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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2

        

         

       토마토가 도시를 부수고 있는 개판…아니, 토마토판.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마치 그 풍경과 괴리되기라도 한 듯이, 혹은 토마토와 같은 편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을 돌아다녔다. 마치 꿈속을 산책하는 동화 속의 소녀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나 사방이 부서진 도시의 잔해들, 토마토의 빨간색과 초록색이 가득한 상황임에도…먼지 하나 묻지 않아 깔끔한, 태양 토마토의 빛을 받아 이제는 눈이 부시게까지 느껴지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로 말이다.

         

       ‘후후. 지금의 나는…앨리스 그 자체…!’

         

       이는 아나스타시아의 능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옷 덕분이기도 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이 새하얀 프릴 드레스.

       이것은 단순히 의상점에서 맞춘 옷이 아닌, 꿈속에서 그녀가 가지고 온 특별한 능력을 갖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날은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의 급식으로 고기인 척 그녀를 기만한 사악한 버섯 탕수육과 닭강정인 척하는 코다리 강정이 나왔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래.

       무려 하나도 아니고 두 메뉴가 그녀를 속인 것이다…!

         

       사악한 음식들, 그리고 이 사악한 존재들을 소환해서 부린 사악한 영양사…!

       용서할 수 없다…!

         

       그때 아나스타시아는 두 음식에 기만당한 충격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하였었다.

       그녀는 분노에 차서 그 사악한 두 메뉴를 입 안에 옴뇸뇸 소리를 내며 집어넣었고, 자기 위장 안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사악한 형벌을 내렸었지….

       그리곤 잘 먹는다면서 자신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영양사에게 ‘이렇게 저를 감쪽같이 속이다니…! 제법 하네요…!’라면서 찬사 아닌 찬사를 한 후, 학교 매점에서 민트초코파이맛 피자 젤리를 사서 입가심을 하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선 학교 점심시간에 겪은 이 악몽과도 같은…마왕의 계략에 속아버린 그날의 충격을 잊어버리기 위해 2m까지 늘어나는 하얀 고양이 바디 필로우를 몸에 칭칭 감고, 거위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해서 오히려 자신이 죽어버리게 된 멍청하고 불쌍한 암살자 오리의 털로 만든 따뜻한 이불을 덮었다. 그리곤 꿈속에서 가져온 마시멜로? 비슷한 것을 속에 채운 베개를 베고, 그렇게 꿈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날이 유독 특이한 날이었던 것일까….

       그녀가 꿈속으로 들어갔을 때 맞이한 것은, 동화 같은 세상…이라고 해야 하나.

       롤빵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금발 여자가 검은 머리의 여자애를 괴롭히고 있는, 중세 시대 파티장과 같은 공간에 따악 들어가게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정말 놀랍게도, 그녀는 금발 여자와 흑발 여자의 중앙에 딱 등장하게 되었다.

       마치 그녀들의 싸움을 말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아나스타시아는 당황했다.

       한…2초 정도?

         

       그리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때라고…!

       그래서 그녀는 보디가드 테디베어에게 배운 것처럼 진각을 강하게 밟고는 주먹을 내질러 금발 여자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반동을 이용, 몸에 회전을 가미한 다음에 팔꿈치로 흑발 여자 역시 후려쳤다.

         

       그리고 그렇게 K.O 당한 두 여자를 발아래에 둔 채.

       그녀는 언젠가 꿈속에서 챙겨왔던 챔피언 벨트를 높게 들어 올리며 ‘저는 챔피언이랍니다!’라고, 파티장의 분위기에 걸맞은 귀족 아가씨 같은 말투로 그렇게 선언하였었지….

         

       그리고 그 위엄 넘치는 모습에 수많은 신사·숙녀가 감탄을 금치 못하였고, 손뼉을 치면서 그녀의 우승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디자이너로 보이는 몸에 짝 달라붙는 옷을 입은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챔피언께 이것을 바칩니다!’라면서 옷을 주었다.

       그래….

         

       피로 피를 씻는 그때의 전투로 얻은 것이 바로!

       지금 아나스타시아가 입고 있는 드레스였던 것이다…!

         

       그리고 잔혹한 전투 끝에 얻은 드레스인 만큼, 이 물건의 효과는 매우 강력했다.

       무려…꿈속을 돌아다닐 때 도움이 되는 물건이었다!

         

       …물론 다른 물건들 역시 꿈속을 돌아다닐 때 매우 효과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물건은 조금 달랐다.

       때를 타지 않았으며, 그 어떤 오물이 묻어도 오염되지 않았다.

       게다가 귀족 아가씨 같은 분위기를 만들며 밝은 분위기 속에서는 동화의 한 장면처럼 잘 녹아들었고, 어두운 분위기의 꿈이라고 할지라도 그 음울함을 깨뜨려버릴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게다가 몽환적인 장면에서는…유명한 동화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인 앨리스, 혹은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와 착각을 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고 말이다.

         

       ‘앨리스나 도로시의 드레스는 아니지만!’

         

       앨리스와 도로시라기보다는, 어디 로맨스 판타지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의복을 보고 왜 앨리스나 도로시를 떠올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면 그게 꿈이겠는가!

         

       그렇기에….

         

       어? 드레스를 입고 있는 소녀가 있네?

       드레스? 소녀?

       앨리스?

       도로시?

       암튼 둘 중 하나는 맞갰지! 몬가 이상한 나라에 놀러왔나보내!

       안뇽!

