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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1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아나스타시아가 뿌듯한 표정을 서 있기를 몇 초.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어디선가가 아니다.

         

       아나스타시아의 바로 양옆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마치 공연에 감동한 관객들이 하는 것처럼 격렬한 박수가 말이다.

         

       그리고 그 박수를 하는 것은….

         

       “물개…?”

         

       물개들이었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점박이 물개들은 자기 지느러미를 미친 듯이 움직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배를 북 삼아서 박수 소리를 내는 일반적인 물개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짝짝짝짝.

         

       저게 배를 두드리는 건지 박수 소리를 내는 건지.

         

       물개들은 정신 나간 관객들처럼 계속 박수 소리를 내더니, 이내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곤 지느러미를 척 들어 올렸다.

         

       처억.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것 같은 자신만만한 미소처럼 보였다.

         

       그리곤 그대로 투명해지기 시작하더니, 사라져버렸다.

         

       “후후. 어떤가요. 진-성. 이것이 바로 제가 얼마 전에 데리고 온 궁극의 리액션 담당. 물개합창단입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물개들이 사라지기 직전 지었던 것 같은 뿌듯한 표정으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박진성은 어서 칭찬해달라고 보채는 듯한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에 방긋 웃으며 좋은 말들을 해주었다. 예를 들자면…’물개가 아니라 물범인 줄 알았다.’, ‘손뼉을 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관객 아르바이트를 한 5년은 한 경력자들이 아니냐.’, ‘합창을 목소리로 한다는 편견을 깨부수는 퍼포먼스였다. 박수는 또 다른 목소리이자 악기가 되었고, 완벽하게 이 공간을 지배하였다.’ 같은 말들이었다.

         

       물론 그러한 칭찬을 하면서도 박진성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용병 시절 담비와 함께 다니며 익숙해진 것이었으니까.

         

       약간 4차원에 가까운, 이게 과연 칭찬이 맞는지는 의문이 드는 말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이러한 칭찬을 가장 좋아하곤 했었다.

         

       그리고 아나스타시아 역시 이러한 칭찬을 매우 좋아했다.

       물개들이 칭찬받을 때마다 자신이 칭찬받은 것처럼 좋아했고, ‘그 물개들을 데려온 것이 바로 나다. 이 몸이다!’라는 뿌듯함을 온몸으로 표현하였으니까.

         

       박진성은 그렇게 아나스타시아의 물개를 칭찬하며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곤 의자에 앉히곤, 미리 준비해두었던 음료를 그녀에게 주었다.

         

       AI가 직접 설계했다고 광고하는 콜라였다.

         

       “아, 진-성도 이거 샀네요! 이 콜라, 뭔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AI의 야욕이 담긴 것 같은 맛이 느껴져서 신기했어요!”

         

       박진성의 선택이 옳았던 것일까.

       아나스타시아는 행복한 표정으로 콜라를 음미했다.

       그리고는 ‘이 맛은…! 인간 세상의 끝이 도래할 것 같네요!’, ‘이 별은 이제 망했어! 지금부터 지구는 AI가 지배한다!’ 같은 말을 중간중간 외치면서 콜라의 맛에 감탄했다.

         

       그리고는.

         

       “음음. 좋아요. 훌륭한 차였습니다. 이 레이디 아나스타시아! 진-성의 의뢰를 받겠습니다.”

         

       대접에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소파의 뒤로 들어가 쏘옥 몸을 숨기더니, 이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나스타시아의 복장이 바뀌어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티셔츠와 청바지 복장이 아니라, 수백 년 전 귀족 집안의 아가씨나 입을법한 프릴이 잔뜩 달린 드레스로 변해 있었다.

         

       때 한 점 묻지 않은 하얀색의 옷감으로만 이루어진 드레스.

       드레스는 프릴이 많이 달려있어 하얀색만 사용하고 있음에도 어마어마하게 화려하다고 느끼게 하였으며, 치마는 안쪽에 뼈대라도 있는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소파에 몸을 숨긴 몇 초 안에 갈아입을 수 있을 것으론 생각되지 않는 옷이었다.

         

       그녀는 그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채로, 예절 수업에 배웠을 있어 보이는 몸짓과 말투로 진성에게 말했다.

         

       “자아. 신사님. 제가 무엇을 살펴보면 될까요?”

         

         

         

         

        * * *

         

         

         

         

       여기 소녀가 있다.

       둥근 앞코에 발등을 감싸는 끈 하나.

       너무나 하얀 메리제인(Mary Jane) 구두를 신고 사뿐사뿐.

       둥글게 부풀어 오른 긴 치마는 걸음 때마다 조금씩 움직이고, 몸 곳곳에 달린 프릴과 리본은 깜찍하게 흔들린다. 기다란 하얀 생머리 역시 프릴처럼 살랑살랑 움직이고, 하얀 피부와 하얀 옷 사이에 유일한 빨간색인 두 눈이 이곳저곳을 바라본다.

         

       사뿐사뿐.

         

       한 발짝, 두 발짝.

         

       피크닉이라도 가는 것처럼 가볍고 즐거운 발걸음은 또각또각 소리를 자아내며 그렇게 퍼져나간다.

         

       깜깜한 통로 속에서도 이 시릴 정도의 하얀색은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니.

