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83

    <683 – 충격고백(1)>

     

    싱이 고른 길은 오크노디 곁에 머무르는 길이었다.

    이사장의 저택, 훈련의 탑에서도 그가 오크노디 곁에 남지 않았다면 그녀는 영영 훈련의 탑에 머물렀을지도 모르는 일.

    누군가는 오크노디에게 순간의 호기심보다 더 값진, 돌아가야 할 곳이 있음을 알려줘야만 했다.

     

    그건 파시블 예프의 수인이너무좋은새침변태묵언노출광 여검객 호위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참 고민이 깊었다.

    정체가 드러나며 겪게 될 수치를 감내하느니 그냥 입이나 꾹 닫고 아카데미로 돌아가서 동기들이 속는 거나 막자고.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남자였다.

    수치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남자.

    오크노디가 자신을 위해 가짜여동생이나마 반지에 가두어 그 형태를 보존해주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성장의 기회를 베푸는 모습을 보아왔다.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한다.

    사나이라면 응당 해야만 하는 일이다.

     

    비겁하고 졸렬하게 여장 사실을 숨기고 일상으로 돌아가 평상시의 고독한 동방검객으로 돌아갈 것인가.

    혹은 수치스러운 여장검객의 오명을 무릅쓰고 오크노디의 곁을 지키며 은혜를 갚을 것인가.

     

    ‘나도 남자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해야만 하는 일인지는 이미 알고 있지.’

     

    검집에 손을 얹는 순간, 모든 망설임이 칼에 잘린 것처럼 끊어졌다.

     

    <원점영역>

     

    원점.

    초심으로 돌아간 마음이 그에게서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도려내었다.

    사내가 의로운 일을 한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이다.

    비록 언더붑햄스터인형옷을 입고 여성의 외관을 지닌 채로 남자 목소리를 내며 정체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한들, 그 오명을 견뎌내는 용기야말로 남자답다.

     

    ‘여장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내가 고를 수 있는 가장 남자다운 길이지.’

     

    싱은 용기를 내어 오크노디에게 다가갔다.

     

    “오오?”

     

    그의 기색을 알아차린 파시블 예프는 싱을 말리는 대신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토록 열심히 감추려고 했던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내려는 의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크노디.”

    “헉! 말을 했어?!”

     

    오크노디도 화들짝 놀랐다.

    이걸 컨셉을 깨고 아는 척을 해?

    그렇게나 자기가 여장 취미가 있었음을 인정받고 싶어 했던 거야?

    집사장 어그로가 더 커서 싱 괴롭히기는 잠깐 미뤄두고 있었는데 설마 선빵 고백을 받을 줄 몰랐던 오크노디는 정말 몹시 크게 놀랐다.

     

    “이런 모습으로 말하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나는 싱이다.”

    “정체를 감춰놓고 왜 드러낸 거예요?”

    “나는… 네가 걱정되어서 이 자리까지 몰래 따라왔다. 그리고 <분신>과 역할을 바꾸어 잠시 아카데미를 떠나겠다는 너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정체를 감춘 채로 따라갈 수는 없으니 이렇게 목소리를 내어 네 앞에 나선 것이다.”

     

    오크노디의 입이 말없이 크게 벌어졌다.

    역시 거북함을 느끼는가.

    오크노디의 호감도가 멀어졌다고 느끼는 싱.

    그러나 미움받을 용기를 내어서라도 오크노디가 돌아갈 곳을 잊지 않도록 만들고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그는 결심했다.

     

    “굉장해!”

    “…굉장해?”

    “일코를 깨고 실체를 드러내다니!”

     

    일반인 코스프레.

    사회적으로 주류가 아닌 사람이 주류인 척하는 경우.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는 취미를 드러내는 용기에 비장한 각오까지는 몰라도 제 취향에 솔직하게 진심을 드러내는 싱을 오크노디는 응원했다.

     

    “그 마음 저도 알아요!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만 해도 사방에서 욕을 먹느라 얼마나 힘든데 그걸 솔직하게 말하다니!”

     

    오크노디는 과거를 떠올리며 조금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뭐? 아카데미 몰살루트 엔딩을 봤다고? 이런 천하의 쓰레기 같은 놈! 넌 인간도 아니야!

    -맙소사. NPC에게 배가 터질 때까지 음식을 먹이는 악기바리를 했다고? 혹시나 특수칭호나 엔딩이 있지 않을지 궁금해서?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마왕군 원정대에 참석하는 NPC들을 호감도 0 이상으로 만든 NPC 하나 없이 오도버스라는 이름의 고강마차에 강제징집으로 모조리 납치해서 전선에 떨구어 살고 싶으면 싸우게 만들다니, 너는 악마냐?!

     

    같은 고인물들 사이에서도 그저 조금 특이한 올컬렉션 취향을 지녔을 뿐인데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으며 취향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된 외롭고 쓸쓸한 고인물 오크노디!

    고인물 랭킹 최상단을 차지하나,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하는 인간 이하의 귀축 취급을 받던 그녀에게 비주류 취향이란 자신의 과거나 다름없었다.

     

    ‘진정한 고인물이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퍼먹을 줄 알아야지!’