         

       …이런 식으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동화 속 아가씨’라는 뭔가 동심 가득한 포장과 느낌이 더해지면서, 아무리 난장판인 꿈이라고 할지라도 무적 상태 비스름한 것이 되기도 하고, 가끔 동화라는 요소와 꿈이 호응해서 재미있는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하며, 드레스와 어울리는 어떠한 물건을 습득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아나스타시아가 신고 있는 메리제인 구두 역시 그렇게 얻은 물건 중 하나!

       무려 물 위를 평지처럼 걸어 다닐 수 있으며, 때가 타지 않아서 세탁할 필요도 없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걸어 다니는 곳이 얼음이나 늪지대라고 하더라도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 산책하러 나갈 때는 이만한 신발이 없었다!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았다. 이 메리제인 구두는 하얀색이 아니라 다른 색이 들어간 옷을 입으면 중간중간 발이 꼬이게 만들어서 꽈당 넘어지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뭐…. 다치지는 않고 그냥 조금 아픈 수준이니, 그냥 신발이 약간의 심술을 부린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 그리고.

         

       “안뇽! 토마토 아저씨!”

         

       뻐엉-!

         

       이렇게 발차기의 위력을 조금 상승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물론 얼마나 올라가는지는 구두의 기분에 달린 것이지만 말이다.

         

       [ 아-아-아-날-아-간-다— ]

         

       아나스타시아의 발에 맞은 2m가 넘는 크기의 토마토는 하늘을 날았다.

       마치 로켓이라도 된 것처럼, 약간 길쭉하게 늘어진 채 말이다.

       아나스타시아의 발길질에 살짝 터져나간 곳에서 흘러나오는 과즙이 로켓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처럼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어쩌면…토마토의 눈물일지도 모른다.

       아나스타시아의 발길질이 아파서 흘리는 눈물.

       혹은, 토마토 최초로 우주로 진출하게 된 감동에 흘리는 눈물일 수도…!

         

       응답하라, 여기는 휴스턴…!

       토마토는 붉고, 지구는 푸르렀다…!

         

       아나스타시아는 반짝이는 별이 되어버린 토마토를 향해 가볍게 경례했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려서 토마토를 바라보았다.

         

       도시를 파괴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덜덜 떨고 있는 저 붉은 도시파괴자들을…!

         

       아아.

       지금 소녀는 파괴자요, 정복자가 되었다.

       사악한 존재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전사이며, 부서지는 도시에 광명을 가져올 천사이기도 했다…!

         

       토마토여! 두려워하라!

       토마토여! 굴복하라!

         

         

         

        * * *

         

         

         

       최첨단 디스플레이가 부착된 비행선.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LED의 간판.

       몸 곳곳을 기계로 바꾼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이곳.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람은 맞는지조차 의문이 될 정도로 개조에 개조를 거듭한 이들이 넘쳐나는 공간.

       어지럽고, 밝고, 복잡한 이 공간.

       이곳은 꿈속의 공간.

         

       네오 뉴욕(Neo New York)이라는 거대한 네온사인이 빛을 내는 꿈속의 공간이었다.

         

       그 꿈속의 공간은 퇴폐적이었지만 로망이 가득 차 있었고, 기업들의 착취에 시름에 젖어 있어야 할 사람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로망을 그대로 담고 있기에 그들은 무기력하지 않았으며, 제각기 자신의 욕망을 한껏 뿜어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마치 공작새가 제 꼬리를 자랑하는 것처럼 자기 몸을, 자신의 매력을, 혹은 자신이 개조한 부분을 자랑하며 하룻밤을 함께 지새울 이들을 찾아 헤맸다.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기계와 기계, 혹은 아예 모두가 뒤섞인 단체로.

         

       그렇게 그들은 언제나처럼 퇴폐적인 행동을 반복하며 이 몽환적인 사이버펑크 배경을 유지하려 하고 있었다….

         

       …그래.

       불청객만 없었더라면.

       반드시 그러했으리라.

         

       두웅-!

       두웅-!

       두웅-!

         

       저 멀리 도시 경계에 세워진 장벽 너머로 들리는 웅장한 소리.

       거대한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거대한 소리.

       사람들의 몸을 떨리게 하고,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 역시 덜덜 떨리게 만드는 소리…!

         

       그 북소리와 함께 그들은 나타났다.

       피처럼 붉은 몸을 이끌며, 그들이 나타났다…!

         

       육중하게 굴러가는 둥근 몸.

       하늘의 신이 땅으로 쏜 것만 같은 붉은 대포알…!

       자기 몸을 바퀴로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저 광신적인 모습…!

         

       보기만 해도 두려운 저 군단은 장벽 너머를 가득 메웠다.

         

       그들은 군단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주며, 확성기를 들고 외친다.

         

       [ 칠색으로 빛나는 조류의 주인, 순결하고 고결한 존재, 도시를 부수는 파괴자들을 이끄는 군주, 그 스스로 하늘에 닿은 무력의 주인, 학살을 함에도 티 한 점 묻지 아니하는 존귀하신 분, 자비로우나 한없이 잔혹해질 수도 있는 그분께서 이곳에 당도하였도다! ]

         

       둥-!

       둥-!

         

       수많은 붉은 구체-

       구체적으로는 ‘토마토’라고 부르는, 하지만 일반적인 토마토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무언가들을 이끄는 존재.

       하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철골을 재료로 만든 거대한 의자에 앉아 도시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앞에, 얼굴이 달린 토마토가 열성적으로 외친다.

         

       [ 항복하라! 굴복하라! 우리는 오늘, 수많은 공간을 평정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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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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