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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

       “그래서, 이번에는 또 왜 찾아오신 건데요?”

         

       자는 도중에 찾아와서 그런지 반응 한 번 까칠하다. 뭐, 이제는 익숙하긴 한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가 궁금한데요?”

       “공녀님에 관해서야.”

         

       프란체 얘기가 나오니 카자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녀님한테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건 아니고. 최근에 좀 이상해.”

       “어떤 점에서요?”

         

       나는 최근에 프란체와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성격이 전과 달리 조금 변화했다는 것과 눈빛이 이상하다는 것까지…….

         

       “음. 사람은 원래 누구나 달라지는 법 아니에요? 지금까지 여러 일이 있었잖아요. 마법도 배우시고, 사업도 성공하시고. 달라질 계기는 충분하다고 보는데?”

         

       그게 뭔 대수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카자르. 그런 단순한 거였으면 나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지. 이건 직접 봐야 느낄 수 있다.

         

       “하, 이걸 직접 봤어야 했는데.”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관자를 짓눌렀다.

         

       “아니, 뭐 얼마나 심했길래 그래요?”

       “내가 알던 공녀님이 아닌 거 같아.”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자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카자르가 자세히 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느꼈는데요? 눈빛이나 성격이 변화한 거 말고도 다른 게 있었을 거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천천히 주억이며 말했다.

       

       “지금 공녀님은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는 거 같아. 가끔 등 뒤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시면서 살기까지 분출하신다고.”

         

       살기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심각해진 카자르. 아무래도 짚이는 게 있는 듯하다.

         

       “생각나는 게 있는 거지?”

         

       턱에 손을 짚고, 미간을 찌푸린다.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이러면 괜히 무서워지잖아.

         

       “음, 뭔지 알 것 같네요.”

       “빨리 말해 봐. 뭔데?”

         

       카자르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흑마법의 영향이에요.”

         

       순간적으로 내 눈이 번뜩였다.

         

       의심은 했다만, 진짜였다. 이 게임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흑마법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모를 만도 해. 소미레는 흑마법의 대척점에 있으니까.’

         

       나는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카자르에게 물었다.

         

       “그 흑마법이 정확히 무슨 영향을 주는 건데?”

       “아까 말씀하셨죠?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는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긴장되는데.

         

       “흑마법은 배우면 배울수록 사람의 감정을 증폭시켜요. 지금 공녀님께서 보여주시는 감정은 원래부터 있었던 감정인데, 이걸 흑마법이 더 키우는 거죠.”

         

       말을 듣자마자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헬레나와 카자르랑 친해지지 말라고 한 점, 그동안의 집착과 의존.

       

       이것들이 증폭되어 폭발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전에 기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게 달려들어 안긴 거겠지. 헬레나의 이름만 꺼내도 살기가 피어나오는 것 또한 마찬가지겠고.

       

       납득이 됐다.

         

       “그럼, 이 상태로 점점 흑마법의 성취가 늘어나면 어떻게 되는데?”

         

       긴장. 심장박동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등줄기가 경직된다. 식은땀까지 흐를 지경.

         

       “지금보다 훨씬 심해지겠죠? 힘도 강력해지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카자르의 말을 듣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현재 프란체의 마법 성취는 필수.

         

       그런데 여기서 감정이 더 격해지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도망을 쳤을 때.

         

       “문제가 심각하군…….”

       “흑마법이 익숙해지고 안정만 유지되면 상관없어요.”

       “덜 익숙한 상태에서 안정이 깨지면 어떻게 되는데?”

       “제대로 폭발하겠죠?”

         

       이런.

         

       “그거에 대비할 방법은 있는 거야? 예를 들어서 폭발하는 감정을 억제한다던가, 이성을 유지하게 해준다던가.”

         

       카자르는 허공을 바라보며 책상을 두들겼다. 그렇게 잠깐의 고민이 끝난 후.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없네요. 딱히 병이나 저주 같은 게 아니라서요. 단순히 자기 자신의 내면이 터져 나오는 거예요. 저도 다른 바 없어요.”

         

       ……흑마법에 그런 부작용이 있을 줄 몰랐는데.