     

    설령 본인이 퍼먹지 못하더라도 남의 다양한 취향도 존중할 줄 알아야만 했다.

    적어도 오크노디가 생각하는 고인물의 정의란 그런 것이었으며, 그녀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배타적인 고인물들을 그녀는 동격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게임에 매달렸다.

    그녀를 부정하는 이들이 그녀보다 위에 서는 일을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런 지금, 싱의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게 보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명백했다.

     

    고인물은 이것도 저것도 루트 분기마다 다 찍어서 먹는데 뉴비의 조금 별난 취향 하나 가지고 깐깐하게 구는 놈은 고인물 자격도 없는 진짜 속 좁은 나쁜 놈이다.

     

    “괜찮아요. 전 다 이해해요! 싱의 어떤 모습이라도 전부 존중해줄게요!”

     

    뉴비가 좋다는 건 다 들어줘야지!

    응원하진 못할망정 초를 칠 수는 없다는 마음!

     

    ‘용기를 내길 잘했구나.’

     

    싱은 그녀의 관대함에 더욱 뭉클함을 느꼈다.

    남길 잘했어.

    말해보길 잘했어.

    오크노디가 설마 이런 자신조차 긍정해 주다니.

    용기의 보상을 얻는 것처럼 마음이 복받쳐 올랐다.

    하지만 오크노디의 속마음을 이어서 읽을 수 있었어도 그 감동이 계속되었을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아카데미 돌아가면 동기들을 모아서 싱의 성향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앞으로 모두가 싱을 존중해달라고 말해야겠어!’

     

    순수한 호의로 싱을 돕고자 굳게 다짐하는 오크노디의 무거운 호의표현방식!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은 일치하지만, 표현 방식이 심대하게 엇갈린 두 사람, 정확히는 한 고인물이었다.

     

     

    * * *

     

     

    “그래서 앞으로는 싱 언니라고 불러드릴까요?”

    “그럴 필요는 없다.”

    “에엣. 그치만 저만 옆에 있을 때가 아니면 본모습으로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저야 받아들일 수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여자 옷을 입은 남자 변태라고 더 크게 놀랄걸요?”

     

    오크노디의 논리적인 지적에 싱은 정체를 드러내었으니 본 모습으로 행동하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는 게 낫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기야 이왕 아카데미를 벗어난 마당에 그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다니거든 동방검객 싱이 여기에 있다고 소문이 허다하게 날 거다.

    게다가 그는 이미 외출 기간을 초과한 전례가 한 번 있었는데 이번으로 두 번째가 되었다.

     

    ‘나는 오크노디와 입장이 다르지.’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도 싱의 무단외출연장과 결석을 용서하지는 않겠지.

    그는 이미 내심 퇴학마저도 각오했다.

    아카데미에서 배울 것들은 남아있지만, 평범한 학생은 배울 수 없는 수련치를 쌓기도 했다.

     

    ‘오크노디의 곁에만 있다면 모두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것들이고.’

     

    남자로서의 과거와 인생은 잠시 접어둔다.

    싱은 아카데미 981기 생도로서의 신분은 잠시 접어두고 오크노디의 비밀모험을 함께 할 동료로서의 새 신분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알겠다. 그럼, 당분간은 여성형 모습으로 여장을 유지하겠다.”

    “싱이 좋은 대로 있어요! 그런데 전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그 옷차림은 뭐예요?”

    “간부 파시블 예프가 준 옷이다. 키우던 햄스터수인이라도 있었나 보지.”

    “근데 그거 전신인형옷이잖아요! 그럼 가죽을 다 벗긴 건데요?”

    “…어?”

     

    싱은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안에 도토리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처럼 밑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파격적인 차림새 탓에 미처 신경 쓰지 못했지만, 오크노디의 말이 맞았다.

    전신털가죽을 벗겼으니 이런 차림새의 옷이 나오지 않겠는가.

     

    “물론 인형옷이라는 것이 꼭 동물가죽을 벗겨서 만든 옷은 아니에요!”

     

    공룡인형옷을 정말 공룡가죽을 벗겨서 만들고, 상어인형옷을 정말 상어가죽을 벗겨서 만들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사자나 곰은 그냥 벗기기도 하지만요!”

    “…어어?”

    “그러면 햄스터수인은 공룡이나 상어 과일까요, 아니면 곰과 사자 과일까요?”

     

    혼란스럽다.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터질 것만 같다!

    괴로워하는 싱의 모습을 보며 개조군단이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지금 저게 무슨 대화지?”

    “우리 가죽을 벗기겠다는 건가?”

    “긴장을 푸는 스몰토크조차 살아있는 존재의 가죽을 생으로 벗겨버리는 이야기라니, 대체 얼마나 순수하게 잔인하고 악독해야 저런 존재가 될 수 있지?”

    “역시 다크프린세스…”

    “너무 무서워…”

     

    계속되는 공포 속에서 돌연 오크노디의 몸에 새카만 암흑 기둥이 내리꽂혔다.

     

    [무서운아이 경험치가 임계점을 돌파했습니다.]

    [무서운아이 기능이 <사악한아이>로 진화합니다.]

     

    다크노디가 가고 그보다 더한 사악노디가 나타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악한 아이!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