 같이 먹자.”

       “쀼!”

       

       좀 더 장난을 치려던 실비아는 아르의 당당한 표정을 보고 무장해제가 되어 아르를 쓰다듬었다. 

       

       ‘진짜 귀여워 죽겠네.’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은 나는 실비아가 사 온 치킨을 개봉했다.

       

       “어디 보자. 와, 여기 치킨 완전 제대론데요?”

       

       나는 치킨 님의 자태를 보자마자 침을 꿀꺽 삼켰다. 

       

       ‘시장통에서 봤던 쬐그만 통닭들과는 차원이 달라.’

       

       딱 봐도 토실토실한 큰 닭인 데다가, 어설프게 불에만 돌려 구운 게 아닌 현대의 치킨처럼 겉에 밀가루와 전분을 반죽해 발라 고온의 기름에 튀긴 ‘진짜 후라이드 치킨’이 내 눈 앞에서 김을 뿜고 있었다. 

       

       ‘때깔 하나는 백금올리브치킨에도 안 꿀리는데?’

       

       진짜 이 정도면 튀겨서 건지자마자 순간이동이라도 해서 가져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

       

       “그쵸? 제가 제대로 된 치킨집 찾느라 얼마나 돌아다녔는데요.”

       “…수련하고 오신 건 맞죠? 지금 보니 땀도 거의 안 나신 것 같은데.”

       “그, 그럼요. 땀은 수련하고 다 씻고 와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실비아는 살짝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하더니 얼른 접시를 세 개를 꺼내 테이블에 세팅했다. 

       

       그동안 나는 치킨 님을 제외한 간식 봉투를 테이블 위에서 싹 다 치운 뒤, 세팅된 접시 앞에 아르를 앉혀 주었다.

       

       “침 떨어진다, 아르야.”

       “쀽!”

       

       아르는 한손에 조그만 포크를 든 채 치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 아르야. 제일 맛있는 다리 부위로 줄게.”

       “쀼우!”

       

       아르는 자신의 앞에 놓인 통통한 닭다리를 포크로 푹 찍어 조심스럽게 입가에 가져가고는, 휘유우, 휘유우 소리를 내며 불어 식힌 다음 챱, 하고 베어 물었다. 

       

       “쀼움…!”

       

       닭다리를 베어 문 아르의 동작이 잠깐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멈추었다. 

       

       똘망똘망 기대로 가득 찼던 눈이 그 기대를 온전히 보답 받았다는 듯 눈물 한 방울을 똑, 하고 떨어뜨렸고.

       

       챱, 챱, 챱, 챱!

       

       아르는 쀼 소리를 내는 것도 잊은 채 아삭한 튀김옷과 부드러운 고기를 정신없이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정말 복스럽게도 먹네요.”

       “그렇죠?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니까요.”

       

       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아르는 치킨을 처음 먹는 거였지?’

       

       전에 우연찮게 ‘도도’를 잡아서 불에 구워 먹은 적은 있어도, 이렇게 파는 치킨을 사 먹은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크으. 치킨을 처음 먹어 볼 때의 그 맛을 느낄 수 있다니. 부럽구나, 아르야.’

       

       반 농담으로 치킨 안 먹어 본 혀 산다는 말도 하는 세상에, 진짜 치킨 뉴비라니.

       

       귀하다, 귀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실비아는 내 접시에도 치킨 조각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 나는 내 앞에 놓인 게 남은 하나의 닭다리라는 걸 깨닫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실비아 씨 닭다리 드셔도 되는데.”

       

       그러자 실비아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아요. 아르랑 레온 씨 맛있게 먹는 거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요. 전 가슴살 먹을 테니 사양 말고 드세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멍하니 실비아를 쳐다보았다. 

       

       “…레온 씨? 안 드시면 식어요.”

       “실비아 씨.”

       “네?”

       “저희 결혼, 지금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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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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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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