         

       어쩐지 기본 루트 프란체가 완전 미친년으로 나오더라. 그게 흑마법의 영향이었다는 건가.

         

       “근데 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익숙해지고 안정만 유지하면 감정이 폭발할 일은 없으니까요. 저 보세요, 멀쩡하잖아요?”

         

       그러니까,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 안정을 언젠가 박살 낼 예정이라 문제라는 거다.

         

       “후우…….”

         

       막막해서 한숨이 나왔다. 이러면 프란체를 키우는 의미가 사라진다. 내가 사라지면 폭발해서 게임처럼 보스가 되지 않겠나.

         

       그렇다고 떠나지 않기에는 내가 위험하다.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구나.”

         

       카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택의 기로요? 무슨 선택이요? 그 증상이랑 관련된 거예요?”

       “그래. 언젠가 내가 사라지면 공녀님의 감정이 폭발할 거 아니야.”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든지, 프란체 혼자서 독립할 수 있게 도와주든지.

         

       “음. 근데 그 병 있잖아요. 위험한 건 맞는데, 목숨을 앗아갈 정도는 아니에요. 게다가 당신은 소드 마스터잖아요? 항상 공녀님의 곁에 있을 수 있지 않나 싶은데…….”

         

       얘도 이런 소리를 할 줄이야. 그냥 카자르에게는 말하는 편이 좋으려나. 얘는 사정을 알아줄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그럼 내가 빙의한 시점부터 얘기해야 하잖아.’

         

       답답함에 하아, 한숨이 나왔다.

         

       “왜 그리 걱정이 많으신 건데요? 당신한테 새겨진 마법 말고도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어요?”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요? 말 해봐요. 공녀님한테는 말 못 하는 거잖아요?”

         

       입술을 오므린 채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고민의 시간은 그만큼 길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내 얘기를 믿고, 안 믿고는 너의 판단이야.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는 묻지 마.”

         

       나는 카자르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프란체와 같이 있으면 증상이 나타나고, 점점 심해진다는 것까지만.

         

       현대에서 온 내가 진 바렌베르크에게 침식당하고 있다는 정보는 주지 않았다.

         

       “…그런 게 가능해요?”

         

       얼빠진 얼굴로 묻는 카자르. 나는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증상이 나타나는 조건이 공녀님과 같이 있는 거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카자르는 떡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눈썹을 좁혔다.

         

       “제가 자세히 조사해봐도 될까요?”

       “그런 게 가능해? 저번에는 답이 없다며?”

         

       카자르는 입술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봤던 마법이랑, 증상이 나타나는 조건을 조사해서 연구해보면 뭔가 나올 것 같아요. 고대 마법서가 좀 있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고대 마법서가 있었군. 그거라면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다른 고대 마법서를 하나 가져다주면 그것도 도움이 될까?”

         

       카자르가 고개를 올려다보며 눈을 끔뻑였다.

         

       “다른 고대 마법서가 있다고요…?”

       “바렌베르크 왕국에 존재하던 마법서야.”

         

       여기서는 왕족 치트키를 써서 넘어간다.

         

       “호오, 바렌베르크 왕국에 존재하던 고대 마법서라. 이건 흥미가 생기네요.”

         

       그 마법서는 마법에 관련된 히든 피스 중에서 가장 가치가 높았던 아이템이었다. 카자르라면 그걸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공녀님께 휴가도 받았겠다, 그걸 구해올게.”

       “좋아요. 연구에 도움이 되는 거기도 하고, 제 호기심도 자극하고.”

         

       카자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악수하자며 손을 내민다. 근데…….

         

       ‘저거 떡진 머리 벅벅 긁던 손이잖아.’

         

       거부감 만땅에 일순 눈썹이 꿈틀거리며 얼굴이 찡그려졌지만,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손을 잡았다.

         

       “그럼 부탁할게요?”

       “…그래.”

         

       그걸 마지막으로, 나는 곧장 집을 나와 마법서를 찾으러 떠났다.

         

       ‘장소는 분명…….’

         

       게임에서 나왔던 그곳과 같겠지.

         

         

       * * *

         

         

       늦은 저녁. 프란체는 마차를 타고 카자르의 집으로 이동했다.

         

       “이틀 뒤에 찾아오렴.”

