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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0

    <680 – 무책임한 쾌락(28)>

     

    혐성계의 슈퍼스타마냥 사악한 해골의 본 모습을 보여준 파시블 예프의 조력제안을 마지막으로 집사장의 안건도 끝났다.

    마침내 간부회의는 최후의 일인, 오크노디의 안건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으레 경매에서도 그렇듯 마지막 순번은 가장 큰 폭탄이 기다리기 마련이다.

     

    도대체 오크노디가 제시할 안건은 얼마나 흉악한 난이도를 지니고 있을까.

    이는 간부가 아닌 싱이 보기에도 몹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오크노디가 외출할 때마다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면 긴장이 안 생길 수가 없지.’

     

    오크노디의 첫 외출은 피렌체 왕국의 권세가 세비체 공작가문의 몰락을 초래했다.

    오크노디의 여름방학 크루즈선 항해는 타락의 신 안라게의 사도와의 실전결투에 이어서 훈련의 탑에서의 훈련, 이사장과의 대면으로까지 이어졌다.

    오크노디의 가을 외출은 적색마탑의 이름을 드높일 로지니의 뭔가 보여주는 환상의 불꽃쇼와 마인토벌전, 혁명군의 카넬레 시 습격, 제국수도진격, 선황퇴위, 신황토벌, 매스각키 여제 치세의 시작에 언더월드 개방까지 초래했다.

     

    982년, 일 년이 지났다고 이 말괄량이가 얌전했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개학 직후에 월반으로 지 혼자 덜컥 3학년에 올라가지를 않나, 성녀연합회를 만든다더니 아카데미에 쳐들어온 성녀도 때려눕히고 지하감옥문도 때려눕히고 잠입했던 마왕군 사천왕도 때려눕혔다.

    다음에는 본인이 외출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을 잔뜩 외출시켜서 재단간부 파시블 예프의 구출을 빙자한 훈련까지 시켰다.

    특별시험관 혈비객의 시험에 이은 재단간부 파시블 예프와 보내는 시간은 싱을 무럭무럭 성장시켰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성장의 단초도 열렸다.

     

    와이히엠하이 재단 이사장 직속삼장 중 하나.

    집사장과 이계토벌전에 동행하라는 지령.

    집사장과 이계토벌전.

    둘 중 하나만 들어도 무럭무럭 성장하겠다 싶은 키워드가 동시에 붙어있으니 폭발적인 성장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그에게 ‘이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차례가 된 오크노디.

    그녀는 대체 무엇을 보여줄까.

    보여준다고 한들, 그것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싱이 두려움의 감정을 품을 만도 했다.

     

    “솔직히 제가 막 그렇게 크게 도움을 받고 다니고 그러는 사람은 아닌데요! 모처럼 재단간부가 되었으니까 귀찮은 일을 시켜볼까 싶긴 해요!”

     

    오크노디의 ‘귀찮은 일’.

    다크노디와 싱의 얼굴이 일찍이 경직되었다.

    나쁜아이.

    무서운아이.

    재단의 아가씨.

    무섭게 자란 소녀.

    감정을 모르는 살인기계.

    그녀를 둘러싼 이미지야 다양하다만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

    그렇게 나쁜 아이면 자기 일도 남한테 다 시키고 굉장히 게으를지도 모른다고.

    싱은 자신할 수 있다.

    이건 오크노디를 수박 겉핥기처럼 대충 핥아본 사람이나 할 헛소리다.

     

    오크노디는 의외로 부지런한 아이다.

    그것도 지독할 정도로 심각하게 부지런한 아이.

    강의를 들으면 한 학기에 10개는 기본이요, 강의시간 사이에 이동은 어떻게 하는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데 지각은 안 하고 꼬박꼬박 출석한다.

    …아카데미 밖으로 훌쩍 외출해버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아무튼 목격담이 들려서 얼굴 좀 보러 찾아갈라 치면 그곳에는 이미 오크노디가 떠나있다.

    간혹 그 작은 몸에 쉬이 연결시킬 수 없는 엄청난 식탐에서 비롯된 미식행보에도 걸리지 않은 희귀한 반찬이나 디저트가 식당에 나온다면 그런 날의 점심시간에야 간신히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왕, 싱이다!

    -…훈련장의 전기가 나가서 마법진 위에 어느 멍청한 새가 부리라도 꽂았나 살펴보라고 해서 나왔더니, 새보다 더한 게 꽂혀있군. 대체 거기서 뭐 하는 거냐, 오크노디.

    -딱따구리보다 큰 소리로 벽을 쪼아서 딱따구리에게 패배감을 느끼게 만들면 <쪼기> 기능이 대폭 증가하는 거 알아요?

    -……그런 괴상한 지식은 당연히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보기 흉하니까 벽 밖으로 고개나 빼라. 네 얼굴이 벽을 뚫고 있어서 훈련장의 배전마법진이 수복되지 않는다.

    -그게 말이죠? 벽의 재생력이 제 힘보다 세서 억지로 움직였다간…

    -목이 아프다?

    -수복술식까지 와르르 무너져서 벌금이 10배! 헤헤. 그래서 그런데 술식이 안 잘리는 선에서 검격 한 번만 벽에 그어줄 수 있어요?

     

    무슨 희귀한 몬스터마냥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불쑥 마주쳐서 만난 사람이 도리어 더 놀랄 정도의 일상!

    딱따구리부터 시작해서 기프트 아일랜드에 서식하는 모든 종류의 조류에게 패배감과 좌절감을 알려주는 영문 모를 행보를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시도 때도 없이 한동안 이어갈 정도로 오크노디는 부지런했다.