       한밤중에 산책하러 나가는 눈사람이 이러할까, 깜깜한 먹구름 사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눈송이의 존재감이 과연 이러할까.

       눈의 순결함과 그 눈부신 하얀색이 그러하듯, 이 소녀 역시 그러했다.

         

       “흐흥-흥흥-”

         

       즐거움을 주체하지 못해 소녀는 콧노래를 부른다.

       자그마한 몸을 가진 소녀가 지나감에도 꽉 차버리는 좁디좁은 통로.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고, 회색 먼지가 부유하는 그곳.

       태양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고, 대신에 습기만이 가득한 지하의 어딘가.

         

       소녀는 그곳을 좋은 날씨의 숲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걷는다.

         

       하지만 통로라는 것은 어디론가 통하고 있는 것이며, 끝이 존재하는 것.

         

       마침내 그녀의 눈앞에 환한 빛이 가득 담긴 통로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빛이 어찌나 환한지 밖의 풍경을 짐작조차 못 할 것 같건만, 그녀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두려움도 품지 않고 그저 통로에서 걸어가던 것과 똑같이 그 빛 속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진 곳에는 토마토가 있었다.

         

       “우왕. 토마토네용!”

         

       거대한 토마토.

       산처럼 거대한 토마토.

       건물 크기의 토마토.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의 토마토.

       수천 년 살아온 것 같이 두꺼운 토마토의 줄기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로수 굵기의 토마토 줄기. 덜 익어 초록색의 둥그스름한 토마토, 알록달록 빨간색과 초록색, 노란색이 섞여 있는 토마토,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가는 방울토마토, 육중하게 굴러가며 건물을 다 부숴버리고 있는 거대한 토마토의 공, 줄기의 매달린 채 건물을 철거할 때 쓰는 쇠공처럼 이곳저곳 움직이며 빌딩을 무너뜨리고 있는 거대한 토마토, 슬라이스로 잘려진 채 수리검처럼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고 있는 수리검 토마토, 별 모양으로 잘린 채 회전하면서 이곳저곳에 꽂히고 있는 표창 토마토, 슬라임처럼 몸을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토마토, 욕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는 토마토….

         

       온 세상이 토마토였다.

         

       그리고 그 토마토의 천국 속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위대한 토마토.

         

       하늘에 박힌 채 태양처럼 빛을 내는 빠알간 태양 토마토가 소녀를 바라보았다.

         

       [ 소-녀- ]

         

       이 공간 전체에 퍼질 만큼 거대하고 웅장한 목소리.

         

       목소리를 낼 때마다 호응하듯 빛을 내는 토마토 주변의 화염.

       쨍하고 내리쬐는 강렬한 빛.

         

       정말로 태양 그 자체가 된 것 같은 토마토였다.

         

       “넹! 소녀랍니다!”

         

       그리고 소녀는 그 토마토의 관심에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환한 미소를 지으며 태양 토마토의 말에 호응했다.

       아니, 그냥 호응하는 것을 넘어서 다리를 하나로 모으고 두 팔을 위로 쭉 뻗으며- 모 게임에서 밈(meme)으로 유명해졌던 태양을 찬양하는 포즈까지 취하기까지 했다.

         

       다만 태양을 찬양하는 말은 내뱉지는 않았다.

         

       음.

       레이디답지 않으니까!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팔을 다시 내렸고, 치마의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잡아 들어 올렸다. 그리곤 몸을 살짝 낮추며 우아하게 움직였다. 정말로 레이디가 예법대로 인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인사 덕분일까?

         

       태양 토마토가 그녀에게 보내는 빛이 줄어들었다.

       아니, 빛 자체는 그대로였지만- 몇 분만 쐬고 있으면 하얀 피부가 갈색으로 태닝이 되고, 수십 분 있으면 맥반석 계란처럼 잘 익을 것 같은 강렬한 기세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거기에 땀을 짜낼 것 같은 더운 느낌 대신에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한, 그러면서도 땀이 나지 않을 정도의 온도는 덤이었다.

         

       [ 손-님-인-가? ]

         

       “네엥. 손님이랍니다!”

         

       [ 손-님-이—라. ]

         

       태양 토마토의 빛이 움직인다.

       마치 시선을 움직이는 것처럼.

       시선에 따라 그 빛이 이동하는 것처럼, 거대 토마토의 습격을 받는 도시를 비춘다.

         

       쿠구구구궁-!

         

       거인이 뻥 차기라도 한 것처럼 이곳저곳 날아다니면서 빌딩을 부수는 거대한 토마토 구체.

       탱탱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곳저곳 통통 튀면서 크레이터를 만들어내고 있는 토마토 탱탱볼.

       꼭지에 붙은 줄기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공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토마토.

       ‘마티아스 부장 죽어라! 토마토의 심판을 받아라!’라고 외치면서 슈트를 입은 50대 남성에게 토마토 기관총을 난사하고 있는 토마토…?

         

       거대 토마토는 난장판과도 같은 그 풍경을 훑어보고는, 소녀에게 말한다.

         

       [ 앨-리-스-환-영-한-다- ]

         

       “네에~”

         

       소녀.

       직업은 앨리스.

       이름은 아나스타시아 B 렌츠.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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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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