       “예, 공녀님.”

         

       프란체는 노크도 하지 않았다. 새까만 연기를 피워내 문틈 사이로 넣더니, 철컥. 그대로 문이 열렸다.

         

       “고, 공녀님?”

         

       무작정 들어가자 당황한 카자르. 프란체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왜, 무슨 일 있니?”

       “아무리 그래도 노크는 하셔야지요…….”

       “자고 있을 줄 알았지.”

         

       그러고는 고개를 까딱이며 바로 차를 준비하라는 눈치까지. 카자르는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곧장 차를 내왔다.

         

       “마법 배우러 오신 거죠?”

       “그래.”

         

       호록. 차를 한입 마시고,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배우고 싶은 마법이 있어서.”

       “어떤 건가요?”

       “그건 나중에. 지금은 내 성취를 봐줘.”

         

       화아악…! 새까만 심연과도 같은 어둠이 프란체의 손아귀에서 흘러나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과도 같은 어둠이었다.

         

       “…대단하네요.”

         

       카자르는 당혹스러웠다. 이 공녀님은 마법을 배운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 경지라니, 역대 최고의 천재라 불려도 무방했다.

         

       “지금 내 수준이 어느 정도니?”

       “궁정 마법사 수준은 되네요.”

       “그러면, 어디까지 할 수 있어?”

       “으음…….”

         

       톡. 톡. 카자르는 천장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턱을 두드렸다.

         

       “초위 마법이나 대마법을 제외하곤 다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흑마법 한정이지만요.”

         

       프란체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지금 내 수준이라면 웬만한 마법은 다 펼칠 수 있다는 거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카자르. 그러고는 손을 움직여 마력을 활성화한다.

         

       가지각색의 별똥별이 손 위에서 떠올랐다. 마치 은하와도 같은 모습. 프란체는 이걸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배울 것들을 알려드릴게요. 저는 특수 성질을 가진 속성을 제외하면, 속성 대부분을 사용할 수 있어요. 거기엔 흑마법도 포함되어있죠.”

         

       슈우욱. 가지각색으로 빛나는 원석들이 빠르게 돌아가며 나선을 그린다. 그리고 한 가지 원석이 떠올랐다. 흑색의 원석이었다.

         

       “이게 제 흑마법의 정수예요. 해석할 수 있으시겠어요?”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인 뒤 카자르 손 위에 있는 흑색 원석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 안에는 수많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크윽…….”

         

       일순간에 많은 정보가 들어와 프란체는 옅은 두통을 느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리고 관자를 짓누르면서까지 원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좋아, 해석이 되고 있어.”

         

       카자르의 흑마법 정수는 놀라웠다.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거부터 시작해, 시체를 움직이고, 생명력을 빼앗는다. 거기에 온갖 저주를 걸 수 있으며, 하늘을 가리는 암전 마법까지.

         

       “너, 이 정도면 초월 마법사 아니야…?”

         

       카자르는 싱긋 웃고는 고개를 휘저었다.

         

       “이 정도로는 초월 마법사가 될 수 없어요. 가진 마력의 양 자체부터 다르고요.”

         

       휙. 손가락을 움직이며 빛나는 원석들을 움직이는 카자르.

         

       “초월 마법사는 손가락만 까딱해도 대마법이 펼쳐져요. 거기서 조금 집중하면 초위 마법이 되죠. 제국이 강한 이유는 초월 마법사의 존재 때문이에요.”

         

       프란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손가락만 까딱해도 대마법이 나가는 것도 모자라 초위 마법도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다니?

         

       ‘괜히 진을 가로막은 게 아니었구나.’

         

       그런 초월 마법사와 겨룬 진도 대단하다.

         

       “아무튼. 제가 공녀님께 가르쳐드릴 수 있는 흑마법은 이게 끝이에요. 나머지는 마력 운용 정도?”

         

       카자르는 눈썹을 위로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 그리고 아까 꼭 배우고 싶은 마법이 있으시다고 하셨죠? 할 거 다 끝났으니 지금 말씀하셔도 돼요.”

         

       그 소리에 프란체는 비릿하게 웃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혹시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 자체를 내게 귀속시키는 마법이 있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허거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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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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