     

    -우왕, 싱이다!

    -폭포에서 널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군. 새들을 괴롭히는 별난 짓은 이제 그만두었나?

    -이번주는 물고기보다 큰 거품을 뿜어내는 주간이에요. 이거 하면 물 속에서 호흡하는 시간 조금씩 길어짐! 같이 할래요?

    -…그런 괴상한 잔재주는 필요 없다. 나는 검을 휘둘러서 폭포를 수직으로 절단하는 폭포가르기를 수련하러 왔다.

    -싫음 말고요!

     

    주말내내 쏟아지는 폭포물을 맞으며 검을 위로 휘두르기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개빡친 커다란 물고기 몇 마리가 수면 위까지 튀어나와 발광하듯이 몸부림을 치다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처럼 <물생성> 마법으로 강을 떠나는 꼴을 몇 번을 봤던지.

    마음만 먹으면 하는 일의 괴상함이야 둘째 치고 그 분야의 끝을 볼 기세로 파고드는 집요함을 떠올리면 쉽게 끝날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 아이가 귀찮아 할 정도의 일이면 대체 얼마나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뭐가 됐든 나만 엮이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으려나.’

     

    싱의 불행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요즘 자동연주 브금생성속도가 너무 느리더라구요. 그래서 제 악기가 연주하는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너무 약하면 안 되고 너무 빨리 쓰러지거나 죽어도 곤란해요! 그리고 제 일과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까 저랑 같은 속도에 같은 동선으로 알아서 따라다닐 수도 있어야 해요!”

     

    싱에게는 생명의 위협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

     

    말 못 하는 그를 바라보는 파시블 예프의 해골 눈구덩이가 이미 무언으로 말하고 있다.

    알지?

    싱은 고개를 저어가며 적극적인 거부의사를 드러내었지만 그의 의사는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았다.

     

    “지나치게 사익을 추구하는군.”

     

    절망하던 그를 구해준 이는 뜻밖에도 집사장이었다.

    집사장은 오크노디의 안건이 탐탁찮았다.

     

    “재단에서 지원을 해줘가며 그런 억지에 어울려줘야 하는 이유는?”

    “힝. 간부취임 기념으로 이 정도도 못 해줘요?”

    “보통은 안 해준다. 갈릭을 봐라.”

    “제가 저거랑 같지는 않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네 부탁을 들어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들리지 않는군. 그 악기라는 게 어떤 건지 시범연주를 들려줘라.”

     

    신이 난 오크노디가 제 주변을 둥실둥실 떠다니던 핏빛 바이올린에 마력을 불어넣으니 어지간한 마도구에 갇혀서 비명을 지르는 정령들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고통의 기운이 새어나왔다.

     

    “!!”

     

    연주는 뛰어났다.

    오크노디의 머릿속 악상과 조금만 달라도 마나로 고통을 주고, 삑사리 한 번만 내도 고통이 배가 되니 악기 속 존재는 감히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식물에 영혼을 담아두고 괴롭히는 이사장보다 한술 더 떠서 능동적인 노동을 강제하는 구조!

     

    ‘아비보다 더한 딸이 탄생하고야 말았군.’

     

    견적을 보아하니 이건 중간계에 종사하는 평범한 집사2부 소속 집사들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계의 다양한 정신공격에 대항하는 수단을 갖추었고, 존재가 발각되면 죽음 내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는 환경에서 장기간 잠행을 이어가는 집사 1부 소속 집사들은 되어야 ‘최소조건’ 중 하나가 간신히 충족된다.

     

    “네 이동은 얼마나 빠르냐.”

    “시범 보고 싶으시구나!”

     

    오크노디는 즉석에서 자신의 이동기 몇 가지를 보여주었다.

     

    싱이 익히 알고 있는 <마나발판>을 연속도약으로 뛰어넘으며 땅에 발 한번 붙이지 않고 날아다니는 연속도약이동기.

     

    벽이나 장애물과 마주칠 때마다 <벽통과> 주문으로 일직선으로 다 뚫고 다니는 직선돌파이동기.

     

    아카데미의 보안시스템을 피할 때처럼 마나감지마법의 감지패턴을 감쪽같이 피하거나 마나파장과 자신의 마나파장을 순간적으로 일치시켜 감지에 걸리지 않는 마나감지회피기.

     

    최근 개발한 마나발판의 연속배치와 가속 마나부스터 구르기를 접목한 공중데굴데굴이동기.

     

    이 아이는 걷는 법을 몰라서 이러나 싶을 정도로 해괴한 이동기들은 추적의 달인들이 아니고서야 감히 미행에 투입시킬 엄두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 저 힘든 이동기를 따라붙으면서 한다는 짓이 악기연주감상하기가 아닌가.

     

    “…뭔가 이상한데. 노래가 신기하긴 하다만 그거 좀 듣는다고 사람이 죽을 정도인가? 정신나간 이동기를 따라가다가 지붕에서 발을 헛디디거나 벽에 몸이 끼여 죽는다면 이해가 안 갈 것도 아니지만.”

    “아참. BGM 들려준다고 개발중인 연주기술을 안 들려드렸구나! 보스룸에서 자동으로 피가 까이거나 상태이상 부여하는 효과를 노래로 구현하려고 애 좀 썼거든요. 한번 들어보세요!”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선율이 뒤바뀌는 순간, 마도구에 갇혀있던 영혼이 고통받던 <상태이상>의 데미지가 선율을 듣는 모두에게 공유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약한 자는 듣고 살아남을 수 없는 안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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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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